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국회의사당 앞 시위 이어 촛불집회 수천 명 참가

‘경제주권 침해 우려가 있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비준을 집권당이 강행처리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며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시민 5000여 명(경찰 추산 3000여 명)이 모였다.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3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오후 2시 무렵부터 산업은행 여의도 본점 앞에서 “주권포기 퍼주기 협상, 한미FTA 폐기하라” “이명박 정권 심판” 등의 구호를 외쳤다.

▲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열린 ‘한미FTA 저지 3차 범국민대회’. ⓒ 주상돈

시위대가 국회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자 경찰은 ‘불법행진’이라며 해산 명령을 내렸다. 또  해산명령에 응하지 않을 경우 물대포를 사용하겠다고 경고하면서 차벽차량으로 국회 쪽 의사당대로를 차단했고 기동대 6000여명과 차량 등으로 국회 주변 도로를 봉쇄했다. 시위대는 의사당대로가 막히자 한강 둔치 쪽으로 이동했다.

▲ 시위대에게 해산 명령하는 경찰(위), 한강 둔치를 따라 행진하는 시위대(아래). ⓒ 주상돈

공공의료 붕괴• 식량주권 상실 우려 “불안하다”

집회엔 생전 처음 나와 봤다는 한 40대 주부는 “어제 호주에 사는 동생이 전화를 해서 ‘배가 아픈데 보험회사에서 지정한 병원이 너무 멀어 못가겠다’고 하더라”며 “FTA를 계기로 의료보험체계가 붕괴되면 호주 같은 상황이 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외국인투자자가 협정상대국의 정책 때문에 사업상 손해를 입게 됐을 때 국제법정에 제소할 수 있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로 인해 모든 병원이 의무적으로 건강보험환자를 받는 ‘당연지정제’가 장기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정부는 공중보건의 경우 ISD 대상이 아니라고 하지만 해외의 경우를 보면 미국기업이 캐나다 연방보건법을 중재기구에 제소한 사례가 있다.

▲ ‘한미FTA 저지’ 피켓을 들고 있는 한 시위 참가자. ⓒ 주상돈

전북 완주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강민수씨(45)는 “FTA가 통과되면 농산물 전체가 위협을 받고 결국 미국식민지나 마찬가지가 된다”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한강 둔치 방향으로 이동 중이던 한국장애인연맹 소속 활동가 정순기씨(53)는 우리 외교관계자가 ‘한미FTA 발효 후 쌀 개방 재논의’를 미국 측에 약속했다는 보도와 관련 “그러면 앞으로 농민은 더 이상 쌀을 생산하지 않게 될 것이고 우리는 식량주권을 잃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위터를 통해 집회 소식을 듣고 나왔다는 대학생 김의영씨(22)는 “미국 의회가 최단시간에 한미FTA 비준안을 통과시켰다던데 이건 뭔가 냄새가 난다”며 “미국에 너무 유리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 씨는 또 “친구들이 한미FTA에 관심을 갖지 않아 안타깝다”며 “정치는 생활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좀 더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주부 김경자씨(63)도 “서민들이 깨어나서 정치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FTA를 찬성하는 국회의원들을 우리 손으로 심판하자”고 말했다. 

▲ 시위 참가자의 율동을 보고 있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 주상돈

이날 집회에 참여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도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민들이 한미FTA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반대하면 재협상이 가능하다고 본다”며 “국민 여러분이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경찰 물대포로 시위대 국회진입 막고 24명 체포

한강 둔치 쪽으로 돌아 여의도 시민요트나루 근처 주차장에 도착한 시위대는 민중가요를 부르며 휴식을 취한 뒤 걸어 온 길을 따라 다시 여의도 산업은행 방향으로 행진했다. 경찰은 둔치 위 도로에 병력을 배치해 시위대의 국회 진입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크고 작은 몸싸움이 일어났다. 오후 3시 30분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발사했고, 24명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이후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가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달되자 시위대는 차분히 최초 집회 장소인 여의도 산업은행 앞으로 행진했다. 

▲ 국회에 진입하려던 시위대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있다. ⓒ 박경현

시위대는 산업은행 앞에서 정리 집회를 갖고 6시쯤 해산했다가 7시에 다시 모여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이 집회에서는 수업을 마치고 삼삼오오 참석한 중고생들도 무대에 올라 한미FTA철회를 촉구했다. 촛불 문화제는 별다른 충돌 없이 밤 9시30분쯤 끝났다.

김동규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언론홍보팀장은 “오는 5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야당공동 촛불문화제를 열고 10일엔 ‘한미FTA 저지 4차 범국민대회’를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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