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접종 순위 밀린 밀폐공간 노동자

질병관리청이 지난 15일 발표한 2분기 코로나19 백신 우선 접종대상에서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을 대하며 일하는 재가요양보호사, 택시기사, 학습지교사 등 밀폐공간 노동자들이 빠져 있거나 후순위로 밀려있어 이들부터 접종을 실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2분기 코로나19 접종 대상으로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코로나19 취약시설 입소자와 종사자, 65세 이상 어르신, 학교와 돌봄공간 종사자, 만성질환자, 보건의료인과 사회필수인력 등 5부문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와 접촉하거나 밀폐공간에서 사람들과 마주한 채 일하는 노동자들이 언제 코로나19에 감염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는데도 이들은 우선접종대상에서 빠져 있다.

▲ 질병관리청이 지난 15일 발표한 코로나19 2분기 예방접종 대상. © 김신영

요양원 근무자는 넣고 재가요양보호사는 뒤로 밀려

경기도 고양시에서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김아무개(60) 씨는 1년 넘게 코로나19에 감염된 건 아닌지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 속에 지내고 있다. 그는 88살 욕창환자 집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4시간씩 방문해 환자를 돌본다.

▲ 경기도 고양시에서 일하는 재가요양보호사 김아무개 씨가 환자가 사용한 용기를 세척하고 있다. © 김신영

그가 돌보는 환자는 같은 자세로 계속 앉거나 누워 있으면 욕창이 심해져 자주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혼자 거동을 할 수 없는 상태라 상체를 일으켜 세워 부축을 해줘야 한다. 화장실을 오갈 때도 부축해야 하고 식사도 챙겨줘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매일 네 시간씩 환자를 가까이 접촉할 수밖에 없다. 고령환자라고 감염가능성 자체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가족들 중 누군가가 밖에서 감염돼 환자에게 전염됐을 가능성이 있어 늘 불안하다.

김 씨는 감염이 걱정돼 자주 환기를 하고 싶지만 환자가 고령이라 감기가 들까 봐 창문도 열지 못한다. 오전 9시에 환자 집으로 출근했을 때 밖으로 통하는 베란다 창문을 5분가량 여는 것이 전부다. 그 자신은 마스크를 쓰지만 집에만 있는 환자는 마스크도 쓰지 않아 헛기침이라도 하면 흠칫 놀란다. 그가 가장 불안할 때는 환자 가족들이 집에 들어올 때다. 가족이 외출했다 들어오면 혹시나 감염이 돼 들어온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는 앞서 89세 치매환자 집 등 여러 곳을 잇달아 방문하다 보니 불안감이 더 크다.

요양센터에 등록된 재가요양보호사들은 감염 위험이 높으니 검사를 받으라고 해서 김 씨도 지금까지 세번이나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확진받은 적이 없었지만 늘 불안하다. 그는 “감염에 취약한 고령 환자들과 가까이 접촉하다 보니 늘 불안하다”며 “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에게는 우선 접종을 하면서 재가요양보호사는 왜 뒤로 빼놓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는 요양원과 요양병원 등의 요양시설에서 일하는 시설요양보호사와 방문요양기관(재가장기요양시설)과 계약을 맺고 돌봄이 필요한 환자의 가정을 찾아가 신체·가사활동을 지원하는 재가요양보호사로 나뉜다. 2019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노인장기요양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전체 요양보호사는 44만4525명으로 이중 재가요양보호사는 약 38만 명이다. 지난 6일에는 전남 여수에서 재가요양보호사 가족 간 감염으로 코로나19 확진자 4명이 발생했던 만큼 이들을 위한 백신접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종일 감염 위험에 노출되는 택시기사

충북 제천시에서 10년째 택시기사로 일하는 이아무개(67) 씨는 매일 8시간 이상 모르는 사람들과 좁은 택시 안에서 보내야 한다. 승객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로 발열체크도 할 수 없어 손님이 탈 때마다 불안하고 내릴 때까지 몇 십분 또는 한 시간여를 좁은 공간 안에 같이 있는 것이 두려울 때도 많다.

