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위기와 혁신] ⑳ 수도권 쏠림 낳은 불균형 발전 해소 전략

“최근 우리 회사의 물동량이 준 걸 보면 제조업 위기라는 말이 확실히 와 닿아요. 5년 전이랑 비교하면 회식을 가도 식당에 사람이 없고, 특히 공단으로 출퇴근할 때 움직이는 차량 숫자가 확 줄었어요. 활력을 잃었죠. 저는 여기서 진짜 위기를 실감했습니다.”

지난 8월 24일 경북 구미의 국가산업3단지에서 만난 엘에스(LS)전선의 한 30대 노동자는 구미의 제조업 위기가 심각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직원끼리 앞으로 구미로 유입되는 기업은 없을 것 같다고 얘기하곤 한다”며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기업 빠져나간 지역공단, ‘일자리 위기’ 체감

인근 구미 국가산업5단지는 오후 6시 퇴근 시간인데도 차량 한 대 다니지 않는 허허벌판이었다. 5단지 초입의 도레이첨단소재 공장에서 탄소산업인증센터까지 차로 달리는 5분여 동안 사람 한 명, 차량 한 대 보이지 않았다. 너른 부지는 대부분 잡초로 가득했고 멀리 건물 한두 동이 띄엄띄엄 보일 뿐이었다. 이곳 탄소센터에서 일하는 한 30대 노동자는 “요즘 구미에 일이 없다고 사람들이 다 평택이나 용인 같은 다른 지역으로 넘어간다”며 “작년부터 조성을 시작한 5단지는 회사도 몇 개 없어 산업단지인데도 굉장히 썰렁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 경북 구미시 산동면과 해평면 일대에 있는 국가산업5단지는 933만㎡(약 280만평) 규모인데, 현재 8개 기업이 입주해 전체 부지의 약 12%만 사용하고 있다. ⓒ 박두호

구미 국가산업단지는 1973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단으로, 삼성전자, 엘지(LG)디스플레이, LS전선 등이 입주해 한국 경제를 이끌어 왔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제조업 위기가 가속화하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13년 구미 산업단지 수출액은 367억 달러(약 41조5천억 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0.6%를 기록했으나, 삼성전자와 LG 디스플레이 등 대기업과 협력업체들이 해외와 수도권으로 이전하면서 작년 수출액은 232억6000만 달러(약 26조4천억 원)로 37%나 줄었다. LG디스플레이는 구미에서 공장 6개를 운영하다 ‘우수 인력 유치’를 위해 2000년대 중반 경기도 파주로 옮겨갔다. 삼성전자도 휴대전화 공장을 2010년 베트남으로 옮겼다. 대기업들이 떠난 후 구미의 중소·중견 기업도 일감이 줄었다.

지역 경제가 쇠퇴하면서 구미지역 대학생들도 불안을 느끼고 있다. 공과대학으로 특성화한 국립 금오공대의 배모(24·전자공학) 씨는 “과거 선배들은 구미 산업단지에서 취업을 많이 했는데 최근 선배들은 수도권으로 더 많이 간다”며 “(나는) 집이 구미여서 지역 내에서 취업하고 싶은데 구미는 모집 공고가 잘 뜨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오공대는 대학, 지자체, 기업의 협력을 통해 지역 공공기관이나 기업 채용을 이어주는 지역선도육성사업에 선정된 학교다. 이 프로그램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최모(25·기계공학) 씨는 “아직 지역선도육성사업으로 혜택을 누리는 학생이 적고 학점, 어학성적, 자격증 등 아주 스펙이 높은 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다”며 “지역 기업 채용과 연계된 프로그램이 많으면 좋을 텐데 규모가 너무 작아 아쉽다”고 말했다. 작년 지역선도대학 프로그램에서 금오공대 스마트기계 전공은 2~4학년 통틀어 모두 20명을 뽑았다. 

