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종편·보도전문 채널 '허가제' 폐지 이슈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발언이 화제다. 종편·보도전문 채널 '등록제'를 검토할 시기가 됐다는 내용이다. '허가제'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당장 추진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지만, 파장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방통위는 지상파를 비롯한 종편·보도전문 채널 등 방송사 허가 여부를 심의·의결한다. 방송의 공적 책임을 훼손하는 방송사에 ‘승인 취소’ 처분을 내릴 수 있다. 방송 허가제는 방송사의 이탈을 견제하는 강력한 규제 수단이다.

2009년 7월 방송법·신문법·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 등 미디어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소유권 규제를 대폭 완화해 신문사와 대기업도 종합편성채널 지분을 소유할 수 있게 했다. 상당수 언론학자들은 양질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열릴 것이라 기대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종편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종합편성채널은 뉴스 보도를 비롯해 드라마·교양·예능·스포츠 등 다양한 장르를 편성하는 채널이다. 다양한 편성을 보여주는 채널은 JTBC뿐이다. 나머지 3사는 시사대담·예능 프로그램 등 제작비가 싼 특정 장르 콘텐츠만 내놓는다.

▲ 한상혁 방통위원장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SBS

무딘 칼을 쥔 방통위 '무용론'에 빠지다

지난 12월 MBN은 재승인 심사에서 기준점수 650점에 미달하는 640.50점을 받았다. SBS와 KBS2는 각각 641.55점과 647.13점을 받았다. 방통위는 세 방송사에 조건부 재승인을 해줬다. 해당 처분을 받은 방송사들은 청문 절차를 거쳐 방통위 최종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방통위가 최종 심사에서 재승인을 취소한 사례는 2004년 iTV 경인방송이 유일하다. 요식행위에 가까운 조건부 재승인 남발은 심사의 실효성 논란을 불러왔다. 원칙을 벗어난 관행이 ‘설마 방송국 문을 닫게 하겠어’ 같은 안일한 태도만 부추겼다. 방통위는 왜 규제의 칼을 쥐고도 재승인 심사에서 주저하는 태도를 보일까?

▲ 지난 2004년 12월 31일 방통위로부터 재승인 취소 처분을 받은 경인방송은 방송 종료를 알리는 자막 화면을 내보낸 뒤 애국가 송출 후 방송을 종료했다. ⓒ SBS

방통위는 2004년 iTV 경인방송 재허가를 거부할 때 호된 후폭풍을 견뎌야 했다. 수도권 시청자들은 시청권 침해라며 들고 일어섰고,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 문제도 불거졌다. 모든 잡음을 방통위가 고스란히 떠맡아야 했다. 한편 2009년 재허가 취소 처분을 받은 서대구방송은 재허가거부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법정 공방이 이어진 7년 간 서대구방송은 방송을 계속했다.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재승인 심사 평가가 반영되지 않는다. 여러 번 법정 제재를 받은 TV조선도 이 허점을 악용해 연달아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방송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헐거운 법망은 방통위 무용론을 불러왔다.

2019년 경기방송은 경영 불투명성과 부적절한 이사회 운영 등을 이유로 재허가 취소가 유력했다. 방통위는 경기도민 청취권 보장과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호 등을 이유로 조건부 재허가를 의결했다. 그런데 경기방송 이사회는 불과 두 달 만에 자진 폐업을 신고했다. 애초 재허가 취소 처분을 내렸더라면 1년 유예기간에 새로운 사업자 선정을 꾀할 수 있었지만, 초유의 자진 폐업 사태로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다. 경영을 문제 삼아 재허가를 거부했지만, 그 피해를 노동자가 떠안게 됐다. 칼은 방통위가 쥐고 있지만, 방송사가 의도하면 칼자루를 빼앗기고 마는 허점이 드러났다.

▲ 2019년 5월 7일, 하루아침에 해고자 신분이 된 경기방송 종사자들이 경영진의 위장폐업을 주장하며 1일차 집회를 시작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방통위에게 재허가 심사는 양날의 칼이다. 영향력이 큰 방송사를 문 닫게 하려면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사회적 합의가 아닌 방통위의 독단 결정이라는 따가운 시선도 피하기 어렵다. 방통위는 정부 여당이 추천한 위원이 다수를 차지한다. 정부 인사가 포진한 방통위가 방송사 재허가를 거부하면 언론 탄압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다. 이런 현실 때문에 방통위는 최소한의 견제 기능만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종편 퇴출 여부를 두고 여전히 소모적인 논쟁만 지속하는 이유다.

허가제 폐지론: 등록제로 전환해야 특혜도 사라진다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려는 걸까? 한 위원장의 발언은 종편 허가제 폐지 논의에 불을 붙였다. 종편 허가제를 등록제로 전환하면 자연스레 재허가 심사는 사라진다. 기존 종편은 탈규제 환경에서 방송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고, 일정한 기준을 갖춘 새로운 사업자도 종편·보도전문 채널에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다. 그러나 지상파에 대한 비대칭 규제를 가속하는 악수가 될 수도 있다. 종편도 공익적 가치를 지킬 책무가 있고, 최후의 보루로 승인 취소 여지를 남겨야 한다는 견해와 상치된다.

