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봄’ ➀ 세월호

생명의 계절, 봄

봄을 깨우는 건 봄비다. 봄비는 언 땅을 녹인다. 대지는 겨울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땅이 살아나면, 뭇 생명이 기지개를 켠다. 봄비는 생명의 뿌리에 생기를 불어넣어 대지를 뚫게 하고, 말라붙은 풀잎과 나뭇가지에 스며들어 회색 몸통을 싱싱한 연두색으로 물들인다. 봄비가 스며든 꽃과 나무는 저마다 꽃을 품은 귀여운 봉오리들을 세상에 내보낸다. 노란색 꽃이 핀 애기똥풀로 소꿉놀이를 하고, 철쭉 꽃잎 꿀을 빨아먹던 어린 시절이 기억난다. 앙상하던 벚나무에 작은 봉오리들이 올라오면 가슴이 설렜다. 손꼽아 기다리던 벚꽃이 팝콘처럼 흐드러지게 피면, 마음도 연분홍으로 물들었다. 봄은 새순이 돋고, 꽃이 피어 온 세상이 노랑과 초록, 분홍으로 가득한 생명의 계절이었다. 

긴 겨울방학이 지나고 개학하면 며칠 뒤에 봄비가 내렸다. 우산을 써도, 교실에 도착하면 교복 치마가 축축했다. 눅눅함은 싫었지만, 봄비는 반가웠다. 겨울방학 때 만나지 못하던 친구들을 만난다는 두근거림이, 두꺼운 외투를 벗고 가디건을 걸친 몸으로 느끼던 봄바람의 살랑거림이, 꽃과 나무를 물들인 연한 초록의 싱싱함이 좋았다. 따뜻해진 기온으로 피어오르던 아지랑이로, 바람을 타고 오는 꽃향기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 설레던 계절, 봄. 새 학기, 새 필기구, 새 반과 새 담임선생님, 모든 걸 새로 시작하는 봄에 내 몸의 세포들도 하나하나 반응했다.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계절, 나는 봄을 사랑했다.

그날, 4월 16일

그해 봄은 봄이 아니었다. 고3, 생명을 만날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점심시간에도 밖으로 나가 산책하며 꽃을 볼 여유가 없었다. 책상 스탠드에만 불이 켜진, 어두운 열람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공부하며 노래를 들으면 시험 볼 때 가사가 머리에 맴돌아 시험을 망칠 수 있다는 말에 좋아하던 봄 노래도 듣지 않았다. ‘벚꽃엔딩’이나 ‘봄봄봄’ 노래 가사가 내 마음에 몽실몽실 생기를 불어넣으면, 몸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할 것 같았다. ‘바람 불면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라는 벚꽃엔딩 속 노래 가사처럼, 마주하지 않으려 한 봄의 작은 부분들이 보일 때마다, 내 가슴도 울렁거렸다. 

4월 16일, 그날. 여느 때처럼 다가오는 중간고사와 수능 때문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교시는 한국지리였다. 지리 선생님은 들어오자마자 교실 TV를 틀고 뉴스를 보여주었다. 뉴스 화면 왼쪽 위에 ‘여객선 침몰’이라는 글자와 잿빛 바다 위 기울어진 배가 보였다.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대형 여객선이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배 안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2학년 학생 338명도 있었다. 펜을 잡고 있던 손이 떨렸다. 손톱을 뜯은 채 초조한 마음으로 뉴스를 지켜봤다. 평소보다 차분하던 앵커의 말투와 화면을 반 이상 채운 속보 박스도 기억난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떴다.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배에 타고 있던 단원고 학생이 목포 해양경찰서로 신고하며 알려졌다. 오전 11시 1분, MBN이 ‘학생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내면서 타 방송사들도 따라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 보도는 세월호 참사 당시 최악의 오보로 꼽힌다. Ⓒ MBC, KBS, MBN

