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하난프로덕션 하은지 대표

“아프리카 탄자니아는 ‘턱’ 막혔던 숨을 ‘탁’ 트이게 해줬어요. 그곳에서 다시 카메라를 들 수 있었고, 필름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알게 됐어요. 아프리카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밥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 모든 걸 감사하게 됐어요. 만약 그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 있다면, 또 그 일을 누군가 꼭 해야만 한다면, 제가 하고 싶어요.”

영화를 짝사랑한 소녀가 있었다. 좋아하는 영화를 여러 번 보고, 영화에 관한 글을 쓰고, 영화판에 들어갔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구애를 받아주지 않았다. 상업영화판에서 상처를 입었고, 도망치듯 나왔다. 슬픔에 잠겼던 그에게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 갈 기회가 비상구처럼 열렸다. 미디어의 황무지 탄자니아에서 그는 교육방송을 만들어 전국에 송출했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에 발이 묶였지만, 그는 탄자니아 의료교육을 위한 영상을 제작하며 언젠가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지난해 11월 9일 경기도 안양시 안양샘병원에서 촬영 중이던 하은지(28) 하난프로덕션 대표를 만나고 지난 18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영화를 짝사랑하다 실패한 후 떠난 아프리카    

▲ 경기도 안양시 안양샘병원에서 의료교육 촬영을 마친 후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하는 하은지 대표. ⓒ 이성현

"영화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들어 있었어요. 연극도, 음악도, 미술도, 체육도 모두! 영화는 최고의 예술이에요. 융합에서 나오는 무궁무진한 영화의 매력. 영화를 자세히 알게 되면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걸요?" 

충청남도 부여군 시골 마을 소녀는 하루 종일 영화와 살고 싶어 서울 동국대 영화영상학과에 들어갔다. 영화 연출부, 촬영부, 제작부 막내를 도맡아 일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졸업반이 되자 친구들은 하나둘 힘든 영화를 포기하고 광고회사, 유튜브회사 등에 취업했다. 하지만 그는 상업영화에 뛰어들었다. <조선 명탐정 2> <나를 찾아줘> <페르소나> 등 영화에서 동시녹음팀, 제작팀, 연출팀 막내로 일했다. 하지만 영화판엔 군대 문화가 강했고 그에게 허드렛일을 시키고 폭언을 일삼는 윗사람들이 있었다. 이유 없이 미운털이 박힌 그는 부원 전체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기도 했고, 촬영을 나간 곳에서 팀원들이 그만 빼놓고 이동하기도 했다. 사직 강요까지 이어진 괴롭힘에 결국 그는 영화판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영화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영화는 왜 날 사랑해주지 않는가’ 원망이 터져 나왔다.  

"모든 걸 다 놓아 버린 상태였어요. 무기력증에 빠졌고, 이대로 가라앉을 거 같았어요." 

그는 매일 밤 술로 마음을 달래는 폐인이 됐다가, 안 되겠다 싶어 봉사를 찾아다녔다.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며 자존감을 높이고 싶었다. 국내 비정부기구(NGO)인 굿네이버스의 탄자니아 잔지바르섬 미디어 전문가로 파견될 기회를 얻었다. 구글맵에서 탄자니아를 찾아봤을 때, 드넓은 사바나와 세렝게티 평원이 보였다. 그곳은 다시 숨 쉴 수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바타’의 세계를 꿈꾸며 달려간 곳 

▲ 굿네이버스와 SBS, KOICA(한국국제협력단), 대한건축사협회가 함께 건립한 '희망학교 100호' 탄자니아 잔지바르섬 콰라라 미디어교육센터. ⓒ 하은지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굿네이버스, 에스비에스(SBS) 희망TV는 ‘아프리카 학교 100개 짓기’ 사업을 했고, 100번 째 학교를 지난 2017년 1월 탄자니아 잔지바르섬 콰라라에 지었다. SBS는 이를 기념해 학교 옆에 탄자니아 최초의 미디어교육센터를 지었다. 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수많은 방송장비는 방치됐다. 미디어 전문가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2018년 10월, 그는 영화 <아바타>의 세계를 꿈꾸며 아프리카로 떠났다. 출발 전에는 고민도 있었다. 그에게 감염병 주사를 놔준 의사는 그 전 주 아프리카에 다녀온 국악단원이 숨진 이야기를 하며 출국을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50살이 되어서 20대를 돌이킬 때, 어떤 선택을 후회할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100% 알았어요. 그건 절대 내가 후회할 선택이 아니란 것을.”

