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주항쟁 연속보도] ②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 연대' 활동가 A씨

30대 초반의 A씨는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 연대’의 활동가다. <단비뉴스>는 A씨와 지난 한달 동안 3차례 만나고 인터뷰했다. 그가 쿠데타 발발 직후 지난 두 달 동안 겪었던 일을 인터뷰기사 형태로 정리하여 보도한다. 미얀마 군부가 민주 항쟁에 가담하는 이들의 신분을 추적하고 있으므로 현지에 가족을 둔 그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얼굴을 가리고 이름은 익명으로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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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저항과 학살을 기록한 시민들의 사진 첫 공개

③ 6만 미얀마 시민들의 텔레그램 단독 취재 

④ 봄의 혁명 100일 기록

⑤ 한국 거주 미얀마인들의 증언

 

지난 18일 오전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연대’, ‘재한 소수민족 청년모임’, ‘해외주민운동연대 코코(KOCO)’ 등 3개의 단체가 모였다. 이들은 서울 잠실 롯데호텔 앞에서 잠실새내역, 종합운동장역, 삼성역을 거쳐 포스코 센터 앞까지 1시간 동안 약 4km를 행진했다. 한국의 포스코와 미얀마 군부의 경제 교류 중단을 촉구하는 행진이었다. 

A씨는 그 현장에서 한국어와 미얀마어를 통역해주고 있었다. A씨는 행진을 준비하는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각기 다른 피켓에는 한국어와 미얀마어로 ‘포스코는 군부의 돈줄 역할을 중단하라’고 쓰여 있었다. A씨는 다른 사람들이 미얀마의 설날인 ‘띤잔’을 상징하는 노란꽃을 오른쪽 가슴에 달 수 있게 도왔다. 그룹별로 줄을 세우고 피켓과 펼침막을 나눠주기도 했다.

▲ '해외주민운동연대 코코'의 강인남 대표(왼쪽)와 이야기하는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연대'의 A씨. A씨가 강 대표의 발언을 미얀마어로 통역해 시위대에 전달하고 있다. 사진은 A씨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가림 처리했다. ⓒ 김정민

“21세기에 정말 쿠데타가 일어날 줄이야” 

A씨가 한국에 온 것은 2018년 말. 한국에 오기 전까지 미얀마의 정치 상황은 자유로운 편이었다. 완전히 민주화된 나라는 아니었지만 인터넷을 맘껏 쓸 수 있었다. 페이스북에도 정치 관련 비평을 자유롭게 올리고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0년 선거에서 NLD(민주주의 민족 동맹)가 압승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08년에 제정된 헌법은 의회 의석의 25%를 군부에 할당하도록 의무화했다. 친군부정당인 연방단결발전당(USDP)도 군부에 힘을 실어줬다. 그럼에도 민심은 아웅 산 수지 전 국가고문이 이끄는 NLD에 가 있었다. NLD는 2015년에 이어 2020년 선거에서도 압승했다.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 쿠데타가 일어날 걸 예상하셨나요.
“분위기가 안 좋기는 했어요. 쿠데타가 일어날 거란 소문이 돌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전혀 믿지 않았죠. 실제 쿠데타가 터지고도 한동안 실감이 안 났어요.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쿠데타를 일으킨다고요? 21세기인데? 그건 너무 황당한 일이잖아요.”

그가 처음 쿠데타 소식을 접한 건 2월 1일 오전 10시 30분쯤이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카톡에 문자와 부재중 통화 기록들이 잔뜩 와 있었다. 그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근무하던 당시 알고 지낸 한국인 상사들이 물어봤다. ‘쿠데타가 일어났다는데 괜찮아? 가족들이랑 연락은 돼? 현지에 있는 직원들은? 상황이 어때?’ 

바로 현지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이미 인터넷이 다 통제된 상태였다. 현지 시간으로 오후 1시, 한국 시간 오후 3시 30분쯤 미얀마 국영 방송에서 공식 발표가 나왔다. 부정 선거로 인해 군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1년간 나라를 통치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일상이 된 불안과 공포, 입맛도 잠도 달아나

