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위기와 혁신] ㉔ 취재팀 결산 좌담

<단비뉴스>의 '지방대 위기와 혁신' 기획 시리즈가 지난 2019년 2월 28일 [대학 이름 밝히자 '핵인싸'가 '갑분싸'로]란 제목의 첫 기사로 시작, 지난달 4일 23편 ['계층 대물림''이기주의자 양산'은 그만]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이 기획물은 2년여 연재 기간 동안 지방대 재학생·졸업생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학벌 사회 대한민국'의 차별과 소외 문제를 드러내고, 경쟁과 승자독식에 짓눌린 교육 현실을 고발했다. 동시에 다양한 전문가·시민의 의견을 통해 교육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개혁 방안도 제시했다. 취재에 참여한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의 곽영신(38), 임형준(29) 연구원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단비뉴스의 박두호(29), 이나경(27) 기자가 지난달 21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민송도서관 회의실에서 시리즈의 성과를 결산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임지윤(28·한국금융신문), 장은미(33·뉴스민) 기자는 이메일로 의견을 보탰다. (편집자)

포털 기사에 1천 개 넘는 댓글 등 뜨거운 반응

▲ <단비뉴스>의 ‘지방대 위기와 혁신’ 연재에 참여한 기자들이 지난달 21일 세명대 민송도서관 회의실에 모여 취재 과정과 성과를 돌아보고 있다. 왼쪽부터 임형준, 이나경, 곽영신, 박두호 기자. ⓒ 신현우

곽영신(이하 영신) : 지방대 시리즈를 마무리한 소감이 어떤가? 한국 사회 학벌문제와 지방대 차별·소외문제에 관해 시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나경(이하 나경)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지방대 시리즈 첫 기사 [대학 이름 밝히자 ‘핵인싸’가 ‘갑분싸’로]를 읽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열정 있고 활발하던 한 대학생이 모교(고등학교)에 찾아갔다가 후배들 앞에서 소속 대학(지방대) 이름을 말하니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져 크게 위축됐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 일어났을 법한 일이라 느꼈다. 이 기사로 인해 한국의 교육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원에 입학해 지방대 시리즈 취재에 참여해보니, 학벌문제는 교육뿐 아니라 사회·경제·역사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그물망 같은 사안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단순히 입시제도 하나 바뀐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불평등, 지역불균형발전, 사회적 신뢰부족과 복지미비 등의 문제를 전반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임지윤(이하 지윤) : 나 역시 지방대 출신으로서 열등감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해 있다. 남들보다 몇 배로 더 노력해야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압박감이 있다. 내 후배들은 이런 마음을 갖지 않기를 바라며 이번 시리즈에 참여했다. 기사를 쓴 후 ‘지방대 출신은 차별받아 마땅하다’는 독자 반응에 화가 나기도 했고, 지방대 출신 취재원들의 무기력한 모습에 슬픔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 학벌문제는 해묵은 이야기인데 또 들추어 무엇 하나’라는 한 지방대생의 한숨 섞인 질문이 뉴스를 판단하는 가치에 관해 돌아보게 했다. 변하지 않는 사회에  질문하기를 멈추면, 편견은 더 굳어질 것이다. 지방대 차별과 소외가 당연해지지 않도록,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형준(이하 형준) : 독자 반응이 뜨거워 우리나라에서 교육문제가 정말 중요한 쟁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초반에 ‘지방대 혐오’ 관련 기사는 <네이버> <다음>과 같은 포털에서 댓글이 1천 개 넘게 달리고 사회섹션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1위에 꼽히기도 했다. ‘지방대는 멸시하는 게 정당하다’ 식의 악플도 많았지만, 우리가 느낀 문제의식을 공유해준 이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서울대 한 곳에 132개 대학 몫 지원금] 기사를 <한겨레> 칼럼에 인용했다. 그는 “단비뉴스의 활약이 정말 대단하다”며 “교육문제를 넘어서 대한민국이 작동하는 기본 방식의 위선과 기만을 우회적으로 폭로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썼다. 

