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기획⑤] 질식 예방의 처음과 끝,

공공하수처리시설은 각 지역의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다. 집집마다 씻고 먹는 데 쓴 물이 흘러내려 모이는 곳. 충북 충주 시내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 충주 하수처리장에는 읍·면을 제외한 충주 시내 26개 동의 주민 약 15만 명이 사용한 하수가 지하에 묻힌 26km의 하수관을 타고 흘러 들어온다. 하루 평균 6만 7천 톤의 하수가 들어와 정화 과정을 거친다. 지난 10월 13일 방문한 충주 하수처리장은 설비들이 모두 크고, 공간이 넓었다. 물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 많은 하수를 처리하는 곳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윙윙 날아다니는 날파리와 옅은 하수도 냄새로 사람들이 쓰고 난 물이 이곳 어딘가에서 흐르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하수 관로가 혈관이라면, 공공하수처리시설은 노폐물을 걸러주는 신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시내에 있는 혈관을 따라 하수가 들어오면, 여기 하수처리장이 신장 역할을 해서 물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거죠.”

충주시 환경수자원본부 하수과 황재구 팀장은 하수 관로와 공공하수처리시설을 이렇게 설명했다. 약 8만 6천 제곱미터 면적, 총 26개 동으로 이뤄진 충주 하수처리장에서 정화된 하수는 남한강으로 방류된다. 하수가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과정에 밀폐 공간과 질식 위험이 숨어 있다.

하수 처리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밀폐 공간’

“하수 속에 있는 미생물로 인한 산소 결핍이나 유해가스 중독 위험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하수처리장의 거의 모든 공간이 질식 위험이 있는 밀폐 공간이라고 보면 돼요.”

충주시 하수과 정용진 주무관이 하수처리장의 한 저장탱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수가 흘러들어오면 먼저 관문 역할을 하는 큰 저장소에 모인다. 가정과 식당에서 물을 많이 쓰는 시간대인 오전 9시와 오후 3시, 가장 많은 하수가 몰려든다. 하수에서는 우선 부피가 큰 이물질을 걸러야 한다. 모래나 물티슈, 머리카락, 음식물 찌꺼기 등이다. 이런 이물질을 가라앉힌 뒤 기계로 퍼낸다.

 
물이 들어와 한 데 모이는 시설과 하수 속 이물질을 거르는 장치이다. 내부를 청소하거나 고장 난 설비를 고치려면 사람이 직접 들어가야 한다. ⓒ 이정헌

이 저장소에 물과 함께 들어온 음식물 기름 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 이물질이 끼어 설비가 고장 나는 일이 많은데, 이때도 수리하기 위해 사람이 직접 들어가야 한다.

“사고 사례를 보면 경력이 짧아서 밀폐 공간에 관해 잘 모르거나, 숙련자라서 아주 익숙해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숙련자들은 '작년에도 이렇게 작업했는데 괜찮았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현장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작년의 밀폐 공간과 오늘 현장은 내부에 슬러지가 쌓여있는 정도가 달라요. 임시, 간헐적 작업이 많다보니 작년에 10cm 쌓여 있던 게 오늘은 70cm가 돼 있을 수도 있는데, 그걸 생각 안하고 방심해서 사고가 나요.”

황 팀장은 밀폐 공간 내부 청소와 설비 수리를 위해 사람이 직접 들어가야 하는 경우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커다란 이물질을 걸러낸 하수를 2~3시간 정도 가둬놓으면 하수 속에 남은 ‘슬러지’가 자연스럽게 가라앉는다. ‘슬러지’는 탄소가 포함된 물질인 유기물이다. 유기물이 포함된 슬러지가 썩으면서 질식 재해의 원인이 되는 황화수소가 나온다. 바닥에 가라앉은 슬러지는 처리가 쉽도록 농도를 높이고 무게를 줄인 뒤 35도 정도의 중온에서 분해시키고, 탈수기로 부피까지 줄여 시멘트 회사나 하수슬러지 처리시설로 보낸다.

