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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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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 커져도 끈질긴 저항, 100일의 기록
[미얀마 민주항쟁 연속보도] ③ 6만 미얀마 시민들의 텔레그램 단독 취재
2021년 05월 18일 (화) 06:50:53 윤상은 김정민 기자 이예진 PD nadfri@naver.com

지난달 14일 <단비뉴스>는 미얀마 현지인들이 쿠데타 이후 찍은 사진을 모아 ‘여기, 사람이 죽고 있습니다’를 내보냈다. 이후 <단비뉴스>는 한국에 머물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을 꾸준히 만나 나날이 엄혹해지는 현지 상황에 관한 증언을 수집해왔다. 

이 과정에서 현지의 미얀마 시민들이 찍은 사진과 영상을 올려 공유하는 텔레그램 채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 3월 5일 만들어진 이 텔레그램 채널에는 5월 17일 밤 현재, 6만 3899명이 접속해 있다. 군부 탄압으로 미얀마의 모든 언론 활동이 중단되면서 현장 상황을 미얀마 시민들끼리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채널에는 하루 300~400여 장의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사진이 찍힌 상황을 설명하는 글도 있다. <단비뉴스>는 이름과 신원을 밝히길 꺼린 취재원들의 도움을 받아 텔레그램 채널에 접속하여, 채널 개설 직후인 3월 5일부터 최근인 5월 13일에 이르기까지 올라온 1만 장 이상의 사진을 모두 확보했다. 이 가운데 화질이 양호하고 현지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60여 장의 사진을 골라 아래에 싣는다. 

사진의 대부분은 텔레그램에 공유된 시점 직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래 기사에서는 텔레그램에 올라온 날짜를 적었다. 이 사진들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부 탄압이 그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 생생하게 증언한다. 쿠데타 직후에는 유혈이 낭자한 대규모 시위와 진압이 있었으나 이후 거리 시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무인 시위’, ‘야간 시위’ 등 다양하고 창의적 방식의 저항이 증가했다. 인터넷 선을 잘라내고 위성방송 수신기를 떼어내는 등 탄압을 은폐하려는 군부의 증거인멸 시도나 군경이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심문하고 체포하는 정황도 담겼다. 사진 가운데는 심하게 다치거나 숨진 사람들의 모습도 있다. 독자들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했으나 미성년자와 심약자의 각별한 주의를 부탁드린다. 

우리가 아는 한, 미얀마 시민 6만여 명이 공유하는 이 텔레그램 방의 기록을 종합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국내 언론 가운데 <단비뉴스>가 처음이다. 마침 5·18 광주 민주항쟁 41주기를 맞아 최초 공개하는 이 사진들이 미얀마 민주항쟁에 대한 독자의 지원과 후원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단비뉴스>는 앞으로도 미얀마 민주항쟁에 관련한 보도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특히 미얀마 현지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구체 증언을 조만간 보도할 것이다. 

# [미얀마 민주항쟁 연속보도] 보기

① 저항과 학살을 기록한 시민들의 사진 첫 공개

②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 연대' 활동가 A씨

④ 봄의 혁명 100일 기록

⑤ 한국 거주 미얀마인들의 증언

 

총칼 앞에 맨 몸으로

3월 3일

   

▲시위대는 군경과 달리 적절한 안전 장비가 없다. 사진 속 시위대는 군경의 실탄 사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오른손에 각목을 들고 왼손에는 통신 위성TV 안테나를 들고 있다.

3월 5일

   

▲지난 3월 5일 양곤에서 17살의 난 웨이 아웅이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를 하던 중 숨졌다. 사진 속 그는 양 팔이 한쪽으로 꺾인 채 옷이 반쯤 벗겨져 있다. 뒤통수에서는 피가 흘러나와 있다. 군부가 난 웨이 아웅을 포함한 시민 3명을 살해하고 다른 2명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이야기가 이날 텔레그램 채널에 올라왔다. 

3월 7일

   

▲지난 3월 7일 미얀마에서 네 번째로 규모가 큰 도시인 타웅지(Taunggyi)에서 군경이 불도저를 내세워 시위대를 해산했다. 불도저 양옆에는 무장한 군경이 서 있다. 안전모를 쓴 시민들은 자동차 타이어와 나무 막대기를 쌓아 만든 바리게이트 앞에서 세 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있다.

