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너라 벗고놀자] 황상호-우세린 부부 여행기 ㉒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는 활성화한 마그마의 작용으로 온천이 발달해 있다. 온천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신성시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온천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백인 정착민이 원주민의 온천을 강제로 빼앗다시피 해 주변에 온천 리조트를 지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전현직 기자 부부가 이 지역 무료 자연 온천을 다니며 썼다.

▲ 캘리포니아 인요 카운티 더티 속스 온천에서 바라본 시에라네바다 산맥. © 황상호

촉이 발딱 섰다. 미국 서부 대자연에 누드 온천이라니. 한 여행자가 알려준 정보가 귓가에 꽂혔다. 장소가 여러 곳이라면 미국을 색다른 렌즈로 바라볼 수 있는 창이 되겠다 싶었다. 한편으론 일년 군사비 1천조원에 이르는 문명 최부국에 설마하니 누드 온천이라니,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탐방한 누드 온천이 캘리포니아 중남부에서만 이십여 곳이다.

‘매혹적’(Fascinating)이라는 말이 고대 로마에서 악마와 질병을 물리치는 남근상 파시눔(Fascinum)에서 왔다고 하니, 이 또한 합이 절묘하지 아니한가? 촉도 ‘서고’, 그것도 ‘서는’, 그곳이 궁금했다.

진짜 홀딱 벗을까? 기껏해야 상의 탈의 정도겠거니 했다. 그 정도라도 손해볼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방문객들이 위 아래 모두 쿨하게 벗어 제꼈다. 중요부위에 박힌 금속 액세서리부터 색 빠진 문신까지 모두다, 오픈. 나이대는 보통 중년이었지만 20대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20대들은 발가벗고 빗자루로 온천 주변을 청소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의 파시눔은 기립하지 않았다. ‘뜨신’ 온천수도 온천수이려니와, 너무 자연스러운 분위기 때문이었다. 맞다. 한국에서 기자를 할 때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대회를 취재한 적 있는데, 그들이 나보다 공을 더 잘 차는 데 한 번 놀라고, 모든 모습이 편안하고 조화로워 보여 두 번 놀랐다. 오히려 현대 의학이 ‘정상’이라고 판단한 내가 비정상인처럼 느껴져 쭈그러들었다.

사진작가 김미루는 사막 여행을 하며 누드 사진을 찍은 까닭에 관해 옷이 가지고 있는 시간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온천이야말로 그러하다. 옷을 벗는 순간, 누드가 일상이던 시대로 소환된다. 온천은 그런 의미에서, 영화 <해리포터>의 ‘9와 4분의 3 승강장’이자 <미드나잇 인 파리>의 격조 있는 ‘클래식 카’다.

▲ 시에라네바다 산맥 동쪽 건조지대에 야생화가 피어 있다. © 황상호

오리엔탈리즘 너머

이 때문에 캘리포니아 온천사는 유럽인 시각에서 서술되고 있다. 온라인 리서치를 해도 대부분 안목 있는, 끈기 있는 유럽 개척가가 태초의 땅을 개발했다는 식이다. 존 블락 프리드먼(John Block Friedman)과 크리스튼 마슬러 피그(Kristen Mossler Figg)의 책 <중세시대 무역, 여행과 탐험>(Trade, Travel and Exploration in the Middle Ages)의 한 대목이 그런 사례다.

“현대 지리학에서는 여전히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기존 개념을 사용한다. 원주민을 친절하거나 불친절하다고 묘사한다. 하지만 유럽 무역상들은 탐험가로 설명하면서 용감하다는 말을 자주 쓴다. 결코 원주민에게는 용감하다는 말을 쓰지 않으면서.”

여기서 한발짝 더 들어가보자. 깊이 팔 것도 없이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져라 노려보며, ‘한 놈만 걸려’라는 심정으로 마우스 클릭을 하다 보면, 이것저것 섞인 원재료가 나오고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 키질을 하면 폐사지의 깨진 사기그릇처럼 원주민 역사가 편린을 드러낸다.

원주민은 온천을 중립지대, 평화지대로 여겼다. 병을 치료하거나 타 집단과 물품을 교환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온천에 ‘그레이트 스피릿'이 스며 있다고 믿어 무기를 드는 행위를 불경시했다. 일부 지역은 교회처럼 아주 신성시했다. 전두환도 두 손 들게 한 ‘87년 명동성당’ 그 이상이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온천, 즉 온천 리조트는 유럽 문화다. 11세기 종교 순례가 유행하면서 온천은 성스러운 물, ‘기도빨’ 잘 받는 성천으로 여겨져 순례자가 들러 기도하고 쉬는 곳이 됐다. 그러다 16세기 종교 개혁 때 성물 숭배 금지로 온천 이용이 금지됐다가 르네상스 이후 레저문화가 발달하면서 리조트화했다. 미국에서는 18세기 후반 본격적으로 시작된 스페인 식민지 개척과 가톨릭 미션 활동, 유럽 이주민의 골드러시 등으로 리조트 문화가 전파됐다.

▲ 인요 카운티 비숍에 있는 파이우트 쇼숀(Paiute Shoshone) 문화센터에서 우세린이 원주민 여성과 사진을 찍고 있다. © 황상호

자연스레 여정은 원주민 문화 탐구로 이어졌다. 저들은 왜 장발일까? 왜 얼굴에 화려한 원색으로 무섭게 칠을 할까? 이 땅에서 어떤 방식으로 스러져갔는가? 그런 질문에 답을 찾아가다 보면, 그들 문화와 그들이 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접한다. 지명을 지을 때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같은 인물 이름이 아닌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찾아 작명하고, 스스로를 이 땅의 주인이 아닌 이주민이라 여기는 공존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쯤 되면 ‘온천 어디가 물이 좋고 어디가 나쁘다’는 분위기(Atmosphere) 비평을 넘어, 온천을 매개로 자연과 내가 공명하는 분위기(Vibe)를 탐닉할 수 있다.