 
하수처리장에는 슬러지저류조, 약품용해조, 농축저류조 등 다양한 이름과 형태의 밀폐 공간이 있다. ⓒ 이정헌

넓고 개방된 곳도 ‘밀폐 공간’

슬러지와 분리되어 위에 뜬 물은 다시 한 번 거르고 소독을 마친 뒤 방류된다. 하수를 몇 시간씩 가둬두고 이물질을 가라앉히는 이른바 ‘침전지’ 등 하수처리장의 여러 시설은 모두 넓고 개방된 공간이다. 지붕이 없어서 언뜻 보면 작은 호수나 저수지 같기도 하다. 다른 시설들처럼 뚜껑으로 입구가 막혀 있지도 않고, 좁고 답답하지도 않다.

 
침전지에서는 물을 가둬놓고 슬러지를 가라앉힌다. 지붕이 없고 활짝 열린 곳이지만 물이 빠지는 순간 질식 위험이 있는 밀폐 공간이 된다. ⓒ 이정헌

“지금은 침전지에 이렇게 물이 많이 차 있으니까 밀폐 공간인 줄 전혀 모르겠죠. 그런데 설비가 고장 나면 이 물을 다 빼야 해요. 물을 다 빼고 나면 바닥에 슬러지가 많거든요. 4.5m 깊이 물 아래에 슬러지가 쌓여있는데, 물이 빠지는 순간 그게 드러나면서 황화수소에 그대로 노출돼요. 질식 위험이 생기는 거죠. 꽉 막혀 있는 곳만 밀폐 공간인 게 아니에요.”

황재구 팀장은 생각보다 밀폐 공간의 범위가 넓다고 설명한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정의하는 밀폐 공간은 무려 18가지에 달한다. 폐수, 오수 등이 들어있는 정화조나 침전조 내부 등 구체적인 기준도 있지만, ‘근로자가 상주하지 않는 공간으로서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 장소의 내부’라는 모호한 항목도 있다. 영국직업안전보건청(UK-HSE)은 폐쇄된 공간에서 존재할 수 있는 유해요인을 바탕으로 ‘밀폐 공간’을 정의하고 있다. 방, 구덩이, 도랑 등과 유사한 공간에, 기체나 증기 혹은 산소 결핍에 의해 질식해 근로자가 의식불명에 빠질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밀폐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 속에 숨은 위험, 황화수소와 산소 결핍

하수를 포함한 오수와 폐수에서는 세균이 증식하면서 처음에는 산소를 소모하고, 무산소 상태가 되면 메탄가스와 황화수소 등을 뿜어낸다. 가장 큰 위험 요소는 황화수소와 산소 결핍이다.

2016년 7월, 제주도의 한 공공하수처리시설의 저류조에서 질식 사고가 발생했다. 청소 전, 하수를 저장해놓는 저류조 내부에 쌓인 슬러지의 양을 확인하기 위해 작업자 한 명이 4m 아래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구조를 위해 저류조 내부로 내려가던 동료 작업자도 쓰러졌다.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두 명 모두 숨졌다. 

저류조 내부 바닥에 7개월에 걸쳐 쌓인 슬러지가 분해되면서 황화수소가 발생했고, 여름철 수온이 오르면서 미생물 활동이 활발해져 황화수소 농도가 올라가 질식한 것이다. 다음날 재해 당시와 유사한 조건을 재연한 결과, 약 400ppm의 황화수소가 측정됐다. 8시간 작업 기준 적정 농도인 10ppm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였다. 황화수소 농도가 150ppm 이상이 되면 후각이 마비돼 특유의 달걀 썩는 냄새를 맡지 못하고, 500ppm 이상인 상황에서는 1시간 이내에 심한 호흡곤란, 두통 등의 증세가 나타나 사망 위험이 있다. 

