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봄’ ➁ 비대면 수업

잔인했던 2020년 봄학기 

2020년 3월, 만물이 깨어나던 봄날 나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 반 담임을 맡았다. 초보교사여서 의욕이 넘쳤다. 나는 선배 교사들의 조언도 듣고 블로그도 찾아보면서 학급경영 계획을 세워나갔다. 시간표, 자리배치표, 자기소개서, 새 학기 안내 자료 등을 준비하다, 중학교 때 담임선생이 학기 초에 보내온 ‘학부형에게 드리는 편지’가 떠올랐다. 교사로 근무하는 친구들은 굳이 안 써도 된다고 만류했지만, 첫 교직 생활인 만큼 뭐든 도전해보고 싶었다. 

편지 쓰는 일은 졸업논문보다 어려웠다. 괜찮은 단어와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 중학교 생활기록부를 뒤적였다. ‘가정에서 학교로’ 칸에 담임이 쓴 글이 있었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입니다’, ‘힘찬 출발을 알리는 봄입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성큼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문장들을 참고하며 평소에 쓰지 않던 어른스럽고 예쁜 말들을 가득 담아 글 편지를 쓰는 내 마음은 봄처럼 화창하고 씩씩했다.

▲ 지난해 봄,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나는 학생들에게 나눠줄 시간표, 새 학기 안내 자료, 학부형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준비했으나, 모두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 잔인한 계절이 시작됐다. Ⓒ 남윤희

그때는 몰랐다, 그 봄이 얼마나 잔인한 계절이었는지. 코로나19가 막 시작되는 시점이었지만, 개학이 늦춰질 거라곤 생각조차 못 했다. 첫 부임학교가 있던 청주에는 코로나 확진자가 없었다. 매일 코로나 관련 뉴스를 접하면서도, 등교가 미뤄질 것 같다는 ‘예상’만 할 뿐이었다. 등교가 1주 연기되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오지 못했고 교사들은 재택근무를 했다. 등교가 며칠 미뤄졌을 뿐, 다음 주에는 아이들을 만날 것이라고 믿었다. 

등교가 2주 더 연기됐다. 학교는 계속 수업 공백 상태로 있을 수가 없었다. 학생들이 ‘충북 E-학습터’에 있는 강의들을 수강하게 했다. E-학습터에는 전과목 강의가 있었지만, 학생들이 강의를 제대로 듣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저 전화로 강의를 성실히 들으라고 당부할 뿐이었다. E-학습터 강의 수강은 잠시 학업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라 생각했다.

4월, 비대면 수업이 시작되다

등교가 계속 연기됐다. 4월 중순이 되자 학교는 EBS 온라인클래스로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도, 학부모도, 교사도, 학교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 비대면 교육이 시작되고 있었다. 담임교사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반 아이들을 EBS 온라인클래스에 가입시키는 것이었다. 회원가입부터 문제였다. 인터넷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도 있었다. 인터넷에 들어가는 방법을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해서 보냈다. 회원가입을 할 때 필요한 이메일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내 이메일을 입력해주었다. 한 아이는 자기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번호를 물었다. 생년월일 6자리를 입력하라 했지만, 아이는 주민등록번호 앞자리와 생년월일 6자리가 같다는 것을 몰랐다. 반 아이 28명을 회원으로 가입시키는 일만으로도 큰 노동이었다.