   

▲이날 양곤 옥칼라파(Okkalapa)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은 어린 아이의 귀가 찢어졌다. 이 아이는 어깨 뒤편 날개뼈 주위에도 3곳의 총상을 입었다고 사진을 올린 미얀마 시민이 전했다. 

   

▲같은 날 무장한 군인들이 양곤에 있는 예난차아웅 대학교 앞에 서 있다. 미얀마 대학생들은 연합회를 만들어 시위를 이끌어왔다. 이날까지 대학생 400명 이상이 군부에 잡혀가 돌아오지 못했다. 군부는 전국 40개 대학 교정을 점거했다.

3월 8일

   

▲지난 3월 8일 미얀마 미치나(Myitkyina)에서 한 시민이 시위 도중 팔에 총을 맞았다. 모자이크로 가려 잘 보이지 않겠지만, 원본 사진을 보면 팔의 뼈와 근육이 피부 밖으로 모두 드러난 채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 상태다. 이날 시위에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시민 2명이 군경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즉사했다. 시위가 벌어진 미치나 지역은 미얀마 중앙을 흐르는 이리와디강 상류에 있는 곳으로 수도 양곤에서 약 1,400km 떨어져 있다. 지난 2월 주요 도시인 양곤과 만달레이를 중심으로 시작한 민주 항쟁이 3월 들어 전국 곳곳의 도시들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날 양곤에서 한 아이가 군경이 터뜨린 최루탄 가스를 마셔 코피를 흘리고 있다. 최루탄 가스를 마시면 기침이 나오고 숨을 쉬기 어렵다. 텔레그램 채널에 이 사진을 올린 미얀마 시민은 이렇게 적었다. “어떻게 작은 아이한테까지 이럴 수 있는가?”

 

언론 탄압과 신체 고문 

3월 9일

   

▲지난 3월 9일 군경이 미얀마 현지 언론 <미지마> 사무실을 급습하고, 서 마이 인트와 틴 틴 아웅 기자를 체포했다. 군부는 <미지마>, <미얀마 나우>, <세븐데이 뉴스>, DVB, <낏띳미디어> 등 5개 언론사의 면허를 취소하고 방송을 금지했다. 이들 언론사 모두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 현장을 보도해온 곳들이다. 군부는 군부 소유 채널인 <미야와디 TV>와 MRTV 방송에서 민주 항쟁을 왜곡하는 보도를 내보내거나, 고문당한 시위대 얼굴을 보여주며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날 양곤에서 밤 10시 즈음 미얀마 군경은 어느 여성에게 끓는 물을 들이부었다. 이 여성은 목에서 어깨까지 살가죽이 벗겨지는 화상을 입었다.

3월 10일

   

▲지난 3월 10일 한 청년이 공군에 체포돼 고문을 받은 뒤 풀려났다. 군인들이 옷을 벗기고 벨트와 쇠사슬로 때렸다고 그는 증언했다. 그의 엉덩이에 피멍이 들어 있다.

3월 13일 

   

▲지난 3월 13일 만달레이 한 주택가에서 곤봉을 든 군경이 어린 아이를 때리고 있다. 군경은 한 손으로 비무장한 어린 아이의 목을 잡아 피하지 못하게 한 뒤, 다른 한 손으로 곤봉을 휘둘렀다.

3월 14일

   

▲지난 3월 14일 민주 항쟁에 참여했다. 군경의 유혈 진압 때문에 숨진 이의 장례식이 열렸다. 머리에 총격을 입어 숨진 시신의 옆에 놓인 검은 비닐봉지에 그의 뇌가 담겨있다. 훼손된 머리는 푸른 천으로 감싸져 입관됐다. 

 

응답하지 않는 국제연합

3월 15일

   

▲군경의 무력 진압이 계속되자 시민들은 무인 시위를 시작했다. 지난 3월 15일 양곤 거리에는 미얀마 전통 인형이 줄지어 놓였다. 오뚝이 모양을 한 인형은 군부가 민주항쟁을 탄압해도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뜻한다. 전통 인형 위에 달린 종이에는 국제연합(UN) 로고를 바탕으로 ‘We need R2P in Myanmar (우리는 미얀마에 보호 책임 원칙이 적용되기를 원한다)’라고 쓰있다. R2P는 Responsibility to protect를 줄인 말로, 특정 국가가 자국 국민에게 인종 청소, 전쟁 범죄 등 반인도 범죄를 저지를 때 국제 연합이 개입할 수 있다는 ‘보호 책임 원칙’을 뜻한다.