 
2016년 질식 사고가 발생한 제주도 공공하수처리시설의 저류조. 4m 깊이의 저류조 내부에서 작업자 2명이 질식해 사망했다.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공공하수처리시설 외에, 사기업의 오·폐수처리시설에서 일어나는 질식 사고도 있다. 2016년 8월, 충북의 한 유제품 제조업체에 있는 오수 탱크에서 3명이 질식해 숨졌다. 오수 탱크 내부 배관을 수리하기 위해 작업자가 들어갔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동료 작업자 2명이 구조에 나섰다가 같이 질식했다. 재해조사 당시 황화수소 농도는 최고 212ppm까지 측정됐다. 오수 탱크는 인근 식당과 샤워장에서 나온 하수로 가득 차 있었고, 당시 기온은 계속 30도를 웃돌았다. 고온 상태에서 오수에 있는 미생물이 급증하면서 산소가 많이 소모됐고, 황화수소와 메탄가스가 발생해 산소 결핍 상태가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질식 예방의 처음과 끝, <밀폐 공간 작업프로그램>

충주 하수처리장은 매년 자체적으로 <밀폐 공간 작업프로그램>을 수립한다. 작업 프로그램을 통해 하수처리장 내부에 있는 밀폐 공간 작업 장소 중 질식 위험도가 높은 곳을 명시하고, 질식 재해 예방 대책을 세운다. 1년에 두 번 질식 재해 예방을 위한 모의 훈련을 실시하기도 한다. 

“(작업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경각심이 생기죠. 이걸 지켜야 사고가 안 난다는 생각으로 제작하니까 더 조심하게 돼요. 작업프로그램에 따라 작업 전에 허가를 받게 하면, 질식 재해의 위험성을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한다고 봐요. 이게 모든 질식 사고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안전 불감증을 해소할 수는 있을 거예요.”

작업프로그램 관리자인 황재구 팀장의 말이다. 작업프로그램에 따르면, 밀폐 공간에서 작업하기 전에는 반드시 관리자에게 작업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안전 담당자 지정과 감시인 배치 △환기시설 설치 △안전교육 실시 등을 체크하고, 산소와 유해가스 농도 측정 결과까지 표기해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취재진도 모든 사항을 적어 작업 허가서를 받은 뒤에야 촬영을 위해 밀폐 공간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충주 하수처리장이 올해 수립해 시행 중인 <밀폐 공간 작업프로그램>과 밀폐 공간에서 작업하기 전 결제 받아야 하는 작업 허가서. ⓒ 이예슬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질식 사고 위험이 있는 사업장의 사업주는 사업장 내 밀폐 공간의 위치를 파악하고 질식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 요인을 확인하여 관리해야 한다. 이를 쉽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밀폐 공간 작업 프로그램’이다.

작업 프로그램은 밀폐 공간에서 작업을 할 때 지켜야 하는 절차를 담고 있다. 밀폐 공간 출입 전에 유해가스 존재와 유입 가능성을 확인한 뒤 환기팬과 송기마스크 등 안전장비를 준비해야 한다. 산소와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환기한 뒤, 관리자에게 작업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밀폐 공간 외부에 감시인을 배치하고, 안전 장비를 착용한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황재구 팀장은 “질식 예방의 처음과 끝이 작업프로그램을 준수하는 것”이라며 “실제로 작업하는 시간보다 작업을 위한 준비 시간이 훨씬 길어질지라도, 작업 프로그램에 따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전 수칙을 지키는 것도 작업 내용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 활동가는 “질식 재해는 사람이 죽거나 많이 다치는 중대재해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럼에도 밀폐 공간 작업 프로그램만 잘 지키면 일어나지 않을 사고인데, 방심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산업재해의 상당수는 조금만 교육을 하고 장비를 갖춰도 막을 수 있다. 일단 재해가 발생했다 하면 절반 이상이 사망하는 밀폐 공간에서의 질식 사고도 그렇다.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무관심과 무지인지도 모른다. 일하러 들어가는 사람은 물론 일을 시킨 사람도 밀폐 공간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잘 모른다. 단비뉴스 기획취재팀은 최근 10년치 사고를 촘촘히 분석하고, 현장을 VR 360도 영상으로 담아 그런 작업 공간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 왜 사고가 나는지, 생생하게 보도하려고 한다. (편집자)

① 보이지 않는 위험, 밀폐 공간 '질식 재해' 해부

② 상수도 맨홀서도 질식...구조자도 위험

③ 한 순간에 작업자 생명 위협하는 양돈장

④ 하수도관 막는 '물티슈'...맨홀 열어야

⑥ [인터랙티브] 보이지 않는 위험, 밀폐된 죽음의 공간

⑦ [VR 360] 하수가 흐르는 곳에 질식 위험이 있다


편집 : 김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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