산을 하나 넘었지만,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수강이었다. 아이들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을 조건도, 상황도 아니었다. 강의는 그날 수강이 원칙이고, 사정이 있는 경우 1주일 이내에만 들으면 출결이 인정되지만, 원칙대로 할 수 없었다. 철저하게 하면 출석부는 빨간 줄로 도배될 것이 뻔했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스스로 과제를 하지 못했다. 학교에 가지 않으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고, 교사가 여러 번 설명해도 몇 교시에 무슨 과목을 들어야 하는지, 과제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아이들 출석부에 ‘작대기’가 그어졌다. 중학교 1학년은 초등학교 7학년이라고 불린다. 아직 초등학생 티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에 오면 칠판에 과목마다 과제가 적혀있고, 과제를 알려주는 친구들이 있지만, 비대면 수업은 이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 출결에 ‘미인정 결과’ 처리가 된 아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 EBS 온라인클래스와 팀즈(Teams)를 사용하여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다. EBS 온라인클래스에 교사가 과목별로 수업방을 개설하고 강의를 업로드한다. 아이들은 강의 재생버튼을 눌러놓고 게임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끝까지 재생만 시켜놓으면 학습완료가 뜨기 때문에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출석을 독촉할 때 “강의를 켜놓기라도 해”라고 하는 때가 많았다. 내실 있는 수업보다 수강기록에 ‘학습완료’가 뜨는 것이 중요했다. 실시간 수업을 했지만 웹캠이 없어 얼굴을 볼 수 없는 학생이 많았다. 마이크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학생은 교사에게 질문을 할 수도 없었다. Ⓒ 남윤희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수업이 어려웠다.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한 학생은 형제가 셋인데 컴퓨터는 1대뿐이다. 학교에서는 온라인 수업 초반에 저소득층 학생들 신청을 받아 기기를 대여했지만, 아이는 집에 컴퓨터가 있다고 신청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다른 형제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느라 정해진 시간에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또 다른 학생은 구글 설문지로 제출하는 과제를 아예 하지 못했다. 항상 성실하게 온라인 수업에 참여해왔던 학생이었다. 휴대폰이 없어서 문자인증을 못 받아 구글 회원 가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대신 인증을 해주면 되지만, 아버지 전화도 스마트폰이 아니었고 고령이라 회원가입에 제한이 걸렸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으로 과제를 제출하거나 질문을 받는 것도 휴대폰이 없거나 스마트폰이 아닌 아이들은 불가능했다. 컴퓨터만 있으면 회원가입 없이 과제를 제출할 수 있는 ‘네이버폼’을 이용해 아이가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게 했다. 교사들은 출결과 과제제출에서 갖가지 방법을 찾아가며 비대면 수업에 적응해 나갔다. 

‘콜센터 직원’이 된 교사들

담임교사들은 매일 아침 반 아이들을 전화로 깨워야 했다. 빠진 것을 수강하게 하는 일도 고통이었다. 교과교사는 학생 이름을 일일이 클릭해 미수강 여부를 확인하고, 미수강 학생에게 문자메시지나 전화로 독려했다. 지난 학기에 미수강한 강의까지 찾아내 수강을 독촉해야 했다. EBS 온라인클래스의 잦은 오류로 강의 수강이나 과제 수행에 지장이 생기면 학생이나 학부모의 전화가 빗발쳤다. 교사들은 화장실에 가면서도, 점심을 먹으면서도 전화를 했다. 심지어 퇴근 후에도 전화를 받았다.

한 동료 교사는 “내가 스토커가 된 것 같다”고 푸념했다. 살면서 전화를 이렇게 많이 해본 적은 없었다고 했다. 서울 한 고등학교 교사는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학생 300명의 출결을 확인하고 출석 관련 민원을 처리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밀린 업무와 수업 준비는 퇴근 후 집에 가서 했다. 그 기사에 따르면 교사 10명 중 7명(68.7%)은 “예년보다 초과근무 빈도가 늘었다”고 했다. 전북의 한 고등학교 교사(27)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학교에는 영상 녹화시설이 미비해 근무시간 중 수업 준비가 어렵다“며 ”퇴근 후 영상 콘텐츠와 수업 대본을 만들고 주말에는 녹화와 편집을 하니 출근과 퇴근, 평일과 주말 구분이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 비대면수업이 시작되면서 교사는 아침에 반 아이들을 깨우고, 수강자를 일일이 클릭하여 미수강 학생이 있으면 전화나 문자를 하고, 담임교사에게 수강 독려를 해야 한다. 내 휴대폰에 분 단위로 통화기록이 찍혀있다. Ⓒ 남윤희

6월, 학년이 번갈아 등교하는 순환 등교가 시작되면서 교사의 업무는 가중되었다. 두 학년 수업을 하는 교사는 특히 심했다. 3학년 담임에 1학년 수업까지 맡은 과학교사는 3학년은 대면 수업, 1학년은 비대면 수업을 했다. 그는 담임반 학생들의 등교 지도, 조회, 3학년 과학 수업, 급식 지도를 하면서, 1학년 학생들의 온라인 강의 수강과 과제 이행 여부를 일일이 확인해서 전화를 돌려야 했다. 너무 바빠서 1학년 강의 영상을 제때 업로드하지 못하는 때는 학생들과 학부모의 항의 전화를 수없이 받았다. 