▲ 서울에서 운행중인 한 택시 운전석 뒤편에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비말차단막이 설치돼 있다. 택시기사들은 차단막이 설치돼 있어도 모르는 사람들을 여러 명 태우고 내려주다 보면 불안하다며 우선적인 백신접종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운전석 뒤편에 비말차단막이 설치돼 있지만, 이 씨는 승객이 기침이라도 할 때는 창문을 열고 싶어도 손님이 불쾌하거나 추워할까 봐 그냥 마스크만 코끝까지 꾹 눌러쓴다. 조수석 서랍 안에 미니 공기 청정기를 넣고 다니는데, 손님이 내리고 나면 앞뒤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한다. 낮에는 대체로 승객들이 마스크를 잘 쓰고 별 대화도 없어 걱정이 덜한데 밤이 문제다. 밤늦은 시간에 취객들이 종종 타는데, 술이 좀 많이 마신 사람들이 마스크도 제대로 안 쓰고 이야기를 걸어오거나 장시간 핸드폰 통화를 할 때는 정말 불안하기 그지없다. 

실제 작년 9월 부산시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를 각각 3분 또는 5분 정도 태운 택시 기사 둘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지난 1월에는 서울 강남구 한 택시회사에서 기사와 직원까지 집단감염이 발생해 서울시가 택시 승객 수백 명을 추적한 일도 있었다. 방역당국은 확진자가 감염된 상태에서 좁고 환기가 되지 않는 택시에 탑승해 기사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전염이 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씨는 “폐가 좋지 않아 코로나19에 감염될까 봐 매일 택시 운전을 하는 것이 고역”이라며 “택시기사들도 먼저 백신을 접종해주면 기사 본인과 승객 모두의 감염 위험을 줄여 주는 효과가 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파자 될까 전전긍긍, 학습지 교사

김아무개(25) 씨는 서울 성북구에서 작년 5월부터 12월까지 방문 학습지교사 일을 하면서 본인이 감염될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다른 사람에게 코로나19를 옮기는 전파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한 해를 보냈다.

▲ 서울에 있는 한 학습지 수강 학생의 집에서 학습지교사가 학생과 머리를 맞대고 수업을 하고 있다. 집에서 이뤄지는 수업이라 대부분 학생과 학부모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어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다.© KBS

김 씨는 매주 3일 하루 6시간씩 서너 군데 학생들 집을 찾아다니며 수업을 했다. 학생이 많은 날은 9명에게 50~60과목을 가르쳤는데 한 과목당 10~15분가량 수업했다. 한 집에 최소 10분에서 최대 1시간 머물면서 학생들과 대화하며 접촉했다. 학생이나 학부모는 자기 집에 있어서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아 불안한 때가 많다.

그는 “방문하는 집 10곳 중 7곳은 학부모와 학생이 마스크를 안 쓰고 있다”며 “학습지 업체에서 학부모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만, 별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김 씨 동료 중에는 방문수업을 하는 학생의 집 가족이 확진자와 밀접접촉을 한 것이 확인돼 진단검사를 받기도 했다.

인권단체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이 지난 8일 발표한 전국학습지산업노조와 학습지노동자 인권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74%가 코로나 감염 위험에 시달렸고, 그럼에도 정부나 회사로부터 감염예방 매뉴얼 마련이나 실행, 업무중지 등의 조처가 취해진 적이 없다는 응답도 72%에 이르렀다. 김 씨는 “학습지 교사들은 여러 집을 방문해 여러 학생들과 밀접하게 접촉하기 때문에 코로나19 감염에 관한 불안감이 매우 높다”며 “학습지교사는 물론 학생들 감염 위험을 줄이려면 학습지교사들 우선접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수십, 수백 명이 좁은 공간에 촘촘히 몰려 앉아 송수화기를 끼고 종일 고객응대를 하는 콜센터 종사자들과 집단감염으로 홍역을 치른 교도소 재소자 등 밀폐공간과 집단수용시설에 있는 사람들에게 백신접종을 우선적으로 하는 것이 코로나19 확진자를 줄이고 집단면역을 앞당기는 길이라는 지적이 많다.


편집 : 김병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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