지역 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생들의 이야기는 구미에만 그치지 않는다. 울산 폴리텍대학 박준우(24·컴퓨터응용기계) 씨는 “최근 코로나로 울산 산업단지 공장 가동률이 더 떨어져 방학 때마다 하던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힘들어졌다”며 “지역 산업단지에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여기서 취업할 수 있을지 도무지 확신이 안 선다”고 말했다. 고향이 경남 거제시지만 현재 경기도 평택의 삼성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있는 신남주(24) 씨는 “집 근처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거제시는 조선업이 붕괴하면서 괜찮은 일자리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업에서 일했더라면 지금보다 월급도 많이 받고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어 자취비 등으로 나가는 비용이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지방대의 위기는 일자리를 비롯한 경제·사회·문화적 자원이 모두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집중되고 그밖의 지역은 소외되는 국토 불균형 발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자원의 집중이 더 많은 집중을 부르는 ‘네트워크 효과’가 적용돼, 수도권에 양질의 교육 기회와 일자리, 청년 인재가 함께 몰리는 것이다. 반대로 그런 자원이 부족한 지방은 청년들이 기피하거나 떠나버리고, 지방대 역시 침체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수도권에 몰리는 돈과 인재, 심해지는 국토 불균형

▲ 수도권의 인재 유출입 상황을 보여주는 2000~2019 순이동 추이. © 통계청

서울 등 수도권과 나머지 지역의 격차는 어느 정도일까? 먼저 수도권에는 사람이 집중돼 있다. 통계청이 지난 6월 발표한 ‘최근 20년간 수도권 인구이동과 향후 인구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수도권 인구는 2596만 명으로, 비수도권 인구(2582만 명)를 처음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됐다.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있는 것이다. 참여정부 이후 공공기관·공기업 지방 이전을 비롯한 지역균형발전 정책으로 비수도권 인구의 수도권 전입이 꾸준히 감소해 왔지만 2017년부터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보고서를 보면 지난 50년 간 수도권 인구는 184.4%(1683만 명)나 늘어난 반면, 비수도권 인구는 11.7%(271만 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통계청은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50년 후인 2070년에는 수도권 인구가 지방보다 200만 명 이상 많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수도권 인구가 계속 느는 것은 젊은층이 일자리와 교육 때문에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수도권 순유입 인구 8만3000여 명 중 직업을 이유로 전입한 인구가 6만4000여 명으로 가장 많았고, 교육(2만1000여 명), 주택(1만2000여 명)이 뒤를 따랐다. 연령별로는 20대가 7만2000여 명으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1만여 명으로 뒤를 이었다.

소득의 집중은 더 심하다. 서민철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의 논문 ‘소득세 자료를 활용한 우리나라의 지역별 소득 격차의 추이(2019)’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 국민의 소득 중 수도권 거주자 몫이 차지하는 비중은 1968년에 50%를 넘은 뒤 1990년 71.4%까지 올라갔다가 현재 60% 정도에 이르고 있다. 

▲ 소득세 자료에 의한 권역별 지역소득 비율 추이 비교. © 서민철

‘좋은 일자리’ 찾아 지역 떠나는 청년들

서민철 연구위원은 수도권의 소득 비중이 높은 이유를 ‘고소득 일자리가 수도권에 몰려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의 1인당 소득은 영·호남의 2.5배 수준이며,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에 비해서도 2.2배 가량 된다. 

