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넷플릭스 다큐 ‘소셜 딜레마’

지난 22일 국정감사에 구글코리아 회장이 출석했다. 인앱 결제 강제, 수수료 30% 인상으로 앱 제작자들과 소상공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받았다. 그보다 이틀 전에는 미 법무부가 구글에 반독점 소송을 걸었다. 주요 고발 내용은 미국 통신사가 휴대폰 제조사와 제휴를 맺어 구글앱이 탑재된 상태에서 휴대폰을 내놓도록 해,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차단한 혐의다. 이 행위로 구글은 미국 검색 엔진 시장을 88% 장악하고 검색 광고를 독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구글을 비롯한 소셜 미디어 업체가 사회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충격적으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넷플릭스가 내놓은 <소셜 딜레마>다.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소셜 딜레마>는 우리가 소셜 네트워크의 홍수 속에서 자기 생각을 잃어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제작은 늘 어렵다. 시청자에게 새로우면서 유익한 내용을 심층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뉴스를 모아서 보여주기만 해서는 만드는 의의가 덜할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건 열심히 고민해서 새로운 통찰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오래 붙들고 있다가 적기를 놓칠 수도 있다. <소셜 딜레마>는 넷플릭스에서 지난해 공개한 다큐멘터리 <거대한 해킹>처럼 소재가 된 사건이 크게 화제가 돼 시기를 잘 탄 것도 아니고, 특별히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던 문제를 피부에 와 닿게 구성한 것만으로 화제가 됐다.

접근 방식도 <거대한 해킹>보다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거대한 해킹>은 유권자들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해 2016년 대선 때 트럼프에게 투표하도록 유도한 데이터 기업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와 내부고발자를 집중 조명하고 그들의 족적을 따라가는 직선적인 구성이다. 반면, <소셜 딜레마>는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구글, 페이스북, 핀터레스트 등 실리콘 밸리 대기업 일선에 있었던 이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자신들이 근무했던 회사가 사용자의 시간을 영양분 삼아 돌아가고 있다고 고발해 충격을 준다. 페이스북 수익 창출 이사와 핀터레스트 회장을 맡았던 팀 켄달은 이 세태가 지속하면 가까운 미래에 내전이 벌어질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이 전직 실무진들의 충격적인 증언에다, SNS가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미국 중산층 가정 십 대 남매의 일상을 다룬 픽션 영화를 교차했다.

내부고발자와 전문가들이 쌓아온 ‘반 SNS’ 운동

이 다큐멘터리에 주인공은 없지만, 영화의 메시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은 있다. 구글에서 3년간 일하다 퇴사하고 사회운동을 벌이고 있는 트리스탄 해리스다. 해리스는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과 행동경제학을 공부한 뒤 창업한 스타트업 회사가 구글에 합병되면서 구글에 고용된 전형적인 실리콘 밸리 엔지니어였다. 구글에서는 ‘디자인 윤리학자(Design Ethicist)’라는 직함을 달고 디지털 화면이 어떻게 사용자의 행동과 사고방식, 관계, 그리고 일상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연구하고 반영하는 일을 맡았다.

▲ 전직 구글 직원이 구글 지메일 아이콘을 확정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넷플릭스

