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경계선 지능 청년 자립 지원 현황

어색하고 어눌한 말투, 불안해 보이는 눈동자, 지나친 공손함. 카페를 들어서며 만난 아르바이트생의 첫인상이었다. 음료를 주문하자 그는 더듬거리며 다시 주문을 확인했다. 그라인더로 커피 원두를 갈 때는 양을 한 번에 맞추지 못하고 두어 번 더 반복했다. 하나의 음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의 동선은 비효율적이었다. 커피를 내리고, 우유 거품을 만들고, 과자를 꺼내는 과정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나온 음료수는? 맛있었다. 여느 카페에서 파는 음료와 다르지 않았다. 

카페 로고가 그려진 검은색 앞치마를 입은 그의 이름은 최원재(27)다. 그는 손님이 없어도 한시도 쉬지 않는다. 카페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다. 그는 이 카페에서 주 4일, 하루 네 시간씩, 일한 지 4년이 넘었다. 아르바이트생이라 생각했던 것도 오해였다. 그는 카페 아자라마의 정직원이다. 원재 씨가 일하는 곳은 경계선 지능인의 자립을 위해 만들어진 카페, 아자라마다. 

▲ 최원재 씨가 카페 아자라마 건물 계단을 청소하고 있다. 그는 매일 꼬박꼬박 해야 하는 일이라며,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 유재인

같지만 다른, 카페 아자라마

서울시 관악구 지하철 2호선 봉천역 1번 출구에서 100미터 거리의 건물 2층에 카페 아자라마가 있다. 우드톤의 따듯함을 주는 인테리어에 최신 유행 음료인 흑당 버블티를 파는 이곳은 언뜻 보면 여느 카페와 다를 게 없다. 자세히 보아야 이 카페의 특별함이 보이기 시작한다. 카페로 올라가는 계단 옆 벽에는 ‘경계선 지능’에 관한 기사로 가득하다. 카페 내부의 그림들은 초등학생이 그린 듯 선과 색이 단순하다. 

▲ 카페 아자라마로 올라가는 계단. 계단 벽에는 아자라마와 경계선 지능인에 관한 기사들이 붙어 있다. ⓒ 유재인

아자라마는 2017년 11월 ‘경계선 지능인’ 을 위한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에서 경계선 지능 청년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만든 카페다. 아자라마라는 카페 이름은 ‘Would You Love Me’라는 문장을 소리 나는 대로 읽은 ‘우쥬럽미’의 초성에서 따 왔다. 장애와 비장애의 사이에 있는 경계선 지능인도 사랑해달라고 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말이라고 한다. 

카페에는 세 명의 정직원과 네 명의 인턴 직원이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경계선 지능인이다. 인턴들은 1년 이상의 수습 과정을 거쳐 정직원인 ‘가디언’으로 채용된다. 직원들을 부르는 이름인 ‘가디언’은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따왔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비주류 외계인이다. 그러나 마침내 우주를 지키는 영웅, 즉 가디언이 된다. 그래서일까. 카페 곳곳에 적힌 아자라마의 소개글에는 ‘지구인, 우주인, 외계인 모두 공존하는 곳’이라고 쓰여 있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공간을 만드는 것. 아자라마가 지향하는 가치다.  

▲ 카페 아자라마 내부 모습. Ⓒ 유재인

원재 씨는 2018년부터 아자라마에서 일하고 있다. 올해로 일한 지 4년이 되는 원재 씨는 이 카페에서 가장 오래 일한 가디언 중 한 명이다. 그는 자신도 처음에는 카페 일이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익숙하지 않은 일에 적응하기 위해 그는 관리자 선생님이 내는 실습 과제를 1~2년 간 꾸준히 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여느 베테랑 바리스타 못지않다. 원재 씨는 새로 들어온 후배나 인턴을 가르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원재 씨는 스스로를 ‘경계선 청년 활동가’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과 같은 경계선 지능인들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다. 자신이 졸업한 경계선 청소년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을 찾아가 졸업생 모임을 이끌고 있고, 1년에 한 번씩 후원의 밤을 개최하기도 한다. 그는 YTN 라디오 방송 등 경계선 청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언론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과 함께 카페 아자라마의 대표 격으로 국회에서 열린 ‘경계인 주간 심포지움’을 공동 주최하기도 했다. 올해로 세 번째 열린 이 심포지움에서는 경계인 청년의 평생교육과 관련한 토의가 활발히 이뤄졌다.