▲ 권역별 1인당 과세 소득 그래프. ⓒ 서민철

수도권 집중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별 일자리 특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격차는 더 확연히 드러난다. 국토연구원이 ‘청년친화형 산업공간 육성전략 연구(2019)’ 보고서에서 전국 청년고용 분포의 직종별 중심지를 알아보기 위해 전국 시·군·구 직종별 일자리의 규모를 시각화하고 클러스터(산업집적지) 분포를 살펴본 결과, 소득과 안정성이 높은 정보기술(IT)개발자, 엔지니어, 연구직, 전문서비스직(회계‧세무‧홍보‧금융‧기획 등) 일자리가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 IT 개발자, 엔지니어, 연구직, 전문서비스직의 지역별 공간분포와 클러스터 분석. 왼쪽 지도에서 파란색은 고용 규모가 매우 작다는 것이고 노란색, 빨간색으로 갈수록 고용 규모가 크다는 의미다. 오른쪽 지도에서 흰색은 고용이 없다는 뜻이고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으로 갈수록 해당 직종 전문가가 많이 모였다는 뜻이다. © 국토연구원

엔지니어의 경우 일자리가 삼성전자 사업장이 있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위쪽으로만 집중분포돼 있어 ‘기흥 라인’을 경계로 취업의 ‘남방한계선’이 있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2010년 이후 부울경권(부산·울산·경남)에 있던 대우조선해양(거제), 삼성중공업(거제), 현대중공업(울산), 두산중공업(창원), 현대로템(창원) 등 제조기업의 연구개발(R&D) 센터가 대부분 수도권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지방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급속히 활력을 잃고 있다. 한국의 지방 산업도시는 1970년대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산업기지 개발구역 지정을 통해 철강, 조선, 정유화학, 자동차 등 중공업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경북 포항과 구미, 경남 창원과 거제, 울산광역시 등 동남 해안권과 전북 군산, 전남 영암 등 서남부 지역의 공업단지들이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전 세계적인 저성장과 산업중심이 지식기반으로 이동하는 데 따른 제조업 침체로 지방 산업도시에서 공장 폐쇄와 대규모 실업이 일어났다. 정부는 2018년 장기 불황으로 침체에 빠진 울산 동구, 경남 통영·고성, 거제, 창원·진해, 전남 영암·목포·해남 등 5개 지역을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했다. 이들 지역은 세금 감면, 보조금 지급, 국공유지 임대료 인하 등의 지원을 받는다.

청년 노동자 비중 판교 42% 대 구미 15%

경기도 성남 테크노밸리와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의 일자리 지형을 비교해 보면, 수도권과 지방의 일자리 특성이 한눈에 드러난다. 두 지역의 노동자 중 청년(만 34세 이하) 비중이 판교는 42.6%인 반면 구미는 15.7%에 불과하다. 또 생산직 1인당 엔지니어 분포를 보면 판교는 3.06명인 반면 구미는 0.18명밖에 되지 않았다. 노동자 중 여성 비중도 판교 55.7%, 구미 33.4%로 차이가 났다.

▲ 경북 구미산업단지는 청년노동자 비중이 25% 이상인 사업장이 드물지만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는 청년노동자 비중이 25% 이상인 곳이 대부분이다. 판교테크노밸리 청년비중은 구미산업단지의 청년비중보다 2.7배나 높다. © 국토연구원

이런 분포는 지방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현상과 직결된다. 보고서에서 1986년부터 1990년 사이 출생한 청년들의 시기별 지역 이동을 살펴본 결과, 이들이 20~24세인 시기에 경기(6.1%p), 서울(5.4%p), 인천(0.9%p)의 청년 인구는 늘었지만 전남(-11.9%p), 전북(-8.8%p), 울산(-6.52%p)은 큰 폭으로 줄었다. 청년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주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정보기술(IT)기업이 몰려 있는 경기도 성남 판교 신도시 테크노밸리 거리.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25~29세 시기에는 수도권 이동이 더 늘어 서울(12.1%p), 경기(6.1%p)의 청년 인구는 늘었지만, 전남(-14.2%p), 전북(-14%p), 강원(-12.7%p), 대구(-11.4%p), 경북(-10.6%p) 등은 큰 폭의 청년 유출을 기록했다. 학업으로 발생한 지방 청년 유출이 구직 시점에 더욱 강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의료‧교육‧교통‧문화 등 생활환경도 큰 격차 

