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자리 ② ‘차별과 혐오’

게임에서 배운 자리싸움 기술

초등학교 5학년 때 <메이플스토리> 게임이 인기가 있었다. 조작법이 쉬웠고 화려한 액션, 귀여운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재미가 있었다. <메이플스토리>는 지금은 한물간 횡스크롤 액션 롤플레이 게임이다. 2D 그래픽 화면에서 캐릭터를 좌우로만 조작할 수 있다. 캐릭터가 앞으로 달리면서 누가 더 빨리 많은 몬스터를 제압하는지 다투는 게임이다. 몬스터가 많이 출몰하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수단이 동원됐다. 플레이어는 상대방에게서 돈을 받고 자신이 사냥하던 자리를 내주기도 하고, 아예 자리를 빼앗기도 했다. 함께 게임을 해도 자리가 남았지만, 좋은 자리를 정하고 혼자 차지하려고 서슴없이 남의 자리를 빼앗는 부정을 저질렀다. 자리싸움은 가벼운 언쟁으로 시작해 점점 격해지다가 온라인이 아닌 현실에서 직접 만나 싸우기까지 했다. 현실에서 플레이어를 만나 싸우는 행위란 뜻의 ‘현피’란 말이 초등학생 사이에 유행할 정도였다.

국내 최초 온라인 게임인 <바람의 나라>는 ‘체류놀이’를 유행시켰다. 체류놀이는 다른 이용자가 죽어서 아이템을 떨어뜨리면 그 위에 버티고 서서 상대방 아이템을 인질로 협박하는 놀이다. 게임 중에 캐릭터가 죽으면 자기 무기와 방어도구 같은 모든 아이템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유령이 된다. 유령은 성황당에서 부활해야 자기 아이템을 회수할 수 있다. 유령이 떨어뜨린 아이템은 본래 주인만이 회수할 수 있지만, 두 시간이 지나면 누구든지 주울 수 있다. 아이템을 줍기 위해, 플레이어들은 꼬박 두 시간 동안 유령 자리를 지켰다. 상대방 조롱은 예사다. 대머리인 캐릭터가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나는 빡빡이다”를 외치게 한다. 재미를 위한 조롱이지만, 당사자는 아이템을 되찾으려면 수치심을 견뎌야 한다. 협박하는 실력도 대단했다. 바닥에 떨어뜨린 아이템이 비싼 것이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와 다른 아이템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두 시간을 기다리기에는 지루하니 서로 합의하자는 것이다. 아이템 주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아이템이나 돈을 넘기고 아이템을 되찾았다.

▲ 초등학생이 즐기던 게임에서 자리싸움은 조롱과 협박을 마다하지 않는다.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에서는 유령이 떨어뜨린 장비를 되찾으려면 자리를 선점한 이용자가 명령하는대로 따라야 한다. 한 이용자가 아이템을 모두 떨어뜨린 이용자를 조롱하고 있다. Ⓒ 넥슨 게임화면 캡쳐

초등학생들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게임 안에서 독점하면 힘이 되는 자리의 이기심을 배웠다. 나 역시 게임을 하며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자리에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싸움의 기술을 배웠다. 게임에서 자리는 캐릭터를 성장시키기 위해 선점하고 지켜야 하는 공간이다. 돌아다니면서 사냥하는 것보다 몬스터가 자주 출몰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그곳에서 진득하게 사냥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게임에서 자리는 성장과 육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용자들이 만든 암묵적 합의다. 자리는 사고파는 대상이 아니라 플레이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본요소였다. ‘먼저 온 사람이 임자’인 장소였다. 자리싸움은 나중에 온 사람이 합의를 깨고 자리를 빼앗을 때 벌어진다. 문제는 게임 내에서 질서를 바로잡을 존재가 없다는 점이다. 게임에서 레벨은 곧 법이다. 철저한 힘의 논리에 따라 약자는 속절없이 자리를 빼앗긴다. 남의 자리를 빼앗는 파렴치한 행위는 게임 속에서 장난처럼 벌어진다. 그렇게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타인의 아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냉혹한 ‘자리 빼앗기’ 게임에 익숙해진다.

휴거, 빌라충 … 차별과 혐오의 뿌리, 자리싸움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자리에 관한 이기심과 싸움은 게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삶의 현장에서도 벌어진다. 2004년 내가 살던 김포시 사우동 길훈아파트 맞은편에 빌라촌이 있었다. 아파트와 빌라촌을 가르는 것은 왕복 2차선 도로였다. 도로를 경계로 주민들 사이에 자리싸움이 벌어졌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빌라촌으로 넘어오자 빌라촌 부모들이 막고 나섰다. 빌라촌에 꼬마 아이들이 많아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빌라촌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자고 합의했다. 친구들은 생이별할 상황에 놓였다.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빌라촌 아이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아파트 단지로 놀러 온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들에게 자리는 그저 놀이터였을 뿐이었다. 부모 세대가 돈의 가치로 자리를 갈라도, 아이들은 친구였다.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 아파트 평수가 친구를 결정한다. 삶의 자리는 신분이며 계급이 됐다. 휴거(휴먼시아 거지), 빌라충(빌라 입주자를 벌레에 비유한 말), 이백충(월수입이 200만원인 사람을 비하하는 말) 등이란 말이 당연시된다.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친구였던 아이들을 거지와 벌레라 부른다. OO캐슬, OO파크 등 유명 아파트의 담벼락은 높다. 성 밖에 사는 외부인들 출입을 금하면서 마음에도 담벼락을 쌓는다. 구분과 구별은 차별과 혐오를 낳는다.

