[단비현장] '미세플라스틱' 돼 돌아오는 ‘담배 필터’

지난달 20일부터 26일까지,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KT&G 서울사옥에는 택배 상자 7~8개가 잇달아 배송됐다. 이 회사 직원이 상자를 열자 담배꽁초로 빽빽한 페트병과 비닐봉지가 가득 나왔다. 이런 손글씨들이 적힌 편지도 상자마다 들어있었다.

“하루에 버려지는 꽁초 1246만 개! 1년에 45억 개비! 꽁초에 플라스틱, 알고 계세요?”

“저희가 걸어 다니는 모든 곳과 도로에서도 눈에 띄는 담배꽁초가 잘 안 보이시나요? 저희의 귀한 시간 내어 직접 주운 꽁초를 보내드립니다.”

“담배꽁초는 쓰레기통에 버리게 해주세요. 우리가 먹고 씻는 물에 미세플라스틱이 있어요.”

“환경과 지구는 잠시 빌려 쓰는 것입니다. 흡연자들이 꽁초 속 플라스틱을 인지할 수 있도록, 꽁초를 바르게 버릴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해주세요!”

“꽁초 없는 세상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어요!”

▲ 지난달 20일부터 26일까지 담배회사 KT&G에 배송된 환경단체 와이퍼스의 ‘꽁초 어택’ 상자들 안에 꽁초와 항의 메시지가 들어있다. ⓒ 와이퍼스

이 상자들은 환경단체 와이퍼스가 '2차 꽁초 어택'을 위해 보낸 것이다. ‘꽁초 어택’은 무단투기된 담배꽁초를 주워 담배회사 등으로 보내는 시위 행동으로, 2차 어택 기간(4월 20~26일) 동안 와이퍼스가 KT&G로 보낸 꽁초는 2만5467개비였다. 담배꽁초가 만들어내는 ‘미세플라스틱’의 위험성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뜻을 담았다. 와이퍼스는 작년에도 1차 어택을 실행해 KT&G 대전본사로 꽁초 7000개비를 보냈다. 플라스틱이 들어가지 않은 담배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지만 아무런 반응이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와이퍼스를 이끄는 ‘닦장’ 황승용 씨는 “KT&G를 어택하는 건 가장 직접적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이득을 취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T&G는 우리나라 최대 담배 제조·판매사다. KT&G가 아무런 답변이나 대책을 내놓지 않자 황 씨는 오는 6월에는 환경부를 대상으로 꽁초 어택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경정책 주무 부처가 직접 나서서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기 위해서다.

플라스틱 성분 필터, 인체에 유해

와이퍼스가 꽁초 어택에 나선 것은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담배의 필터 부분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미세플라스틱이 돼 인체와 환경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담배 연기 속 유해물질을 거르는 역할을 하는 필터는 언뜻 보면 솜처럼 생겼지만 실제로는 ‘셀룰로스 아세테이트’라는 플라스틱 물질이다. 미국의 환경단체 CBPP(Cigarette Butt Pollution Project)에 따르면 전 세계 담배의 90% 이상이 셀룰로스 아세테이트 필터를 쓰고 있다. 이 플라스틱 성분으로 만들어진 담배 필터가 빗물 등에 휩쓸려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파도에 쓸리고 햇빛을 받아 5mm 이하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평균 10~15년이 지나야 썩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다의 미세플라스틱을 물고기나 조개 같은 해양생물이 섭취하고 그 어패류를 사람이 먹으면 미세플라스틱은 인체 안으로 들어온다.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물리적 또는 화학적 위해를 가할 수 있다. 물리적 위해는 미세플라스틱이 소화기관을 가로막거나 점막을 자극하고 마모하는 방식으로 가해진다. 미세플라스틱은 또 면역체계를 손상하거나 세포를 괴사시킬 수 있다.

