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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수고’는 없다
[글케치북] 삶의 자세
2021년 04월 28일 (수) 15:52:51 오동욱 PD odw0201@nate.com
   
▲ 오동욱 PD

여동생은 무대를 좋아했다. 내가 동생의 취향을 알게 된 것은 그가 5살 때였다. 순천 KBS 공개홀에서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부른 가수 김혜연 씨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시꺼먼 실루엣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웃으며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찍었다. 고등학교 2학년, 동생은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가족은 반대했지만, 동생은 도전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고 했다. 가족의 승낙이 떨어지자 그는 치열하게 노력했다. 아침 5시면 일어나 학원으로 향했고, 밤 11시에 집에 돌아왔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3년을 준비했다. 키가 168cm인 동생은 평균 체중보다 10kg이 더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연기로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동생은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12월 마지막 탈락 결과가 나온 날 “후회 없이 할 만큼 했어”라며, 다음 날부터 연기를 포기하고 수능공부를 시작했다. 문제는 주위 사람들 시선이었다. 하루는 어머니 지인들이 집에 왔다. 동생 이야기가 나왔다. 어머니는 “3년간 고생했는데도 잘 안 됐다”고 말했다. 예체능 입시에 관한 대화가 오갔다. 어머니의 한 지인이 “예체능 입시를 왜 했냐”며 ‘헛고생’이라고 표현했다. 방에서 공부하던 동생은 그 말을 듣고 저녁 내내 울었다. 그의 치열함은 목표에 닿지 못했을 뿐인데, 3년간 노력은 ‘헛고생’이라는 말로 사라졌다.

목표 도달 여부만 살피는 ‘성과 기준’은 인간의 노력을 무시한다. 성과는 부각하지만, 치열한 삶은 사라진다. 생산에서 상품이라는 성과만 중요하듯, 성과 중심 사회에서 인간은 한낱 수단일 뿐이다. 우리는 사회가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배우지만, 성과 중심 사회에서 개인은 사회에 종속된다. 인디언은 일찍이 이런 이치를 알았을까? 17세기에 백인을 따라 서구 문명국가를 보고 온 휴론족 인디언 추장은 백인들 삶을 평가해 달라고 하자 이런 답을 했다.

“나는 깊은 곳으로부터 진심으로 당신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중략) 나는 내 상황의 주인이다. 내 몸의 주인이며, 내 자신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며, 내가 내 나라의 주인이다. 반면에, 당신들은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당신들의 대장에게 의존하며,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할 아무런 자유를 갖고 있지 않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류시화 엮음) 

연극에서 등장인물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날 때는 그가 노력하는 순간이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결과에 상관없이 관객은 캐릭터가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갈 때 그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그 순간이 가장 인간답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실패가 많으면 실패에서 배우고, 성공이 많으면 다음 성공을 위해 노력한 과정들을 살핀다. 노력한 일이 많으면 우리는 경험이 많다고 표현한다. 동생이 연기를 공부하면서 배운 삶의 자세다.

   
▲ 사회는 청춘에게 도전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도전 자체는 존중하지는 않는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을 추켜세우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도전과정을 ‘헛수고’라고 평가한다. © pixabay

동생은 3년 공백에도 노력해서 대학에 갔다. 대학에서 원하던 공부를 한다. 올해는 페미니즘 동아리에 가입해 여성 인권을 신장한다며 치열하게 산다. 동생은 그곳에서 또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들어 동아리가 현수막을 거는 일도 실패했다고 한다. 홍보용 현수막을 걸었더니, 저녁 새 칼로 갈기갈기 찢겼다고 한다. 그런데도 동생은 웃었다. 노력은 경험이고, 경험은 언젠가 성공이 될 테니까.


편집 : 유재인 기자

[오동욱 PD]
단비뉴스 미디어콘텐츠부, 청년부, 시사현안팀 오동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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