장은미(이하 은미) : [구직 청년에겐 서울 사는 것도 ‘스펙’] 기사는 강준만 교수의 책 <부동산 약탈 국가(2020)>와 조귀동 조선비즈 기자의 <세습 중산층 사회(2020)>에 인용됐다. 사실 서울 중심 언론에서 지방대생의 시선을 다룬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단편적으로 지방대생의 현실이나 차별 문제를 보여주는 기사는 있었지만,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방대를 둘러싼 현상과 맥락을 세분화해서 다룬 시리즈 기사가 또 나올까 싶다. 그래서 이 작업이 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지방대생 내면의 패배주의에 놀라기도 

▲ 취재하느라 만난 지방대생들 중 상당수가 패배주의를 내면화하고 있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하는 박두호 기자. ⓒ 신현우

박두호(이하 두호) : 정말 많은 지방대생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노력했는데,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놀란 점은 내면에 패배주의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지방대생 상당수는 소위 ‘스카이(서울·고려·연세)’라 불리는 대학에 정부의 지원과 혜택이 몰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인재를 키우려면 학업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에게 지원을 몰아주는 것이 맞다고 여기고, 지방대생들에게 돌아갈 몫이 서울 상위권 대학교로 가는 데 대해 분노하지 않는 것이다. 지방대생들은 성취욕구가 적고 자신감도 부족했으며, 지방대 출신이 부닥치는 불합리한 현실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영신 : 재능 있고 노력한 사람은 보상받는 게 당연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차별·소외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능력주의’가 우리 사회에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지방대 시리즈가 처음 시작된 2년 전만 해도 능력주의의 폐해와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2020)>이라는 책도 나오고, 여러 서적·기사·방송 등을 통해 능력주의가 구조적으로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 능력주의는 개인이 자신의 온전한 능력과 노력으로 성공에 이를 수 있다고 믿지만, 이는 세습·차별·행운 등의 우연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허상에 불과하다. 보상의 차등을 강조한 나머지 승자와 패자의 불평등을 정당화,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맹점이다. 지방대 차별과 소외는 이러한 능력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적용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형준 : 나도 처음 능력주의에 관한 설명을 들었을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부 잘해서 스카이를 가고, 많은 보상과 혜택을 받는 것이 왜 잘못된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장 취재를 하고 자료를 조사하면서 ‘능력주의라는 게 마냥 좋은 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험성적이 잘 나왔다는 것은 순수한 노력뿐만 아니라 부모의 배경을 포함해 타고난 재능, 환경, 특정 능력을 우대하는 사회 분위기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게 공정하다는 생각도 너무 피상적으로 다가간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출발점이 다 다르고, 설사 출발점이 비슷하다 해도 걸어가야 하는 사람과 차  타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다르다. 사회가 이러한 격차를 보정하고 완화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진짜 공정한 것이다. 지방대생을 향한 차별이 없어져야 하고 제2, 제3의 기회가 계속 주어져야 하는 이유다.

나경 : 미국 대학들은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라고 해서 흑인, 히스패닉,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학생을 뽑기 위해 특정 몫을 할당한다. 우리나라도 대학 입시와 공공기관 취업 등에서 지역인재 몫을 할당하는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할당량을 합리적 수준으로 늘려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교육문제를 다룰 때도 능력주의가 한국 사회의 지배담론이 된 현실과 극심한 양극화 속에서 2030세대가 절차적 공정에만 주목하고 결과의 평등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등 구조적인 문제를 면밀히 살피고 그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 언론이 교육문제를 다룰 때 극심한 양극화 등 구조적 문제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나경 기자. ⓒ 신현우

지윤 : 그런 면에서 최근 화두가 된 ‘공정’에 관한 논의는 ‘결과적 정의’를 향해 이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현재 이야기되는 공정은 ‘기회의 균등’ 또는 ‘절차적 공정’ 차원에서 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정도 수준의 공정으로 끝난다면 ‘개천에서 용 나는’ 소수를 제외하고 계층 이동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 철학자 존 롤스가 말한 정의에서 최소 수혜자에게도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차등의 원칙’을 중요하게 바라봐야 한다. 약자를 배려하는 ‘농어촌지역 특별전형’이나 ‘저소득층 취학 전 아동을 위한 보상교육’ 등의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 