수도권과 지방은 일자리뿐만 아니라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생활 인프라, 즉 의료‧교육‧교통‧문화 등의 격차도 크다. 국토연구원이 ‘산업단지 정주 환경 분석 및 제도개선 방안 연구(2019)’ 보고서에서 지방의 일반산업·농공단지 770곳의 정주 환경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생활시설이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를 보면 산업단지에서 종합병원까지 평균 12.7킬로미터(km)를 이동해야 했는데, 특히 경상남도는 18.5km, 강원도는 13.6km, 제주도는 27.1km로 이동거리가 길었다. 초등‧중등‧고등학교도 평균 8~9km를 이동해야 했고, 백화점(44.2㎞), 영화관(24.8㎞), 대형마트(8.2㎞) 등 상업시설에 가기 위해서는 훨씬 더 먼 거리를 가야 했다. 이밖에 고속철도역(33.1km)도 상당히 먼 거리에 있었으며, 여성복지시설(144km)은 거의 접근하기 어려웠다. 반면 서울에는 종합병원 40개, 유치원 795개, 초등·중등·고등학교가 1300개 이상 있어 서울 어디에 살든 인근의 의료와 교육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서울에는 또 백화점 23개, 영화관 99개가 있어 문화와 상업 서비스도 생활권 내에서 이용할 수 있다.

전국 산업단지에서 200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하지만, 단지 주변의 생활환경이 대부분 열악해 청년층이 취업을 기피한다. 충남 서산시 산업단지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는 이은재(25)씨는 “일하다 다치면 병원까지 차타고 30분은 가야 하는데, 길 막히면 1시간까지 걸리기도 한다”며 “영화관도 차타고 30분 이상은 가야 나오고 산업단지 근처에는 편의점 말고는 상권 자체가 없어서 퇴근하고 산단 근처에서 여가를 즐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직할 기회만 있다면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큰 도시로 가고 싶다”고 했다. 

▲ 청년들이 느끼는 여가활동의 접근성, 다양성, 질적 수준 등을 조사한 결과표. 여가활동1부터 7은 문화예술관람, 문화예술참여, 스포츠관람, 스포츠참여, 관광활동, 취미/오락, 사회 및 기타활동 순이다. 서울권역의 점수가 모든 부문에서 월등히 높다. ©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시민단체인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가 ‘청년 현실에 기초한 지역격차 분석 연구(2018)’ 보고서에서 전국 만 19~39세 청년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가 확인된다. 일자리 실태의 경우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 공급 정도’(서울 2.88점, 지방(경기·광역시 제외) 2.04점), ‘월급여 만족도’(서울 2.69, 지방 2.39), ‘직장 내 직급 간 의사소통 수평정도’(서울 3.20, 지방 2.83) 등에서 만족도 차이가 났다. 여가 실태 역시 ‘여가활동 인프라 양적 공급 정도’(서울 3.59, 지방 2.63), ‘여가활동 프로그램의 다양성 정도’(서울 3.38, 지방 2.43) 등에서 큰 차이가 났다.

