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자리 ③ ‘일용직, 비정규직’

그의 이름은 ‘발렛’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20층 건물 지하 1층. 실내 공사를 막 끝낸 공간에는 창문은 물론 식탁이나 의자도 없다. 텅빈 공간은 천장과 벽을 새하얗게 칠해 더욱 휑해 보인다. 지하층을 놀리기 아까웠던 건물주는 용도도 정하지 않은 채 공사를 끝내고, 시범사업으로 입주사 직원에게 샌드위치를 파는 매점을 열었다. 공간 한쪽에 스테인리스 작업대를 놓고 토스터와 도마, 1구짜리 인덕션 하나를 올려놓았다. 작업대 옆 주방에 있는 것은 업소용 싱크대와 냉장고가 전부였다. 나는 그곳에서 샌드위치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샌드위치는 잘 팔리지 않았고, 나는 폐기될 샌드위치를 기계적으로 만들었다. 본사 직원은 "이 사업으로 인건비조차 건지기 힘들다"는 말을 반복했다.

한 중년 남성은 입주사 직원의 차를 대신 주차해주는 일을 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얼굴에는 검버섯이 난, 나이는 40대 정도로 보이는 이였다. 사람들은 그를 ‘발렛’이라 불렀다. 건물 관리소장도, 청소하는 중년 여성도, 로비에 있는 경비원도 ‘발렛’이라 부르기에 나도 그를 ‘발렛’이라 생각했다.

발렛에게는 주어진 일은 있지만, 머물 자리는 없었다. 그가 일하는 1층 주차장에는 주차 공간뿐이었다. 햇볕을 피할 파라솔은 커녕 앉을 의자 하나 없었다. 버려진 신문 한 장을 주차장 구석에 펴고 앉아 대기했다. 신문지 한 장이 그의 자리였다. 발렛은 건물을 소유한 임대회사의 직원이었다. 직원 앞에 한마디가 더 붙었다. 그는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신문지 한 장이던 발렛의 자리

일이 바쁘지 않거나 비가 와서 밖에 있는 주차장에 서 있을 수 없는 날이면, 발렛은 지하로 내려와 샌드위치를 만드는 내 옆에 서서 이야기를 했다. 초등학교 동창들과 계곡에 놀러 가기로 했다느니, 자기 부인은 사치가 너무 심하다느니. 발렛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때로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때론 건성으로 그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출근해 지하 1층 매점 문을 열었다. 발렛이 입주사 직원들 ‘서비스용’으로 마련해 놓은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는 요리도구와 샌드위치 빵을 꺼냈다. 발렛이 말했다.

“회사에서 문자가 왔는데, 이번 달까지만 일하라네요.” “아, 그래요?” 

“그만두기 싫으면 근무지를 옮기라는데 그곳은 이 업계에선 일이 빡세 다들 한 달도 못 하고 그만둬요. 나는 허리가 안 좋아요. 장애 4급 판정을 받았거든요.” 

나는 빵을 썰었다. 식빵을 못나 보이게 하는 필요 없는 귀퉁이를 잘라냈다. 발렛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발령 난 곳은 집에서 3시간 거리인데 그만두라는 소리지요. 이 건물에서 발렛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적긴 했지만, 이렇게 문자 한 통으로 자르는 건…참….”

그는 이틀 뒤부터 지하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강대로에 있는 새로운 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그가 일하던 서울 청계천로 고층 건물 지하 1층, 티끌조차 눈에 띄는 새하얀 공간에 아저씨의 흔적은 없었다. 떠난 이의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다던데, 그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일터에서 그는 나의 유일한 대화 상대였다. 청소원이 고생한다며 대신 걸레질을 해주던 인정 많은 동료였다. 경비원보다 먼저 나와 지하실 문을 열어주던 책임감 있는 직원이었다. 이 모든 모습이 지워졌다. 누구도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발렛'이었다. 청계천 고층빌딩에서는 발렛도, 아르바이트하던 나도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본사직원에게 ‘야’나 ‘얘’라고 불렸다. 그곳에선 주인과 하인, 갑과 을, 원청과 하청으로 맺어진 관계만 존재했다.

