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기자의 무단침입 취재, 왜 반복되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거주지에 부당하게 침입한 혐의를 받는 TV조선 기자 두 명이 지난해 11월 10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이들은 지난 2019년 9월 조 전 장관의 딸이 사는 오피스텔의 보안 문을 통과해 초인종을 눌렀다. TV조선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사생활도 보호돼야 하지만 경찰의 기소 의견은 공익 목적의 취재 활동에 대한 지나친 제한이다”라며 “언론자유가 자꾸 위축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영상 갈무리. TV조선 기자가 조 전 장관 딸이 사는 오피스텔의 초인종을 누르는 인터폰 화면을 찍은 영상이다. ⓒ 조국 트위터

TV조선 기자가 무단침입으로 문제가 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4월 TV조선의 한 수습기자가 경기도 파주 느릅나무출판사에 무단으로 들어가 현장에 있던 태블릿PC와 USB 등을 들고 나온 적이 있다. 느릅나무출판사는 민간인 댓글 조작사건의 핵심 인물이었던 ‘드루킹’ 김모 씨가 운영하던 회사다. TV조선은 태블릿PC 등에 담긴 내용을 보도에 전혀 이용하지 않았으며 이 사실을 알자마자 돌려주도록 했다고 밝혔지만, 그 수습기자가 출판사 내부 사진 180여 장을 촬영해 동료들에게 전송한 게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느릅나무출판사에 무단 침입한 이 기자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취재 욕심 때문에 물건을 들고 나왔다고 시인했다. 이 기자는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같은 달 25일 경찰이 TV조선 보도본부를 압수수색하려 했으나 기자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지나친 취재 욕심 때문에 선 넘어

공영방송 기자도 무단침입으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지난 2018년 6월, 6․12 북미 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싱가포르에 간 KBS 기자 두 명이 북한 대사관 관저에 무단으로 침입한 혐의로 추방됐다. 이들은 ‘다른 그림’을 취재하려고 북한 대사관저의 초인종을 눌렀고, 문이 열려있자 현관까지 들어갔다. 들어선 이들을 발견한 대사관 직원은 싱가포르 경찰에 신고했다. KBS는 <뉴스9>에서 관련 사실을 전하며 “KBS는 현지 경찰과 사법당국의 판단을 존중하며,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민감한 상황에서 의욕이 앞서 취재 과정에 신중을 기하지 못한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 2018년 6월 8일 KBS <뉴스9>의 김솔희 앵커가 싱가포르 주재 북한 대사관저에 KBS 기자가 무단 침입한 것에 관해 사과하고 있다. ⓒ KBS

당시 싱가포르 현지 취재를 총괄했던 KBS 임장원 국제주간은 2018년 6월 24일 KBS <저널리즘토크쇼 J>에 출연해 “기자들은 정보에 더 목마르기 마련이고, 단순한 취재, 특종 욕심이라기보다도 이런 시도를 끝까지 해야 되는 게 기자 입장에서는 본능이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이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문이 열려있다고 해도 허락 없이 대사관저에 들어서는 건 공익적 필요에 따른 정상적인 취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 특별한 명분도 없었다. 이날 출연자 대부분은 이런 행위가 특종을 잡으려는 KBS의 사익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료 언론의 취재윤리 위반 보도 안 해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 4항 ‘정당한 정보수집’에는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항상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조선일보> 윤리규범 가이드라인 제7장 1조에도 “취재를 위해 개인 주거지나 집무실 등 사적 영역에 무단출입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형법 제319조는 “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러도 그 내용과 목적이 공익성이 높다는 걸 인정받으면 무죄 판결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고, 어디까지나 원칙은 정당한 방법으로 취재해 정보를 얻는 것이다. 조 전 장관 딸의 오피스텔에 들어가 초인종을 누르거나 느릅나무출판사에 무단으로 들어간 건 공익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대법원 2009년 판례(2009도3452)도 공동주택의 계단과 복도를 주거 영역으로 인정한 바 있다.

▲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있는 코리아나 호텔 벽면에 있는 <조선일보> 간판. ⓒ 조한주

기자의 불법 침입은 그것이 끝이 아니다. <조선일보>의 정 모 기자는 지난해 7월 17일 아침 6시 50분쯤 서울시 본청 9층 여성가족정책실장실에 무단으로 침입한 혐의로 10월 29일 기소됐다. 정 기자는 실장실에 있는 서류를 촬영하다 현장에서 직원에게 적발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숨지고 그의 성추행 사건 등을 조사하던 예민한 시기였다. 서울시 출입기자단은 정 모 기자와 조선일보를 제명했다. <조선일보>는 제명 이후 1년 동안 서울시 출입기자단 활동을 할 수 없고, 이후 출입기자단에 들어가기 위해 신규 등록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주요 일간지와 방송사들은 이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 결과를 보면, 조선일보 기자의 무단침입 사건이 첫 보도된 작년 7월 24일부터 28일까지 종합일간지 2곳과 경제일간지는 이 사건을 아예 다루지 않았다. 저녁 종합뉴스를 기준으로 보면, 방송사 중에는 MBC와 JTBC만 보도했고, 사건 당사자인 조선일보와 계열사인 TV조선은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 민언련은 “많은 언론이 침묵을 지킨 것은 ‘동업자 봐주기’ 카르텔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왼쪽은 조선일보 기자 서울시청 무단침입 사건이 처음 보도된 2020년 7월 24일부터 7월 28일까지 15개 신문․방송 관련 보도(방송은 저녁 종합뉴스 기준). 오른쪽은 ‘드루킹 사건’ 관련한 TV조선 기자 무단침입 사건이 처음 보도된 2018년 4월 23일부터 4월 26일까지 15개 신문․방송 관련 보도. ⓒ 민주언론시민연합

타인 자유 존중할 때 언론 자유 보장돼

언론이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보도하는 게 사회적으로 더 큰 이익이 된다면 법을 어기는 책임을 지더라도 보도해야 할 때가 있다. 준법만 생각했다면 1980년 언론인 해직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언론은 취재원 보호를 위해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등 때로 법률과 충돌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법을 어긴 것에 관해 책임을 완전히 면하지는 못하지만 여론의 이해를 얻을 발판은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특별한 공적 이익이나 이에 관한 깊은 고민 없이 법적 한계를 넘는 기자들이 계속 나타나는 건 큰 문제다. 단순히 특종을 하기 위해, 타사보다 더 좋은 화면을 확보하기 위해, 남과 다른 기사를 쓰기 위해 법을 위반해 사적 영역에 무단 침입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누군가의 기본권을 함부로 침해하며 취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언론인들이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편집 : 김병준 PD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