호흡기가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되면 간질성 폐질환이 유발돼 기침, 호흡곤란, 폐기능 저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성평가연구소 박준우 박사는 “미세플라스틱이 110㎛(마이크로미터, 1㎛는 0.001mm) 이하인 경우 내장의 림프조직으로 흡수될 수 있고, 20㎛ 이하가 되면 각종 기관 안으로 침투가 가능하다”며 “0.1㎛ 이하가 되면 뇌까지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 담배 연기 속 유해물질을 거르는 역할을 하는 필터 부분은 ‘셀룰로스 아세테이트’라는 플라스틱 물질로 만들어진다. ⓒ 김해솔

화학적으로는 첨가제 같은 플라스틱제품 함유 물질이나 나중에 필터에 달라붙은 오염물질도 인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내분비계 장애와 발달·성장 등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대표적인 플라스틱 첨가제 비스페놀A는 유방암과 전립선암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흡연 후 필터에는 발암물질 50가지를 포함해 화학물질 7000가지가 묻어있다. 박준우 박사는 “담배 필터에 사용하는 플라스틱 소재에 이들 물질이 흡착하는지 여부는 보고된 바가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도 “담배를 피울 때 생기는 유해물질들은 필터를 통해서 몸에 들어오니 발암물질 등이 필터의 플라스틱 성분에 흡착될 개연성은 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하루 꽁초 1247만 개 버려져 232만 개 바다로

담배 필터가 인체에 여러 가지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미세플라스틱을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데도 필터가 붙어있는 꽁초의 관리나 분리 처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비가 내린 29일 낮 12시쯤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역 입구 바로 옆에 있는 흡연장. 담배를 피우고 난 흡연자 10여 명 중 상당수가 꽁초를 그냥 바닥에 던져 버리고 갔다. 흡연장에는 깡통으로 된 작은 담배꽁초용 쓰레기통 3개와 일반 쓰레기통 1개가 있었지만 그 안보다 바닥에 버려진 꽁초가 더 많아보였다.

흡연장 주변은 물론 근처에도 꽁초 무단투기를 단속하거나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담배꽁초를 따로 수거하거나 처리하는 사람도 없는지 쓰레기통과 길바닥에 흩어져있는 꽁초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방치돼있었던 것 같았다. 바닥에 버려진 꽁초들은 빗물에 밀려 낮은 곳에 있는 배수구를 통해 하수구로 흘러 들어갔다.

▲ 서울 청량리역 앞 흡연장 바닥에 담배꽁초들이 버려져있다(왼쪽). 바닥에 버려진 꽁초들은 빗물에 휩쓸려 근처에 있는 배수구를 통해 하수구로 들어간다(오른쪽). ⓒ 김해솔

땅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는 빗물이나 바람에 휩쓸려 하수구로 들어가고 하수처리장이나 빗물펌프장을 통해 바다로 유입된다. 환경부의 ‘담배꽁초 관리체계 마련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담배꽁초는 하루 평균 1247만 개비가 땅에 버려지고 그중 최대 232만 개비(18.6%)가 바다로 흘러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담배꽁초를 통해 바다로 유입되는 미세플라스틱은 하루 최대 0.7t으로 예상된다.

▲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는 하수구, 하수관, 하수처리장(또는 빗물펌프장)을 거쳐 바다로 흘러든다. ⓒ 환경부

담배꽁초는 전 세계 바닷가 ‘쓰레기의 왕’이기도 하다. 환경운동연합이 작년 여름 전국의 바닷가 14곳에서 주운 쓰레기를 분류한 결과 3879개 중 담배꽁초가 635개(16.4%)로 가장 많았다. 국제해양환경단체 오션 컨서번시(Ocean Conservancy)의 연례 보고서 ‘국제 연안 정화’에 따르면 담배꽁초는 1986년부터 매년 전 세계 바닷가에 가장 많이 버려져있는 쓰레기로 기록되다가 2019년 조사에서 처음으로 1위를 플라스틱 식품 포장재에 내주고 2위가 됐다.