열 명 중 한 명은 경계선 지능

현재 ‘미국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DSM-IV)’은 원재 씨 같은 사람을 ‘경계선 지적 지능인(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 BIF)’으로 분류한다. 표준화 지능검사를 토대로 나온 지능지수(IQ)가 70에서 85 사이에 해당하는 사람이 여기에 속한다. IQ 85 이상은 일반인으로, 70 이하는 지적장애로 분류되는데 그 사이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우를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한다. 지능의 정규 분포를 토대로 보았을 때, 전체 인구의 13% 정도를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추산한다. 국내에서는 학령 인구(6~21세) 80만 명이 경계선 지능인일 것으로 추정한다.

낮은 지능지수는 경계선 지능인의 인지적 특성에 영향을 끼친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박찬선·장세희, 2018)를 보면, 이들은 대체로 주의를 집중하기 어려워하고, 기억능력이 저조하며, 문제해결능력이 부족한 특성을 보인다. 의사소통과 사회적 특성에서도 일반인과 차이를 보인다.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을 어려워하며, 사회적 감수성(눈치)이 없고, 상황 판단에 대한 이해가 느리다. 이외에도 소근육 발달이 더뎌 머리를 묶거나 운동화 끈을 매는 것을 어려워할 수 있고, 야단을 맞거나 평가의 대상이 될 때 남들보다 심하게 위축되고 주눅 든다. 특히 학창시절에는 또래와 관계를 맺는 것이 서툴고 수업에 쉽게 집중하지 못해 종종 문제아로 여겨진다.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원재 씨 역시 학창시절 교우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다. 그는 늘 혼자가 됐다. 다가오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지만 괴롭힘을 당한 적은 너무 많아 셀 수 없을 정도다. 별명을 만들어 놀리거나 무시하는 것은 괜찮은 축에 속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종종 우르르 몰려와 원재 씨를 둘러싸고 손가락질을 하며 몰아세웠다. 하지 않은 잘못을 했다고 누명을 씌우기도 했다.

학창시절을 돌아보던 원재 씨는 “제가 남들과 조금 달라서 괴롭힘을 당했던 것 같아요”라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원재 씨는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로 옮겼다. 자퇴한 그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다닌 ‘성장학교 별’은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미인가 대안학교다. 늘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던 그는 이곳에 온 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됐다.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게 됐다. 움츠러들었던 그의 성격도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경계선 지능인은 이전까지 ‘지진아’, ‘저능아’로 불렸다. 이 표현들은 최근 ‘느린 학습자’로 대체되고 있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박찬선·장세희, 2018)은 경계선 지능인이 일반 사람들의 생애주기와 비교해 조금 느리게 성장할 뿐이라고 말한다. ‘느린 학습자’라는 단어는 ‘이상’하고 ‘틀리다’는 사회의 편견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한 번의 큰 시련

원재 씨는 경계선 지능인 중에서도 지능적인 면에서는 상위권에 속했다.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그는 주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열아홉 살 때 원재 씨는 중학교 검정고시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모두 통과했다. 느린 학습자인 원재 씨에게는 더없이 값진 성과였다.

스무 살이 된 그는 학교를 벗어나 일을 찾았다. 그에게 주어지는 일은 흔치 않았다. 가까스로 찾은 일자리는 지하철을 이용해 물건을 배달하는 ‘지하철 택배’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원재 씨는 초등학교 때의 감정을 다시 느꼈다. 원재 씨가 조금 다르다는 걸 안 동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은근한 따돌림은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배송, 남들보다 더 많은 물량이 원재 씨에게 몰렸다. 원재 씨는 버티지 못하고 3개월 만에 일을 그만뒀다.