‘1등 몰아주기’에서 ‘하위권도 끌어안는 교육’으로   

▲ 교사들이 상위권 학생들의 ‘스펙’을 관리해 주는 것을 포함, 학교 성적 격차가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는 구조를 지적하는 곽영신 기자. ‘지방대 위기와 혁신’의 취재팀장으로 활약했다. ⓒ 신현우

영신 : 우리 교육현장의 가장 큰 문제는 ‘1등 몰아주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선생님들이 전교 1등부터 몇 등까지 집중적으로 관심을 쏟아 수능과 내신점수, 상장, 동아리, 생활기록부 등 소위 ‘스펙’ 관리를 해준다. 그렇게 관리 받은 학생들이 또 서열 높은 학교에 진학한다. 이들 학교에 정부의 재정지원이 과도하게 몰리면서 이 학생들의 경쟁력은 더 커진다. 나중에는 이들이 대기업, 공기업에 취업하거나 전문직으로 일하면서 소득도 더 많이 받는다. 사회적 제도가 소수 상위권 학생들이 더더욱 발전하고, 상대적으로 성적이 낮은 학생은 갈수록 소외·배제되는 구조로 짜여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열심히 노력하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보상을 주는 기본 원리는 불가피하지만, 문제는 계층 간 너무 과도한 격차가 벌어지도록 교육제도가 불공정하게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형준 : 한국 교육은 생각하는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 같다. 객관식 시험은 답과 답이 아닌 것으로 나뉘고 이를 판별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배움 속에서 비판적, 창조적으로 사고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런 폐해 때문에 수능의 대안으로 한국형 바칼로레아(프랑스의 논술형 평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제도가 도입돼도 승자독식의 원리가 변하지 않으면 논술 중심의 사교육이 판을 치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어떤 입시제도를 채택해도 돈 있는 사람에게 유리하므로, 입시만 바꿔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하위권을 버리는 교육’에 관한 근본적인 반성과 변화가 필요하다. 

▲ 입시제도를 손질하는 것보다 승자독식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임형준 기자. ⓒ 신현우

은미 : [스카이 ‘몰아주고’ 하위권 ‘버리는’ 학교] 기사를 취재하며 기사에 인용된 이야기보다 더 심각한 사례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취재원이 특정될 수 있어 결국 기사에 포함하지는 못했다. 공정을 배워야 할 교육현장에서 상위권 학생에게 모든 기회를 몰아주는 불공정이 자행되고 있다는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하는 현실에 ‘왜 모두가 손 놓고 있나’하는 분노도 일었다. 아프리카에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는데, 우리는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온 학교의 아이들이 희생되지 않나’ 살펴야 한다. 진짜 공정을 배우는 것은 바로 교실에서 시작돼야 한다.

나경 : 김누리 중앙대 교수 인터뷰 중 “한국 교육은 일제강점기 때는 황국신민, 군부독재 때는 반공투사와 산업전사, 지금은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맞는 인적자원을 길러내는 것이 최고 목표”라는 말이 매우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학창시절에 대학입시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성인이 될 때까지 스스로 책임 있는 선택을 하는 경험을 갖기 어렵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혼란을 겪는 사람이 되고 만다. 핀란드 등 유럽의 교육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인간과 사회에 관해 토론도 많이 하고 노동의 가치나 사회의 중요한 규범을 배운다. 대학을 안 가더라도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제시해주고, 시민으로서 어떻게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지방대 시리즈에서도 ‘민주시민교육’ ‘사회정의교육’ 등 경쟁보다 연대를 강조하는 교육 패러다임을 소개했다. 우리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공영형 사립대’ 등 대학 공공성 논의 이어가야 