비대면수업이 계속되면서 학습의 질 문제가 떠올랐다. ‘교사가 수업을 EBS 강의나 유튜브로 때운다’, ‘비대면 수업으로 인한 학습격차 해소를 위해 쌍방향 수업을 해야 한다’는 기사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도교육청은 언론 보도에 민감했다. 학교에 공문을 보내 교사들의 ‘실시간 수업’ 여부를 보고하라 요구했다. 학교는 전 교사에게 설문조사를 했고, 교사들에게 가급적 실시간 수업을 하라고 했다. 

학교는 10월쯤부터 EBS 온라인클래스와 실시간 수업을 병행했다. 실시간 수업은 수업시간 내 접속하지 않으면 바로 ‘미인정결과’로 처리된다. EBS 온라인클래스와 실시간 수업을 병행하면서 출결과 전화 부담이 가중되었다. 다른 반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데, 쉬는 시간마다 담임반 아이들에게 ”3분 뒤에 수업 들어가“라고 전화를 걸어야 했다. 3분 뒤에 들어가지 않으면 다시 전화했다. 온라인 수업 기간 교사의 주 업무는 수업이 아닌 ‘전화’였다. 나는 교사가 아니라 ‘콜센터 직원’이었다. 콜센터 직원이 되어 하루 종일 전화를 돌렸지만 출석부에는 여전히 ‘작대기’가 그어졌다. 

코로나가 가르쳐 준 학교의 역할

초임교사이던 나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가’를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이미 학원에서 다 배웠기 때문에 교사가 필요 없다. 그렇다고 교사가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맞춰 수업을 진행할 수도 없었다.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나는 왜 아이들에게 학교가 필요한지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학교 안 가는 날은 ‘자유롭게 게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대부분 부모가 직장생활을 하니까 종일 게임을 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컴퓨터게임을 하고 늦게 일어났다. 심하면 하루에 16시간씩 게임을 하고 낮 2시가 돼서야 일어난 아이도 있었다. 학교에 가는 날은 달랐다. 일찍 일어나야 하니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든다. 학교는 아이가 일찍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수업을 듣고, 정해진 시간에 밥 먹고, 늦지 않게 자는, 즉 기본적인 생활습관을 들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등교 주간에는 반에서 지각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 지난해 9월 담임반 학생을 깨우느라 보낸 문자메시지. 아이는 학교에 오지 않아도 되니, 매일 새벽까지 게임을 해서 늘 오후 12~1시가 돼서야 일어났다. Ⓒ 남윤희

학교의 역할은 또 있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밥’을 주는 곳이다. 내가 학교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볼 때였다. 한창 클 나이인 중학생들은 정말 잘 먹는다. 영양사들이 돌아다니면서 “고기 더 먹을 사람”이라고 물으면 “저요, 저요” 하면서 손을 든다. 고기 반찬이 동나서 더 줄 수가 없다고 하면 아우성을 친다. 아이들이 너무 잘 먹으니 내가 배식받은 빵이나 요구르트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담임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먹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느낄 정도였다.

담임반 학생 중에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가정의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밤에 일하고 아침에 퇴근했다. 퇴근하면 바로 잠을 자느라 아이 밥을 챙겨줄 수 없었다. 아이는 저소득층 학생에게 발급되는 급식카드인 ‘꿈자람카드’로 편의점 간편식 등을 먹었다. 코로나의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제적 수준이 ‘하’인 경우 평일 등교수업 하지 않는 날은 ‘거의 먹지 않는다’로 응답한 학생이 20.7%였고, ‘전혀 먹지 않는다’고 답한 학생도 3.8%나 됐다. 편의점 음식 또는 패스트푸드를 먹거나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응답도 각각 35.9%, 34.8%에 이르렀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아침은 간단히 하고 점심은 학교에서 급식으로 해결되니 저녁만 신경 써서 차려주면 됐다. 비대면 수업으로 매일 하루 세끼를 챙겨줘야 하는 부모들의 부담과 수고가 늘었다. 