72시간 동안 미얀마 현지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다들 조심스럽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위를 하면 군부에게 진압명분을 줄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2월 4일, 마침내 미얀마의 대도시 만달레이에서 가두시위가 일어났다. 만달레이 외국어 대학생들과 의대생들이 앞장섰다. A씨는 군부가 시위를 진압하고 학생들을 체포해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학 총장이 가두시위에 나선 학생들의 정보를 경찰에 넘겼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학생들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자 그제야 군부 독재가 시작됐다는 실감이 들었다. 한동안 밥이 안 넘어갔다. 인터넷이 끊기는 밤이 되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군부는 새벽 1시부터 오전 9시까지 인터넷을 통제했다. 페이스북 활동창에 접속을 알리는 초록불이 들어와 있는 경우는 한국에 있는 미얀마 친구들뿐이었다. 현지 친구들은 전부 소식이 끊겼다. 몇시간 전에 그들이 활동했다는 흔적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럴 때면 옆방의 친구들과 모여 앉았다. 페이스북에 간간이 올라오는 소식들을 공유하며 기나긴 밤을 견뎠다.

▲ 지난달 21일 인사동 한 스터디룸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는 A씨의 모습이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꽃다운 나이에 군부에 맞서다 숨지는 게 제일 안타깝고 슬프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 이예진

인터넷이 될 때는 현지의 친구들이 글이나 사진, 동영상을 빠르게 공유해주었다. 실시간으로 사람들이 죽고 다친 소식과 사진이 올라왔다.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멀리서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는 마음에 죄책감과 무력감, 좌절감을 느꼈다. 단체 메신저방에서 매일 밤 친구들이 집에 무사히 돌아왔는지 안부를 확인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치안 무너지고 언론 자유도 사라져

- 언론도 통제되고 있는 건가요? 
“네, 일간지는 다 폐쇄된 걸로 알아요. 군경들이 신문사 사무실을 뒤져서 기자들을 구타하고 컴퓨터도 압수했대요. 활동을 접지 않은 기자들은 체포를 피해 일반인으로 분장해서 조심스럽게 취재를 하고 있고요. 지금은 국영신문만 나오고 있는데 너무 말도 안되는 기사를 쓰고 있으니까 보면 화가 나요.” 

- 국영신문은 어떤 식으로 보도하나요
“군대와 경찰이 시민들을 공격하잖아요. 최루탄으로도 쏘고 실탄으로도 쏘고. 그런 것들은 하나도 안 나와요. 오히려 경찰이 시민 쫓아가다가 넘어져서 다치면 그걸 시민들이 반격해서 경찰이 다쳤다는 식으로 쓰고. 2월 9일에 수도 네피도에서 처음으로 실탄을 쏴서 사람을 죽였는데 죽은 사람을 부검해보니까 군대에서 쓰는 총알에 맞은 게 아니더라 이런 식으로 왜곡하고…” 

치안도 무너졌다. 군인과 경찰이 민가나 가게에 들어와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약탈했다. 밤이 되면 집집마다 찾아와 사람들을 잡아가기도 했다. 경찰은 시민의 편이 아니었다. 시민들이 서로를 지켜야 했다. 사람들은 시민 자경단을 조직해 동네를 지켰다. 그 와중에도 군인과 경찰이 쳐들어와 시민 자경단을 총으로 쏘고 잡아갔다. 

더 큰 문제는 시민들끼리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됐다는 점이다. 곳곳마다 ‘첩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군부 쿠데타 저항 운동을 하거나 시위대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사람들이 표적이 됐다. 첩자가 신고한 사람들은 잡혀가서 다음날에 시신으로 돌아오거나 영영 행방불명됐다. 

- 미얀마 사람들이 올리는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한국의 언론에 나오는 내용은 제한적이잖아요. 제보하는 사람에 의해서만 기사가 나가는 거라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지 못하고요. 저희는 한국 언론보다는 페이스북 등 커뮤니티를 통해 많이 알게 되니까 더 가슴이 아프고 견디기 힘들어요.”  

미얀마의 현재 상황은 좋지 않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현재 군경의 총격이나 폭력으로 최소 700명 이상의 시민이 사망했다. 군부는 11일 양곤 인근의 바고에서 82명을 살해하고 미얀마 최대 명절인 띤잔 기간인 지난 13~17일에는 26명을 추가로 살해했다. 띤잔 축제 때 서로 물을 뿌리며 지난해의 불운을 씻어내는 풍습이 있지만 올해는 숨진 시민들을 추모하기 위해 대부분의 도시가 행사를 취소했다고 A씨는 말했다. 