영신 : 대학구조개혁 방안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지금 한국의 고등교육 시스템은 ‘능력주의’와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승리자로 판명된 서울 주요 대학과 재학생에게는 더 많은 기회와 자원을 집중해주고, 패배자로 판명된 지방대와 학생에게는 턱없이 적은 몫을 나눠주는 구조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지난 20여 년 간 꾸준히 제기돼온 대표적 대학구조개혁 방안이 ‘공영형 사립대’와 ‘대학통합네트워크’다. 공영형 사립대는 이사진 절반 정도를 외부 공익 이사로 선임하는 등 대학 운영의 공공성을 높이고 국가 재정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모델이다. 대학통합네트워크는 지역거점국립대, 지역국립대, 공영형 사립대와 독립형 사립대가 참여하는 수평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공동으로 입시·교육·학위 수여를 하자는 구상이다. 이들 정책의 공통점은 ‘각자도생’과 ‘승자독식’이 득세하는 고등교육 현장을 공공적 시스템으로 관리함으로써 연대와 협력, 격차완화와 자원분산을 도모한다는 점이다. 

두호 : 공영형 사립대 정책은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국정과제로 편성됐는데,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삭감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이 정책은 결국 2021년 ‘사학혁신 지원사업’으로 이름이 바뀌고 5개 대학을 선정해 2년간 평균 20억 원씩 지원하는 내용으로 축소됐다. 기재부의 논리는 ‘대학끼리 경쟁해서 그 결과에 따라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 ‘부실 대학에 지원하면 안 된다’로, 전형적인 능력주의 주장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인(in)서울 대학과 지방대가 경쟁하면 당연히 전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2021학년도 입시에서 지방대들이 대거 미충원 사태를 맞았는데, 이대로 가면 그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다. 

나경 : 대학이 공공적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는 방법을 고민했을 때, 공영형 사립대와 대학통합네크워크는 의미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공영형 사립대는 대학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찬성한다. 얼마 전 졸업한 대학을 다녀왔는데 이사회·총장 밀실선거 문제로 교수·학생들이 플래카드와 대자보를 걸어뒀더라. 내가 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는데 사립대 비리 문제는 참 오래도 지속된다 싶었다. 사학혁신 지원사업을 통해 대학 재정과 거버넌스(지배구조)가 투명하게 바뀌고, 고등교육의 공공성이 전반적으로 강화되는 전기를 맞기 바란다. 대학통합네트워크도 대학 간 연합을 통해 고등교육을 상향평준화하면 서열을 완화할 수 있고, 극심한 입시경쟁도 느슨하게 하는 효과도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영신 : 대학 간 연대와 통합 움직임은 이미 조금씩 가시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올해부터 경남지역 거점국립대인 경상대와 중심대학인 창원대·경남대 등 17개 대학은 ‘경남공유대학(University System of Gyeongnam, USG)’을 구성했다. 이들 대학의 학생들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공통교양 과목을 이수하는 등 하나의 대학처럼 학점을 취득할 수 있게 됐다. 역량을 인증 받은 학생은 지역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취업도 연계된다. 대학 간 장벽을 허물고 교육 자원을 공유해 지역 인재를 키우고, 일자리 연계를 통해 지역에 정착시킨다는 방향이다. 여전히 정부가 소수 대학을 선별해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다른 지역과 대학에 어떻게 확대될지 지켜볼만 하다. 

