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독특한 화풍 일군 제천 서양화가 정봉길

지난 14일 충북 제천시 의림대로 시민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정봉길 작품전'에 마스크를 한 시민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제천은 물론 서울에서도 정봉길(64) 작가의 팬들이 찾아와, 지난 10일 시작된 전시회는 '코로나19 거리 두기' 속에서도 성황을 이뤘다. 기존 수채화와 달리 물감을 두껍게 쓰는 독특한 화풍으로 이름난 그는 이번 전시회에 대표작인 '설경' '명(鳴)' 등 스물아홉 점의 작품을 걸었다.

"3년 만에 제천에서 전시를 하는 것이라, 그동안 나의 모든 생각과 새로운 변화에 대해 보여주고 싶습니다. 코로나로 심신이 피곤한 시민들에게 예술작품을 통해 위로를 주고, 함께 즐기고 누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연 담은 작품으로 코로나19에 지친 시민들 위로

▲ 제천에서 활동하는 서양화가 정봉길. 독학으로 일군 독특한 화풍으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 정봉길 페이스북

그는 "코로나 상황 때문에 전시회를 여러 번 연기했다 가까스로 열었다"며 다른 예술인들도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어떤 일이 닥쳐도 예술 하는 사람들은 그 길로 가는 것"이라며 "코로나 때문에 힘들지만, 이것도 자기 성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유유자적 살아간다"고 덧붙였다.

전시회에 앞서 지난 5월 31일 제천시 신월동의 저수지 뒤뜰방죽으로 정 작가의 야외 스케치를 따라갔다. 그는 30대 중반까지 일반회사 관리직으로 일하며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가,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독학으로 화가가 된 과정을 간략히 들려주었다. 학연과 텃세가 작용하는 미술계지만, 묵묵히 전시회를 이어가다보니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과 심사위원을 거친 수채화 대가가 됐다.

그는 지난 30여 년간 제천 등 국내는 물론 중국, 대만, 동남아 각국의 자연을 화폭에 담았고, 최근에는 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외국인과도 소통하고 있다. 지난 2015년 미국 오하이주 문화센터에서 수채화 시연회와 강의를 하고, 중국과 대만에서 전시회를 여는 등 해외 활동도 펼치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본 외국인들은 ‘독특한 수채화 기법과 색채에서 동양의 신비로움을 느꼈다’ ‘독특한 수채화 기법이 색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성공하려고 스펙이나 학연, 지연에 의지해 줄을 서고 그랬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난 것 같습니다. 실력이 없으면 세상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없고, 빛을 낼 수 없으면 예술이나 모든 것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력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한테 감동을 줄 수 있는 실력, 그것만 있으면 됩니다.”

“실력 있으면 예술에 학연·지연·스펙 불필요”

▲ 지난 10일부터 오는 17일까지 제천 시민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정봉길 작품전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설경’. 물감을 두껍게 쓰는 독특한 작법으로 고요한 아침 풍경을 그렸다. © 정봉길 작품집

정 작가는 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 학벌과 연고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솔직히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세상과 타협하기보다 자신의 관찰을 중시하며 살아왔다고. 그는 “오랜 시간 지나고 보니 (그런 어려움들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며 “지금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 온 것에 대해 (스스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화가 지망생들에게 “예술을 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자기 성찰의 과정으로서 상당히 중요하고 도움이 되는 것이니 경제적으로 잘 되고 안 되고 이런 것에 마음을 두지 말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자신은 그림을 시작한 초창기에 경제적으로 힘들었는데, 3년간 매일 나가 자연을 그렸더니 작품 수준이 놀라울 만큼 향상돼 힘든 고비를 넘길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단숨에 성과를 보려고 하지 말라”며 “예술은 아름다운 것이라, 틀림없이 인생에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이어 “화내지도 말고, 너무 급하게 마음도 먹지 말고, 자기 인생과 오래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주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 제천시 신월동의 저수지 뒤뜰방죽에서 멀리 있는 산을 화폭에 담고 있는 정봉길 작가. ⓒ 이복림

예술인 발굴해서 전폭 지원하는 정책 아쉬워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 가난한 화가 지망생의 현실 등을 이야기하다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에 아쉬움을 표했다. 우리나라는 문화예술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 대신 ‘행사를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좋은 예술작품이 나올 수 있게 하고, 문화예술을 통해 한국을 세계에 알리려면 지금과 같은 ‘수박 겉핥기식’ 지원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그는 “선진국처럼 진정한 예술인을 발굴해 전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뒤뜰방죽에서 스케치를 하면서 “요즘처럼 어려울 땐 여기서 편안하게 앉아 사색도 하고 작품구상도 한다”며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고, 오직 철새와 오리떼만 봄에 왔다가 늦가을에 다른 곳으로 가기 때문에 사색하기가 참 좋다”고 말했다. 때로는 산속에 들어가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고. 제천에서 태어난 그는 “이렇게 고향에서 계속 자연과 인생을 담은 좋은 작품을 내고 대중과 호흡하는 것이 향후 계획”이라고 말했다.

▲ 정봉길 작가가 제천시 뒤뜰방죽에서 물을 바라보며 사색하다 스케치북에 풍경을 담고 있다. ⓒ 이복림

편집 : 김은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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