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비상구' 서평공모전] 가작 수상작

십 년 전,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네팔로 교육 봉사를 간 적이 있다. 우리가 갔던 학교는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버스로 몇 시간을 달린 후, 두 시간 정도 등산까지 하고서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사실 카트만두에서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도 하루에 전기가 4시간밖에 들어오지 않는 데다 그마저도 수시로 끊기곤 했었는데, 그렇게 깊숙한 곳에 있는 학교이니 전기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전기뿐 아니라 수도 시설도 없어,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화장실도 땅을 파서 천막으로 겨우 가린 곳을 사용했다. 그곳에서 열흘 정도 일정을 마치고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와서 느꼈던 따뜻한 물의 감촉은 지금까지도 감동으로 남아있다.

네팔의 ‘전기·수도 없는 학교’에서 지냈던 기억 

이 책을 읽는 내내, 네팔의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원전과 화석연료가 얼마만큼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실제 그 현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2부에서는 그런 위험을 호소하는 목소리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나라의 에너지 구조가 원전과 석탄에 의존하고 있는 배경과 구조에 대해서 고발하고 있다. 

사실 2부를 읽으면서 많은 독자들이 분노의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취재를 한 기자 중 한 명이 후기에 쓴 것처럼,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이 정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촘촘하게 언론과 지역사회를 ‘관리’해 왔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3부에서는 우리가 겪고 있는 심각한 기후변화의 실상을 보여주면서, 지속 가능한 에너지 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대안에 대해 국외, 국내의 사례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준다.

무려 2년 가까이 긴 호흡과 꼼꼼한 자료조사들을 바탕으로 작성해 낸 기사의 내용들은 굉장히 방대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대함이 던지는 수많은 메시지 중에서도 가장 내 마음에 확실히 담긴 게 하나 있다. 기자들의 취재후기 중에서, 인터뷰 중 가장 힘들었던 게 ‘언론이 기사 써서 뭐가 바뀌느냐’ ‘언론 취재 응해봐야 바뀌는 거 없다’는 이야기를 주민들에게 들었다는 부분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준 언론이 없었다는 말과 같다. 주민들에겐 건강, 생계 등 현실에 관한 문제뿐 아니라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불신과 소외감도 심각했다는 얘기다.  

▲ 2018년 4월 경북 영덕군 달산면 무지개쉼터에서 풍력발전소 건설 반대집회를 열고 있는 지역 주민들. 이들은 집회에서 ‘피해주민을 무시하지 마라’ 등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 윤종훈 박지영

‘사람 이야기’ 담은 현장기록에서 희망을 보다  

하지만 취재팀 중 한 기자가 “사람이 쓰는 에너지인데, (기성언론의) 에너지 기사에 사람이 없었다”고 지적한 후 “우리 기사에는 사람이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듯, 이것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 중에 독일은 2022년 원전 폐쇄를 확정짓는 결정을 위해 정계·학계·산업계·종교계·시민사회 대표로 구성된 ‘안전한 에너지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가 끝장토론을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실 독일은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기초한 논쟁·토론 교육이 정치교육의 헌법으로 여겨지고 있는 나라다. 누군가 힘 있는 자가 특정한 결론을 강요해서는 안 되고, 각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자료를 모을 수 있게 하고,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토론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 교육부가 학교생활기록부 개선에 관한 정책 결정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발언할 수 있는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당시 진보 교육단체들이 참여를 거부하는 성명까지 발표했을 정도로 다양한 주체들이 토론에 관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꾸준히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은 계속 보여준다.  

지금까지 우리는 여러 산업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위에서 결정을 내리면 그 현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만큼의 보상을 받는 것이 적당한가에만 집중해 왔다. 완벽한 ‘톱다운’의 비민주적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정작 사람들의 목소리는 없고 숫자와 통계만이 오고 갔을 뿐이다. 사실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더 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수없이 넘쳐나는 가짜뉴스들에 대한 불안 혹은 맹신, 보상에 관한 문제들에만 집중하다보니 그 안에서도 찬반으로 나뉘어 싸움이 오가지만, 궁극적으로는 내가 살아온 터전에서 계속 잘 살아가고 싶은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이 책에서 담아낸 현장의 목소리들은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 40여 년 해녀 일을 해온 장금자(왼쪽)씨와 동생 장금숙(오른쪽)씨. 이들은 “신리마을 인근에 원전이 들어선 후 물질이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이밖에도 주민들은 더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 ⓒ 박진홍

해법은 ‘서로에게 귀 기울이기’

최근 코로나 사태를 맞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특히 이 책을 만나면서 십 년 전 내가 다짐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었고, 내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앞으로 이것들을 어떤 식으로 지지하고, 참여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 책이 담아낸 여러 대안들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나라의 에너지 정책에도 관심을 가져야겠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를 위해 언론이 다양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공정하게, 빠짐없이 담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상상도 못했던 사태 속에서 여전히 정답을 모르고, 정답을 찾을 수도 없지만 날마다 고민하고 답을 모색하면서 살고 있다. 이런 상상도 못했던 사태는 우리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여러분에게도 있을 수 있다.”

책에서 일본 구호단체 무스부(Musubu)의 스에나 부대표가 한 말이다. <마지막 비상구>는 심각한 기후위기에 처한 우리에게 그 현실과 대안을 말해주는 책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언론, 국민 개개인이 서로의 말에 주의 깊게 귀 기울여야 함을 강조하는 책이기도 하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길이 하나가 아닌 여럿이라도, 같음과 다름을 잘 버무려 다시 하나로 모일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을 쓴 <단비뉴스> 기자들은 언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 것 같다.

(*원 제목: <마지막 비상구>를 시작으로 우리가 뻗어나가야 할 길들)


편집 :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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