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너라 벗고놀자] 황상호-우세린 부부 여행기 ㉓
인터뷰: UC 샌마르코스, 원주민학 디나 교수

미국 온천은 원주민이 병든 몸을 치료하고 부족한 물품을 이웃 집단과 교환하던 장소였다. 일부 지역은 아주 신성시해 제사장이 하늘에 기도하는 성지였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들어 스페인과 멕시코, 미국의 식민 지배, 이어진 골드러시 등으로 돈 될 만한 곳은 유럽 이민자들이 리조트로 개발했다. 유럽풍 마사지 서비스와 근사한 만찬을 제공했다. 그 사이 원주민은 연방정부의 강력한 이주 정책으로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쫓겨났다. 사실상 제거된 것이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미 전역에 창궐했다. '메이크 아메리카 그레잇 어게인'(Make America Great Again)을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심각한 헛발질을 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미국에서 발생했다. 원주민은 이 사태를 보고 뭐라고 말할까? 인간과 동식물의 관계를 위계서열 대신 '거대한 원'으로 보던 그들이 아니던가?

온천 탐방기를 마치기 앞서, 원주민의 생태 관념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알아보려고 지난 10월 19일 캘리포니아 샌 마르코스 주립대학에서 아메리칸 원주민학과 원주민 생태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디나 길리오-휘태커(Dina Gilio-Whitaker) 교수와 화상 인터뷰를 했다. 디나는 워싱턴주 북동쪽에 있는 코빌 연합 부족(Colvile Confederated Tribes) 출신으로 책 <풀이 자라는 한>(As Long As Grass Grows)과 공저로 <진짜 원주민은 모두 죽었다>(All The Real Indians Died Off)를 썼다.


원주민은 ‘생태계 사슬’ 주인이라 생각 안 해 
7세대 후손까지 생각해 행동하는 ‘7세대 원칙’
코로나 시대 ‘지구 건강’을 위한 원주민 철학
여행자는 토지 강탈에 따른 혜택 인정해야

 

-온천에 관한 추억이 있나요?

"네, 몇 가지 있죠. 하지만 대부분 자연 온천이 파괴되고 상업화했습니다. 이용하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하죠. 하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어느 봄이었는데 차로 여행하다가 네바다주 칼슨 시티에서 아름다운 온천을 발견했습니다. 물도 따뜻하고 풍경도 아름다웠죠. 시간이 충분하다면 들어갔을 텐데 아쉬웠죠. 그 밖에 아는 온천은 콜로라도주에 있는 파고사(Pagosa) 온천이에요. 메이저 스파인데 자연 온천 주변에 온천 시설물이 대규모로 건설돼 있죠. 캘리포니아 와인 주산지인 나파 밸리(Napa Valley) 가까이에는 칼리스토가(Calistoga) 온천이 있습니다. 예전에 그 온천 가까이 살아서 꽤 많이 갔죠."

-원주민은 온천을 중립지대로 생각해 온천에서는 다투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네, ‘분쟁 자유구역’(conflict free zone)이라 다툼이 허용되지 않았죠. 그런데 사실 캘리포니아 원주민은 폭력적이지 않았어요. 영토 분쟁이 있더라도 전통 관례를 따르거나 (며칠씩 뛰는 이어달리기 등) 경기(Game)를 통해 해결했죠. 사실 미 대륙 원주민들이 대부분 그랬어요.”

-그 문화가 후손에게 잘 전수되고 있나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캘리포니아의 많은 온천이 사유화했다는 겁니다. 아주 심각할 정도죠. 특히 캘리포니아주는 자원이 풍부해 사람들이 쉽게, 많이, 거주할 수 있었죠. 특히 18세기 후반 스페인, 멕시코, 미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원주민들이 땅을 빼앗기고 쫓겨났습니다. 또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주 짧은 기간에 말이죠. 미국은 원주민강제이주법 등 법령과 제도를 만들어 원주민이 대대로 이어온 땅에 사는 것을 불법화했죠. 헐값의 포상금을 걸었고 그 돈을 노린 현상금 사냥꾼은 원주민을 사냥했죠. 이 때문에 많은 원주민이 스페인이나 멕시코식 성으로 바꿔 살아야 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였죠. 아직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 지난 10월 19일 나(위)는 캘리포니아 샌 마르코스 주립대학 아메리칸 원주민학과 디나 길리오-휘태커(아래) 교수와 화상 인터뷰를 했다. © 황상호

-온천 조사를 하다 보면 원주민 역사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부분 자료에는 유럽 이민자들이 미지의 땅을 개발해 부흥기를 이뤘다고 묘사해 놓았습니다.