지난해 충청북도에서는 유∙초∙중∙고∙특수학교 학생 가정에 1인당 5만원(유치원은 3만원) 어치 ‘친환경농산물 꾸러미’를 공급했다. 코로나19로 3~4월 학교급식이 중단돼 발생한 무상급식비 미집행액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건강 먹거리를 제공하고, 전체 친환경농산물 시장의 39%를 소비하는 학교급식용 친환경농산물 생산 농가를 지원하려고 이 사업을 했다. 학부형들 관심은 뜨거웠다. “인근학교는 이미 안내가 나갔는데 우리학교는 언제쯤 공지를 해주시나요”라는 문의가 많았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급식배달’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학생에게 적용하는 게 어렵다면 우선 저소득층 학생부터 시작해보는 방법도 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코로나19 같은 국가 재난상황에서 원격수업이 진행될 때 학교급식 소외계층에게 배달을 통한 급식을 제공하는 내용의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현재 18세 미만 저소득층 학생들은 ‘꿈자람카드’로 지정된 가맹점에서 밥을 사먹을 수 있다. 1일 한도는 5000원으로 굉장히 적다. 군것질 정도 할 수 있는 액수다. 게다가 가맹점도 많지 않아서 급식카드를 쓸 수 있는 가게가 드물다. 급식카드 1일 한도를 상향하고 지정 가맹점을 늘려 저소득층 학생들이 질 좋은 식사를 할 수 있게 해 학생의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 경기도교육연구원 설문조사는 가정의 경제 수준이 낮을수록 등교수업을 하지 않는 날 점심을 먹지 않는 비율이 높다는 걸 보여준다. 코로나 시대 학교는 ‘돌봄’ 기능도 해야 한다는 의미다. Ⓒ 남윤희 조한주

비대면 수업 기간에 내가 깨달은 또 다른 학교의 역할은 돌봄이다. 돌봄은 온라인 수업으로는 대체할 수 없다. 학교는 아이들이 생활습관을 배우는 곳이고, 매일 밥 한 끼를 해결하는 공간이자 부모 대신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교사가 있는 공간이다. 하루 8시간, 아이들을 오롯이 지키고, 지켜보는 교사의 시선이 있는 학교는 얼마나 중요한 곳인가? 

코로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학교가 돌봄의 구실을 수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이들과 하는 전화상담이 중요하지만 길게 할 수는 없었다. 강의 들으라는 말만 하고 끊어야 하는 때가 많았다. 최우선 목표는 출석 100% 달성이었기에 전화 내용은 ‘출석 독촉’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일일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에는 시간 여유가 없었다. 아이가 잠은 잘 잤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밥은 어떻게 먹고 있는지, 온라인 수업을 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등을 제대로 물어보지 못했다. 묻더라도 형식적인 것이었다. 교육의 본질은 ‘소통’이다. 단순히 컴퓨터에 기록되는 출석보다 상담을 통해 어려움을 파악하여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엄마에게만 맡겨진 ‘돌봄’ 책임

비대면 수업은 엄마의 역할과 책임을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 아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부모에게 전화해야 하는데, 교사들은 하나같이 어머니에게만 전화했다. 코로나 이전에도 그랬지만 동료 교사들이 아버지에게 전화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아버지에게 전화하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아이와 어머니가 둘 다 전화를 안 받거나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살고 있거나. 

한 동료 교사는 매일 담임반 학생의 어머니와 싸웠다, 제발 아이가 제때 일어나서 수업 듣게 좀 해달라고. 잔소리라 여긴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교사는 씩씩거리며 ‘무책임한 엄마’라고 푸념했다. 그 교사는 초등학생 두 아이를 둔 학부모였다. 그는 담임반 학생들을 챙기며 학부모와 싸우는 와중에, 두 자녀의 온라인 수업까지 신경 써야 했다. 자기 입으로 아이들 어머니에게 말한 ‘무책임한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사회에서 돌봄의 책임은 늘 어머니에게 지워졌다. 보건복지부 육아정책연구소는 지난해 9~11개월 영유아를 둔 2,533가구(영유아 3,775명)와 어린이집 3,4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년도 보육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자녀 양육 분담 비율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7.21대 2.79, 가사 분담 비율은 7.45대 2.55로 어머니에게 편중됐다. 코로나19 이후 여성 몫이 더 커졌다. 프리랜서나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여성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학교와 보육 시설이 폐쇄되면서 자녀를 돌보기 위해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직장을 그만두는 어머니들이 늘어났다.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무급휴가를 사용한 비율은 42.9%인데, 그중 남성은 8.1%에 그쳤다. 작년 4월 경기연구원의 ‘코로나19로 인한 국민 정신건강 설문조사’는 국민의 48%가 코로나19에 따른 우울증을 호소했는데, 전업주부(59.9%)가 1위를 차지했다. 