지난 6월 세종시 한 아파트 주민들은 입주자대표회에서 임대아파트와 같은 학군으로 묶이지 않기 위해 주민들 의견을 모으다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역풍을 맞았다. 대전 둔산동 한 아파트 단지의 두 초등학교는 확고한 경계로 갈렸다. 일반분양아파트 학교는 학생 수가 1,200여 명인데 임대아파트가 있는 학교는 160여 명에 불과하다. 학부모들이 일반분양아파트 학교를 선호했다. 위장전입도 불사한다. 일반분양아파트 학교 측이 위장전입을 하지 말아 달라는 가정통신문까지 발송했다. 어른들의 자리싸움에 1,200여 명 다수에 속한 아이는 160여 명 소수 아이를 멸시한다. 아이들은 자기 자리를 아파트 평수와 돈의 가치로 규정한다. 어른들 자리싸움은 아이들에게 이어져 끝없는 차별과 혐오의 선순환 고리를 형성해 대물림된다.

▲ 대전 둔산동의 한 아파트 단지 입주민들은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보내지 않기 위해 위장전입까지 시도하고 있다. 어른들의 자리싸움은 아이들에게 이어져 차별과 혐오의 악순환 고리가 된다. Ⓒ KBS

자리싸움은 한 아파트 내에서도 벌어진다. 서울 마포구 메세나폴리스는 이른바 ‘소셜 믹스’(Social Mix) 아파트다. 29층 아파트는 4층부터 10층까지는 임대 가구가, 11층부터는 일반분양 가구가 산다. 승강기는 일반분양 가구 쪽이 1층부터 옥상까지 운행하지만, 임대 가구 쪽은 10층까지만 오간다. 비상계단도 10층까지만 있다. 아래층에서 불이 나면 임대 가구 주민들은 꼼짝없이 10층에 갇혀야 한다. 국토교통부 시행령에는 ‘비상계단은 옥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기형적인 설계는 신분과 계급이 다르면 같이 살 수 없다는 자리 이기심에서 시작한다. 자리싸움은 이제 안전과 생존까지 위협하는 단계에 왔다.

▲ 지난 5월 26일 경기도 군포시에 있는 8층 주상복합 건물에서 불이 나 50여 명이 대피했을 때, 그중 30여 명은 옥상으로 대피했다. 아래층에 불이 번져 지상으로 대피하기 어려운 경우 옥상으로 대피해야 하지만, 주민 사이의 자리싸움이 위, 아래층 사이마저 가로막아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 SBS

영화 <기생충>이 오늘 이 땅의 현실을 경고한다

영화 <기생충>은 절대 나락으로 추락한 빈곤층의 오늘을 처절하게 그려낸다. 빈곤층의 자리는 반지하를 넘어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지하실로 전락했다. 이들이 지상으로 끊임없이 구조신호를 보내지만, 지상 사람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지하실에 살아 이들 몸에 밴 특유의 냄새는 아무리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낙인이다. 계급과 신분이 낳은 낙인은 마침내 살인을 부른다.

<기생충> 이야기는 그저 영화 속 사건일 뿐일까? 끔찍한 픽션은 현실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 값을 매겼다. 돈이란 잣대에 따라 계층을 나누고, 학군을 나눴다. 나눔은 방식이 되었고, 방식은 체제가 됐다. 고착된 자리싸움은 차별과 혐오로 번졌다. 자리는 삶의 중요한 가치로 환산됐다. 모두가 내 자리를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내 자리와 타인을 격리했다.

▲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빈곤층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빈곤한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끔찍한 현실과 폐해를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 CJ ENM

집을 사는 공간이 아닌 부동산으로 치환한 어른들 싸움과 초등학생들이 게임에서 배운 자리 싸움의 뿌리는 같다. 아이들은 어른을 배워 휴거, 빌라충, 이백충 따위의 말을 만들었다. 누가 가르친 것이 아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잘 배우는 아이들이다. 이 땅의 미래인 아이들마저 자기 이기심으로 자리를 가르고, 자리가 다른 이들을 차별하고 혐오하며 살아가는 세상은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영화 <기생충>의 지하실 사람, 아니 우리 이웃의 사회적 약자들이 오늘 겪고 있는 고통과 좌절, 슬픔을 당신은 느끼는가? 아이들에게는 삶의 자리를 나누게 하라.


[청년기자들의 시선] 시즌2를 시작한다. 시즌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즌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자리’이다. 누구나 자기 자리가 있다. 자리는 정체성이자 책임이고 세상과의 연결고리다. 나는, 당신은, 우리는 지금 어느 자리에, 어떤 모습으로 서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묻는다. (편집자)

편집: 정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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