경계선 지능인들도 여느 청년들처럼 스무 살이 되면 자립을 준비한다.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고,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취업 준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 과정에서 또 한 번 큰 시련을 겪는다. ‘느린학습자 시민회 추진위원회’ 오미정(50) 대표는 “많은 경계선 지능인들이 대학에 가더라도 적응 등의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아르바이트나 일용직조차 구하기 어려우며, 가까스로 직장에 들어가도 대부분 3개월을 견디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경계선 지능인들 대부분이 자립 과정에서 실패를 겪기 때문에 다시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고, 결국 자립하지 못한 이들을 가정이 돌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 경계선 지능인

경계선 지능인이 자립 과정에서 겪는 현실은 차갑다. 특히 대부분 사업장에서는 이들을 기다려주지도, 고용하지도 않는다. 경계선 지능 청년의 자립을 지원하는 대안학교 ‘청년행복학교 별’ 안은비(29) 교사는 경계선 지능인을 향한 가장 큰 차별이 자립을 준비하면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개념이 일반인에게는 매우 생소하기 때문에 회사에 이들을 설명하는 과정 자체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일자리를 찾아서 연결하는데, 이 친구들을 회사에 설명하는 게 진짜 힘들어요. 회사도 이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부분도 있고요. 스무 살이 넘으면 자립해야 하고, 자립하고 싶어 하는 나이잖아요.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괜찮으면 조금 낫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훨씬 많아요.”

한국의 경계선 지능인이 몇 명인지, 어떤 특성을 갖는지 등에 대한 정확한 실태 조사가 이뤄진 적은 아직 없다. 국내 법 체계와 복지 시스템에서 경계선 지능인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1981년 제정된 한국 장애인복지법이 미국의 기준을 따랐기 때문이다. ‘미국정신지체협회‘의 ’지적장애지침서‘에서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지적장애 판단 기준은 IQ 85 이하였다. 그런데 이 기준을 1973년 개정하면서 지적장애를 IQ 70 이하의 사람이라고 수정했고, 이에 따라 기존에 지적장애로 분류됐던 IQ 71에서 84까지의 사람들이 빠지게 됐다. 이들은 현재 경계선 지능이라고 분류되는 범주와 일치한다. 미국의 개정된 기준은 그대로 국내에 도입되었고, 장애인복지법 제정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지적장애 기준은 IQ 70 이하다. 1995년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지능지수 71~84에 속하는 이들에게 ’경계선지능‘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까지 경계선 지능인은 사회에서 인식조차 되지 않았다.

‘느린학습자 시민회 추진 위원회’ 오미정 대표는 그동안 사회가 경계선 지능인이 겪는 문제를 개인의 문제라고 여겼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습부진아를 위한 방과 후 특별반 등 대부분 정책이 경계선 지능인 개인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져 왔다고 설명한다. 그는 느린 학습, 사회성 부족 등 개인적 특성으로 경계선 지능인을 설명하고 교정하는 대신, 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효성 있는 자립 정책의 필요성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던 경계선 지능인은 국가의 정책에서도 소외돼 왔다. 그래서 그동안 일부 경계선 지능인들은 무리해서 장애 등급을 받기도 했다. 장애인 고용할당제 등 자립을 위한 혜택을 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다. 장애 등급을 판단하는 검사에서 경계선 지능인의 지능지수가 지적장애 기준 이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계선 지능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등급을 잘 주는 병원’을 수소문하거나 검사지를 풀 때 일부러 틀리는 등 ‘거짓말’을 하라고 아이에게 가르치기도 한다.