3월 17일

   

▲지난 3월 17일 양곤에서 한 군인이 대나무로 만든 바리게이트 틈으로 총을 겨누고 있다. 

 

무인, 침묵, 그리고 촛불

3월 20일

   

▲지난 3월 20일 밤 메이크틸라(MeikHtiLa)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켜고 시민 항쟁에서 숨진 사람들을 추모하고 있다. 메이크틸라는 주요 도시인 양곤-만달레이 간 고속도로가 지나는 미얀마 중부의 교통 요충지이다. 민주항쟁이 미얀마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무인 시위나 야간 촛불 시위 등 다양한 저항 방식이 등장했다. 

   

▲같은 날 밤 만달레이에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있는 띠다구 불교 대학에서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촛불이 켜졌다. 승려들은 일렬로 서 촛불을 밝히고 “군사 정권을 거부한다(Reject miltary coup)”라고 쓴 팻말을 들었다. 미얀마 인구의 88%가 불교를 믿는다. 

3월 21일

   

▲지난 3월 21일 양곤의 한 5층 아파트에서 군경에게 끌려가던 시민이 몸부림치다가 추락해 사망했다.

   

▲시민들은 밤마다 거리에서 촛불을 켜며 민주 항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 21일 밤에도 만달레이 거리에서 촛불이 밝혀졌다. 이 시위는 무인 시위 성격도 더해졌다. 촛불 위에는 아웅산 수지 전 미얀마 국가고문 사진이 붙어있다. 군부는 지난 2월 1일 쿠데타를 시작하고 아웅산 수지 전 국가고문을 구금하고, 불법 통신장비보유, 선동 등 7가지 혐의로 재판에 붙였다.

3월 22일

   

▲군경은 피 흘리는 시위대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는 것을 막기 위해 구급차를 보면 총격을 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의료진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있다. 지난 3월 22일 의료진이 앰뷸런스를 타지 못한 환자를 오토바이에 태워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3월 29일

   

▲지난 3월 29일 밤 까따(Katha)에서 시민들이 세 손가락 모양으로 촛불을 밝혔다. 군부의 유혈진압이 지속돼 낮에 시위하기가 어려워지자 시민들이 다양한 시위 방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날 양곤 거리에서도 촛불이 켜졌다. 종이에 미얀마 문자로 적힌 글은 “군부 독재자 물러가라”, “우리 학생들을 돌려달라”는 뜻이다. 텔레그램 채널에는 이 사진과 함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꺾지 않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3월 23일

   

▲시민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평화 시위를 이어갔지만 군경의 무력진압은 계속됐다. 지난 3월 23일에도 만달레이에서 한 시민이 군경의 총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 

3월 24일 

   

▲지난 3월 24일 미얀마 시민들은 군경의 총을 피하면서도 저항을 이어가는 단체 시위를 벌였다. 미얀마 시민들은 이를 ‘침묵시위’라고 부르고 있다. 한낮인데도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시민들은 거리에 나서지 않았다. 이날 전국에서 일어난 침묵시위에 놀란 군부는 300명 이상의 체포된 대학생들을 풀어주었다.

3월 25일

   

▲한나절에 걸친 침묵시위가 끝난 3월 25일 새벽 만달레이에서 의료인들이 군부 독재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왔다. 

   

▲군경이 양곤의 투운나(Thuwunna)에 있는 와이파이 선을 다 잘라냈다. 이날로 양곤 지역 인터넷은 11일째 끊겼다. <단비뉴스>가 만난 한국 거주 미얀마인들은 인터넷 차단으로 인해 미얀마 곳곳에서 벌어지는 군부의 살인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은폐되고 있다고 말했다.

3월 26일

   
   

▲3월 26일 밤. 양곤 빠중따운(PazunTaung)의 주민들이 흰색 페인트로 세 손가락 경례 모양과 ‘Never Forget, Never Forgive(절대 잊지 않고, 용서하지도 않겠다)’는 문구를 칠하고 있다. 이들은 페인팅 주변에 촛불을 둘러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나타냈다.