▲ 작년 여름 전국 바닷가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쓰레기는 담배꽁초였다. ⓒ 환경운동연합
▲ 서울시 마포구 마포역 4번 출구 근처 빗물받이 안에 담배꽁초가 쌓여있다(왼쪽). 마포역 3번 출구 근처 PC방 앞에 담배꽁초들이 버려져있다(오른쪽). ⓒ 김해솔

친환경 필터로 바꾸고 꽁초 분리수거해야

환경단체들은 담배꽁초 미세플라스틱 문제의 근본 해결법은 필터 소재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환경연합 김현경 활동가는 “세계적인 트렌드가 담배 필터 재질을 바꿔서 미세플라스틱을 저감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라며 “국내 굴지 기업인 KT&G가 친환경 필터 재질 연구 개발에 미온적이라면 세계의 변화에 뒤처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18년 플라스틱 필터를 2025년까지 50% 줄이고, 2030년에는 80%까지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세계 최대 담배회사 브리티쉬 아메리칸 토바코(British American Tobacco)는 친환경 필터를 연구하고 있다. 미국 필터 개발사 그린버츠(Greenbutts)가 내놓은 제품은 마닐라삼, 면, 아마 같은 천연재료로 만들어져 분해되는 데 퇴비로는 평균 3일, 물속에서 빠르게 저으면 2분이 걸린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스모키트리츠(Smokeytreats)와 스페인의 에센트라(Essentra) 같은 기업도 생분해성(물질이 미생물에 분해되는 성질) 필터를 선보였다. KT&G는 “향후 비(非)플라스틱 또는 생분해성 소재와 같은 대체소재 개발을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 미국의 담배 필터 개발사 그린버츠(Greenbutts)가 내놓은 제품은 마닐라삼, 면, 아마 같은 천연재료로 만들어져 물속에서 빠르게 저으면 2분 만에 분해된다. ⓒ Greenbutts

친환경 필터 개발과 함께 담배꽁초를 분리수거해 제대로 처리하는 정책이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경기도 구리시는 지난 2016년 전국 최초로 ‘담배꽁초 수거보상제’를 실시했다. 담배꽁초를 가져온 사람에게 1개비에 10원씩 보상금을 지급해 2017년까지 360만 개비를 수거했다. 2018년에는 ‘담배꽁초 퇴비화 기기’도 전국 최초로 설치했다. 하지만 범정부 차원의 담배꽁초 처리 방안은 시행되고 있는 것이 없다. 그나마 구리시가 시행한 수거보상제와 퇴비화 사업도 중단됐다. 구리시청 자원행정과 이성우 주무관은 “큰 효용성이 없어서 중단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 수거된 담배꽁초는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이뤄져있지만 재활용되지 않는 ‘생활계폐기물’로 분류돼 처리시설에서 소각 또는 매립된다. ⓒ 환경부

무단투기된 담배꽁초를 제대로 처리하려면 ‘폐기물 부담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폐기물 부담금 제도는 ‘유해물질을 함유하고 있거나, 재활용이 어렵고 폐기물관리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제품·재료·용기의 제조업자 또는 수입업자에게 그 폐기물 처리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다. KT&G를 비롯한 담배회사는 지난 2017년 기준 부담금 895억 원을 냈다. 하지만 폐기물 부담금이 담배꽁초 처리에 직접 쓰이지는 않고 있다. 폐기물 부담금은 환경부 일반 예산으로 합쳐 사용되며, 담배꽁초 처리 예산이 별도로 편성되지는 않고 있다.

서울환경연합 김현경 활동가는 “EU는 지난 2018년 담배회사에 꽁초 청소 비용을 부담하라고 요구했다”며 “우리도 담배회사가 납부하는 폐기물 부담금을 재원으로 담배꽁초를 처리할 수 있는 별도의 목적성 예산을 만들어서 꽁초 처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편집 : 현경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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