점심을 먹고 열람실에 가려는데 친구들이 TV를 틀었다. 화면 속 배는 두 시간 전보다 더 가라앉았다. ‘오보’ ‘진도’ ‘팽목항’ ‘침몰’ 등의 단어가 귓전을 때렸다. 161명, 190명... 구조된 사람도, 배 안에 탄 사람들이 몇 명인지도 뉴스마다 숫자가 달랐다. 거대한 배가 옆으로 쓰러져 가라앉고 있는데 구조 보트나 인력은 턱없이 적어 보였다. 열람실에 갔지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수학 문제를 한 문제도 풀지 못하고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그때 본 장면 하나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기울어져 침몰하던 배 윗부분에 창문이 있었다. 배 안에서 사람들이 그 창을 두들기고 있었다. 구조 보트에 신호를 보내던 아이들의 간절함, 죽음 직전의 두려움을 그저 바라만 봐야 했다. 

▲ 세월호 실종자 수색을 위해 잠수요원이 본격적으로 투입된 것은 사고가 난 지 8시간이 지난 뒤였다. 선체 부양을 위한 리프트백 투입은 4월 18일에야 이뤄졌고, 야간구조작업을 위한 오징어잡이 어선은 침몰 나흘째인 4월 19일, 잠수부들의 이동을 돕는 대형 바지선은 침몰 5일째인 4월 20일에야 투입됐다. 세월호 참사로 당시 배에 타고 있던 476명 가운데 172명만 구조됐고, 304명이 죽고 실종됐다. Ⓒ 세월호침몰사고대책본부

오후 수업을 듣고, 저녁을 먹고, 야간 자율학습을 하려고 다시 열람실에 앉았을 때 눈물이 났다. 힘든 수험생활을 버티게 했던 건, 대학에 가면 새 미래가 열린다는 희망이었다. 스무 살이 되면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힘들 때마다 읽어보곤 했다. 멋진 대학생이 되어 모교에 찾아가 후배들을 만나겠다는, 친구들과 한강에 가서 치킨에 맥주를 마시겠다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부모님 용돈을 드리겠다는, 소소하고도 행복한 미래였다. 세월호 아이들도 같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내 친구들은 그 봄에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꽃이었다. 세상의 봄이 한창이던 4월 16일, 261개의 꿈이 바다 속 깊이 가라앉았다. 그들에게 봄이 다시 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죽음을 무기력하게 방치한 세상이 한심했고 화가 났다.

2021년 봄, 세월호의 자리

매일 뉴스를 보았다. 오늘은 새로운 구조 방법이 나왔길, 부디 한 명이라도 살아 돌아오길 바라면서. 뉴스 화면은 점점 물에 잠겨 가는 세월호를 보여줄 뿐, 어떤 조처도 방법도 없었다. 배 안 상황은 처참했다. 방 안에 있던 침대가 밀려 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진 배, 두려워하는 학생들 목소리. ‘가만히 있으라’고 계속 나오는 선내 안내방송. 배 안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보낸 문자 메시지에 가슴이 아팠다. ‘엄마 사랑해’ ‘사랑합니다’ ‘용서해 줘’ ‘살아서 만나자’...  두려움을 가득 안고 보냈을 메시지에는 사랑만이 가득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절규하는 유가족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바라보는 내가 이렇게 아픈데 당사자들의 고통은 어떨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TV를 틀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고, 교복에 노란 뱃지를 붙이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노란색으로 바꾸는 것뿐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무력한 날들이었다.

아픈 봄이 지나고, 끔찍한 여름, 가을, 겨울이 찾아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참하던 봄의 기억은 왜곡됐다. 계절이 스물네 번이나 바뀌는 동안 사고 원인도, 사고 책임자도, 구조 과정 의혹들도 해결된 게 없다. 희생자를 앞에 놓고 정치 싸움만 이어졌다. 정치인들은 투표 민심을 위해 앞 다투어 세월호 관련법을 발의했다. 진상 규명을 철저하게 해 반복되는 사고를 막자는 세월호특별법은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법의 본래 목적보다 희생자를 의사자로 지정하는 내용, 생존자의 대학 입학에 특례를 주자는 내용이 부각됐다. ‘평생 노후보장 특별법’이라는 비난, 유가족들을 향한 도 넘은 혐오 표현도 늘어났다.