계곡물이 산의 땀이라면, 온천은 지구 심혈관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혈액이다. 갓난아이가 우유를 달라며 눈을 켜 우는 핏발 선 에너지다. 또 거대한 육체 깊은 곳에서 밀려 올라온 은밀한 그 무엇이다. 수만 년간 부딪히고 쪼개진 지각 속 마그마방에서 지하수가 만나 지상으로 뿜어져 나온다. 단테 <신곡> 속 악마 루시퍼가 머리를 처박고 있는 바로 그곳 말이다. 미 서부는 휘청거리는 지진판 위에 있고 이민자는 유동하는 세계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맞추며 살아간다.

길은 소외된 곳으로 향했다

탐방한 온천은 주로 무료 노천 온천이다. 그곳들은 공교롭게 상업지역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소외된 지역으로 수렴한다. 주로 빈자, 히피, 장기여행자가 모이는 곳으로 정치∙경제적으로도 힘 없는 지역이다. 고압 송전탑이 가난한 마을을 관통하는 원리처럼 그곳에는 혐오 시설이나 환경 파괴 시설이 들어오거나 이미 들어와 여러 피해를 입고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슬랩 시티 온천이 있는 캘리포니아주 임페리얼 카운티다. 솔튼호 오염으로 대거 몰락한 지역이다. 이곳은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덮치며 초반 캘리포니아 보건 위기를 견인했다. 인구밀도가 낮은데도 의료 인프라가 빈약해 감염 속도가 가파르게 증가했고 사망자도 속출했다.

▲ 더티 속스 온천이 수초와 이끼로 뒤덮여 있다. © 황상호

온천 여행을 하며 환경 파괴 현장도 자주 목격했다. 부자 도시 로스앤젤레스가 물을 빼 가 상류 지역 호수 수위는 계속 낮아지고 염도가 높아져 주변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었다. ‘더러운 양말 냄새가 난다’ 또는 ‘광부들이 더러운 양말을 빨았다’고 해 이름 지어진 인요 카운티 더티 속스(Dirty Socks) 온천은 이제 가까이 가기 싫을 정도로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기후 변화로 날씨가 건조해져 캘리포니아에서는 해마다 큰 산불이 잇따라 발생한다. 피해면적과 피해액은 매년 기록을 갱신한다. 2020년에는 남한 영토 5분의 1 이상이 잿더미가 됐다. 온천 탐방에도 영향을 끼쳤다. 캘리포니아 남부 산타바바라 카운티에 있는 빅 칼리엔테(Big Caliente) 온천과 리틀 칼리엔테 온천은 2017년 토머스 산불 이후 여전히 통제(2020년 기준)돼 있다. 캘리포니아 중부 빅서 주립공원(Big Sur State Park)의 사익스(Sykes) 온천도 같은 이유로 외부인 출입이 막혀 있다.

2020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크고 작은 트레일이 문 닫았다. 이에 따라 캘리포니아 중부지역 모노(Mono) 온천과 브레이니 초원(Blayney Meadow) 온천, 이바 벨(Iva Bell) 온천 등을 가지 못했다. 특히 연초에 추첨으로 미 최고봉인 휘트니산 입장권을 간신히 받았지만, 코로나로 차단돼 오르지 못했다. 다, 너님, 나님, 우리님이 자초한 일이다.

이고(Ego)가 아닌 에코(Eco) 여행

이 책을 읽고 온천 여행을 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몇 가지 당부하고 싶다. 5인을 초과한 단체 여행은 되도록 하지 말아 달라. 온천 수용 인원은 장소에 따라 대개 5명에서 10명 사이다. 온천을 파티장으로 만들지 말고 조용히 자연의 품을 느끼다 오기 바란다. 북 캘리포니아 샤스타산(Mt. Shasta)의 팬서 메도우즈(Panther Meadows) 샘은 ‘영적 투어’(Spiritual Tourism)를 즐기는 사람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

사진 찍을 때 주변에 나체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 화장실이 없다고 아무데나 ‘큰일’을 보지 말라. 절박한 상황에서 보더라도 직박구리 야동 폴더처럼 아무도 못 보게 땅 속 깊이 숨겨두라.

▲ 더티 속스 온천이 수초와 이끼로 뒤덮여 있다. © 황상호

지역에 가면 소규모 지역사박물관과 서점에 가기를 바란다. 전시물과 기록물이 사소해 보일 수 있어도 그 지역 문화를 읽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지역 서점에서는 그 지역 커뮤니티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지역 작가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제목만 봐도 이득이다.

부디, 보고(Seeing) 듣는(Hearing)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Observing)고 귀 기울이는(Listening) 여정이 되길 바란다. 비행기에 몸 싣고 자동차를 타는 것 자체가 생태 파괴적 행위 아닌가. 휴가는 서구 소비문화가 만들어낸 발명품이라는 패멀라 노위카 작가의 말을 전적으로 따를 수 없더라도, 최소한 운송 장비가 소비한 기름이 어느 국가, 어느 마을, 힘 없는 소수 민족의 피눈물을 시추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벗고 놀자. 뻔한 생각도 함께.

▲ 일본인 강제수용소 만자나르에서 촬영한 표지판. © 황상호

** 황상호는 <청주방송>(CJB)과 <미주중앙일보> 기자로 일한 뒤 LA 민족학교에서 한인 이민자를 돕는 업무를 하고 있고, 우세린은 <경기방송> 기자로 일한 뒤 LA 한인가정상담소에서 가정폭력 생존자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편집 : 윤재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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