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벽’

▲ 정진명 기자

한국은 너무나 치열한 경쟁 사회다. 경쟁이 있기에 성공할 기회도 있지만 실패에서 오는 소외도 있다. 사회 공동체 안에 생기는 벽은 흔히 밥그릇을 둘러싸고 높아진다. 절벽 아래 사람들은 나아갈 길이 가로막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인데도 절벽 위 사람은 절벽 끝에 서 보지 않으면 아래 사람들을 볼 수 없다. 사회안전망이 허술한 사회에서는 절벽 위 사람도 방심하면 아래로 떨어질 수 있지만 자신만은 대대로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수저계급론’은 우리 현실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숟가락을 물고 태어나는 아기는 없지만 태생적 한계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이가 많다. 계급은 스펙을 쌓고 또 쌓아도 도달하기 힘든 고용절벽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부모가 가진 지위나 돈이 자식의 미래로 이어진다는 건 익숙한 현실이다. 청와대 고위 관료나 국회의원 아들딸의 공기업 청탁 취업이나 의대 교수들의 자녀 스펙 쌓기 조작이 이를 뒷받침한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계급 격차와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절벽만큼 차이가 크다.

의사도 한국 사회에서 ‘금수저’다. ‘흙수저’인 사람이 꿈꾸기 힘든 직업이다. 머리도 좋아야 하지만, 의사 공부를 마치려면 많은 돈이 든다. 한국장학재단 장학금 신청자를 기준으로 하면 올해 서울의대 신입생은 84.5%가 상위 2구간 고소득층 자녀다. 그런 의대생과 의사들은 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대하려 하자 파업에 돌입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자신들 영역 확보를 위해 투쟁하는 모습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비친 의사와는 딴판이다. 

보이지 않는 절벽 위를 지키기 위해 의대생 86%가 국가고시를 거부하는 단결력을 보여주었다. 의대생 수를 늘리고 지역에 공공병원을 짓는다 해서 의료의 질이 좋아지지 않고 수도권 중심의 의사 쏠림 현상을 부추긴다는, 앞뒤 안 맞는 주장을 지금도 굽히지 않고 있다. 여론은 냉담하다. 그동안 비급여 진료를 일부러 늘리는 의사들이 많았고, 지역에서는 제대로 진료를 받기 어려웠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의대생들이 다시 국가고시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하는 모습은 그들만의 특권을 인정하고 이해해달라는 이기심으로 해석된다.

추가시험을 요구하는 행위는 불공정하다. 취업준비생인 나는 수많은 공인시험과 취업시험을 보고 있지만, 시험을 포기하면 획득할 수 있는 기회도 사라진다. 재응시 기회는 재난 상황이 벌어졌거나 MBC 기자시험처럼 회사가 논란이 될 문제를 낸 뒤 잘못을 인정했을 때나 줄 수 있는 것이다. 사익을 위해 불공정한 태도를 보인 의사들에게 진료를 맡기는 것도 찜찜하다. 보조의사(PA) 간호사들에게 수술을 맡기는 양심 없는 의사들 모습을 뉴스에서 보면서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불신의 폭을 좁히고 공생해야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높아진 절벽을 낮출 수 있다. ⓒ Pixabay

절벽은 불통의 벽이다. 절벽 위에 있는 사람들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밑에 있는 사람들을 걱정하지 않고, 밑에 있는 사람들은 절벽 위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오해가 쌓이고 답답하다. 위에 있든 밑에 있든 사회는 하나의 공동체이기에 불신의 폭을 좁히고 공생해야 한다. 의사들이 불공정한 특권의식을 내려놓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양자 사이에 높아진 절벽을 낮출 수 있다. 그래야 의사들에게 싸늘한 민심도 돌아설 것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신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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