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위기와 혁신] ㉓ 능력주의를 넘어, 경쟁에서 연대로

“한국 교육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은 ‘능력주의’입니다. 학교에서부터 자기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다는 원리를 가르치고, 시험을 통해 서열 높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능력으로 여기며, 그에 맞춰 지위와 재화를 얻는 게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보는 거죠. 그러나 여기서 능력이란 각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소질과 소양, 또는 천재성이라기보다는 한국 시험 체제에 잘 적응하는 것을 말하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거의 비례합니다. 그래서 능력주의는 사회를 정의롭고 공정하게 만들기보다 불의를 정당화, 영속화하는 논리로 쓰이고 있습니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일어문학전공)는 지난달 8일 줌(Zoom) 화상회의를 통한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한국 교육의 운영 원리라 할 수 있는 능력주의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을 경쟁교육에서 연대교육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만이라도 인간성과 사회정의를 향해야 

▲ 대표적인 사교육 밀집 지역으로 유명한 서울 노원구 중계동 학원가의 모습. 건물마다 빽빽이 들어선 학원들이 입시를 둘러싼 경쟁 교육의 세태를 드러내고 있다. Ⓒ 이나경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김태훈 정책부위원장은 지난 2월 24일 이메일인터뷰에서 “능력대로 보상받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뒤처진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극단적인 능력주의는 배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하고, 뒤처진 사람도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교육영역에서 그러한 변화가 먼저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회가 경쟁적이니 교육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사회를 바꿔나가되 그 과정 속에서 교육만이라도 경쟁이 아닌 인간성과 사회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능력주의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자원·지위·권력 등을 배분하는 것으로, 타고난 신분에 따라 자원이 주어지는 귀족정 등 세습주의와 비교해 공정한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능력주의 원리가 승리자에게 과도한 보상을 주고 패배자에게 불합리한 차별을 안김으로써 새로운 불공정과 불평등의 빌미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능력주의를 명분으로 경쟁을 강요하면서 지방대 차별과 소외를 정당화하는 한국 교육 풍토 역시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정치철학) 교수는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2020)>을 통해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자들은 자기가 누리는 특권이 자기 능력으로 노력해서 이뤄낸 것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오만해지는 한편, 대다수 패자들은 가난과 차별이 자신이 노력하지 않고 게을러서 생긴 결과라고 생각하며 굴욕감에 빠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회구조적인 불평등이 정당하게 여겨지면서, 이에 대한 저항이 사라지고 불평등은 더 심해진다고 그는 설명했다. 

<실력의 배신(2018)>의 저자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교육학)도 지난 2월 23일 전화인터뷰에서 “우리 사회가 실력주의(능력주의)와 그로 인한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원리를 추구하다 보니 학력과 학벌을 금전‧명예‧권력 등 사회적 재화를 배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따라 모든 사람이 학력‧학벌을 추구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학교 교육 자체가 자원 분배의 수단으로 왜곡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또 “최근 한국 사회는 능력을 갖춰 소위 명문대를 나오면 성공이 보장되는 단계를 넘어서, 상층부가 어느 정도 고정돼 있어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며 “실력주의에 따라 부모가 형성한 재산과 지위를 자녀에게 그대로 세습하는 게 정당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샌델 교수가 능력주의의 결과로 만들어진 ‘학력 계급사회’는 사실상 ‘세습 귀족정’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의 폐해를 잘 설명하고 있다. Ⓒ 와이즈베리

‘황국신민’ ‘산업전사’ 거쳐 ‘인적자원’ 키운 정책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팽배하고 경쟁교육이 극심해진 이유는 뭘까? 김누리 교수는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일제강점기 사회진화론과 해방 후 미국식 자유시장경제 이데올로기, 그리고 군사독재 정권의 권위주의가 결합하면서 적자생존‧약육강식을 강조하는 경쟁지상주의가 자리잡은 것이다. 둘째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불평등이 심할수록 각축이 치열해진다’는 원리에 따라 경쟁이 격화한 것이다. 셋째는 근대화 과정에서 양반과 같은 기성 지배집단이 완전히 와해되면서 역설적으로 새로운 신분으로서 학벌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김 교수는 특히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과연 진정한 교육정책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에 회의적”이라며 “우리 교육이 엉망진창이 된 데는 정부의 무관심과 무능력, 무비전, 무철학이 큰 영향을 끼졌다”고 지적했다. 