우리나라와 계절이 정반대인 탄자니아는 날씨, 인종, 문화 모든 게 새로웠다. ‘콰라라 미디어 교육센터’에서 그는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그의 임무는 미디어 전문가로서 교육방송 프로그램 40편을 제작하고, 방송을 수출해 센터가 자립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방송 개념 없는 현지인 붙잡고 걸음마부터 

▲ 탄자니아 영어 교육프로그램 ‘해피톡’ 야외 촬영 현장. 수많은 복병을 이겨내며, 20명의 팀원은 서서히 한 팀이 되어갔다. ⓒ 하은지

“한국은 중학생도 알아서 잘 찍어요. 컷, 구도, 금방 잡아요. 워낙 유튜브 등 영상에 익숙하니까요. 하지만 이분들은 영상 자체를 많이 접하지 못했고, 흥미도 없으신 분들이었어요.”

그가 현장에서 본 장비는 최첨단이었지만, 함께 일해야 할 공무원, 교사는 카메라를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스와힐리어를 쓰는 40~50대 흑인들을 마주보며 이 사업이 ‘무모한 도전’이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교육부터 시작했다. 한국에서 꾸준히 청소년 영화제작 봉사활동을 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컷 사이즈, 셔터 속도, 카메라 잡는 법 등을 통역도 없어 손짓 발짓으로 가르쳤다. 사람들이 영상을 좋아하도록 만들기 위해 매주 수요일 상영회를 열고 자신이 사랑했던 영화를 하나씩 소개했다. ‘매트릭스’ ‘터미네이터’ 등 액션물이 특히 인기를 모았다.   

복병도 많았다. 탄자니아는 이슬람 문화권이라 라마단(4월~5월) 기간엔 하루에 5번 기도를 하고, 3시 전에 퇴근해야 했다. 그는 한국처럼 ‘빨리빨리’를 외쳤지만, 그들은 ‘폴레폴레(천천히 천천히)’로 답했다. 우기에 야외촬영을 하려면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특히, 전력공급이 어려워 전압에 민감한 음향 장비가 멈췄을 땐 온종일 전압기만 쳐다보기도 했다.  

교육방송(EBS)의 ‘딩동댕 유치원’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며, 20명의 팀원은 서서히 하나가 되어갔다. 그들은 영상작업에 재미를 붙였고, 스스로 방송을 만들고 송출할 수 있는 미디어센터로 발전해 갔다. 하 대표가 함께 만든 40편의 영어교육 프로그램 ‘해피톡’은 지난해 2월부터 현지 방송국을 통해 방영됐다. 이 프로그램은 코로나19로 탄자니아 학생들이 학교를 가지 못할 때, 유일한 교육의 샘물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 현재 탄자니아 전역으로 송출되는 ‘해피톡’은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공백을 메우는 데 기여하고 있다. ⓒ SBS

19시간 걸려 도착한 친구 집에서 깨달은 것  

그녀가 카메라를 다시 잡게 된 결정적 계기는 현지에서 친구가 된 하미스의 고향집에 놀러 간 것이었다. 하미스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늘 감사하는 맑은 눈을 가진 40대 남자였다. 그는 휴가를 맞아 하 대표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아프리카 여행을 꿈꿔온 그녀는 선뜻 동행했지만, 도착하는 데만 19시간이 걸리는 먼 길인 줄은 미처 몰랐다. 