“맞습니다. 주류 역사가 서술된 방식이죠. 지난 반세기 동안 역사는 승리자 위주로 기록됐습니다. 캘리포니아에는 아주 많은 원주민이 살았고 여전히 거주하고 있습니다. 원주민 문화를 그대로 답습한 조부모 세대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아주 멀지 않은 역사죠. 하지만 역사를 유럽인 시각에서 ‘화이트 워시’(White Wash)하는 거죠. 미국은 국가 역할과 정반대되는 폭력과 약탈, 부패를 저질렀음에도 건국을 정당화했죠. 우리는 이를 ‘예외주의 역사’(exceptional history)라고 부릅니다. 예외주의는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미국 건국 토대가 빈약한데도 스스로 자유와 정의의 등불이라고 말하죠. 이런 역사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예외주의: 구세계에서 벗어나 신세계에서 신성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청교도들의 믿음이다. 그 신성한 임무를 방해하는 것은 적, 위협으로 간주한다.

-그동안 변화가 있었나요?

“지난 50년 동안 우리는 역사 분야에서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학교에서 전에는 가르치지 않던 원주민 학살의 역사를 가르치죠. 가령 ‘눈물의 트레일’(Trail of Tears) 등입니다. 하지만 아직 많은 학생이 콜럼버스를 미국의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국왕이 대항해를 허락한 노예무역상이자 북미대륙에 발이 닿은 적 없는 사람이죠. 콜럼버스 이야기는 그냥 동화예요. 역사가가 영웅을 만들어낸 거죠.”

# 눈물의 트레일: 1830년 문명화한 5개 부족국가인 체로키, 촉토, 치카소, 크리크, 세미뇰은 원주민강제이주법에 따라 미 남동부 고향을 떠나 미시시피강 서쪽인 원주민 보호지역으로 쫓겨갔다. 이동 경로 3540km로 약 4000명이 길에서 기아와 탈진 등으로 사망했다. 이 길을 ‘눈물의 트레일’이라 부른다. 고향에 남아 미국 시민이 되는 법을 택한 원주민도 있었다.

# 원주민강제이주법: 조지아, 앨라배마, 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테네시에 사는 백인 정착민들은 토질이 우수한 땅에서 더 많은 목화를 재배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했다. 하지만 원주민들도 문명화해 딱히 몰아낼 방법이 없었다. 이에 원주민의 가축을 훔치고 집을 태우고 약탈하고 살인도 저질렀다. 갈등이 계속되자 일대 주정부들은 주법을 만들어 그들의 땅을 빼앗고 주권을 약화하는 등의 수법으로 다른 주로 내쫓았다. 1930년 5월 28일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이 지역 경제 개발을 명목으로 강제이주법에 서명한다. 원주민은 새 땅과 이주 비용 등을 받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 역사학자들은 콜럼버스가 북미 대륙이 아닌 카리브해 섬들과 중남미 해안에 여러 차례 도착했다고 보고 있다.

-교수님은 책 <풀이 자라는 한>에서 '세균 때문에 원주민이 대거 죽었다'는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주장을 비판했습니다.

“이것 또한 미국이 만들어 낸 ‘근거 없는 믿음’(Mythology) 중 하나예요. 나는 첫 번째 책 <진짜 원주민은 모두 죽었다>(공저)에서도 이런 헛된 믿음들을 지적한 바 있죠. 세균 때문에 많은 원주민이 죽은 건 맞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점이 지나치게 중요시되고(Overplayed), 강조(Stress)돼 있다는 점이에요. 많은 인구가 짧은 기간에 죽었다는 것을 질병만으로 설명하기에는 간단하지 않아요. 당시 여러 사회 구조적인 상황이 동시에 발생하기도 했죠.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책 <총 균 쇠>에서 ‘생물학 전쟁’으로서 누가 의도적으로 북미 대륙에 세균을 퍼트렸는지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죠. 서구적인 시각으로 서술된 겁니다.”

-일제강점기 한국에서도 스페인 독감이 유행해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일본은 의료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국가는) 마치 그 나라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항상 책임을 회피하죠. 사실 이런 대화를 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지만 원주민 학자는 원주민 시각에서 역사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민권 운동 시대’(Civil Rights Era) 이후 50년 만에 다시 이런 문제가 논의되고 있어요. 아프리칸 아메리칸, 원주민 아메리칸, 아시안 아메리칸 인종 학문이 등장하고 있죠. 좀 더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역사를 다시 쓰고 있죠.” 

▲ 2020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아메리카 원주민이 같은 날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서 ‘7월의 소극’(Farce of July)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식민지배를 비판하는 시위를 했다. © 황상호

-원주민은 인간과 자연을 피지배 관계가 아닌 생태계 속 같은 구성원으로 바라봤습니다.

“유럽인이 이 땅에 와 가장 큰 차이를 나타낸 지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유럽인은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세계관을 뿌리 깊이 가지고 있었죠. 땅과 자연을 남용했죠. 그들이 보기에 원주민이 자신들 방식대로 땅을 이용하지 않으니까 미개하다고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원주민은 (경작과 산불 예방을 위해 들판을 태우는 등) 생태계 안에서 그들 방식으로 자연을 활용해 왔습니다. 생태계 사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았죠.”