“이 나라에는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교육정책이 없어요. 교육정책이 있으려면 어떤 인간을 기를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그게 없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굴종하는 노예, 즉 황국신민을 길러내는 게 교육 목표였고 해방 이후 독재정권 시절에는 반공투사, 산업전사를 길러내는 게 목표였어요. 그 이후 민주화가 됐지만, 이때도 인간을 자원으로 보는 ‘인적자원’을 길러내는 교육을 했어요. 지난 100년 동안 우리 교육을 돌아보면 단 한 번도 존엄한 인간, 성숙한 시민을 기르는 교육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교육정책에는 제대로 된 대학 및 학문 정책도 없이 오로지 입시 정책만 있는 상황이죠.”  

최근까지 한국 교육정책의 방향은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개혁’에 기초했다. 지난 1995년 수립된 5.31 교육개혁은 초·중·고교와 대학까지 포괄하는 거시 교육정책으로, 자율성과 다양성, 세계화를 목표로 22개 분야 120여 개 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세계 속 경쟁력을 지향하는 ‘신자유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삼아 교육 경쟁을 강화하고 공공성을 약화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주요 정책인 대학설립준칙주의(최소 요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을 인가해 주는 제도), 국립대 법인화, 특수목적고 및 자립형사립고 설립, 사학의 자율성 확대 등은 대학의 난립과 교육 서열화를 촉진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실제로 대학설립준칙주의 도입 이후 일반대학 수는 1996년 134개교에서 2014년 189개교로 55곳이나 늘었다. 

시민단체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이찬승 대표는 지난달 17일 이메일인터뷰에서 “5.31 교육개혁은 그 당시 국내외 분위기를 반영해 공급자 중심의 교육에서 소비자 중심의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면서 자율성과 책무성을 강조하고 학교 다양화, 수준별 교육과정 도입 등 시장주의를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는 공공성 차원에서 교육을 긴 안목으로 보지 못한 면이 컸으며, 그 결과 학교를 통해 계급이 재생산되고 계층 간 격차를 더 벌리는 결과를 낳게 됐다”고 평가했다. 

▲ 1995년 문민정부 5.31 교육개혁에서 대학설립준칙주의가 시행된 이후 약 20년간 전국 일반대학 수가 55곳이나 늘었다. Ⓒ 교육통계서비스

공동체 의식 없는 ‘자기중심적 인간’ 양산 

이런 교육 풍토에서는 이기적 인간이 양산되기 쉽다. 이찬승 대표는 “신자유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성공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허용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여기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 따뜻한 공동체적 삶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민주시민을 키워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을 길러내게 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남기 교수 역시 “사회적 리더를 키울 때 기본 소양이라 할 수 있는 헌신, 희생, 봉사의 가치보다는 철저하게 성적만 보고 뽑았기 때문에, 이들이 사회적 인재로 성장하기보다 개인의 욕구를 충족하는 인재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최고 엘리트라 할 수 있는 판‧검사, 의사 등 전문직과 정치인들이 공동체 의식 없이 전문지식만 채워 넣은 바람에 집단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대중의 신뢰를 잃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어 “엘리트들을 머리만 큰 괴물로 만들고 이들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게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한 게 그동안 우리가 놓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가 ‘사회자본에 대한 교육의 역할과 정책방향(2017)’ 보고서에서 한국‧중국‧일본‧미국 대학생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우리 교육환경에서 길러진 이기적 인재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설문조사에는 ‘귀하께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회사에 취직했는데 인사고과 권한을 가진 상사가 입사 동료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동료를 돕기 위해 행동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 있다. 억울한 타인을 돕고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 나설 의지가 있는지 묻는 것이다. 여기서 ‘불이익을 감수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한국 대학생 중 34%로, 미국(74%), 일본(44%), 중국(40%)의 비율보다 낮았다. 