 

아이, 청년, 행인의 유혈 

3월 27일 

   

▲3월 27일 만달레이 아웅 미예이따잔(AungMyayTharSan) 지역에서 찍힌 사진이다. 이날 군경은 실탄을 사용해 만달레이의 시위를 유혈 진압했다. 가슴 부근에 총을 맞은 한 청년이 눈에 쓴 고글을 내리고 표정을 찡그린 채 신음하고 있다. 주변 시민들이 그를 둘러싼 채 가슴을 압박해 지혈을 돕고 있다.

   

▲3월 27일, 군경에 체포됐다가 풀려난 한 학생이 상처 입은 등을 드러내고 있다. 등의 절반 이상이 구타와 고문의 흔적으로 뒤덮여 있다. 

   

▲3월 27일, 양곤 마양곤(Mayangone)에 사는 1살짜리 영아가 눈에 총을 맞았다. 사진은 바닥에 놓인 아기의 작은 팔을 쥐며 상태를 들여다보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다. 아기의 머리 절반이 붕대로 감싸여 있다. 아이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3월 28일

   

▲3월 28일, 양곤 남다곤(South Dagon)에서 한 소녀가 군경이 쏜 총에 눈을 맞아 사망했다. 사진은 주위 사람들이 그의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산소호흡기를 씌워 놓은 모습이다. 

   

▲만달레이의 민지안(Myingyan)에서 군경이 지나가던 차를 세우고 총을 쐈다. 차 안에 있던 남성은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총알에 맞아 그대로 숨졌다.

 

국민통합정부(NUG)의 출범

4월 1일 

   

▲미얀마 사람들은 4월 중순에 띤잔(미얀마의 설날) 축제를 연다. 민주 항쟁으로 피 흘린 미얀마 시민들은 올해 미얀마 군부 치하에서 열리는 띤잔 물축제에 참여하길 거부했다. 4월 1일 시위대는 “당신들은 시민의 피를 물 대신 사용할 것이냐”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미얀마 사가잉주에 있는 몽유와(Monywa)는 ‘미얀마의 광주’로 알려져 있다. ‘리틀 판다’로 불렸던 웨이 모 나잉이 시위를 이끌었던 곳이기도 하다. 4월 1일, 몽유와 시민들이 군집해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후 웨이 모 나잉은 군경에 의해 살인 혐의로 체포됐다. 

   

▲만달레이에서 남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사가잉 지역, 칼레(Kale) 마을에서 19살의 대학생 니얀 린 택이 군경에 의해 살해된 채 발견됐다. 시신은 그가 다니던 칼레 대학교 근처에서 발견됐다. 

4월 2일

   

▲4월 2일. 군경에 얻어맞고 체포된 한 소년의 어머니(왼쪽)가 아들의 석방과 치료를 요구하고 있다. 그녀는 미얀마어로 “저의 아들을 치료받게 해주세요”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 오른쪽은 체포당하기 전 찍은 그녀의 아들 사진이다.

   

▲4월 2일. 민주 항쟁에 참여했다가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한 예 네이 민(Ye Nay Min)의 장례식 사진이다. 군경은 그의 시신을 탈취했다. 유족은 군경이 시신을 탈취한 현장에 남겨진 그의 흩어진 뇌 조직을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

   

▲4월 2일. 양곤의 산차웅(SanChaung)에서 군경이 한 배달부의 휴대전화를 수색한 후 그의 뒷목과 팔을 움켜쥔 채 끌고 가고 있다. 미얀마 군경은 지나는 시민들의 휴대전화를 검열해 민주 항쟁을 옹호하는 글이나 사진을 올린 이들을 체포하여 고문하고 있다.

4월 3일 

   

▲사진 속 여성과 그녀의 오빠는 이날 오후 8시경 북옥칼라파(North Okkalapa)에서 체포됐다. 집에서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려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소음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다. 가족과 친구들은 아직도 ​그들의 흔적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 4일

   

▲미얀마 시민들 가운데는 민주 항쟁을 지지하는 문신을 팔에 새기는 이들이 있다(왼쪽). 그런데 군경은 이들의 문신을 잔인한 방법으로 지우고 있다. 4월 4일에 올라온 사진(오른쪽)에는 군경이 시민의 팔에 있는 문신을 불로 지진 모습이 담겼다. 불에 타 회색으로 지져진 피부에는 심한 화상으로 인한 수포가 올라와 있다.

