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한국사회의 상징’ ➂ 손소독제

코로나가 바꾼 일상 풍경들

이동이 조심스러운 요즘이다. 학기중일 때에는 주중에 제천에 있고 주말에 서울로 갔다. 지난해 11월 어느 금요일, 가족들이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집에 도착했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자 엄마는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며 손소독제부터 내밀었다. 신발도 벗기 전이었다. 엄마가 건넨 플라스틱 소독제 통을 손바닥에 두드렸다. 미끄덩거리는 액체가 나오면서 씁쓸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흘러내리는 소독제의 물성도, 과학실에서나 날 법한 알콜 냄새도 너무나 익숙하다. 끈적거리는 두 손과 손에서 나는 화학약품 냄새가 불쾌했지만 소독제로 손을 씻고서야 집 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1년, 우리의 일상은 ‘BC’(Before Corona)와 ‘AD’(After Disease)로 구분할 정도로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흐르는 물에 3분 손 씻기, 미세먼지가 심해도 답답하다며 쓰지 않던 마스크 착용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이’로 상징되는 2m 거리두기와 3밀(밀폐, 밀집, 밀접) 원칙은 새로운 규범이 되었다. 

연인이 영화관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볼 수도, 명절에 가족이 모일 수도 없다, 요양원에 모신 연로한 부모의 임종조차 지켜보지 못하는 코로나 시대. 시대의 상징 중 하나는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된 손소독제다. 손소독제는 병원은 물론이고 카페, 음식점, 영화관 등 이제 모든 건물 출입구 앞에서 마주칠 수 있다. 건물에 입장하려면 입구에서 체온을 재고 손소독제를 뿌려야 한다. 소독제 사용은 규범에서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됐다. 

▲ 설 연휴에 고궁을 찾은 시민들이 경복궁 들머리에 설치된 손소독제를 사용하고 있다. 손소독제는 코로나로 바뀐 일상을 상징한다. ⓒ <연합뉴스>

손소독제의 명과 암

손소독제는 내게도 습관이고 일상이다. 외투 주머니에는 조그만 손소독제가, 기숙사 방안에는 외출 앞뒤에 쓰는 대용량 소독제가 놓여 있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는 익숙지 않은 소독제 냄새가 역하게 느껴졌다. 소독한 손에서는 화학약품 냄새가 났고, 이 냄새를 자주 맡다 보니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 1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냄새에 익숙해져 투덜대면서도 움직일 때마다 손소독제를 바른다. 밥 먹고 나서, 화장실에 다녀온 뒤, 수업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갈 때,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손소독제를 짜서 구석구석 손을 비빈다. 

기숙사와 강의실을 출입할 때, 기차역 대합실에서, 음식점에 들어갈 때, 언제 어디든 손소독제가 보일 때마다 사용한다. 소독제에 붙어 있는 스티커에는 소독제로 씻으면 바이러스가 99.9% 없어진다고 적혀 있다. 소독제의 효능에 관한 과학적 사실 여부도 중요하지만 내가 코로나에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내가 동료와 학교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크다.

▲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부분 손소독제의 성분은 에탄올이다. 화학물질이 기화하면서 손을 소독하는데, 이때 손에 있는 수분도 함께 날아간다. 소독제의 과도한 사용은 손을 건조하게 만들어 손을 망가뜨린다. ⓒ pixabay

문제는 손 소독제의 부작용이다. 방학을 맞아 서울에 온 뒤, 다니던 네일샵에 갔을 때였다. 관리자는 손 상태가 너무 안 좋다며 왜 이렇게 건조할 때까지 놔뒀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동안 무심했는데 그의 말대로 손톱이 갈라져 껍질이 벗겨지고, 손톱을 감싸고 있는 큐티클들이 하얗게 다 올라온 것이 보였다. 비타민이 부족한 듯, 떼어내면 피가 날 것 같은 자잘한 껍질들도 많았다. 몇 개는 뜯어져 핏자국이 선명했다. 

소독제 때문이었다. 유해 세균을 99.9% 제거해준다는 소독제는 바를 때마다 손에 있던 수분도 함께 날아가게 한다. 시중에 판매되는 손소독제의 주요성분은 에탄올이다. 에탄올 성분이 기화하면서 손이 소독되는데, 소독되면서 수분을 앗아가 손을 망가뜨린다. 건조해져 거칠어진 손을 보드랍게 하려면 특별관리를 받아야 한다. 양 손에 크림을 바른 후, 비닐 장갑을 덧씌웠다. 그 손을 뜨거운 파라핀에 담그고 이십 분 동안 앉아 있었다. 임시 관리를 받고 난 뒤 손은 조금 부드러워졌지만, 소독제를 계속 쓰자 손은 이틀도 안 돼서 다시 거칠어졌다. 

코로나가 심화한 ‘K 양극화’ 

소독제는 손에 남은 바이러스는 없애 주었지만, 동시에 손을 심하게 건조시켜 망가뜨렸다. 소독제 사용으로 건조해져 손톱이 갈라지고 피부가 벗겨진 손을 확대하면, 코로나 방역에 노출된 지금 한국 사회의 민낯이 오롯이 드러난다. 소독제 사용은 손이 거칠어지는 단순한 손의 건강 문제로 끝나지만, 코로나 방역 규제는 목숨이 걸린 삶과 생존의 문제다. 코로나19 팬데믹 1년 동안 방역에 따른 영업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는 공동체를 급속히 건조시켜 민생을 나락에 빠뜨렸다. 