‘기술 발전으로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기계 대신 사람이 일을 하면 생산비용이 좀 더 많이 든다고 가정한 경우, 귀하는 철도를 이용할 때 역무원 등 다른 사람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대 몇 %까지 높은 요금을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까’라고 연대의식을 묻는 질문도 있었다. 여기서도 고용유지를 위해 부담할 용의가 있는 철도요금 할증률을 한국 대학생은 평균 16%라고 응답해, 미국(34%), 중국‧일본(21%) 보다 낮았다. 김 교수는 보고서에서 “한국 대학생은 과도한 경쟁 속에서 교육현장에 신뢰와 협력이 결핍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 교육을 통한 사회자본 함양을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확인시켜 주었다”고 평가했다.

▲ 김희삼 교수 연구에서 ‘타인의 고용유지를 위해 부담할 용의가 있는 철도요금의 할증률’을 묻는 질문에 한국 대학생은 16%라고 응답해 4개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 김희삼

성숙하고 존엄한 인간 키우는 민주주의 교육으로 

교육 전문가들은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에서 인간의 개성과 협력, 연대를 강조하는 교육으로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누리 교수는 “지금처럼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로 키우는 교육은 그만해야 한다”며 “이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학생 하나하나의 존엄성을 중시하고 성숙한 민주주의자로 길러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경쟁교육을 시키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교육, 공감하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경쟁교육에서 연대교육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연대라는 걸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엘리트층만 봐도 특권의식과 집단이기주의로 가득 차 있어요. 잘못된 교육이 잘못된 사람들을 길러내고, 이들이 한국 사회 특권을 독점하면서 사회 전체가 정글이 된 거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특히 국가주의적 교육관을 바탕으로 ‘인적자원’을 뜻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게 아니라, 성숙하고 존엄한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 <단비뉴스> 화상인터뷰에서 ‘경쟁’ 대신 ‘연대’로 교육의 지향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누리 중앙대 교수. Ⓒ 이나경

김태훈 정책부위원장 역시 “한국이 세계 최저 인구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다수 아이들을 도태시키며 소수의 엘리트 집단만 키우는 교육이 아니라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아를 실현하고 장점과 특징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개별화된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더 이상 빠른 시간 안에 선다형 답지 속에서 정해진 답과 출제자의 의도를 찾는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며 “충분한 시간을 갖더라도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을 찾고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하며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야 하고, 그에 걸맞은 시험 및 입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남기 교수는 “특히 남들보다 실력이 뛰어나고 많이 노력했다고 믿는 엘리트들에게 공감력과 겸손,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헌신을 강조하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잘 할 수 있다는 노력만능론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재화를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엘리트 계층이 부와 명예, 권력을 가진 것은 노력 외에도 상당 부분 운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성공하는 데 필요한 똑똑한 머리, 좋은 부모와 환경, 집념과 인내심, 체력 등은 타고나는 것이지 자기가 노력한 게 아니잖아요. 이런 사실을 어린 나이 때부터 학생들에게 교육해서, 성공이 온전히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재화라는 것을 알고 당연하게 사회와 나누도록 해야 합니다.”

수학교실에서도 ‘사회정의’를 배울 수 있다 

심승환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사회정의교육’이란 개념을 강조했다. 그의 논문 ‘사회정의교육의 개념과 방향(2020)’에 따르면 이는 사회정의를 이루는 과정이자 기반으로서 ‘경제적 차원에서 분배’ ‘문화적 차원에서 인정’ ‘정치적 차원에서 대표의 정의’를 조화롭게 추구하며, 사회의 불의와 불평등에 관한 비판의식과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사고를 가르치는 것이다. 

심 교수는 지난달 18일 이메일인터뷰에서 “사회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의식의 성숙이 필수적이므로 이를 교육을 통해 이뤄가자는 것”이라며 “현장에서 학생들이 경제‧문화‧정치 분야에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식을 함양하고 이를 실천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교육활동을 개발·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험용 정보들을 효과적으로 암기하는 교육을 지양하고, 교사와 학생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의사소통과 공동 탐구를 통해 사회적 문제와 삶의 문제, 교과 문제의 원인과 실상, 대안을 비판적으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또 “지방대 차별과 소외 문제 역시 근본적으로 학벌에 따른 경제적 보상의 불평등, 명문대를 명품처럼 여기는 문화적 계층화, 학벌‧학연의 정치 세력화 등 한국 사회 정의의 문제와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단순히 교육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사회정의교육을 통해 공동체성과 협력, 소외 주체에 대한 배려 등을 강조해나가면 큰 틀에서 학벌문제를 극복하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만구 서울교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논문 ‘사회정의를 위한 수학교육 프로그램 개발(2018)’에서 현장 적용사례를 제시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정의롭게 리더를 선정하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수학교육을 수행한 사례다. 학교 회장을 뽑는 공정한 방법을 토의하고, 설문조사를 수행해 표와 그래프로 정리하는 방법 등으로 통계, 수와 연산과 같은 내용을 공부한 것이다. 그 결과 학생들은 수학에 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됐고, 수학이 단지 수를 사용하고 계산만 하는 교과가 아니라 사회정의와 세상을 이해하게 하는 공부라는 보다 넓은 관점을 갖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 박만구 교수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수학을 통해 사회정의를 가르친 수업의 구성안. Ⓒ 박만구

