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농부의 농사일기] ② 씨 뿌리기
억눌렸던 일상에 봄볕이 내리쬔다. 신종 코로나19는 세계를 얼어붙게 했지만 오는 봄을 막지는 못했다. 전국에서 꽃망울이 터지며 봄의 시작을 알린다. 내가 공부하는 학교 곳곳에도 연초록 새싹이 터져 나온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을 맞는 이 느낌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활기와 희망과 행복감. 추웠던 겨울은 어느새 잊고 마음도 봄눈처럼 녹아 내린다. 봄은 늘 이렇게 희망과 함께 온다.
농촌에서는 봄이 오면 씨를 뿌린다. 주말인 지난 10일 다시 충북 제천시 청전동에 있는 솔휘농장을 찾아가 옥수수 씨를 심었다. 모종판에 흙을 담은 뒤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틈을 만든다. 틈 사이에 씨앗 한 알을 넣고 다시 흙을 덮는다. 모종 한 판이 완성되면 물을 흠뻑 준다.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싹이 나온다고 한다. 농사를 막상 해보니 힘든 점이 많지만, 자연을 곁에 두고 일하는 것은 더 큰 매력으로 나를 사로잡는다.
농사는 자기성찰의 수단이다. 자연에서 호흡하며 직접 농사를 지어보는 것은 자신을 성찰하는 강력한 비법이다. 흙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유 없는 생명이 없음을 알게 된다. 우리를 찌르는 가시나무도, 징그럽게 생긴 벌레나 지렁이도 다 이유가 있어 그곳에서 살아간다. 과한 꿈 없이 자신을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으로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들풀로부터 소박함을 배운다. 숲을 지배하려 하지 않으며 제 자리 아닌 곳을 탐하지 않는 나무를 볼 때마다 한결 차분하게 삶을 대하는 나를 만나게 된다.
다음으로는 명이나물을 작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대량으로 사온 식물에 각자 집을 만들어 주는 작업이다. 산마늘이라고도 불리는 명이나물은, 울릉도에 살던 사람들이 보릿고개에 이 나물을 먹고 목숨을 이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인간의 명을 이어준 명이나물은 자신도 놀라운 생명력을 갖고 있다. 뿌리를 반으로 잘라내도 화분에 심고 물을 주면 새롭게 뿌리를 내린다.
명이나물뿐 아니라 자연 속 모든 생명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살아갈 힘을 잃어버리면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 모든 생명은 복원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 역시 회복 가능한 범위 안에 있을 때 건강할 수 있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우리 터전을 복원력의 한계 지점 안에 머물게 해야 하는 이유다.
지상의 모든 생물이 보금자리를 짓는 소재로 자연 그대로의 것을 사용한다. 복원력을 보존하는 것이다. 사람만 유독 그 틀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빽빽이 붙어 있는 콘크리트 건물, 아스팔트로 뒤덮인 길도 모자라 운동장까지 플라스틱 잔디로 도배한다. 이런 곳에서 생명이 제대로 살아갈 리 없다.
지난 7일 서울과 부산에서 새로운 시장이 뽑혔다. 건물을 더 높게 짓고 더 많이 짓는다고 한다. 흙은 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가 덮일 것이다. 건물이 높아지면 인간에게 아낌없이 내리쬐는 햇볕 또한 더 차단될 것이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너도나도 서울처럼, 부산처럼 만들겠다고 한다. 신은 자연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데…
편집 : 이강원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부, 시사현안팀 박성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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