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아랍의 봄’ 후에도 경제난•종교갈등 홍역, 11월 총선 고대

지난 달 12일 낮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한국서 출발한 기독교성지순례단과 함께 모세의 족적을 찾아 간 그곳은 예상외로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불과 이틀 전 콥트기독교 시위대 1만 여 명이 거리를 휩쓸었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광장 주변 길거리는 중동ㆍ아프리카의 어느 도시에서나 흔히 볼 수 있을 듯한 풍경들로 채워져 있었다. 얼굴과 몸을 거의 다 가리는 검정 천의 ‘히잡’을 두른 몇몇 여성이 수다를 떨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장바구니를 든 엄마를 쫓아 종종걸음을 옮겼다. 카이로 중심에 있는 고고학박물관 근처엔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북적거렸다. 수천 년 역사가 남긴 풍성한 유적들 덕에 관광대국의 지위를 누려온 나라답게 거리엔 외국인 여행객들이 흔했고, 어린아이들까지 나서서 손님을 끄는 호객행위로 시끄러운 곳도 많았다.

▲ 이른 아침 한적한 카이로 시내를 걷고 있는 행인들. ⓒ 윤지원
▲ 카이로 시내 가정집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주부의 모습. ⓒ 윤지원
▲ 카이로 상점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 ⓒ 윤지원

그러나 현지 언론과 시민들에 따르면 지난 2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 봉기에 밀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한 후에도 군부 중심의 임시정부가 꾸려가는 이집트 정정은 아직 전반적으로 불안정하다. 실업난, 물가고 등 경제 문제와 함께 치안 상태의 악화, 종교 갈등도 심각하다.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콥트기독교인들은 무바라크 정권 때도 절대다수인 이슬람교도에 비해 ‘2등 시민’ 처럼 차별을 받아 왔다고 한다. 게다가 무바라크 퇴임 후엔 강경파 무슬림들이 콥트기독교인을 공격하는 일이 잇달았는데 실권을 쥔 군부는 이를 방관해 불만을 샀다. 특히 지난 9월 30일 남부 아스완 지역의 한 콥트기독교 교회가 강경파 무슬림에 의해 방화된 사건을 계기로 기독교도의 저항이 본격화했다. 10월 9일, 방화 사태 등을 방치하는 정부에 항의해서 콥트교도들이 카이로 길거리로 나왔는데, 이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25명이 숨지고 300여 명이 부상했다. 지난 10일엔 이 같은 무력 진압에 대한 반발로 1만 여명의 시위대가 다시 카이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 10월 9일 콥트기독교인들이 카이로시내에서 임시정부를 상대로 일으킨 시위. ⓒ시엔엔 빌리프(CNN Belief) 블로그
▲ 10월 10일 콥트기독교인들이 임시정부의 무력진압으로 숨진 동료들을 추모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 토탈리쿨픽스닷컴(Totallycoolpix.com)

기자가 카이로에 도착한 12일엔 모든 사태가 일단 진정됐지만 현지 언론은 이 시위에 대해 한창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이집션 메일(Egyptian Mail)> 등 이집트 언론들이 특히 주목한 것은 직접 피해를 입은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일부 이슬람교인도 함께 시위에 참여해 과도정부에게 ‘종교의 자유 보장’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카이로에서 1시간 남짓 떨어진 룩소에서 만난 40대의 택시 기사 아부완 씨는 지난 시위에 이슬람교도들이 참여한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 룩소 시 택시운전사로 일하는 아부완씨. ⓒ 윤지원

“콥트기독교인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일부 이슬람교도일 뿐이에요. 이곳 룩소는 원래 기독교인들이 더 많이 사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50대 50정도로 사이 좋게 살고 있죠. 이곳에선 종교간의 분열이 거의 없습니다. 카이로도 비슷할 거예요. 문제는 군이에요. 시민들이 군의 불공정한 처사에 항의하는 것 같아요.” 

이집트 과도정부는 2월 혁명 후 계속된 민주화 시위에서 참가자를 재판 절차 없이 감금, 고문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9월 30일에는 개혁을 촉구하는 3000여 명의 시민들이 카이로에서 시위를 벌였다. 아부완씨는 “기독교인들도 그렇지만 우리 모두 임시정부가 이끌어가는 지금 상황이 매우 불안하다고 느낀다”며 “11월 총선이 하루빨리 치러져 새 정부가 들어섰으면 한다”고 말했다.

같은 지역에 사는 30대 후반의 이슬람교도 시몬씨는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두 딸의 아빠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무바라크는 거짓말쟁이고, 2월 혁명은 꼭 필요했다”며 “선거가 빨리 실시되고 좋은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가 나라를 안정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높은 실업률과 물가 그리고 치안문제로 민심은 여전히 불안

이번 충돌에 책임을 지고 이집트의 부총리 겸 재무장관 하젬 엘 베블라위가 지난달 11일 사퇴했고, 군 최고위원회(SCAF)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모든 국민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무바라크의 친위대 역할을 했던 경찰이 사라진 거리에 폭력배가 득실대고 실업률과 물가가 떨어지지 않고 있어 시민들의 고통은 이만 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혁명 이전에는 이집트 전국에서 무장 강도 사건이 한 달 평균 36건 정도 발생했으나 지난 7월엔 420건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료품 가격도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20%나 올라 많은 시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윤지원 기자.

이집트 관광청 공무원인 20대 청년 사이드씨는 실업문제를 특히 걱정했다. 그는 “관광도시인 룩소만 해도 전체 실업률이 25%까지 치솟아 큰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금방 취업이 됐는데, 청년실업률이 45%를 돌파한 현실에서 아주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한국인 관광가이드 양선욱씨가 말했다. 사이드씨 또한 11월 총선 이후 새로 구성될 정부와 의회가 이 모든 문제를 바로잡아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보였다.

독재자를 몰아내는 것은 순식간에 가능할 수도 있지만,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는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집트의 오늘이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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