시민의 권리와 책임을 제대로 가르치는 학교 

장은주 영산대 성심교양대학 교수는 ‘민주시민교육’의 확대를 역설했다. 그의 논문 ‘한국의 민주시민교육, 사회적 합의의 방향과 제도화의 과제(2019)’에 따르면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 사회의 주권자인 시민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역량, 곧 지식·기술·태도 및 가치의 함양에 대한 교육’으로 정의할 수 있다.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헌법과 기본권, 정당과 선거, 과세와 재정, 미디어의 작동방식과 기능 등을 배우고, 정치적 의견을 명료하게 내세울 수 있는 능력, 이견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고 타협·조율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운다. 또 인권, 존엄성, 상호존중, 정의감, 공정성 및 공동선, 민주적 애국심 등을 배운다. 이런 교육에서 앞서가는 프랑스의 중학생들은 시민교육 교과를 통해 왜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하는지, 시민사회 단체와 어떻게 연대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용자와 단체 교섭하는지 등을 배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교수는 지난달 12일 전화인터뷰에서 “민주시민교육은 민주공화국 시민이 권리를 행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민주주의 사회가 제공하는 삶의 가능성을 충분히 누리는 데 필요한 자질과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건전하고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민주시민교육을 필수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민주시민교육을 제도화해 시민의 민주적인 자질과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중등교육에서는 민주시민교과를 만들어서 필수화해야 합니다. 지금 도덕교과와 사회교과가 있기는 하지만, 정체성이 불분명해 민주시민을 기르기 위한 교과라고 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과목을 합쳐 민주시민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재편하자는 합의가 모아지고 있죠. 또 대학교육에서도 민주시민교육 관점에서 교양교육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대학 학부 교육의 핵심 과제는 역량 있는 민주시민을 기르는 데 초점을 둬야 하고, 그러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인문적 교양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런 교육을 통해서 시민 권리를 다 행사하고 사회적 책임도 모두 질 줄 아는 인간을 길러내야 합니다.” 

▲ 세종시 민주시민교육 홍보 포스터. 현재 전국 53개 지방자치단체 및 교육자치단체에서 민주시민교육 조례가 제정돼 있다. Ⓒ 세종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해 현재 21대 국회에 ‘민주시민교육지원법안’(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발의돼 있다. 이 법안은 민주시민교육을 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과 재정 지원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행정안전부장관 소속 민주시민교육위원회 구성, 민주시민교육 관련 업무를 지원 하는 민주시민교육원 설립 등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 학벌문제와 지방대 차별을 해소하려면 단순히 교육 차원의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의 자원 분배구조, 노동에 대한 가치 평가 체계 등 사회 전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시민교육이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우리 사회가 변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구성원들을 수준 높은 시민으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하는 데 중요하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미국의 하버드 등 선진국 명문대학은 대부분 수도가 아닌 지방의 작은 도시에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교육의 품질과 상관없이 ‘지잡대’ 등으로 싸잡아 부르며 멸시하고 차별하는 풍토가 심하다. 지방대생들이 편입 등을 통해 서울로 ‘탈출’하는 행렬도 끊이지 않는다. 저출산 추세로 학생 수가 점점 줄면서 지방대 중 상당수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와 <단비뉴스>는 심층기획 ‘지방대 위기와 혁신’을 통해 서울 중심의 불균형 발전과 왜곡된 학력 경쟁 등이 낳은 지방대 소외의 실상을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편집 : 최은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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