그가 처음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낀 건 지메일(Gmail) 팀에 합류했을 때다. 그는 지메일 아이콘과 인터페이스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팀 목표가 ‘어떻게 하면 사용자가 지메일에 중독되게 할까’가 되어버렸고, 실리콘 밸리의 모든 회사가 사람들 시간을 더 많이 뺏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내 구글 같은 대기업이 이 마케팅 방향을 앞장서서 바꿔나가야 업계도 변한다는 내용의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 가까운 동료들에게 보낸다. 프레젠테이션은 구글 직원들 사이에 반향을 일으켰고,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에게도 보고된다. 하지만 아무런 조처도 없었다. 실망한 그는 구글을 퇴사하고 ‘인간중심 기술 센터(Center For Humane Technology)’라는 비영리 사회단체를 창립해 SNS 생태계의 해악을 알리는 한편, 엔지니어들에게 기술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해리스보다 더 오래전부터 실리콘밸리에 각성을 촉구해온 사람도 있다. VR(가상현실)의 선구자이자 실리콘 밸리의 오라클(신탁 사제)이라 불리는 재런 래니어는 SNS 시장에서 '소비자가 광고에 보이는 관심'이 상품이 되는 걸 넘어, '사용자의 행동과 인식에 서서히, 조금씩, 눈치채지 못하게 일어나는 변화'가 상품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변화가 쌓여서 사용자의 사고방식과 정체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내다본다. 지난해 <감시 자본주의 시대>를 낸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쇼샤나 주보프 교수는 이런 현상을 ‘인간이 선물(先物)로 거래되는 시장’이라 부르며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진단한다. SNS가 사람들 생각을 자극적인 콘텐츠와 확증편향으로 길들이고, 시스템 유지와 수익 창출을 위한 실험실 쥐로 다룬다는 것이다.

▲ 하버드 경영대학원 쇼샤나 주보프 교수가 <소셜 딜레마>에서 SNS는 인간을 선물로 거래하는 시장이 되었으며, 이 시장을 통해 인터넷 회사가 인류 역사상 제일 부유한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 넷플릭스

너무 단순한 설명 아닐까?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뭔가 석연치 않다. 청소년의 일상을 그리기 위해 교차한 픽션 영화가 억지스럽다. 특히 험상궂게 생긴 악당으로 의인화한 SNS 알고리즘이 주인공의 행동 데이터를 모아 부두 인형을 만들어 조종하는 연출은 다소 억지스럽고 기괴하다. 다큐멘터리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이다.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라는 아서 클라크의 말을 인용하며 SNS 알고리즘을 마술이나 마법 주문 등으로 연결하더니 픽션에서 이 억지스러운 연출로 이어진다. 나아가 이 다큐멘터리는 인터뷰이 입을 빌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라며 이 사태가 벌어지도록 의도한 사람이 없었다고 강조한다. SNS 알고리즘은 그저 각자 일 열심히 하다 보니 쌓은 바벨탑이라는 식이다. 게다가 내놓는 해결책도 허무하다. 사용자가 SNS를 삭제하고 쓰지 않고, IT 기업에 규제를 강화하면 된다고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기업 제품을 불매하고 제대로 규제하는 게 가능할까? 애초 사람의 시간을 빼앗기로 유명한 넷플릭스에서 이런 영화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 넷플릭스는 광고 수익이 아닌 구독료에 의지한다. 실시간으로 시청자의 시간을 빼앗는 게 아니라 여가를 덩어리째 노린다고 할 수 있다. 백번 양보해서 여가만을 노리는 건 기존 미디어와 똑같다고 쳐도,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해 확증편향을 일으키는 건 넷플릭스도 마찬가지다. 거기다 래니어가 다른 인터뷰에서 지적했듯 ‘반 SNS’ 운동마저 SNS를 기반으로 마음을 모으고 성원을 얻고 있다. 한계가 분명한 데다 오히려 SNS 권력을 강화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결국 SNS로 사용자의 시간을 뺏는 게 이익이 되고, 이익 극대화가 기업의 제 1목표인 한, '반 SNS 운동'은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이 운동의 홍보물인 <소셜 딜레마> 역시 많은 사람이 미심쩍어하던 주제를 정면으로 다뤘지만, 그에 걸맞은 결론은 미뤄버린 한계는 분명하다. 우리는 이미 AI가 지배하는 '매트릭스'에서 살고 있다. 지금 AI 뒤에 도사리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맹점을 똑바로 지적할 수 없다면, 개인이 각자 자기 폰 안의 SNS 앱을 삭제하고 IT 기업 이익의 극히 일부를 세금으로 돌려받는 데에 그친다면 그게 진정한 '매트릭스' 탈출이라고 할 수 있을까?


편집 : 강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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