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색깔론'

▲ 신지인 기자

동생의 옷장에는 유독 노란 옷이 많다. 입대 전 동생은 180cm 넘는 키에 60kg을 겨우 넘는 깡마른 체형이었다. 동생은 직감적으로 자기 체형을 보완할 색을 찾았다. 실제로 따뜻한 색 계열의 노랑은 팽창색이라 실제 체형보다 크게 보이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어쩐지 병아리의 노란 털이 복실복실 복스럽고, 노랗게 익은 벼 이삭은 바라만 봐도 찐덥지게 정이 가더라니.

노랑은 팽창의 심상을 갖고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촛불의 미학>에서 노란색을 이렇게 표현했다. '노란색의 아름다운 기름은 응축된 빛, 팽창되기를 바라는 응축된 빛이다.' 녹초 상태에서도 심지 위로 타오를 날을 기다리는, 노랑은 인내의 빛이다. 동양에서 노랑은 태양을 상징한다. 태양의 광원이 팽창하며 들판에 고루 퍼지는 것이 곧 풍요와 부다. 그 때문에 노란색은 오직 왕의 의복색으로, 아무에게나 허용되지 않는 권위의 상징으로 군림해왔다.

현실 정치에서도 노랑은 자주 등장한다.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화민주당을 창당할 당시 노랑을 상징색으로 썼다. 노랑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의 상징색,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학생들이 만든 단체 '평화나비 네트워크'의 색이기도 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노란 리본으로 희생자의 무사귀환을 염원했고, 진보정당인 정의당의 당색이 노랑이다. 상대적 진보, 정치적 야당 진영에 있던 이들이 주로 썼던 색깔이 노랑인 건 우연이 아니다.

왜 노랑에 끌리나? 조직이 팽창하려면 연대를 필요로 한다. 진보진영이나 야당은 대개 강자에 대항하는 약자의 위치에 있다. 이들은 뭉쳐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팽창을 일으키는 노랑이 이들에게 본능적으로 끌리는 이유다. 다수가 늘 정답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강자가 잘못했을 때 약자가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그에 맞는 조직적 능력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노란 리본은 정부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역할을 했고, 노란빛 평화나비는 28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를 이끌었다.

▲ 노랑은 팽창을 바라는 인내의 빛이다. 그래서 노랑은 분노, 저항 의식과 연결된다. ⓒ Pixabay

팽창은 폭발을 잠재한다. 그래서 노랑은 곧 기층집단의 분노, 저항의식과 연결된다. 2016년 광화문에서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대 규모 집회가 열렸다. 200만이 넘는 시민들은 노란 촛불을 든 채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주권을 유린당한 시민들은 대통령 탄핵을 외쳤고, 그해 최대 인원이 모인 12월 3일로부터 6일 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노란색은 뭉치고 폭발해 주권을 되찾고 마는 민중의 성질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한편, 노랑은 다른 색 한 방울만 섞여도 금방 탁해진다. 그래서 노랑은 제 울타리에 들어오려는 이가 노란색인지 아닌지 철저히 따진다. 이 탓에, 속이 좁고 마음 씀씀이가 인색한 사람을 뜻하는 '노랑이'라는 단어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게오르그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조직의 권력이 결국 소수에 집중되는 '과두제의 철칙'을 말했다. 폐쇄적이고 내집단 의식이 강한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집단주의로 흐른다. 그래서 조직은 항상 아메바처럼 운동 상태에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노랑의 철칙'이라 부르고 싶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이봉수)

편집 : 유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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