불균형 발전이 지방대 소외와 차별로 이어져 

지역 불균형 발전은 대학 서열화와 지방대 소외 및 차별 문제와 맞물려 악순환을 낳는다. 한국고용정보원이 ‘경상권과 전라권 대학 졸업자의 취업 및 일자리(2018)’ 보고서에서 2015년 대졸자 직업이동경로조사를 통해 각 지역 대학 졸업자의 취업 양상을 분석한 결과, 수도권 대졸 취업자의 89.7%는 수도권에 취업하는 반면 전라권 대졸 취업자는 61.1%만 전라권에서 취업하고 25.5%는 수도권으로 간 것으로 나타났다. 경상권 대졸 취업자는 77%가 경상권에 취업하고 16.1%는 수도권에 취업했다. 지역 대학을 나온 인재의 상당수가 지역에 머물지 않고 수도권에 흡수되면서 수도권 집중, 지역 쇠퇴, 지방대 침체의 연결고리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지방도시 살생부>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 등의 저서를 통해 지역 불균형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온 중앙대 마강래(48·도시계획부동산학) 교수는 지난 8월 7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대학이 젊은 인구를 이동시키고 지역에 머물게 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서울 중심으로 대학이 서열화되면서 수도권만 교육·일자리 생태계가 발전하고 나머지는 소외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마강래 교수. © KBS 명견만리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상위 20개 대학 중 18개가 수도권이고 대부분 서울에 있습니다. 이들 대학에서 받는 신입생이 2만 명 정도로 10년이면 20만 명인데 그 인구의 90%가 수도권에 머무릅니다. 수도권 대학이 젊은 인재를 빨아들이고 뱉어내지 않는 거예요. 그런 식이니 혁신을 위한 인재는 수도권에 집중되고, 이들을 쫓아서 기업이 들어가고, 거기에 일자리가 생기고 혁신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구축됩니다. 지방은 그 반대고요. 대학이 인재의 유입과 축적을 통해 교육·일자리 시장을 연계하는 데 큰 중간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데, 지방에서는 이 생태계가 구축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 중앙일보가 발표한 2019년 대학평가 순위. © 중앙일보

행정수도 이전과 혁신도시 처방만으론 부족

그렇다면 어떻게 지역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을까? 최근 더불어민주당 등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는 ‘세종특별자치시 행정수도 이전’이다. 2012년 7월 출범한 세종시는 현재까지 43개 중앙행정기관, 15개 국책연구기관, 4개 공공기관이 이전해 당초 인구 11만 명에서 35만 명 규모의 도시로 발전했다. 여기에 국회와 청와대, 나머지 정부 부처를 모두 세종시로 옮기면 수도권 과밀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 행정수도 이전 구상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공공기관들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혁신도시 시즌 2’ 정책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노무현 정부 이후 10개 혁신도시에 112개의 공공기관을 이전시켜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중단됐는데, 이를 다시 추진하면 지역균형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 세종특별자치시에 자리잡은 공공기관 전경.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책의 의미와 효과에 관해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마강래 교수는 “최근 나온 여러 논의 중에서 행정과 같은 일부 기능을 지역으로 이전하면 균형발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서울의 힘과 지역 불균형 상황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시 발전이 일부 기관이나 기업 몇몇을 옮겨서 될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 의료, 교육, 행정, 문화 등 개별 기능이 모여 시너지를 이루는 융복합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에 알맞게 정책을 펴야한다”고 덧붙였다. 