현재 국가에서 지원하는 경계선 지능청년 자립 지원 대상은 아동양육시설과 공동생활가정 거주 아동, 즉 ‘보호 대상 아동’에 국한된다. 지원 내용 또한 경계선 지능 청년이 실제로 자립할 수 있는 충분한 지원이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온라인 복지 포털 ‘복지로’에 따르면, 시설 거주 경계선 지능인에 관한 자립 지원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아동보육시설 종사자의 경계선 지능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전문 인력 양성 교육을 지원한다. 경계선 지능인을 직접 대상으로 하는 것은 사업 대상 아동을 선별하기 위한 종합심리검사와 맞춤형 사례관리서비스다. 이 맞춤형 서비스의 내용은 개별 아동의 진로탐색과 성교육, 자립여행으로만 이뤄져 있다. 경계선 지능 청년이 어딘가에서 일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책은 아니다. 이마저도 시설에 거주하지 않는 경계선 지능인은 지원받지 못한다.

다행스럽게도 몇몇 지자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지원조례’를 제정했다. 서울시는 올해 예산 3억 원을 투입해 연말까지 1년간 경계선 지능 청년 40명을 대상으로 사회적응 지원과 경제적 자립을 돕는 소양교육, 직무교육, 취업연계 등의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경계선 지능인의 자립과 관련한 지원조례를 만든 유일한 지자체다. ‘느린학습자 시민회 추진 위원회’ 오미정 대표는 그동안 부모들이 나서서 해결해오던 것이 자치단체로 이어졌고, 이제는 국가 정책차원으로 움직여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장애인도 장애인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로 여겨져야 해요. 장애도,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것도 하나의 특성일 뿐이지 그 사람 전체가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장애가 있어서, 느린 학습자라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개별 상황에 맞는 맞춤형 복지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발달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처럼 느린학습자를 장애인 범주에 넣어 지원받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느린학습자를 위한 제 3의 길이 필요한가는 경계선 지능인들 사이에서도 논의가 진행 중이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느린학습자 시민회 추진 위원회’ 오미정 대표는 어느 쪽 의견이건 경계선 지능인이 장애인과 같은 복지 대상이며, 복지를 확대하면서 이들에 관한 사회적 인식을 함께 높여가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립, 그리고 미래

오 대표는 경계선 지능인의 자립 지원을 단순히 특정 직업과 직군 발굴만으로 바라봐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충분한 기다림과 적절한 도움이 있으면 경계선 지능인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어떤 직업이든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계선 지능인 청년에게 일을 한다는 것은 개인의 생존을 책임지는 독립된 성인으로 살아가는 길이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찾아가는 사회통합의 과정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청년행복학교 별’ 안은비 교사도 경계선 지능인의 자립 지원이 지원금 등 경제적 지원으로 국한되거나 일자리를 완전히 대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들에게는 일을 통해 사회적으로 효능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최근 카페가 조금 바빠서 몇몇 경계선 지능 청년들을 알바로 구했어요. 그 친구들이 늦게까지 일하면서 힘든데도 ‘일하는 게 너무 좋아요’, ‘내일도 할 수 있나요’ 그러는데 그때 조금 뭉클했어요. 일이라는 게 진짜 이 친구들한테 필요하구나, 다시 느꼈죠. 일하는 사람, 필요한 사람으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 이 친구들에겐 그게 가장 필요해요.”

▲ 주문 받은 음료를 만들고 있는 최원재 씨의 모습. ⓒ 유재인

원재 씨를 비롯한 아자라마 가디언들은 쿠키를 포장해 리본으로 묶고, 샷을 내려 잔에 부으며, 실수하지 않고 주문을 받는, 누군가는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일을 4~5년에 걸쳐 배우고 반복했다. ‘느린학습자’라는 이름처럼, 경계선 지능인의 자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다. 답답해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최소한의 도움만 주고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독려하는 태도와 인식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정책을 만드는 입안자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계인 원재 씨의 꿈

원재 씨는 여전히 카페에서 일하는 게 즐겁다고 했다. 그는 커피와 음료라는 작은 세계가 재미있다. 이 세계에서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프랜차이즈 카페에 신메뉴가 나오면 가서 먹어 보고 연구하기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자라마에서 신메뉴를 만들기도 한다. 아자라마의 ‘죠리퐁라떼’는 원재 씨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음료다.