내국인과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명동 거리에는 ‘임대’ 표시가 붙어 있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영업을 못 하는 영세자영업자는 밀린 가게세와 융자상환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고,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은 일자리를 잃어 하루 생계를 걱정하는 생존위기에 처해 있다.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혹심한 경제 위기 앞에서 사라진 일자리를 바라만 봐야 하는 청년 취업준비생들은 잃어버린 세대로 전락했다. 방역지침을 착실히 지키던 선량한 시민들은 날로 푸석푸석해지는 온몸을 던지며, 더 이상 당국의 방역지침을 따르지 않겠다고 시위까지 벌였다. 

방역이 우리 사회를 온라인으로 상징되는 4차산업시대로 급속히 이동시키는 사이, 마트계산원, 콜센터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대부분 계약직 또는 비정규직이던 여성 노동자들은 무인판매기와 자동응답기에 대체돼 소리도 못 내고 사라졌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재난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삼는다. 눈물과 고통, 좌절은 저소득층, 여성, 비정규직, 소상공인 몫이었다. 이른바 ‘K 양극화’다. 코로나는 부와 노동의 불평등 격차를 심화하고 고착했다. 

▲ 영화 <카트>(2014)는 대형 마트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당한 계약직 여성들 이야기를 그린다. 코로나로 비대면 서비스가 증가하며 단순노무에 종사하던 비정규직 여성들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재난은 저소득층, 여성, 비정규직에 집중된다. ⓒ <씨네21>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2581만8천 명으로 1년 전과 비교해 98만2천 명이 줄었다. 97년 외환위기 발 경기침체를 겪던 98년 12월 이후 최대 감소치다. 경기체감지수(BSI)도 떨어졌다. 경기체감지수는 어떤 집단에서 경기가 호전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으면 100보다 크고, 그렇지 않으면 100보다 작게 나타난다. 소상공인 체감지수는 지난해 내내 100 이하를 유지하다 지난달에는 최하 수치인 35.8를 기록했다. 전통시장은 33.5로 더 낮았다. 지난해 12월 기준 여성 취업자 감소폭은 남성보다 2배 가까이 크게 나타났다. 

취약 계층에게 고통이 집중되는 ‘K자 양극화’가 현실인데도, 정부와 국회는 여전히 재정건전성 타령이다. 서민의 고통을 함께하겠다는 말은 허울뿐이고 선거를 위한 선심성, 형식적 정책을 쏟아낸다. 세계에서 가장 재정이 건강하다는, 그럼에도 세계에서 가장 코로나 지원에 재정을 적게 집행했다는 역설은 여전히 민생의 눈물과 아픔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뜻이다. 아니 외면했다는 말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과 고통을 직시하라

네일샵에서는 소독제로 거칠어진 손을 보호하기 위해 핸드크림을 꼭 바르라고 했다. 핸드크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손소독제처럼 핸드크림도 늘 몸에 지니고 사용하라고 했다. 손소독제는 손 관리로 끝나지만, 코로나 재난이 초래한 위기는 삶이고 목숨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핸드크림은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재정집행이다. 지난 1년 동안 K-방역이 가능했던 것은 방역수칙을 잘 지켜준 국민 덕분이다. 코로나 위기는 집단면역이 형성될 연말까지 계속될 것이다. 더 이상 이들을 재난 앞에 방치할 수 없다. 소상공인에게, 구직 청년에게,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여성에게, 그리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사회적 약자 모두에게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

24일 홍남기 경제 부총리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2021년도 추경안 주요 내용을 논의했다.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코로나19로 직접 피해를 입은 계층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고, 고용 한파에 따른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며, 백신 수급과 접종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막대한 추경을 집행하면서도 돈을 어디에,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관한 진정성 있는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25일 <한겨레>는 코로나가 불러온 경제위기 속 캐나다와 호주가 시행하고 있는 금융지원책을 소개했다. 2년간 무이자로 대출해준 뒤 2022년 말까지 상환하면 일정 금액을 탕감해주는 캐나다의 긴급사업자금대출(CEBA)과 4주마다 매출 감소율을 산정해 감소율별로 임대료 지원에 차등을 두는 긴급임대료보조금(CERS), 고용주에게 소득세 원청징수액을 환급해주는 호주의 ‘고용주 현금 흐름 증대제도(BCF)’.  막대한 재정을 지출하지만 사용 목표가 명확하고 집행 방안이 구체적인 주요국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목표조차 불분명한 형식적 예산 집행으로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도, 재정건전성 논란을 잠재우지도 못하고 있다. 민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늘 소외된 누군가를 양산한다.  

▲ 캐나다의 긴급사업자금대출(CEBA)과 긴급임대료보조금(CERS)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구체적인 방안으로 예산을 집행해 경기안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3차 재난지원금 지급 당시 지원대상별 지급 기준과 액수 산정이 과도하게 형식적이고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3일 4차 재난지원금을 위한 추경 규모가 20조 원 전후로 책정될 것 같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위), KBS(아래)

사회적 약자들이 지금 맞닥뜨린 재난은 생존의 문제다. 민생을 외면하면 개인의 삶에 이어 공동체의 붕괴를 가져오고, 그것들은 한번 붕괴하면 복구되지 않는다. 네일샵 관리사 말처럼, 핸드크림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다. ‘K 양극화’로 부와 노동의 불평등이 더욱 가속화하는 이때, 개인의 눈물과 고통을 덜기 위한 ‘맞춤형 핸드크림’이 필요하다. 더 적극적으로, 더 꼼꼼하게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코로나 상황에서 그들에게 꼭 필요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의 눈물과 고통을 직시하라. 국민이 국가이고,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한국사회의 상징’이다. 코로나는 이른바 ‘K자 양극화’로 불리며 부와 노동의 불평등을 심화했다. 공공 안전망이 부재한 각자도생 사회, 더 깊어진 불안과 갈등으로 신음하는 한국사회의 민낯을 오늘을 상징하는 대상과 현상으로 읽어낸다. (편집자)

편집 : 방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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