-조화로운 생태철학이 현 세대에도 잘 전수되고 있나요?

“하늘여인(Skywoman)이 쥐와 거북 등 동물의 도움으로 땅을 창조했다는 이로쿼이(Iroquois)의 창세기 신화처럼 이야기로 전수되고 있죠.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백 년 동안 식민지를 겪고 있고 그들의 역사관도 주입돼 있죠. 인간과 생태계를 계급화하는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좋은 예는 원주민들이 정치적으로 보수표를 던진다는 겁니다. 그냥 미국인으로 인식하고 있죠. 동화한 거죠.” 

-오염되지 않은 아름다운 경관을 습관적으로 '원시적이다'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책 <풀이 자라는 한>에서 그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처음 이 땅을 밟은 유럽인은 우리가 사는 환경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로서는 원주민이 살지 않는 ‘원시적’(Primitive)인 땅을 개발했다는 게 (남들 시선에) 더 정당성이 있어 보였겠죠. 하지만 원주민은 계절별로 이동하며 넓은 영토를 목적에 따라 두루 사용했습니다. 원주민은 하나 이상 지역을 가지고 있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사실상 북미 대륙에 원주민이 사용하지 않은 땅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연환경을 묘사할 때 ‘아무도 손대지 않은 원시적인 곳’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됐죠. 의도적으로 우리 역사를 지우는 것입니다.”

-팬더믹 시대, 원주민의 생태철학이 더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그것과 관련해 학계에서 여러 회의가 있었습니다. 최근 ‘지구 건강’(Planetary Health)이라 불리는 새로운 연구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약학, 전염병학. 바이러스학. 동물원성 감염병학(Zoonotics), 환경학 등 여러 학문이 통합된 거죠.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지구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수 세기 동안 인간은 지구를 착취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인구를 기하급수적으로 성장시켰고 이에 따라 야생동물과 접촉이 늘면서 다양한 질병이 발생했습니다. 이번 티핑 포인트는 사람의 기대수명을 낮출 겁니다. 원주민 철학은 이런 프레임을 바꾸는 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7세대 원칙’(Seventh Generation Principle)이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결정한 것이 미래 7세대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원주민들이 코로나바이러스로 더 큰 피해를 받고 있다던데요.

“아주 많이 알려진 내용입니다. 애리조나, 뉴멕시코, 유타, 콜로라도 4개 주에 접해 있는 원주민 보호구역인 ‘나바호 네이션’(Navajo Nation)이 대표 사례입니다. 이곳 원주민 3명 중 1명이 물이 없어 고통받고 있습니다. 날씨마저 엄청 덥죠. 기본적으로 건강 나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까지 덮치자, 인구당 바이러스 감염률이 미국에서 1위가 된 거죠. 이것도 식민주의 결과입니다.”

-매년 한국인이 미국 국립공원이나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여행을 갑니다. 어떤 자세로 가야 할까요?

“여행이 원주민 학살이나 원주민 토지 강탈에 따른 ‘혜택’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여행할 때 원주민 역사에 관해 이해하려는 책임이 필요합니다. 누구도 이런 불편한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하지만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다면 각종 행사를 시작할 때 ‘원주민 토지 인정'(Indigenous land acknowledgement) 선언을 해보세요. 요즘 저희가 하는 운동이에요. 각종 행사 시작 전, 이 땅의 전통적 주인을 원주민으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다짐이죠. 호주나 캐나다 등지에서는 스포츠 경기 전 이런 행사를 하기도 합니다. 일종의 자기반성이자 잊혀버린 역사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한 지역 언론에서 온천을 나체로 즐기는 것을 비판하는 원주민의 주장을 읽은 적 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발가벗고 다니는 야만인이 아니었습니다. 의복 문화가 있는 하나의 사회였죠. 우리는 최소 수만 년 전부터 이곳에 살았습니다. 태곳적부터 대를 이어왔죠. 나체로 자연을 즐기는 것은 히피 문화입니다. 원주민을 존중한다면 누드를 자제해야 합니다. 그곳에는 원주민 연장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탐방객은 그들의 지식과 지혜를 존중해야 합니다. 다큐멘터리 <숭배의 빛>(In the Light of Reverence)을 보라고 권해 드립니다. 신성한 곳을 개발하려는 유럽 정착민과 이에 저항하는 원주민의 견해 차이가 잘 그려져 있습니다. 더불어 특정 기간에는 신성한 공간의 이용을 막는 등 둘 사이 접점을 찾아가려는 시도도 보입니다.”


** 황상호는 <청주방송>(CJB)과 <미주중앙일보> 기자로 일한 뒤 LA 민족학교에서 한인 이민자를 돕는 업무를 하고 있고, 우세린은 <경기방송> 기자로 일한 뒤 LA 한인가정상담소에서 가정폭력 생존자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편집 : 김은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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