노동시장 개혁과 지역균형발전도 필수 

▲ '지방대 위기와 혁신' 취재팀이 공영형 사립대와 대학통합네트워크 등 교육 불공정 해소의 대안을 논의하고 있다. ⓒ 신현우

형준 : 교육 문제와 일자리 격차, 지역 불균형 발전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우리가 서열 높은 대학에 가려는 이유도 결국에는 돈을 더 많이 주고 고용안정도 보장하는 대기업·공기업에 취업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를 차별하는 분위기가 있고, 고졸과 대졸 또 대학 서열 간 임금 격차가 분명히 있다. 좋은 일자리와 문화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돼 있으니 지역 인재들이 대거 서울로 빠져나가는 현상도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 다양한 혁신 방안이 추진돼도 노동·지역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함께 진행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나경 : 물론 경쟁에 따른 성과와 보상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는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문제는 그것이 합리적 수준이 아니라는 데 있다. 동일노동을 해도 임금격차가 큰 경우가 많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시간강사와 정규직 교수의 임금격차가 10배 정도 차이 난다. 과연 두 집단이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교육의 질이 그 정도 차이가 날까? [일자리 격차 줄어야 ‘학벌 집착’도 준다] 기사에서 하청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받는 차별과 설움에 관해 취재하면서도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늘 무겁고 힘들고 더럽고...그런 일들만 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노동시장에서 임금·고용·복지 등의 격차가 불합리하게 벌어지면, 생존을 위한 교육 투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해소,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 노동조합 활성화 등은 노동시장 불평등을 줄여 교육경쟁 완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두호 : 지역 불균형 문제도 마찬가지다. 청년 일자리 절대 다수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청년 채용공고 80% 수도권 집중’). 이 때문에 지역 청년들은 20대 초반에는 대학 때문에 수도권으로 가고, 20대 중후반~30대 초반에는 취업 때문에 수도권으로 간다. [서울과 겨룰 ‘메가시티’를 지역 거점에]를 취재하며 만난 한 대학생은 구미에서 태어나 대학 교육까지 받았지만, 근처에 일자리가 없어 취업은 무조건 서울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역에서도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좋은 일자리에 취직할 수 있어야 하며 의료, 문화, 보육, 교통 등 양호한 정주 여건도 보장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방거점 지역에 정치·경제·문화적 기능이 집적된 대도시를 조성하자는 ‘메가시티’ 아이디어는 의미가 있다. 부산·울산·경남이 ‘동남권 메가시티’를 추진하고 있는데, 여러 곳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나면 지역대학 역시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되고, 인서울 대학 못지않은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미국의 하버드 등 선진국 명문대학은 대부분 수도가 아닌 지방의 작은 도시에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교육의 품질과 상관없이 ‘지잡대’ 등으로 싸잡아 부르며 멸시하고 차별하는 풍토가 심하다. 지방대생들이 편입 등을 통해 서울로 ‘탈출’하는 행렬도 끊이지 않는다. 저출산 추세로 학생 수가 점점 줄면서 지방대 중 상당수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와 <단비뉴스>는 심층기획 ‘지방대 위기와 혁신’을 통해 서울 중심의 불균형 발전과 왜곡된 학력 경쟁 등이 낳은 지방대 소외의 실상을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대학 이름 밝히자 ‘핵인싸’가 ‘갑분싸’로

② 우리 학교가 ‘시궁창’ ‘백수 저장소’라니

과잉 능력주의가 낳은 ‘차별 피라미드’

청년 채용공고 80% 수도권 집중

⑤ 지역 공무원 되려고 서울로 ‘학원 유학’

구직 청년에겐 서울 사는 것도 ‘스펙’ 

 공기업·은행도 은밀히 ‘학교 줄 세우기’ 

‘그 학벌로는 어렵지’ 프로젝트 배제도

서울 친구의 ‘일상’이 지방 청년에겐 ‘꿈’

 ‘실패해서 온 곳’ 열등감, ‘편입 탈출’ 행렬

“서울대, 고려대, 의전원이 아니라서” 

스카이 ‘몰아주고’ 하위권 ‘버리는’ 학교

⑬ 정시·수시 조정해봐야 ‘그들만의 전쟁’

⑭ 전문가도 못 푸는 ‘킬러 문항’, 누굴 위해

서울대 한 곳에 132개 대학 몫 지원금

‘지원’ ‘감독’ 함께 늘려 사학 공공성 제고 

 전남·부산에서 서울대 학점 딸 수 있게 

“지방대 먼저 학비 없애 대학 서열 완화”

일자리 격차 줄어야 ‘학벌 집착’도 준다

⑳ 서울과 겨룰 ‘메가시티’를 지역 거점에 

㉑ 한국 대학생 80% “고교는 사활 건 전장”

㉒ ‘각자도생’ 대신 ‘공적지원·투명경영’을

㉓ '계층 대물림' '이기주의자 양산'은 그만 

편집자 : 강훈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