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가난 대물림에 갇혀 폐지 줍는 노인들

지난 8일 오전 11시쯤 충북 제천시 화산동 한 주택가 골목. 허리가 90도로 굽은 전 아무개(89) 할머니가 유모차에 폐지를 차곡차곡 싣고 있었다. 주변에는 포장용 박스와 쌀포대 소주병 등 재활용품이 잔뜩 쌓여 있었다. 할머니는 동네 골목과 시장통을 돌아다니며 폐지와 소주병 등을 주워 집 앞에 쌓아두었다. 하루 한 번 유모차에 싣고 고물상으로 가져 간다.

유모차 가득 싣고 가도 1300원

이날 전 씨 유모차 위에는 자기 키보다 높은 ‘상자탑’이 실렸다. “인제 그만 실어. 넘치면 고물상꺼정 가지도 못 혀.” 리어카를 끌고 지나가던 한 노인이 전 씨를 향해 소리쳤다. 전 씨는 주머니에서 기다란 고무줄을 꺼내 상자 더미를 유모차에 단단히 둘러맸다. “태산같이 쌓아 가져가도 천 원도 못 받아.” 그가 혼잣말처럼 대꾸했다.  

▲ 제천시 화산동에 사는 전 아무개(왼쪽) 할머니가 집 앞에 모아 놓은 폐지를 유모차에 싣고 있다. 허리가 굽은 그가 잔뜩 쌓인 상자더미 위로 손을 뻗치기 힘들어 지나가던 노인이 도와주고 있다. © 유지인

전 씨는 우리 나이로 아흔이다. 그는 성치 않은 몸으로 이날도 아침 7시에 폐지를 주우러 집을 나섰다. 오전 10시까지 동네 골목을 1km 정도 돌아다니며 주민들이 대문 앞에 내놓은 폐지와 공병 등을 수거했다. 일부 주민은 전 씨 집 앞에 재활용품을 가져다 두기도 한다. 그는 동네에 있는 재활용품을 다 수거한 뒤 오전 11시쯤 집 앞으로 돌아와 모아 놓은 재활용품을 유모차에 실었다. 

전 씨는 자신의 키보다 높게 상자를 쌓아 올린 유모차를 밀고 고물상으로 출발했다. 고물상은 그의 집에서 900m 정도 떨어져 있다. 젊은이라면 15분도 안 걸리는 거리지만 그는 30분 이상 걸어야 한다. 고물상까지 가려면 횡단보도를 3개 건너고 낮은 언덕길을 하나 올라가야 한다. 그는 유모차를 뒤에서 밀고 가기 때문에 높은 폐지 더미가 앞을 가려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인도를 피해 차도로 다닌다. 차들이 진행하는 방향을 따라 도로 한 켠으로 유모차를 밀고 간다.  

▲ 19일 낮 전 씨가 폐지를 줍기 위해 자기 집에서 나와 유모차를 밀고 도로를 따라 걷고 있다. 그는 행인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차도 한 켠으로 다닌다. © 유지인

100m 정도 되는 오르막길에 들어서자 그는 여러 번 멈추어 서서 숨을 골랐다. 오르막을 오르면서 아픈 허리 때문에 세 번이나 길바닥에 주저 앉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면 멀리 돌아가야 하는 때가 많아 그냥 도로 양방향을 살펴보고 차가 없을 때 무단횡단을 했다. 힘겹게 30분 이상 무거운 유모차를 밀고 가서 고물상에 상자와 폐지를 넘기고 그가 받은 돈은 1300원. 고물상마다 달라 정확한 가격은 모르지만, 이날 kg당 50원씩 쳐서 폐지 26kg을 판 것이다.

전 씨는 고물상에서 폐지만 내려 팔고, 공병은 그대로 싣고 나왔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한 달 모은 공병 60개를 넘기고 6천원을 받았다. 고물상에 공병을 넘기지 않고 편의점에서 처분한 것은 고물상은 공병 하나에 70원을 주지만 편의점에서는 100원을 주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팔면 고물상보다 1800원을 더 받을 수 있어 무거운 공병을 싣고 편의점까지 온 것이다.

한 달에 열흘 폐지 주워 2만원 벌어

오후 한 시가 다 돼 오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전 씨는 늦은 점심을 먹었다. 대개 누룽지를 끓여 끼니를 때우는데, 이날은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다. 그가 공병을 처분한 편의점에서 상한 것은 아니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을 얻어 왔다. 점심을 먹고 그는 설거지와 빨래 등을 하고 잠깐 낮잠을 자며 쉬었다. 
 