4월 7일

   

▲칼레(Kale)에서 군경은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에게 중화기인 로켓추진수류탄(RPG)을 사용했다. 5명이 총에 맞아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군경은 이어 병원을 습격해 치료받던 사람들을 체포했다.

   

▲58세의 카렌족 너 바 투는 미얀마 군대의 무차별 공습으로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고 머리카락과 피부가 그을리는 상처를 입었다.

4월 8일  

   

▲4월 8일. 사가잉 지역 칼레 대학살의 피해자 중 한 명인 아까 뚜 아웅의 장례식 사진이다. 그의 사진을 내걸고 꽃을 붙인 영구차를 오토바이에 올라탄 시민들이 세 손가락을 치켜든 채 따르고 있다. 

   

▲몬주 캬익토(kyaikto) 지역의 시위자들이 군부 의회의 탄압 행위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민 아웅 흘라잉 등 쿠데타 지도자들의 사진을 태우고 미얀마 군부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중국 국기를 짓밟았다.

   

▲바고(Bago) 지역 주민들이 횃불을 들고 야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바고는 미얀마에서도 특히 민주 항쟁 열기가 강한 지역 중 하나다. 

   

▲양곤 동부에 위치한 북옥칼라파(North Okkalapa)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신발에 꽃을 꽂고 주변을 촛불로 밝혔다. 미얀마 군부의 유혈 진압이 심해지자 시민들은 ‘무인 시위’로 군부 독재에 저항하고 있다. 꽃은 민주 항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다.

 

중화기를 동원한 학살 

4월 9일

   

▲4월 9일 양곤에서 군경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느 기술자가 가택 벽에 내걸린 위성방송 수신기를 제거하고 있다. 지난 4일 미얀마 군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위성TV 수신을 금지했다.

   

▲4월 9일 미얀마 남부 도시 바고(Bago) 시민이 군경이 쏜 중화기용 탄약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군경은 이러한 중화기를 비무장 민간인에게 사용하고 있다. 수천 명의 바고 시민들이 군부의 탄압을 피해 집을 떠나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 10일

   

▲4월 10일 오전 만달레이에서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시위가 열렸다. 주먹을 치켜 든 남성이 시위대 맨 앞에 서 있다. 군경은 이날 시위를 진압하면서 최소 10명을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 11일

   

▲4월 11일 낮 군부 쿠데타 세력의 대량 학살로 사망한 이들을 애도하는 시위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빨간색 염료를 눈가에 칠했다. 세 손가락을 치켜든 여성의 표정에서 슬픔과 비통함이 드러난다.

4월 12일

   

▲4월 12일 군경은 검정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이유로 길가던 시민을 뺨에 피멍이 들고 입술이 붓도록 구타했다. 사진 속 시민의 뺨은 피멍이 들었다. 미얀마 군부는 검정 옷을 금지한 데에 이어 검정 마스크 착용까지 금지했다. 이후 검정 마스크를 쓴 사람을 민주 항쟁 시위자로 간주해 때리거나 체포하고 있다.

   

▲4월 12일 점심시간 인도와 국경을 접하는 타무(Tamu) 지역 주민들이 교회에서 몸을 낮추어 군경의 사격을 피하고 있다. 미얀마 군경은 이날 중화기도 사용했다.

   
   

▲군부 쿠데타 세력의 공습을 피해 숨어 있는 무트로(Mutraw) 지역 데이부노(DayBuNoh)의 실향민들. 아이를 업고 있는 여성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군부의 공습으로 2만 명 이상이 고향과 집을 떠나야 했다.

4월 15일

   

▲4월 15일 만달레이에서 군경이 시민들을 무릎 꿇리고 있다. 이날 군경은 의료계가 주도한 민주 항쟁 시위를 진압하면서 시위와 무관한 노점상들까지 체포했다.

   

▲양곤 청년들은 쿠데타 거부 스티커를 만들어 운동화 밑창에 붙이고 있다. 군경의 잔혹한 탄압에 저항하는 또다른 방식이다. 스티커에는 ‘군사 쿠데타 종료 (MILITARY COUP END)’라고 쓰여 있다.