▲ 올 3월 지난해 담임반 학부형에게서 온 문자메시지. 2학년 담임번호를 몰라 작년 담임에게 보낸 메시지는, 코로나 시대 애타는 어머니의 절박한 심정이 담겨 있다. Ⓒ 남윤희

어느 날 내 자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옆 반 학생의 어머니였다.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하소연을 했다.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종일 애 옆에 붙어있어야 해요. 아이를 가르쳐 주고 싶은데 저도 컴퓨터가 너무 어려워요.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코로나가 걸려도 좋으니 아이가 학교 좀 갔으면 좋겠어요.” 

어머니가 돌봐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스스로 제시간에 일어나는 것도, 수업 듣는 것도, 과제 하는 것도 어려웠다. 코로나 시대 학생은 열네 살 먹은 중학생 아이가 아니라 40대 중후반의 ‘엄마’ 였다. 엄마는 하루 내내 집에 갇혀 아이와 싸우면서 담임교사에게 욕까지 먹는 존재가 되었다. 

학교는 열려 있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 두 번째 봄을 맞았다. 나는 학교를 떠나 대학원에 입학했다. 잔인한 계절, 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예쁘게 활짝 핀 벚꽃을 보면서, 지난해 봄에 담임반 아이들과 벚꽃 아래서 단체 사진 하나 찍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처음 부임해 아이들과 함께할 생각에 가슴 설렜지만, 그러지 못한 봄이었다. 아이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대화다운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온라인 수업 빠진다고 화내고, 마스크 쓰지 않은 아이들에게 소리 질렀던 기억이 슬프고, 한심했다.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 위로해봐도 자책감이 남는다.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학교에 왜 오니”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친구들 만나려고요”라고 답했다. 누구도 공부하러 학교에 온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학교에 오면 에너지가 넘친다. 사소한 이야기에도 교실이 웃음바다가 된다. 수업시간이 되면 서로 대답하겠다고 손을 들고 호기심이 많아 질문은 끝도 없다. 쉬는 시간이 되면 복도에서 신나게 뛰어다니거나 친구들과 장난을 친다. 교사도 아이들을 만나야 에너지를 되찾는다. 아이들이 등교했을 때 교사들은 자신이 더 이상 ‘콜센터 직원’이 아니라 ‘진짜 교사’가 되어서 행복했다. 

▲ 학교에서 친구와 함께 대화하고 노는 것이 행복한 아이들. 학교는 친구를 만나고 삶의 지혜를 배우는 공간이다. Ⓒ 남윤희

어떤 경우에도 학교는 열려있고, 아이들은 학교에 있어야 한다.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다. 친구를 만나고 사회 질서와 삶의 지혜를 배우는 공간이다. 아이는 학교에서 교사와 함께 눈을 맞추고, 대화하고, 웃을 수 있다. 2021년 봄, 작년 담임반 아이의 엄마가 부재중 전화를 다섯 통이나 했다. 대학원에 와서 까맣게 잊고 있다가, 그 전화에 ‘나의 제자들도 새 학기를 맞았구나’ 하고 깨달았다. 

자연이 살아나고, 생명이 약동하는 이 봄, 학교는 새 학기를 맞아 다시 분주할 것이다. 시행착오를 경험으로 학교도 코로나 대응력을 높여가고 있고 대면수업도 늘렸다고 한다. 시·도교육청에 따라서는 학생들에게 개인 컴퓨터를 지급한 곳도 많다. 그러나 ‘교사’의 과다한 업무는 크게 줄지 않고 여전히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도 많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 아이들이 행복하고 학교가 학교다우려면 교사와 ‘엄마’에게 지워진 짐을 덜어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봄’이다. 코로나 팬데믹 1년, 재난은 계속되지만 자연의 순환은 어김없다. 생명은 언 땅을 뚫고 대지를 초록으로 물들이고 꽃을 피운다. 생명이 역동하는 이 봄을,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잔인한 4월이라 노래했다. 그렇다, 제주 4·3이, 세월호가, 4·19 혁명이 말한다. 생명과 죽음, 혁명이 함께 하는 이 봄을 기억하라고. (편집자)

편집 :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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