▲ 전 씨가 자기 부엌 가스레인지 앞에서 점심 준비를 하고 있다. 누룽지가 그의 주식이다. © 유지인

저녁 6시가 되자 전 씨는 다시 빈 유모차를 끌고 집을 나섰다. 해가 저물 때쯤 시장통에 있는 가게들이 종이상자 등 재활용품을 내놓기 때문이다. 그는 집에서 1km 정도 떨어진 제천중앙시장을 돌면서 재활용품을 수거했다. 한 시간 넘게 주웠지만 생각보다 성과는 적었다. 폐지 줍는 노인들이 모두 이 시간에 시장으로 몰려 들어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 전 씨가 동네 골목에서 폐지 줍기를 하다 잠깐 앉아 쉬고 있다. 그는 허리가 많이 불편하고 아픈 곳이 많아 하루에도 몇 번씩 주저앉아 쉬어야 한다. © 유지인

“큰 건 할아버지들이 휙휙 다니며 다 가져가고 나 같은 할머니들은 쪼가리들이나 주워 오는 거야.”

그는 얼마 안되는 폐지가 실린 유모차를 밀고 집으로 돌아오며 “그거라도 주워야 담은 몇 백원이라도 더 벌지”라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폐지를 집 담벼락 앞에 내려 놓고 밤 여덟 시가 넘어서야 하루 일을 마쳤다. 하루 번 일당은 폐지 판 돈 1300원에 한 달 모아 판 공병 값 6000원을 30일로 나눈 200원을 합쳐 1500원이었다. 그나마 요즘은 일 나가는 날이 한 달에 열흘 정도로 줄어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틀에 한 번은 일을 나갔는데 몸이 성치 않아 일을 거르는 날이 부쩍 늘었다. 그가 지난 3월에 폐지를 주우러 나간 날은 열흘 남짓이고, 번 돈은 겨우 2만원 남짓이었다. 그전에 한 달에 보름 이상 폐지를 주울 때도 한 달 벌이는 3만원을 넘지 않았다. 

“병원비 무서워 한푼이라도 보태려고…”

몸은 고되고 왠만한 집 저녁 한끼 외식비도 안 되는 벌이지만 전 씨가 이 나이 되도록 폐지 줍기를 하는 것은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그는 “저거들 살기도 팍팍한데 나까지 손을 벌릴 수는 없지”라고 말했다. 그는 매월 받는 기초연금 30만원에 생계급여 24만원을 보탠 54만원으로 한 달을 산다. 그중 생계급여는 작년까지만 해도 못 받던 것을 올해부터 기초생활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돼 받을 수 있게 됐다. 

전 씨는 한 달 54만원 수입 중 주거비는 자식들이 사준 집에서 살고 있어 나가는 것이 별로 없다. 먹는 것도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10kg들이 쌀 한 포대로 누룽지를 만들어 먹을 때가 많아 많은 돈이 들진 않지만 그래도 반찬 값 등으로 한 달에 20만원 남짓 나간다. 매월 가스요금이 2만원 안팎이고 전기세 수도료 합쳐 3만여원, 핸드폰 전화요금 등 공과금이 7만~8만원 정도 들어간다. 겨울에는 난방비가 15만원 넘게 들어갈 때도 있어 한 달 생활비가 50만원 정도 들어간다. 여기에 교통비와 허리가 아파 병원 다니느라 병원비가 들어가고 자식들이 사준 집이 자기 명의로 돼 있어 재산세 등 세금도 내야 한다. 한 달 수입 54만원으로 빠듯하게 생계를 꾸려 나갈 수밖에 없다.  

“이상하게 올해는 별나게 아파. 허리며 다리며 안 아픈 곳이 없어. 이쪽 눈은 인제 보이질 않아. 병원에 갔더니 녹내장이래. 내 나이 90인데,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거지. 요즘은 밤에 혼자서 울 때가 많아.” 

사실 전 씨가 아흔이 넘도록 폐지를 줍는 가장 큰 이유는 병원비 때문이다. 그는 올 들어 몸이 자주 아프다. 작년까지 20여 년 동안 해 온 밭일로 허리가 휘고 무릎 관절이 상했다. 올해부터는 허리와 다리의 통증이 더 심해지고 왼쪽 눈 시력까지 급격히 나빠졌다. 하지만 그는 병원비가 무서워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작년에 허리가 아파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정형외과에 갔다가 원치 않은 병원측 처방에 큰 돈을 낸 뒤로는 병원은 아예 갈 엄두를 못 낸다. 

몇 해 전에는 밭일을 하다 쓰러져 병원에 가서 주사 한 대를 맞고 25만원을 낸 적도 있었다. 녹내장 진단을 받았는데, 눈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병원비를 감당할 길 없어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았다. 그는 가끔 물이 푸르스름하게 보일 때만 병원에 가서 물을 빼면 괜찮았는데, 올해부터는 왼쪽 눈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나빠졌다. 언젠가는 큰 병이 나서 병원에 가게 되면 자식들에게 그 많은 병원비를 부담시킬 수 없어, 조금이라도 돈을 모아 두어야 한다는 마음에서 폐지 줍기를 하고 있다.

