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야, 한국사회!’ ➄ 국가의 실행력

‘좋은’ 조장과 리더

‘좋은’ 조장이 되고 싶었다. 학부 시절, 복학 이후 첫 조별과제에서 조장을 맡았다. 매주 4~5분 길이 영상을 만드는 전공수업이었다. ‘꼰대 복학생’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조원이 낸 의견은 다 수용하려고 노력했다. 문제가 금세 드러났다. 조원 모두 편한 것만 찾았다. 촬영은 오전에 시작해 반나절을 넘어가면 안 되고, 출연자 섭외와 소품이 필요한 주제도 반대했다. 촬영 장소는 무조건 학교 근처였다. 좋은 아이디어는 촬영이 힘들고 귀찮다는 이유로 폐기됐다.

다른 조는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배경이 낮일 때도 밤일 때도 있었다. 촬영 장소는 서울을 벗어나 바다, 소도시, 시골집이 있었다. 돈을 주고 배우를 구한 조, 소품 준비만 하루를 쓴 조까지 있었다. 내용도 흥미로웠다. 바다에서 인어를 만난 이야기, 지방에서 히치하이킹 하는 이야기, 별을 보러 시골에 가는 이야기는 완성도도 높았다. 우리 조가 만든 학교에서 과제를 못 한 이야기, 동기와 싸운 이야기, 자취하는 이야기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만든 영상은 재미도 감동도 없었다.

한 달이 지나고 교수가 나를 불렀다. 교수는 지금 방식으로 과제를 하면 우리 조뿐 아니라 다른 수강생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경고했다. 변명을 했다. 결과물은 좋지 않았지만, 모든 조원의 의견을 들으며 민주적으로 조를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수가 짧게 ‘하’ 소리를 내며 한숨을 쉬었다. 좌우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모두가 좋아하는 것만 하는 거, 딱 망하는 길이야.”

‘좋은’ 조장은 조원 모두의 의견을 잘 듣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조장의 의견보다 조원 모두의 의견으로 조를 이끄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옳은 방법이 아니라 욕먹지 않는 방법이었다. 조원이 원하지 않아도 필요한 일이 있었다. 힘들고 귀찮더라도 필요하면 이틀을 촬영할 수도, 소품과 배우를 준비할 수도, 서울을 벗어날 수도 있어야 했다. 좋은 아이디어라면 조원을 설득해야 했다. 조장의 역할이었다. ‘진짜 좋은’ 조장은 필요한 일을 알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조원을 설득하는 리더여야 했다.

4대강 재자연화가 더딘 이유

<뉴스타파>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문재인 정부의 4대강>을 보며 그때가 떠올랐다. 다큐멘터리는 4대강 재자연화를 약속한 문재인 정부가 관련 사업을 적극 추진하지 않는 이유를 다룬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보 개방과 4대강 사업 감사를 지시하며 강을 되살리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의지만큼 행동이 빠르지 않았다. 취임 3년차, 2019년 2월 민간 전문가가 참여한 ‘4대강조사평가단’은 경제성을 검토해 금강 세종보와 영산강 죽산보를 철거하고 금강 공주보도 공도교를 남기고 철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 2019년 2월 22일 ‘4대강조사평가단’은 금강 세종보와 영산강 죽산보는 해체, 금강 공주보는 부분 해체, 금강 백제보와 영산강 승촌보는 상시 개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는 의견을 듣는다는 이유로 4대강 재자연화를 착수하지 않고 있다. ⓒ <뉴스타파>

보고서가 나온 지 1년이 지났지만 4대강 재자연화는 착수조차 못 하고 있다. 보 처리 방안이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로 넘어간 뒤, 총리실은 여론조사를 한 번 더 해보자고 제안했다. 4대강조사평가단은 보 처리 방안을 준비할 때, 국민과 지역주민 2000명을 대상으로 이미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쳤다. 2019년 4월에는 대한하천학회와 환경운동연합이 보 처리방안에 관한 여론조사를 했다. 응답자 81.8%가 4대강조사평가단이 발표한 안에 찬성했다. 다큐멘터리는 한 여당 의원실 보좌관이 총선을 의식해 보 철거를 늦춰야 한다는 발언도 전한다. 정부는 보 처리를 반대하는 보수 언론과 지역 농민, 선거에 미칠 영향까지 의식했다.

다큐멘터리에서 정부의 모습은 의견을 잘 듣는 ‘좋은’ 조장이었다. 학교 과제와 정부의 개혁과제는 차원이 다르다. 정부가 ‘좋은’ 조장이 되면 수많은 희생과 고통이 따른다. 4대강 재자연화 연기가 이를 증명한다. 정부가 의견을 듣는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강 생태계는 더 망가졌다. 정부는 무엇이 옳은 일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문제는 실행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4대강 대형보를 상시개방해 재자연화를 추진한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4대강 재자연화는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필요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 4년, 정부가 좋은 조장 흉내를 내는 사이 ‘필요한 일’인 개혁과제들은 허공을 떠돌고 있다.