15일에는 시위대의 주축이자 ‘몽유와의 판다’라고 불리는 몽유와 지역의 웨이 모 나잉도 체포됐다. 체포 직후 심하게 구타당해 눈이 부은 그의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웨이 모 나잉은 미얀마 전역에서 하루 15분 동안 프라이팬과 냄비를 두드리며 반군부 슬로건을 외치는 ‘소음 시위’를 기획한 인물이다.

내전이 임박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선거로 당선된 의원들과 소수민족 인사들이 주축이 된 CRPH(연방의회 대표위원회)는 4월 1일 국민통합정부(NUG)라는 새 임시정부를 출범시켰다. 국민통합정부는 산하에 연방군을 창설할 계획이다. 현재 미얀마 각지에서 군부와 싸우는 소수민족군이 이들과 연합하고 시위대가 가세할 경우 내전이 발발할 수도 있다.

- 시리아처럼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비극적이지만 저희는 내전에 익숙한 나라예요. 70년 동안 분쟁이 끊이질 않았거든요. 그리고 이미 시위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생각해 소수민족군에 입대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물론 내전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집을 잃을 거라는 점을 생각하면 맘이 너무 안 좋아요. 그렇지만 국제사회의 개입이 너무 느리고 저희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135개의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미얀마는 70년 가까이 내전을 겪은 나라다. 정부군과 반군, 혹은 반군끼리의 무력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 2017년 로힝야 족이 ‘인종 청소’를 당해 수십만 명의 난민이 생겨났다. 당시 학살의 주축도 이번에 쿠데타를 일으킨 민 아웅 흘라잉 전 군 총사령관이었다. 

▲ 18일 오전 10시 A씨가 속한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 연대’가 서울 잠실 롯데호텔 앞에서 행진하고 있다. ⓒ 김정민

기자회견에 오체투지, 1인 시위까지 

- 쿠데타 이후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전에는 저처럼 내성적인 사람이 한국에 와서 길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하게 되리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저는 원래 정치에 관심이 없는 편이고 뒤에서 지원업무를 맡는 게 적성에 맞아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라도 해야 하잖아요. 미얀마에서 죽고 다치고 잡혀가고 고문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것밖에 없잖아요.”

나날이 심각해지는 현지의 상황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몸은 해외에 있지만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 청년들끼리 소통하는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었다. 쿠데타 직후 함께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군부 독재와 쿠데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할 예정인데 같이 참여할 사람이 있냐는 내용이었다. 

학생, 직장인 등이 나서서 팀을 결성했다. 처음엔 ‘재한 미얀마 청년연대’라는 이름으로 2월 7일에 광화문, 유엔 인권사무소, 주한 미얀마 대사관과 영사관, 국회의사당 등 5곳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단체 이름은 이후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연대’로 바꾸었다.

3월 12일에는 조계사 승려들과 함께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유엔 인권사무소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오체투지는 다섯 발자국 걷다가 엎드려 절하는 어려운 동작의 연속이었다. 약 6km의 거리를 6시간 동안 동료들과 교대해가며 이동했다. 

종교계에서 같이 나서주는 게 힘이 됐다. 한국도 미얀마와 같은 역사를 겪었다며 공감해주고 응원해주는 시민들이 많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당시 유튜브와 페이스북 라이브로 생방송을 했는데 위로와 힘이 됐다며 고맙다고 하는 미얀마 사람들의 반응 역시 줄줄이 이어졌다. 

▲ A씨가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서 미얀마 민주 항쟁에 관심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연대’ 활동가들은 매주 일요일 11시 반부터 2시간 동안 인사동에서 피켓을 든다. ⓒ 이예진

미얀마에서 고군분투하는 동료 시민들을 위한 모금활동도 진행중이다. A씨는 끝까지 싸우겠다며 한국인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아웅 산 수지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나 기억은 없어요. 그렇지만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freedom from fear'라는 말이 되게 유명하거든요. 저희 미얀마 사람들한테는 그런 말이 지금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 저희는 공포에서 벗어나 간절한 마음으로 끝까지 싸울 겁니다. 함께 연대하고 도와주세요.”


사단법인 <단비뉴스>는 미얀마 민주 항쟁과 연대합니다. 여러분들의 참여도 기다립니다. 자신의 '이름'과 '휴대전화 뒷번호 8자리'를 송금 메모에 적어 신한은행 100-034-615484(사단법인 단비)에 기부금을 보내주십시오. 보내주신 전액을 미얀마의 '해외 주민 운동 연대 코코(KOCO)'에 전달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보도하겠습니다. 더 궁금한 사항은 전자우편 akimmin37@naver.com으로 문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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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임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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