종편 허가제는 구시대 유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 언론을 통제할 목적으로 만든 방송법 조항이라는 것이다. 이는 허가제가 실은 특혜라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등록제로 자유시장에서 경쟁하는 tvN 같은 채널과 달리, 종편은 정부의 공식 승인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시장 우위를 점한다. 지난 10년간 보수 정권은 20번대에 들어가는 황금채널 배치, 의무재전송, 24시간 방송, 중간광고 허용, 방송통신발전기금 면제 등 특혜로 종편을 성장시켰다. 출범 당시부터 문제가 제기된 의무재전송은 7년이 지난 2019년 들어서야 환수됐다. 종편의 진입장벽을 허물면 특혜도 사라질 것이다.

▲ KBS1 <저널리즘 토크쇼 J>에서 정준희 교수가 종합편성채널이 받은 특혜 네 가지를 설명하고 있다. ⓒ KBS

허가제의 논리적 기반도 위태롭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서 전파 희소성에 근거한 방송규제는 시대착오다. 방송의 영향력도 과거와 달라, 유튜브를 비롯한 디지털미디어도 방송에 준하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방송은 더는 공론장 형성 기능을 독점하지 못한다. 전파를 공공재로 보는 시각도 희미해졌다. 전파 이용의 궁극적 수혜자가 공중이라는 이유로 국가 주도의 규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1949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공정성 원칙(Fairness Doctrine)’을 제정해 특정 방송이 가치 편향된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악의 사태를 예방하고자 했다. 당시 미국의 전국 단위 방송국은 NBC ABC CBS 단 세 곳이었다. 소수 방송사가 영향력을 독점하는 미디어 생태계에서 공정성 원칙은 최후의 방어선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지상파 채널과 케이블 방송이 다양해지면서 공정성 원칙은 방송에 재갈을 물렸다. 1987년 FCC는 공정성 원칙을 폐지했다. 그러나 이 조처는 언론의 자유를 신장하기 위한 것이지, 방송의 공정성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등록제 전환보다 우선해야 할 것

지난 5월 김현대 <한겨레> 사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면서 “방송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라며 장기적인 ‘한겨레 종편’ 개국 의지를 밝혔다. 예상되는 진출 경로는 기존 종편에 재승인 취소 처분이 내려지면 공석에 <한겨레>가 들어가는 것이다. 종편 등록제 전환이 이뤄지면 이런 복잡한 과정 없이 <한겨레>는 곧장 종편에 진출할 수 있다. <한겨레>뿐만이 아니라 다른 데도 문이 열린다. 포화 상태인 방송 시장에 치킨게임이 예고된다. 종편 등록제는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까?

거대 신문사·대기업 등 다양한 주체가 종편·보도전문 채널에 뛰어들면 콘텐츠 다양화를 기대해볼 만하다. 다만, 지난 10년간 종편 4사가 보여준 것은 달랐다. 그들은 정파성과 진영논리를 앞세워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했다. 2013년부터 종편·보도전문 채널의 보도교양 프로그램 법정 제재는 지상파를 꾸준히 앞질렀다. 올해도 코로나19 관련 허위 정보를 퍼뜨려 방송심의규정을 32건 위반했다. 그중 절반인 16건을 종편 3사인 TV조선 채널A MBN이 차지했다.

▲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지상파 방송과 종편·보도전문 채널 보도교양 프로그램 방송심의 법정제재 건수를 나타낸 그래프.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종편 채널들이 공통으로 밀고 있는 시사대담·보도 프로그램은 정파적 색채가 짙은 소수 출연자가 방대한 사회 이슈를 다루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방송사로서는 적은 비용으로 특정 진영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어 효자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종편 등록제로 사업자가 난립하면 어떻게 될까? 정파성이 강하고 자본력이 좋은 사업자가 유리할 것이다. 지난한 소모전 끝에 종편 시장 전체가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집단으로 고립될 우려도 있다.

방통위는 20년이 넘은 방송법이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방송 관련 법·제도 개편 의지를 보인다. 사실 방송법은 2010년 종편을 도입하던 때부터 개편이 절실했다. 그러나 보수 정권이 집권하는 동안 방송법 개편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과거 지상파 방송에 적용하던 엄격한 규제는 점차 조건부 재승인 같은 면죄부로 희석됐다. 결국 안일해진 종편은 정부의 허가와 각종 특혜를 뒤로한 채 공적 책무를 저버렸다.

현재 미디어 환경에 적합한 법체계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 최소한의 대비도 없이 종편을 풀어주기에는 방송시장이 지나치게 포화 상태다. 등록제로 전환해 종편이 가진 각종 특혜와 시장우위를 회수하면서도, 무용론에 시달리고 있는 방통위의 견제 기능을 회복하는 방송법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


편집: 이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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