잔지바르섬에서 아프리카 본토로 배를 타고 3시간, 다시 버스를 타고 8시간, 승합차를 타고 산속으로 2시간 더 들어갔다. 하룻밤을 숙소에 묵은 뒤 다음날 아침부터 첫차로 3시간,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오솔길에서 오토바이로 2시간 들어갔다. 산 비탈길을 요리조리 갈 때는 생사를 넘나드는 오싹함도 느꼈다. 

그곳은 작은 아프리카 부족 마을이었다. 화폐가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온 마을 사람들은 처음 보는 외국인, 하 대표를 환영해 주었다. 그녀는 선물로 가져온 전기장판을 숨겼다. 마을 사람들은 강에서 씻을 물을 길러다주었고, 야생 닭을 잡아 음식을 차려주었다.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원시적인 곳이었다.

▲ 이동시간만 총 19시간 걸려 도착한 하미스의 고향집. 하미스와 그의 가족은 공예품과 전통 음식으로 하은지 대표를 환영했다. ⓒ 하은지

며칠을 생활하며, 그는 하미스가 자신을 초대한 이유를 짐작하게 됐다. 마을은 탄자니아 정부조차 손을 놓은 곳이었다. 음식은 자급자족하지만, 교육, 의료 등 기본적인 인프라가 열악했다. 작은 병원에 환자들이 누워있지만, 치료해줄 의사와 간호사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치통으로 앓아누운 하미스의 친척을 함께 부축해야 했다. 하미스는 자신의 마을을 찍어 주길 원하는 듯했다. 말로 할 수 없으니, 직접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녀는 다시 이 마을에 오겠다고 하미스와 약속했다. 다시 카메라를 들고 이곳을 비추겠다고. 

한국 최초의 원격 의료교육영상을 제작하다 

그가 한국에 잠시 짐을 정비하러 들어온 사이, 코로나19가 전세계에 확산되며 하늘 길이 막혔다. 다시 돌아가긴 힘들게 됐지만, 하 대표는 탄자니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탄자니아에서 만난 국제개발 직원이 다리를 놓아 탄자니아 의료교육 영상제작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이 대한민국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으로 탄자니아에 지은 ‘무힘빌리 국립병원 음롱간질라 캠퍼스'는 최신식 의료기기를 갖췄지만 현지 의사들이 관련 교육을 받지 못해 기기가 방치되고 있었다. 코로나로 힘들어진 한국 의사들의 출장을 대신해 국내 최초로 원격 의료교육 영상을 제작하게 된 것이다.

하 대표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과 아프리카미래재단이 추진하는 이 사업의 영상제작 담당으로 선정돼 지난해 8월부터 의료교육 강의영상을 찍었다. 약 4개월 동안 마취과, 진단의학과, 비뇨기과, 중환자실 등 8개 분야의 의료영상 120편을 제작했다. 교수의 강의, 의사들의 병원 회진, 장비 소개, 수술장면 등을 담았다. 촬영을 위해 수술복과 방역복, 두 겹의 마스크로 무장하고 한 장면 한 장면 공을 들였다. 

▲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에서 하은지 대표(맨 왼쪽)가 수술 장면을 촬영하는 모습. ⓒ 이성현

“물에 가라앉은 나를 건져 올려 숨 쉬게 해준 탄자니아. 저는 봉사를 하러 갔지만, 사실 받기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제 제가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어요.” 

첫 번째 의료교육 영상제작 프로젝트는 지난해 11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영상은 탄자니아 무힘빌리 병원 의사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KOICA와 KOFIH 등 주관 기관은 원격교육 사업을 더욱 확대하기로 했다. 올해부터는 유튜브라이브와 줌을 활용한 쌍방향 생중계 의료교육도 추진한다. 하 대표는 “더욱 피부에 와 닿는 의료교육 영상을 만들기 위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기술도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접 탄자니아로 날아갈 순 없지만, 자신이 만든 영상이 탄자니아 곳곳을 누비기를 기대하며. 


편집 : 이성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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