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다양성’

▲ 강주영 기자

한국인의 만화! 아기공룡 둘리! 초등학교까지 나도 둘리를 봤다. 둘리가 마침내 엄마와 상봉했지만 헤어지는 장면을 보고 꺽꺽 소리 내면서 울다가 눈이 퉁퉁 부었다. 길동 아저씨에게 늘 구박받지만 굴하지 않는 둘리, 엄마 없이도 씩씩한 그를 보며 세상 보는 눈도 키웠다. 둘리는 만나는 모두를 친구로 만들었다. 나날이 식구를 데려오는 둘리가 길동 아저씨의 집 말고 우리집에 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상상도 했다. 전혀 다른 별에서 온, 전혀 다르게 생긴 친구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친해지는 것을 보며 전 우주적 친화력에 빠져들었다.

서로 다르게 생긴 둘리와 친구들은 생각하는 방식, 좋아하는 음식, 취향도 모두 달랐다. 귀여운 또치와 기타 치는 마이클, 노래 잘 부르는 빨간 도우너는 고리타분한 길동 아저씨 집을 늘 쌩뚱맞은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어린 나이였는데도 호통치는 그의 고압이 전혀 통하지 않는 조합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다. 다름의 조합으로 가부장적인 길동 아저씨에 매번 하이킥을 날리는 둘리가 만든 사회는 곧 우리 민주주의와 다문화사회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사실을 좀 나이 들어 알게 되었다.

▲ 만화 <아기공룡 둘리>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평범하고 가부장적인 고길동의 집에 늘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낸다. 다양한 출신과 생김새, 취향을 가진 이들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을 그리고 있다. © 둘리나라

길동 아저씨 집만큼 다양한 건 우리 엄마의 유기농 밥상이었다. 못생긴 채소가 반찬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얘는 왜 이렇게 생겨 먹었냐”고 질문하곤 했다. 동화책에서 보던 녀석들이랑 모양새가 달랐기 때문이다. 유기농 채소와 과일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각자 적당한 비료와 일조량을 받고 자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식탁에서 체험하는 자연학습이라고 할까? 고구마 같은 감자도 있고 감자 같은 고구마도 있었으며 양파같은 파도 있고 양파 같지 않은 양파도 있었다. 농약이 뿌려진 밭이 아니라 우렁이가 기어다니는 옆에서 같이 자란 채소와 과일이 식탁을 채우는 걸 보고 배웠다, 상추도 상추다운 게 없고, 오이도 오이다운 게 없구나 하고. 백설공주에 나오는 사과는 종류 중 하나일 뿐 세상에는 다양한 사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둘리와 친구들이 전혀 다르게 생긴 것처럼. 그래서 그들이 담긴 접시도 각양각색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 내가 본 사회는 농약사회였다. 내가 밥상에서 만난 길동 아저씨 집에서 만난 세계와 달랐다. 모든 것이 똑같았다. 군대문화는 제초제였다. 치마와 머리 길이는 말할 것도 없고 날 때부터 곱슬하고 옅은 갈색 친구의 머리는 늘 학교에서 문제가 됐다. 친구는 한 달에 한 번 수십만원을 들여 미용실에 갔다. 도우너의 머리가 그렇듯 문제될 게 없던 그의 머리는 검고 직각으로 떨어지는 내 모발과 같아야 했다. 친구의 반짝이던 머릿결은 잦은 염색과 파마로 푸석해졌다. 동일화, 균일화, 정형화를 만들어내는 학교에서 나와 친구는 ‘한국인화’했다.

▲ 샐러드는 다채로운 채소와 과일이 잘 섞여 있을 때 맛이 좋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다양성이 존중될 때 민주주의도 가능하다. © Pixabay

기준이 다양하면 서로 비교할 이유가 없다. 천편일률적 군대문화에서 탈피해야 진정한 민주주의 구현이 가능하다. 대통령이 꿈이고 우주비행사가 꿈이던 이들은 지금 공시나 대기업 자소서에 목을 맨다. 너와 내가 아닌, 너는 나의 경쟁자가 된다. 성장만이 답이라는 교육과 획일적 문화가 오랫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효율성만 중시하는 사회에서 생각은 곧 방해물이다. 생각 없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이다.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으면 우리 몸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분명하다. 어딘가 아프다. 대한민국은 지금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극과 극으로 갈라져 있다.  단 것만 많이 먹으면 이가 썩고 짠 것만 너무 먹으면 혈압이 오른다. 우리 사회가 우리 몸이라고 생각하면 다양한 생각들이 유기적으로 버무려지고 순환될 때 사회는 잘 작동한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생각과 사람들이 어우러질 때 가능하다. 융합의 시대라고 말한다. 단지 티비가 디지털과 융합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도 그렇다. 섞여야 한다. 극우냐 중도냐 빨갱이냐로 구분 짓는 게 아닌 세 가지가 만나는 장을 꾸려야 한다. 남자가 치마를 입어도 신기하지 않은 세상, 머리를 염색하고도 당당하게 면접장에 갈 수 있는 사회, 피부색이 어떻든 차별의 언어로 규정되지 않는 사회, 내 편도 비판할 수 있는 사회.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던 고길동의 집이 우리 한국사회가 가야 할 곳이다. 똑같이 매던 넥타이를 풀어헤쳤을 때 넥타이부대는 가장 근사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이봉수)

편집 :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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