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청년, 세상을 읽자' 위키리크스를 통해 본 한미관계

통상교섭본부장이 죽도록 싸운 이유

서울 정동 성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는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청년, 세상을 읽자’는 제목의 무료강좌가 열린다. 지난 10일에는 <한겨레> 한승동 논설위원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본 한미관계’를 강연했다. 한 위원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한겨레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이유를 ‘위협 효과’로 설명했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허위사실을 보도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한겨레와 소속 기자를 상대로 낸 소송은 무죄로 판결 날 것입니다. 그러나 무죄 판결이 날 때까지 기자 개인은 상당히 귀찮겠죠. 여기저기 불려 다니게 될 테니깐요. 결과적으로 기자가 알아서 예민한 사안에 대해선 기사를 쓰지 않는 일이 생기게 될 겁니다. 그게 그들이 원하는 거죠.”

▲ 강연중인 <한겨레> 한승동 논설위원. ⓒ 정혜아  

그는 내부고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의 문서가 ‘김 본부장은 2007년 8월29일 얼 포머로이 하원의원(민주당)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만나 쌀 추가협상을 약속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겨레의 보도는 위키리크스가 발표한 문서를 근거로 한 것인데, 김 본부장은 왜 위키리크스가 아닌 한겨레를 고소했는지 모르겠다”며 위키리크스 원문을 제시했다.

Widely viewed as deserving “affirmative action”, rice farmers had attracted enough public support to make the issue untouchable at this time. However, Kim indicated that the ROKG would revisit the rice issue once the 2004 WTO arrangement on rice quotas expired in 2014.
(“보호 조처”를 받을 만한 가치를 널리 인정받았기에 쌀 농민들은 현재 정부가 이 사안을 다룰 수 없게 할 만한 충분한 대중적 지지를 불러 모았다. 하지만 김(본부장)은 한국 정부가 쌀 문제를 2004년 WTO(세계무역기구)의 쌀 한도 규정이 만료되는 2014년에 재논의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affirmative action'이란 용어는 소수집단 우대정책을 뜻하는 말로 일종의 약자 보호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성, 노인, 유색인종, 흑인 등은 항상 불리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이들을 우대한다는 것이죠. 쌀시장 전면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 관료에게 김 본부장은 한국의 농부를 약자로 명명하고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at this time'이란 시점을 언급하며, '지금은 쌀시장 전면 개방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한 위원에 따르면 김 본부장이 '쌀시장 전면 개방은 안 된다'는 식의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은 점은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2014년을 언급하며 '쌀은 비록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서 제외돼 있지만 WTO(세계무역기구) 쌀 쿼터협정이 끝나면 재논의할 수 있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김 본부장의 위와 같은 언급은 쌀시장 전면 개방을 원하는 미국에게 추가협상 가능성을 알려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미국 이익을 앞세우는 한국 관료들"

▲ 위키리크스 사이트 내 한국 관련 자료 페이지.

"지금까지 위키리크스는 한국과 관련된 문서를 약 25만건 공개했습니다. 얼마나 더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가 공개된 문서를 통해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것이 있습니다. 슬라보예 지젝이 말한 것처럼 ‘유일하게 놀라운 것은 놀라울 만한 게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나라 관료들이 한국의 이익보다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다만 위키리크스 문서를 통해 증거를 봤을 뿐이란 겁니다. 2006년 7월 25일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의 내용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Following the Yoon and Kim Jong-hoon meetings, Trade Minister Kim Hyun-chong phoned the Ambassador in the afternoon of July 24. Kim said he had been “fighting like hell” on behalf of the parameters for release of the draft implementing regs to which the ROKG had committed.
(윤과 김종훈의 회동 뒤에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7월 24일 오후 대사에게 전화를 했다. 김 본부장은 대한민국 정부가 내놓은 시행규칙안 입법예고의 한도들을 위해 “죽도록 싸웠다”라고 말했다.)