의견만 듣다가 쌓여버린 과제들

모두가 원하는 방향을 찾다가 추진하지 못한 대표적인 정책과제가 ‘차별금지법’이다. 2006년부터 논의돼 온 해묵은 과제다. 매번 일부 종교계의 강한 반발과 ‘동성애를 장려한다’, ‘소수자의 기분에 따라 처벌받는다’는 등의 오해에 부딪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앞둔 후보자 시절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하며 법안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는 반대 여론을 의식해 명확한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 지난 6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대표발의안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제정 요구 의견이 있었지만,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위한 정부여당의 움직임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위험의 외주화’와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같은 처지다. 지난 24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중인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를 찾았다. 김 원내대표는 야당인 국민의힘이 협조하지 않기 때문에 상황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논의에 시간이 걸릴 뿐 제정이 무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김미숙 씨는 믿지 않았다. 여당이 기업과 야당의 반대 여론을 의식해 12월 9일 마무리된 정기국회 내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논의를 미뤄왔고, 재논의조차 노동계 요구사항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 농성장을 찾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왜 이 법은 꼭 야당이 있어야 돼요”라는 김미숙 씨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KBS

정부는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추진 방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모든 의견을 수용해 민주적으로 정책을 입안하는 ‘좋은’ 조장이 아니다. 세상에 필요한 일이라면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도 추진해야 한다. 귀를 닫은 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라는 게 아니다. 왜 필요한 일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 뒤, 강력한 추진력으로 정책을 성취해야 한다. 실행력 없는 정책 추진은 포퓰리즘일 뿐이다.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좋은 조장이 아니라, 강력한 실행력을 갖는 눈에 보이는 성과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실행하라

촛불 정신이 요구한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다짐한 문재인 정부다. 국민은 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국회까지 힘을 실어주었다. 성과는 아쉽다. 12월 9일 마무리된 정기국회에서 경제개혁 법안으로 추진되던 ‘공정경제 3법(상법개정안·공정거래법개정안·금융그룹감독법제정안)’은 원안에서 후퇴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거래법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었지만 폐기됐다. 감사위원 선출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3%를 적용하는 조항도 원안보다 후퇴했다.

선거에서 비례성을 강화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꼼수’ 위성정당 등장으로 무산됐다. 공정한 사회를 말하며 엄격하게 적용한 인사 기준은 정부 스스로 파기했다. 여당은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완전 폐지를 약속한 부양의무제는 폐지되지 않은 채 ‘방배동 모자 비극’을 만들었다. 의료 공공성 강화를 약속했지만 공공병상은 확충되지 않았고, 코로나19와 사투중인 국민은 병상 부족으로 죽음을 맞아야 했다. 여론이 좋지 않아서, 야당이 협조하지 않아서, 이해집단이 반발해서, 예산이 부족해서…, 핑계는 얼마든지 있다. 과연 정부여당은 당당히 개혁과제를 설명하고, 설득하고, 추진했을까?

▲ 2017년 5월 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그 직후 80%가 넘는 국정수행평가 지지율을 기록했다. 모든 개혁을 한꺼번에 추진할 수는 없지만, 정권 초반 개혁의 고삐를 더 죌 수는 없었는지 국민은 묻는다. ⓒ KBS

모든 개혁은 갈등과 비용을 발생시킨다. 정부가 4대강사업으로 만들어진 보를 건드리지 않으면 갈등도 비용도 들지 않는다. 보 처리는 자연을 위한 일이다. 헌법 제35조는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사람이기에 당연히 누려야 하는 인권과 평등을 위한 ‘차별금지법’은 유엔의 제정 권고를 받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고, 여당도 법안을 제정하겠다고 말했다. 두 법안은 반대 여론이 우세하지도 않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다. 그렇다면 더 많은 국민이 불만을 표시할 과제들, 곧 불평등을 개선하고 복지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보편 증세, 경제정의 실현, 노동현장 불평등 개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세 도입은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꼰대’ 소리도 들어라

학부 시절 조원들을 다시 모아 다시 시작하자고 말했다. 쉽지는 않았다. 겨우 넷을 설득하면서 격해지는 감정을 참았다. 조원 한 명은 회의 도중 말없이 자리를 떴다. 다른 한 명은 회의 내내 스마트폰만 보다가 “아무 생각 없는데요”라는 한마디만 던졌다. 회의를 마치고는 ‘나댄다’는 뒷말과 듣기 싫던 ‘꼰대’ 소리도 들었다. 모임 뒤 첫 과제는 내 설득이 통한 조원 한 명과 둘이서 했다. 나머지 조원은 촬영장에 ‘얼굴도장’만 찍고 갔다.

결과물이 나오자 나머지 조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과감한 시도가 늘었다. 야간에 촬영하려고 조명 장비를 빌리고, 롱테이크를 위해 10번이 넘는 NG도 감수했다. 성과가 나타났다. 우리 조의 영상을 감상한 수강생의 박수 소리가 커졌다. 교수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성적은 비록 B+를 받았지만, 우리 조의 영상 중 하나가 ‘교수가 뽑은 이번 학기 베스트 3’에 들었다.

▲ 코로나19에 따른 고통은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된다. 코로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을 넘어설 실질적인 제도와 법, 사회시스템을 요구한다. ⓒ KBS

정부가 해야 할 설득을 학교 과제 수행 조장의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다. 5천만 국민과 함께 정책과제를 추진해야 한다. 국민이 좋아하는 일만 하는 정부는 필요하지 않다. 모두가 좋아하는 일만 하는 건 나라가 ‘망하는 길’이다. 스스로 제시한 개혁과제조차 성과를 내지 못한 상태에서 코로나19로 붕괴한 민생은 어떻게 복구할 수 있을까? 사회적 약자들이, 노동자들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건전한 재정 운운하는 정부에게 효과적인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국가의 강력한 실행력과 그 성과물인 법과 제도, 사회적 시스템이다. 이제 1년 남았다.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야, 한국 사회!‘ 2020년이 저물어간다. 촛불로 탄생한 개혁 정부 임기가 1년 남짓한 지금, 우리는 어디에, 어떤 얼굴로 서 있는가? 진척이 없는 개혁과제의 달성, 코로나19가 낳은 공동체 붕괴와 경제위기 극복, 뉴노멀로 상징되는 미래사회 준비 등 현안이 산적한 한국사회의 당면과제를 짚는다. (편집자)

편집 : 이예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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