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언론사 CEO 신년사’ ② CBS

‘팔리는’ 뉴스가 횡행하는 시대

뉴스 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뉴스 생산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여러분의 고초를 압니다. 코로나19는 한국 사회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드러냈습니다. 취약계층은 실직, 급여감소, 학습공백 등을 맨몸으로 감내했습니다. 비대면 생활은 택배 노동자의 고된 노동과 목숨을 담보로 가능했습니다. 지난해 택배 노동자 1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생계를 위협했습니다. 온라인 수업은 사회적 돌봄을 무너뜨렸습니다. CBS도, 타 언론사도 생존과 직결된 민생 문제를 보도했지만 보도의 주류는 아니었습니다. 작년 1월부터 12월까지 기사 중 택배 노동자 문제를 다룬 기사는 3500여 건입니다. 같은 기간 돌봄 공백 관련 기사는 약 4900건입니다.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와 임대료 부담을 다룬 기사는 9700여 건입니다.

보도의 주류는 ‘팔리는’ 뉴스였습니다. 코로나19 1차 유행 당시인 작년 1월부터 4월까지 ‘신천지’ 관련 기사는 약 2만5000건이나 됩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작년 7월부터 12월까지 추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기사는 무려 3만7000 여 건에 이릅니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 시작된 작년 3월부터 12월까지 ‘주식’ 관련 기사는 약 6만5000건입니다. 통계에서 드러나듯, 현재 뉴스 시장에는 혐오, 진영싸움, 돈과 관련된 기사가 주류를 차지합니다. 호불호가 분명한, 내 편을 대변하는 뉴스가 대중의 관심을 끌기 때문입니다. 인기에 영합하는 소재, 제목, 내용이 뉴스 생산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언론은 조회 수를 높일 기사를 양산하며 ‘팔리는 뉴스’ 생산의 악순환에 가담합니다. 아동 인권, 취약계층의 민생, 노동 문제 등은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뒤에야 사회적 관심을 받습니다. 진짜뉴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뉴스를 지향하는 우리가 일하기 착잡한 현실입니다.

뉴스로 장사하는 세상

뉴스로 장사하는 세상입니다. 복사하기와 붙여넣기, 이 두 기능만으로 ‘팔리는’ 뉴스를 누구나 생산할 수 있습니다. 타사 기사, 보도자료는 물론이고 소셜미디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게재된 내용을 사실 검증 없이 그대로 옮깁니다. 지난 7일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이 SNS에 교통방송인 TBS가 폭설 상황 관련 방송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조선> <동아> <중앙> <이데일리> <데일리안>이 이 내용을 그대로 기사화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TBS는 6일 저녁 8시부터 새벽 3시, 7일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대설 특집 방송을 편성했습니다. 인용 기사에는 이 의원 말을 인용해 ‘폭설 대신 정치’ ‘’교통방송’인가 ‘고통방송’인가?’처럼 감정을 자극하는 제목까지 붙였습니다. 

▲ 사실 검증이 안 된 주장을 제목에 그대로 인용하거나 앞부분에 배치했다. 클릭 수가 수익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언론사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한다. ⓒ 이예진

조회 수를 얻기 위한 자극적인 제목은 언론의 오래된 관행입니다. 지난해 코로나19 초기 보도에서도 이 현상은 두드러졌습니다. 일부 언론은 WHO 권고 이후에도 중국 혐오 우려가 있는 ‘우한 폐렴’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코로나19 1차 유행 당시 ‘슈퍼전파’ ‘패닉’ ‘공포’와 같이 자극적이고 과장된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감염병보도준칙은 불안을 가중할 수 있는 과장된 표현을 제목에 쓰지 말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유명인의 죽음을 악용한 언론도 있습니다.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윤리와 자살보도 권고 기준까지 저버립니다. 

유튜브 채널은 허위조작정보와 비윤리적인 정보전달의 온상이 된 지 오랩니다. 문제는 뉴스 장사에 익숙해진 언론이 ‘복붙보도’와 ‘제목 어그로’를 기술로 치부하며 보도의 질을 떨어뜨리는 관행이 일상화했다는 것입니다. 돈으로 연결되는 조회 수의 가치는 과대평가되고 진실에 가까운 보도는 쉽게 묻힙니다. 진실이 묻히고, 과장과 ‘카더라’가 뉴스가 되는 세상에서 어떤 뉴스를 생산해야 할지,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CBS 정신을 담은 뉴스

CBS도 회사를 유지하려면 돈을 벌어야겠죠? 저도 더 많은 시민이 CBS 뉴스를 소비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CBS 뉴스의 독자가 많아진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진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66년 동안 CBS 뉴스는 시민과 함께 아파하고, 함께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왔습니다. 군사독재 시기에 권력에 저항하다 7년 동안 보도 기능을 잃었던 적도 있습니다. 흔들림 없이 진실과 정의를 전하겠다는 CBS의 가치를 지킨 대가였습니다. 저는 뉴스의 진실과 언론의 가치가 불신받는 오늘, 다시 CBS 뉴스의 정신을 재확인합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CBS 뉴스 정신이란 언론은 권력이 아닌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기본을 되새기는 일입니다. 