"위키리크스 문서에 따르면 김현종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이 반대하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보건복지부가 추진한 것에 대해서 미국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 얘기가 나옵니다. 한국정부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담은 건강보험법 시행규칙 개정을 입법예고하지 않도록 '죽도록 싸웠다'(fighting like hell)는 겁니다.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해 죽도록 싸운 것입니까?"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원칙적으로 모든 의약품을 보험적용 대상으로 하는 관리방식(내거티브 제도)에서 비용에 비해 효과가 우수한 의약품 위주로 보험을 적용하는 선별등재방식(포지티브 제도)으로 변경하고, 약값 대비 효과가 좋은 의약품만 선별해 보험을 적용하는 제도이다. 한 위원은 "대다수 의약품이 외국에서 발명되는 현실에서 모든 의약품에 보험을 적용하는 것보다 선별적으로 보험을 적용하는 제도가 당연히 우리 국민에게 이익이 된다"며 "김 본부장이 이를 막기 위해 죽도록 싸웠다는 것은 미국의 이익을 대변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위와 다른 의견도 있다. 김 본부장이 싸운 것은 '시행규칙 개정을 입법예고하지 않도록'이 아니라, 미국측에 입법예고 하기 전에 FTA 틀 안에서 충분히 사전 논의를 하게 하기 위해 "죽도록 싸웠다"는 것이다. 곧 김 본부장이 "죽도록 싸웠다"고 한 부분은 '입법예고가 되지 않도록' 싸운 게 아니라, 사전에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하겠다고 그가 조건으로 내세운 약속을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세상이 나아갈 방향을 99%가 정해야"

"그렇다면 왜 우리 관료가 미국의 이익을 위하는 현상이 일어날까요? 저는 미국으로부터 신임을 받아야 대한민국 정치권력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미국이 있으니깐 북한과 맞닿아 있음에도 우리가 이만큼 살 수 있다는 것이 우리 국민의 일반적 정서입니다. 사실 대한민국은 미국 없이는 건국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6‧25전쟁 때도 똑같습니다. 우린 북한한테 밀려 부산까지 내려갔지만, 미군이 와서 싸웠기에 다시 밀고 올라갈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분단국가이니 미국 눈 밖에 나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지만 미국의 신임을 받으면 확실히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한 위원은 이어 이명박 정부는 자신의 지지세력을 위해서도 미국의 신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는 한 명의 개인이 아닙니다. 제 생각이지만, 이명박 정부 뒤에는 많은 대기업이 있고 그 뒤에 조‧중‧동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이들은 '네가 살면 내가 살고, 내가 살면 네가 사는' 식의 운명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그 세력을 대표하는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일 뿐입니다. 현 정권은 이 체제를 유지해야 하니깐 현실적으로 산업화 세력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비자면제협정으로 대한민국 1%는 제2의 미국시민처럼 살 수 있을 겁니다. 뉴욕이나 워싱턴에 상층그룹만을 위한 모임도 생길 것입니다. 그 때문에 현 정권이 이를 받고, 대신 99%를 위한 것을 내주는 거래를 하는 거죠."

그래서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게 한 위원의 주장이다. 그는 "한미 FTA는 누구에게는 득이 되지만 또 다른 누구에게는 실이 된다"며 "모두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해관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사실 다들 집권한 후 지지율이 곤두박질칩니다. 결국 집권자들은 모두 그들 세계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들에게 포함되지 않는 99%를 위한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 지금 세계의 흐름입니다. 세상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정치가들에게 맡겨놓을 수만은 없다는 겁니다. 그 때문에 세상을 제대로 알고 직접 나가서 세상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 주최하는 이 무료 강좌는 17일 '떠오르는 중국, 추락하는 미국, 우리의 길은?'(강사 김민웅), 24일 '통일이 밥 먹여주냐고?'(강사 김진환)를 주제로 계속 이어진다. 강좌 비용은 4.9통일평화재단이 대는데, 이 재단은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된 이들의 유족들이 재심 끝에 국가로부터 받아낸 보상금의 일부로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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