▲ 도시의 화려함, 높게 치솟은 고층 건물 뒤에는 이름도, 자리도, 존재도 없이 생존을 위해 일하는 수많은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픔과 눈물이 있다. ⓒ pixabay

이 땅의 수많은 발렛들의 자리 

다음 아르바이트는 텔레마케팅 일이었다. 대형 마스크 회사가 고용한 하청업체였다. 하루 전화가 3천 건이나 됐지만 전화를 받는 직원은 나 포함 3명이었다. ‘고객님’께서는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은 거냐”고 소리쳤다. “담당자를 바꾸라”고 했지만 나는 원청의 담당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사무실에 앉아 8시간 동안 말하면 목이 아팠다. 상담원들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고객의 말에 마스크를 벗고 전화를 받아야 했다. 마스크를 쓸 수 없을 만큼 강도 높은 전화 업무와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좌석 구조, 밀폐된 근무 환경은 심각했다. 지난 3월, 서울 구로구 보험사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일어난 후에 콜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이 알려졌지만 내가 일하던 8월에도 콜센터의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하청업체 아르바이트 자리에는 건강과 안전을 위한 장치는 없었다.

▲ 지난 3월 구로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콜센터는 좁은 공간에 많은 인원이 근무하지만, 업무 특성상 마스크를 쓸 수 없어 감염병 전염에 취약했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용역·도급업체 소속 비정규직이다. ⓒ JTBC

이 땅에는 수많은 발렛이 있다. 하루하루 몸으로 버티는 일용직과 비정규직이다. 발렛의 자리는 좁고 근무환경은 열악했다. 안전은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졌다. 지난 5월, 집단감염이 발생한 쿠팡 부천물류센터에서 일하는 1,300명 노동자 중 약 1,200명이 단기 계약직 혹은 일용직 노동자였다. 부천 쿠팡은 구로 콜센터와 마찬가지로 고밀도 작업장이었다. 쿠팡은 “물류센터 안에서 모든 직원이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작업”했다고 발표했지만, 현장 노동자는 “마스크 없으면 일 못한다고 했지, 주는 건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9월에는 협소한 휴게실에서 함께 끼니를 해결하던 신도림역 청소노동자 8명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됐다. 이들은 대부분 외주용역업체 소속이었으며 한 달 식대는 11,000원에 불과했다. 하루에 360원꼴이다. 청소노동자들은 식비를 아끼려 좁은 휴게실에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었다. 그곳에도 노동자의 자리는 없었다. 주인과 하인, 갑과 을, 원청과 하청으로 맺어진 관계만 존재했다.

관계로 맺어진 발렛의 자리는 노동환경과 건강에 그치지 않고 안전과 목숨문제로 연결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과 2017년 각각 산재로 숨진 하청 노동자는 전체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의 40.2%이다. 2018년에는 38.8%였다. 산업재해로 매년 약 2,000명이 죽는데 하청업체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비율은 원청업체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는 비율보다 8배 높다. 원청이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 때문이다. 2018년 가장 재해가 많이 발생한 산업은 건설분야로 27,686명이 산업재해를 당했다. 사망자 수도 570명으로 전 산업 중 가장 많았다. 건설 노동자 10명 중 4명은 임시‧일용직이다. 하청업체들은 최저가 수주 경쟁을 한다. 하청업체는 재하청을 준다. 그 사이에서 오늘도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 지난해 공개된 중부발전 내부문건. 산업재해 사망사고에 대해 발전소 본사 직원이 죽으면 12점, 하청업체 직원이 숨지면 4점을 경영성과 평가에서 감점한다. 하청업체 직원 3명의 목숨이 본사 직원 1명의 목숨과 같다. ⓒ MBC

왜 지금, 발렛의 ‘자리’인가

창고에 구겨 버려진 신문지 쪼가리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발렛. 발렛은 서울 고층빌딩 주차장에 신문지 한 장 깔고 앉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땅의 다른 발렛인 일용직과 비정규직들은 한 집안의 가장이자 자식들이다. 이들이 건강할 때 공동체가 건강해진다. 발렛들의 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건강을 넘어 생명까지 위협받고 있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공전 중이다. 신문지가 반으로 한번 접히고, 반의반으로 또 한 번 접히고, 반의반의 반으로 다시 접히게 되면, 발렛은 몸을 이리저리 꼬다가 마침내는 '쿵'하고 넘어져 버릴 것이다. 발렛만이겠는가. 각자 제 몸을 추스르느라 바쁜 나도, 청소 아주머니도, 경비아저씨도 '어이쿠'하며 쓰러질 것이다. 같은 아픔을 공유하면서 우리가 한 몸이라는 사실은 모른 채 서로에게 힘이 되지 못하면 우리 모두가 공멸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발렛의 ‘자리’를 확인하고 살펴야 하는 이유다.


[청년기자들의 시선] 시즌2를 시작한다. 시즌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즌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자리’이다. 누구나 자기 자리가 있다. 자리는 정체성이자 책임이고 세상과의 연결고리다. 나는, 당신은, 우리는 지금 어느 자리에, 어떤 모습으로 서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묻는다. (편집자) 


편집 : 이예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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