인구 500만 대도시 조성하고 지역발전정책 통합을 

이와 관련, 도시·지역 전문가들은 지방거점 지역에 서울과 비견될 만큼 정치·경제·문화적 기능이 집적된 ‘메가시티’를 조성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제언한다. 김현수 단국대 교수(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는 지난 8월 7일 <단비뉴스> 이메일인터뷰에서 “5대 광역시와 10여개의 지방 대도시(인구 50만 규모)를 중심으로 인구와 산업을 모아 수도권에 대응할 수 있는 500만 단위 인구 규모를 가진 메가시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해 “과기부의 강소특구, 국토부의 투자선도지구, 교육부의 거점대학육성, 산업부의 산단 대개조, 중기부의 스타트업파크 등 각 부처별로 분리돼 있는 지역발전 정책을 통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정보부의 강소특구는 지역 내 대학, 연구소, 공기업 등 혁신 역량을 갖춘 기관들이 연구, 산업, 문화 영역에서 협력할 수 있도록 소규모·고밀도로 집적한 공간이다. 국토교통부의 투자선도지구는 최대 1000억 원을 지원해 낙후 지역에 도로, 주차장 등의 인프라를 조성하고 세금 감면과 건폐율·용적률 완화 등 규제 특례로 지역의 성장거점을 육성하는 사업이다. 교육부에서 추진하는 거점대학육성은 연간 800억 원 이상을 들여 전국 39개 국립대에서 기초학문 연구 지원,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인재 양성, 지역산업과 지자체를 연계한 벤처 창업 등을 추진하는 사업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단지 대개조는 산업단지를 지역 산업의 혁신거점으로 삼아 지역 내 일자리를 창출하는 프로젝트다. 중소기업벤처부의 스타트업파크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창업자, 투자자, 기업, 대학, 연구기관 등이 자유롭게 협업하고 소통하는 혁신 공간이다. 김현수 교수는 이런 사업을 부처별로 각각 시행하기보다 하나로 통합 추진해 시너지를 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지방에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고, 특히 청년들의 관심을 끌만한 정보통신기술(ICT), 미디어와 문화 등 신성장산업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기업들은 대개 모든 조건이 갖춰진 대도시의 도심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지역 성장거점을 중심으로 메가시티를 조성해 진주에서 태어난 청년이 경남권 거점도시인 부산에서 일하고, 순천에서 공부한 청년이 서남권 거점도시인 광주에서 일할 수 있도록 혁신 산업 플랫폼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마강래 교수도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기초 지자체 단위가 아니라 광역 지차체 단위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행정구역은 너무 분절되고 중복적이며 서로 경쟁하는 시스템이라 혁신의 걸림돌이므로 광역 단위의 행정 구역 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역 거점의 집적·융복합적 발전과 함께 거점 도시의 성장 이익이 주변 지역에 나눠지는 결합 개발을 통해 지역의 이익을 함께 보존하고 작은 지역주민의 삶의 질도 함께 높아지도록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대학·정부·지자체·기업 연계 사업 늘려야

마 교수는 또 “특히 지방대는 지역 혁신 생태계 구축을 위해 인재 교육, 연구, 일자리를 연계할 수 있는 키 플레이어(핵심주자)가 될 수 있다”며 “대학과 중앙정부·지자체·기업의 연계 협력 전략을 통해, 지역에서 공부하면 지역에 일자리를 얻고 좋은 정주 환경에서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8월 4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지역과 지방대의 상생 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건실한 중견·중소기업과 연계해 지방대에 실습교육, 인턴십, 취업을 보장하는 산학협력 학과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울산대학교 자동차공학과 실습 현장 모습. © 울산대학교 홈페이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있는 학교에는 반도체학과, 자동차학과 등 대기업과 협력해 석사 이상의 학위를 주는 계약학과가 많습니다. 지역에서는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에 필요한 학부 졸업생을 키우는 계약학과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괜찮은 회사 몇 개가 협회를 조직해서 졸업생을 안정적으로 채용하고, 규모가 커지면 급여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산학협력을 펼치면 지역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정부나 지자체가 이런 사업을 많이 지원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양 교수는 이어 “하나 더 대안이 있다면 지역에 문화적으로 낙후된 곳이 많고 어느 지역이든 보육부터 시작해서 교육·문화 분야는 항상 사람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사회적 일자리, 예를 들어 도서관 사서나 학교 독서지도 교사 등의 일자리를 만들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런 일자리를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형태로 많이 만들면 고용도 늘리고 주민 복지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미국의 하버드 등 선진국 명문대학은 대부분 수도가 아닌 지방의 작은 도시에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교육의 품질과 상관없이 ‘지잡대’ 등으로 싸잡아 부르며 멸시하고 차별하는 풍토가 심하다. 지방대생들이 편입 등을 통해 서울로 ‘탈출’하는 행렬도 끊이지 않는다. 저출산 추세로 학생 수가 점점 줄면서 지방대 중 상당수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와 <단비뉴스>는 심층기획 ‘지방대 위기와 혁신’을 통해 서울 중심의 불균형 발전과 왜곡된 학력 경쟁 등이 낳은 지방대 소외의 실상을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편집 :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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