촛불정부로 정권이 바뀌었다. 기대 속 출범한 검찰 세월호 참사 특수단은 지난 1월 19일 유가족이 제기한 17개 의혹 중 13개에 무혐의 처분을 한 채 활동을 끝냈다. 300명 넘게 사람이 죽은 사건을 수사하는 데 7년이 걸렸지만, 청와대와 법무부가 수사와 감사에 외압을 가했다는 혐의는 무혐의로 판결났다. 대통령이 국민 304명이 죽는 동안 무엇을 했는지, 왜 사고 직후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아직 모른다. 여전히 세월호는 정치인과 언론 등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단순한 선박사고로 호도되고 있다. 

▲ 참사 이후 5년 만에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이 출범했지만 여전히 지연된 구조의 책임 소재, 초동 대처에 실패한 정부의 행적 등 여러 궁금증을 해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1월 활동을 끝냈다. Ⓒ KBS

다시 ‘세월호’ 앞에 서서

다시 봄이다. 나는 대학에 갔고, 캠퍼스와 여의도, 한강 공원에 만발한 벚꽃을 본다. 봄비가 상쾌한 냄새를 흘리고, 살랑이는 봄바람이 마음이 설레게 하는 이 봄에, 피어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261송이 꽃과 그 꿈을 기억한다. 2학년 5반 정차웅은 짱구, 스펀지밥, 라바, 도라에몽과 같은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좋아했다. 엄마가 만들어주던 밥도, 아빠의 스킨십도 좋아했다. 그의 꿈은 대학 체육학과에 가서 멋진 검도 사범이 되는 것이었다.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친구에게 건네고 다른 친구를 구하기 위해 바다 속으로 뛰어든 그는 참사 당일, 첫 희생자로 가족에게 돌아왔다.

친구들의 ‘고민상담사’라 불리던 2학년 3반 김도언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피아노도 잘 치고, 글짓기도 잘하고, 연극부 활동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 유독 엄마를 좋아하던, 엄마와 언제나 같이 있고 싶다던 김도언은 4월 23일, 엄마의 품으로 돌아왔다. 2학년 6반 최덕하의 꿈은 경호원이었다. 4월 16일 아침, 세월호 사고를 119에 처음으로 신고한 그였다. 그의 신고 덕에 172명이 구조될 수 있었지만, 최덕하는 참사 일주일 후,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배 안에서 발견됐다. 정차웅의, 김도언의, 최덕하의, 꽃이 가고 남은 261개의 꿈들을 다시 불러 본다.

▲ 박재동 화백이 그린 고 정차웅, 최덕하 학생. 정차웅은 세월호 참사 당시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친구에게 건네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러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최덕하는 세월호 참사를 처음 119에 신고한 학생이다. 그들은 각각 검도 사범과 경호원이라는 꿈을 꾸고 있었다. Ⓒ <한겨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을, 유가족들의 외침을 지겨워하고 호도한다. 세월호는 국가의 무능으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아이들 생명을 구할 골든타임을 놓친, 아니 방치한 어른들은 그때 뭘 하고 있었는가? 사고와 구조 과정의 소홀함을 밝히는 수사를 누가, 왜 방해했는가? 진실을 알아내려면,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세월호가 개인의 슬픔에 그쳐서도, 유가족들의 이기심으로 매도되어서도 안 된다. 아이들의 소중한 꿈과 이들이 세상을 향해 내뱉는 절규조차 기억하지 않으면 슬픔과 고통은 반복된다. 생명의 봄이 생명을 앗아가는 계절이 되면 안 된다. 우리가 2014년 4월 16일, 끔찍하고 무력하던, 그 봄을, 눈물과 죽음의 바다를 다시 호출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봄’이다. 코로나 팬데믹 1년, 재난은 계속되지만 자연의 순환은 어김없다. 생명은 언 땅을 뚫고 대지를 초록으로 물들이고 꽃을 피운다. 생명이 역동하는 이 봄을,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잔인한 4월’이라 노래했다. 그렇다, 세월호가, 419 혁명이 말한다. 생명과 죽음, 혁명이 함께 하는 이 봄을 기억하라고. (편집자)

편집 : 윤재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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