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당신이 질문해 주세요”

▲ 신현우 PD

테스 형.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요즘 당신을 이렇게 부른다고 하더군요. 한국이 무슨 나라냐고 물어보시겠군요. 아테네에서 동쪽으로 쭉 가다 보면 대륙 끝에 조그마한 반도가 하나 나옵니다. 거기 한국이 있는데 대단한 나라입니다. 가난하던 나라가 50년 만에 세계 경제를 이끄는 나라가 됐습니다. 노예였던 자가 한 달 만에 500인회를 이끄는 시민으로 변했다고 비유하면 당신의 이해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한국은 또 이상한 나라입니다. 2,500년 전 대륙 반대 끝에서 태어난 당신을 ‘테스 형’이라고 부릅니다. 지구 반대편에 살던 저를 신처럼 추앙하는 이도 있습니다. 참으로 대단하고 이상한 나라입니다.

▲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포기할 수 있다(I would trade all of my technology for an afternoon with Socrates)"라고 말했다. 둘은 만나서 무슨 대화를 할까. ⓒ KBS

내가 "당신과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걸겠다"고 말했을 때도 한국에선 난리였습니다. ‘역시 스티브 잡스’, ‘역시 소크라테스’ 하더군요. 여기저기서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인문학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쓰더군요. 당신은 인문학과 철학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인간에 관한 이해,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 이런 류의 해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융합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저를 모델로 놓고 공부하더군요. 뭐든 어떻습니까? 그 덕분에 한국에서 버는 맛이 아직도 쏠쏠합니다.

당신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심오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닙니다. 새로운 생각이 필요할 때 당신이 떠올랐을 뿐입니다. 저는 'Think different'란 말을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있습니다. 다른 생각이 왜 필요하냐고요? 단순합니다. 저는 경영자입니다. 결국 돈 버는 문제입니다. 새로운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즈음 당신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을 만나면 ‘신박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 같았습니다. 당신과 나누는 대화가 낳는 새로운 생각이 제 회사를 포기해도 될 만큼 신선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질문하기 좋아하는 당신은 ‘왜 하필 나를 만나고 싶은가’라고 물어보겠죠. 나는 당신의 질문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사람이 필요합니다. 내 주위 사람들이 질문을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들의 질문에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나를 규정하고 질문을 던집니다. 아까 아이콘이라는 이야기를 했지요? 모두가 나를 스티브 잡스라는 이름과 애플 CEO라는 직책, 세상이 만든 이미지에 가둔 채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을 만나고 싶은 이유입니다. 당신은 아무도 나에게 던지지 않은 질문을 할 유일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부릅니다. 혁신이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혁신을 ‘규정된 나를 뛰어넘는 일’로 설명합니다. 당신은 혁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당신은 어떤 질문으로 제게 혁신을 알려줄 겁니까? 당신과 대화하고 싶은 욕구가 다시 샘솟습니다. 당신과 나누는 대화가 새로운 저를 만들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제가 만드는 혁신적인 생각은 애플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겠죠. 이 역시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테스 형. 입에 붙으니 길이도 짧고 친근하군요. 당신과 같은 시대에 살지 못해 아쉽습니다. 당신과 제가 만났다면 인류 역사는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모든 것이 당신과 저의 만남을 두려워한 신의 선택은 아니었을까요? 생각이 지나치다면 사과드립니다. 가볍게 넘기시죠. 조만간 또 편지하겠습니다. 인기 식기 전에 충분히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질문이 필요한 스티브


편집 : 박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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