4월 17일

   

▲4월 17일 양곤 바호(Baho) 거리에서 군경이 지나는 모든 차량을 세우고 차량 내부를 수색하고 있다. 

   

▲4월 17일 미얀마 남동부 도시인 다웨이(Dawei)에서 군사 독재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폭우 속에서도 시민들은 민주 항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을 들고 시위를 이어갔다.

4월 18일

   

▲4월 18일 만달레이에서 민주 항쟁 시위대가 국민통합정부(NUG)를 지지한다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다. 국민통합정부는 미얀마 민주진영이 쿠데타 군사정권에 대항해 만든 임시정부다.

 

수업을 거부하는 학생들

4월 22일

   

▲4월 22일 미얀마 남부 도시 바고에 있는 퓨(Phyu) 마을의 청소년들이 흰 옷과 책에 빨간 물감을 칠하고 앉아 있다. 군부 쿠데타 정권 아래서는 교육을 받지 않겠다는 저항의 표시다. 미얀마는 한국과 달리 6월에 새 학년으로 진급해 다음 해 3월까지 수업을 받는다.

   

▲미얀마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모울메인(Mawlamyine) 시민들이 집회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에 항의하고 있다. 현수막에는 “ASEAN은 무고한 미얀마 시민을 죽인 살인자들을 도울 것인가?”라고 쓰여 있다. 군부 쿠데타 세력의 최고사령관인 민 아웅 흘라잉이 아세안 정상회의에 초청받은 직후였다.

4월 26일

   

▲4월 26일 만달레이에서 한 남성이 사망한 채 발견됐다. 얼굴은 까맣게 변했고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지역 사람들은 군경의 만행으로 추정했다.

   

▲4월 26일 유명한 불교 유적지 카웅도우 파고다(Kyaung Daw Pagoda)가 있는 낭쉐(Nyaungshwe)지역 시민들이 등불을 밝히며 국민통합정부(NUG)를 환영하고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를 열었다.

 

거리의 저항, 체포, 사망

4월 27일

   

▲4월 27일 장소를 알 수 없는 어느 마을의 노인들이 군부 독재 반대 시위를 열었다. 미얀마의 노인들은 생애 대부분을 군사 독재 아래서 보냈지만 미얀마 시민이 군부 쿠데타 세력에 저항하길 독려하고 있다.

4월 28일

   

▲4월 28일 만달레이 쩨조(ZayCho) 시장 근처에서 군부 쿠데타 세력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시민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 오토바이 뒤에서 한 군인이 휴대폰을 보고 있다.

5월 1일

   

▲5월 1일 미얀마 북서부 사가잉 지역의 칼레(Kale) 마을에서 등교 거부 시위가 열렸다. 교문에 빨간 페인트로 “우리는 노예 교육을 원하지 않는다” 등의 글이 적혀 있다. 군부 쿠데타 정권 아래서 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저항의 표시다.

5월 2일

   

▲5월 2일 어느 미얀마 시민이 경찰에 체포되어 트럭에 실려가면서도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5월 3일 

   

▲5월 3일 미얀마 북쪽 모막(Momauk) 지역에서 군경이 쏜 포탄에 수도승을 포함한 3명이 숨지고 9명 이상이 다쳤다.

 

항쟁 100일, 그리고 계속되는 항쟁

5월 11일

   

▲미얀마 민주 항쟁 100일째 되는 날인 5월 11일 양곤 서쪽에 위치한 찌민다잉(Kyimyindaing) 지역 시민들이 거리 시위를 벌였다. 플래카드에는 미얀마어로 ‘적들을 물리칠 양곤인의 항쟁’이라고 적혀 있다. 


사단법인 <단비뉴스>는 미얀마 민주 항쟁과 연대합니다. 여러분들의 참여도 기다립니다. 자신의 '이름'과 '휴대전화 뒷번호 8자리'를 송금 메모에 적어 신한은행 100-034-615484(사단법인 단비)에 기부금을 보내주십시오. 보내주신 전액을 미얀마의 '해외 주민 운동 연대 코코(KOCO)'에 전달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보도하겠습니다. 더 궁금한 사항은 전자우편 akimmin37@naver.com으로 문의해주세요.

#Myanmar_with_you

 

편집 : 이강원 기자

[윤상은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 디지털뉴스부 윤상은입니다.
좋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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