▲ 퇴근하는 원재 씨의 모습. ⓒ 유튜브 채널 ‘스페셜올림픽코리아’

스물일곱 살 청년 원재 씨는 늘 미래를 꿈꾼다. 그는 카페 일을 그만두게 되면 책방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쓰는 것도 원재 씨의 꿈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경계선 지능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다. 지금 세상에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그에게 물어봤다.

“느린학습자도 대한민국 국민이잖아요. 내년에는 대선이 있는데요, 국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저희에 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저희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요.”

말투는 어눌하고 눈동자는 흔들렸지만, 원재 씨가 하는 말엔 힘이 있었다. 취업과 자립은 모든 20대의 꿈이다. 장애인, 비장애인, 경계인 모두 같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모두에게, 각자에게, 걸맞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별’처럼 반짝일 경계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

‘청년행복학교 별’은 경계선 지능 청년의 자립을 지원하는 대안학교로, 2017년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인 김현수 교장에 의해 설립되었다. 현재 김 교장을 포함한 세 명의 교사가 30~40명 정도의 학생들과 함께 학교를 꾸려가고 있다. ‘청년행복학교 별’ 온라인 홈페이지를 보면 학교의 설립 목적은 경계선 지능이나 자폐 등 가벼운 정신적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20-30대 청년들이 주체적인 삶을 실현하고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돕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청년행복학교 별’의 교육은 크게 일상생활훈련과 사회기술훈련, 작업 중심의 수업 등이다. 일상생활훈련은 음식 만들기, 관공서 이용하기 등 일상적 일들을 경계선 지능인 스스로 해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다. ‘청년행복학교 별’ 안은비(29) 교사는 “경계선 지능 청년들은 누군가와 연락을 해서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것도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들부터 하나하나 알려주고 있다”며 일상생활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회기술훈련은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계선 지능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 과정이다. 의사소통 스킬을 가르치거나 협동 학습, 인성 교육 등을 통해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정서적 어려움에 대비할 수 있게 진행하고 있다.

이 학교의 교육 철학은 ‘삶과 일을 통해 행복을 배운다’이다. 그만큼 자립과 일자리 지원은 ‘청년행복학교 별’이 진행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이자 사업이다. ‘청년행복학교 별’에서 진행하는 작업 중심의 수업은 일자리 연계와 함께 이뤄진다. 김 교장은 2017년 학교의 설립과 함께 ‘아자라마 카페’, ‘청년 쿠키’, ‘별빛 책방’ 등 자체 사업장도 함께 만들었다. 학교에 다니는 경계선 청년들은 학교 자체 사업장에서 실습하고 일하는 인턴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이 과정이 끝나면 ‘가디언(정직원)’으로 채용되기도 한다.

지난해부터는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경계선 지능인 자립 지원 사업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6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40명의 경계선 지능 청년을 선발해 적성에 맞는 직무교육을 지원하고 직업 체험의 기회를 가져볼 수 있도록 했다. ‘아자라마 카페’, ‘청년 쿠키’, ‘별빛 책방’ 등 ‘청년행복학교 별’에서 운영하는 사업장 이외에도 ‘폴바셋’이나 ‘롭스’ 등의 기업들과 연계해 경계선 지능 청년들의 자립 기회를 넓혔다.

‘아자라마 카페’를 담당하는 안은비 교사는 ‘청년행복학교 별’을 “안전지대 같은 학교”라고 표현했다. 사회에서 상처받고 밖으로 나가지 않던 경계선 지능 청년들이 이 학교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안 교사는 “경계선 지능 청년들은 이미 실패 경험이 너무 많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도록, 최대한 천천히 도와주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편집 : 유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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