▲ 4·19혁명 모습을 생중계하는 CBS. CBS는 지난 66년 동안 사회정의 구현과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기본정신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시민의 아픔을 함께했다. ⓒ CBSJOY 유튜브 채널 갈무리

작년 <노컷뉴스> 기획 보도인 ‘'탈시설 성지' 스웨덴에서 찾는 장애인의 미래’는 CBS뉴스 정신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기획은 ‘탈시설 사회’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스웨덴의 사례를 분석하고 토론회를 열어 깊이 있는 취재를 했습니다. 기사를 통해 탈시설 정책의 필요성과 국내 장애인 정책의 문제점을 짚고, 장애인의 자립을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CBS는 약자를 대변하는 언론입니다. 약자의 말을 힘껏 전달하는 곳입니다. 세상은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의 눈물과 고통, 좌절을 담아내는 ‘진짜뉴스’를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속보는 최소화, 뉴미디어는 최대화

CBS 뉴스의 역사와 정신은 현재로 이어져야 합니다. 언론의 가치를 돈으로 치환하는 세상에 반기를 들겠다는 선언이 이 시대 뉴스 생산자의 사명이라 믿습니다. 새해 뉴스를 만들 때 다음의 원칙을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속보를 최소화하십시오. 올해부터 우리 회사는 기획∙탐사보도를 더욱 강화합니다. 복사·붙여넣기가 불가능한 뉴스 생산에 주력합시다. 심층취재팀이 깊이 있는 기사를 완성할 수 있도록 지원을 늘리겠습니다. 아이템 발굴과 취재 과정에서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조직을 개편하겠습니다. 기획∙탐사보도 특성상 긴 분량의 기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인터랙티브 기사, 오디오 콘텐츠화, 영상 콘텐츠화 등 협력 체계가 잘 작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겠습니다. CBS 뉴스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시민의 편에서 바라보고 깊이 있게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2019년 8월 30일 방송한 <댓꿀쇼> 190회. <김현정의 뉴스쇼> 청취자를 초청해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댓꿀쇼>는 올드미디어인 라디오와 뉴미디어인 유튜브를 잘 접목한 사례로 꼽힌다. ⓒ CBS 김현정의 뉴스쇼 갈무리

뉴미디어를 최대화하십시오. 뉴미디어는 단순히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SNS를 활성화하는 일이 아닙니다. 뉴스를 다양한 플랫폼 형식으로 제작하고 유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상과 내용에 따라 알맞은 형식을 새롭게 적용해 뉴스 전달 효과를 높여야 합니다. CBS 소속 유튜브 채널 ‘씨리얼’은 미래 세대에게 익숙한 영상 콘텐츠 형식으로 미래 세대의 담론을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이버 학교 폭력 피해자, 기후 위기, 돌봄 노동, 비혼 등 기성 언론이 소홀히 하는 의제를 다룹니다. 

<김현정의 뉴스쇼> 후일담 코너인 <댓꿀쇼>는 유튜브 라이브의 특성을 잘 활용한 사례로 꼽힙니다. 본방송이 시사 현안의 당사자, 관계자, 전문가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다면, <댓꿀쇼>는 직접 취재하고 섭외한 기자와 피디를 중심으로 시사 현안을 풀어내며 공론의 장을 넓혔습니다. 언급한 콘텐츠 이외에도 다양한 디지털 크로스미디어 시도를 이어 가길 바랍니다. 활용하는 디지털 기술이 뉴스 구성과 전달에서 분명한 역할을 하도록 기획하는 것이 뉴미디어 전략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올 한 해 회사는 시대를 관통하여 레거시에서 미래 뉴스 미디어로 뻗어갈 유연한 조직을 만드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우리는 뉴스 장사꾼이 아닙니다

언론은 단순히 이윤 추구만 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이익과 경쟁에 매몰되지 맙시다. 사람과 생명, 지구가 함께 살아가는 뉴스를 전합시다. 뉴스라는 포장지로 허위정보나 허술한 분석을 파는 뉴스 장사꾼이 되지 맙시다. 베껴 쓸 수 없는, 현장이 생생한 살아있는 내용으로 승부합시다. 디지털 환경을 조회 수 높여 광고 수익 얻는 곳으로만 여기는 얕은 장사꾼이 되지 맙시다. 디지털은 뉴스가 시민에게 닿을 수 있는 무수한 방법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그 길을 적극적으로 개척하여 시대를 앞서 걸읍시다. 회사는 기꺼이 투자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이 시대는 사람이 생명을 위해 정성 들여 만든 선물 같은 뉴스가 필요합니다. 시민과 약자를 위하는 CBS뉴스 정신을 담아 시대가 원하는 ‘진짜뉴스’를 생산할 여러분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신년 첫 주제는 ‘언론사 CEO 신년사’로, 청년기자가 언론사 CEO가 되어 시대정신과 언론의 역할을 제시한다. 지난해 우리를 덮친 코로나는 지구와 생명, 노동과 부의 불평등, 사회적 약자의 고통 문제 등 사회와 인간을 근본에서 돌아보게 했다. 세상에는 여전히 가짜뉴스가 횡행하고 언론은 정파주의에 빠져있다. 뉴노멀이 화두로 떠오른 2021년, 지난해에 이어 언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묻는다. (편집자)

편집: 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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