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비상구' 서평공모전] 가작 수상작

사실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마지막 비상구>라는 책 제목은 너무 비상해 보였다. 비상구는 화재 등의 위급상황에서 쓰는 단어가 아니던가.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비상구라기엔 지구 수명이 한참 남지 않았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이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책을 펼치자마자 ‘대한민국은 세계 4대 기후악당’ ‘기후위기대응지수(CCPI)가 61개국 중 58위로 바닥권’과 같은 표현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진심으로 대하며 읽기 시작한 건 원전밀집지역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였다.

어린 주현이가 ‘생존배낭’을 챙긴다니

왜 조그마한 어린아이 주현이가 뛰어놀기 바쁠 시간에 성인인 나도 모르는 ‘생존배낭’을 챙기고 있어야 할까 하는 생각에 답답함을 느꼈다. 경주에 사는 평범한 아이가 경주지진 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생존배낭을 챙기며 ‘너무 무서우니 원전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애타는 외침처럼 들렸다. 동시에 뉴스에서 아무리 고리원전, 월성원전에 관해 떠들어도 귓등으로 듣던 나의 무심함을 돌아보게 됐다. 본가인 대구의 옆 동네이자 겨우 한 시간 거리인 경주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나는 무심했고, 또 무지했다.

▲ 2016년 9월 경주 지진을 겪은 한 시민이 생존배낭을 준비하는 모습. 담요나 긴 옷들 위주로 준비하고 있다. ⓒ KBS

책을 읽는 동안 원전의 실체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답답함은 더해졌다. 한의학과에 재학 중인 나는 갑상선암 등 건강과 관련된 통계에도 눈을 자주 멈추었다. 원전 밀접지역의 주민과 그 아들, 그리고 17살 난 손녀의 몸에서도 삼중수소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삼중수소는 DNA 염기서열을 끊거나 훼손하는데, 이를 몸이 바로잡는 과정에서 비정상적 세포발생이 가능하다고 한 줄이 쓰여 있었다. 생명과학에 관해 배운 나는 이 한 줄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이것이 사람에게 유전적으로 어떻게 발현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후쿠시마 일대 동·식물에서 발견된 괴생물체와 기형아 발생통계를 보며 두려움을 느낀 일이 있다. 온라인 검색 사진으로 본 괴생물체는 동물의 눈이 세 개라든가, 코스모스인데 수술·암술이 바뀌어 피는 등 자연적 모습을 벗어난 형태였다. 방사능이라는 것 자체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게 만드는 물질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원전 밀집지역인 월성에서 사고가 나면 7시간 안에 최소 30킬로미터(km)를 100만 명이 탈출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재난대응) 지침은 ‘자가용으로 알아서 대피’라고 되어있다. 필자 또한 원전 밀집지역에서 한 시간 거리에 20년 넘게 거주했는데도 ‘방사능 재난훈련’이라는 용어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다. 실질적으로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민의 인식을 왜곡한 ‘원전 마피아’

그러나 이런 대책 미비와는 대조적으로, ‘친(親)원전’에 관련된 내용을 기사로 써 주거나 방영해주는 대가로 언론에 많은 돈이 지원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혹시 원전에 관한 나의 안일한 생각도 이런 언론보도 탓이 아니었는지 돌아봤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이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하는 생각에 위기감마저 느꼈다. 과연 ‘원전 마피아’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이렇게나 건강, 안전 등 다양한 통계가 경고하고 있는데도 위험한 원전을 줄이지 않고, 언론에 손을 써서 국민의 인식을 왜곡해 왔다니. 그리고 그 피해는 원전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고스란히 보고 있다니. 책을 읽어갈수록 후쿠시마의 ‘원전 프로파간다’와 점점 겹쳐 보여서 답답함에 두려움까지 더해졌다.

‘환경’이라 하면 멀어 보이고 ‘에너지’라 하면 더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매 순간 환경의 혜택을 입고, 끊임없이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그 에너지의 출처를 모르면서도 말이다. 이 책으로 인해 매일 사용하는 에너지의 출처와 비용에 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에너지 사용 주체로서 책임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때도 후보자가 정책 중 환경 부문에 관해 어떤 공약을 내놓는지, 정책 이행률은 얼마나 되는지 지켜볼 것이다. 이 책을 끝까지 진지한 태도로 읽게 해 준 ‘주현이’를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책을 덮은 후에는 처음 집어 들었을 때와는 달리, 지금이야말로 ‘마지막 비상구’를 찾아야 할 시기임을 인정하게 됐다.

(*원 제목: 그동안의 무심함을 깨닫고 에너지사용 주체자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며)


편집: 이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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