“가난 대물림 못 끊고 자식들에 손 벌릴 수 없어” 

전 씨는 건강이 나빠져 폐지를 줍기 전에는 밭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보태 왔다. 용역업체를 운영하는 지인을 통해 일자리를 구해 한 달에 한 번 정도 밭일을 나가 일당으로 7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밭 주인들이 일을 시키기 싫어했고, 일을 시키더라도 작업 속도가 느리다며 일당을 깎아 버리기도 했다. 억울해도 일이 끊길까 봐 모른 척 넘어갔다. 밭일은 새벽 6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쯤 끝났는데,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도 하루만 참고 버티면 며칠 치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 씨는 작년에 밭일을 하고 돌아와 일주일 앓아 누운 뒤부터 “병원비가 더 나올까 봐 겁나서” 밭일을 그만 두었다. 

전 씨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모님이 동냥해온 밥을 먹고 자랐다. 18살에 강원도 산골 마을로 시집을 갔는데, 시집도 찢어지게 가난했다. 남편이 지병이 있어 혼자 막노동과 식당일을 하며 3남매를 키웠다. 그의 나이 마흔 되던 해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로는 혼자서 자식들을 키우고 결혼까지 시켰다. 3남매 모두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반듯하게 자라주고 모두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물려받은 가난은 끊지 못하고 다들 형편이 좋지 않다. 작년에는 큰아들이 실직해서 아들 보험료가 전 씨 앞으로 청구되기도 했다. 큰딸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이혼했고 막내딸은 신부전증을 앓아 마트 수납원 일을 그만두었다. 물려받은 가난을 끊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물려준 상황에서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고 나이 아흔이 돼서도 아픈 몸을 끌고 폐지를 줍고 있다.  

가난한 노인을 ‘도로 위 무법자’로 만드는 나라 

우리나라 빈곤층 노인 중에는 복지제도를 아예 모르거나, 복잡한 행정절차를 이행할 수없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폐지 줍는 노인 대다수가 이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이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거리를 나돈다. 한 푼이라도 벌겠다며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노인들은 힘들다 보니 차도로 리어카나 유모차를 끌고 다니고 무단횡단을 하게 된다. 

지난 1일 오전 제천시 역전교차로에서는 임 아무개(86) 씨가 폐지를 싣고 가던 리어카에서 폐지더미가 쏟아져 내려 출근길 차량들이 불편을 겪었다. 제천시 화산동에 사는 남 아무개(84) 씨는 2년 전 제천역 주변에서 폐지를 줍다가 횡단보도 신호를 위반하고 돌진한 승용차에 치여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다.

▲ 지난 1일 오전 제천시 역전교차로에서 임 아무개 씨가 폐지를 싣고 끌고 가던 리어카에서 폐지 더미가 도로 한복판으로 쏟아져 일대 교통이 한동안 마비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10분가량 도로를 가로막고 폐지를 주워 담느라 출근길 차량들이 정체현상을 겪었다. © 유지인
▲ 제천시 역전교차로 근처 도로에서 한 80대 노인이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고 차가 없는 틈을 타 무단횡단을 하고 있다. © 유지인

폐지 안 주워도 되는 대책 있어야

지금 서울시를 비롯한 55개 지방자치단체는 재활용품 수집인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안전장비를 지급하고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에게 안전교육을 실시한다. 인천시는 작년 2월 재활용품 수집 노인 2,139여명에게 안전조끼와 안전띠 등을 지급했다.  

인천 계양구에서는 민간 차원에서 폐지 수거 노인을 지원하기 위한 ‘실버자원협동조합’이운영되고 있다. 2014년에 설립된 실버자원협동조합은 노인들이 모아 온 폐지를 트럭에 실어 고물상에 넘기고, 폐지 판매 대금은 노인들 통장으로 입금해 준다. 실버자원협동조합은 계양경찰서와 협의해 매달 노인들을 위한 교통 안전교육도 시행한다. 또 인천계양시니어클럽과도 연계해 노인들이 폐지 줍는 일 외에 요식업, 미용업, 유통업 등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협동조합 설립자인 이준모 목사는 “협동조합을 통해 어르신들 간에 싸움이 없어지고, 조합이 설립된 이후 교통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인천시 계양구에 있는 ‘실버자원협동조합’ 설립자인 이준모 목사가 조합 사무실 앞에서 조합 운영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 유지인

이처럼 지자체나 민간단체가 폐지 수거 노인을 위한 지원방안을 마련해 시행하는 것은 지금 당장 필요한 조처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지원방안은 결국 노인들이 계속 폐지를 줍고 살게 하겠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폐지를 줍지 않아도 살 수 있도록 고령 빈곤층을 배려하는 복지사각지대 해소 방안이 시급한 실정이다. 


편집 : 고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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