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가로형 세계’에 던지는 영상문법 실험

2004년 여름, 너도나도 철봉에 가로로 매달렸다. 삼성전자에서 출시한 휴대폰 ‘가로본능’이 히트했을 무렵이다. 대중은 휴대폰 화면을 가로로 회전시키는 기술에 열광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영상은 태생부터 가로가 디폴트였다. 명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영화, 뉴스, 광고, 유튜브 동영상까지 대부분 영상 콘텐츠는 가로가 기본이다. 모바일을 통한 영상 소비가 늘면서 세로형 영상 콘텐츠가 ‘신선하게’ 등장하긴 했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 잠깐 떠올랐다가 휩쓸려 가버렸다. 

▲ 애니콜 가로본능 광고의 한 장면. 가로본능은 인기에 힘입어 4년 동안 8개 시리즈를 내놓았다. ⓒ 삼성전자

세로에 도전하는 ‘카카오TV’

9월 1일 카카오M이 카카오TV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개했다. ‘모바일 오리엔티드'(Mobile Oriented)를 핵심 키워드로 내세운 카카오TV 라인업에는 새로움을 시도한 드라마와 예능이 대거 포진했다. 주목할만한 건 다양해진 스크린 프레임이다. 핵심 키워드 ‘모바일 오리엔트’에 걸맞게 라인업에는 세로형 콘텐츠가 다수 포함됐다. 카카오TV의 의지는 명확했다. “스마트폰을 가로로 눕히는 수고조차 필요 없는 콘텐츠를 공급하자!”

▲ 카카오TV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간다는 뜻을 밝혔다. ⓒ 카카오M

세로형 콘텐츠가 과거에 없었던 건 아니다. 유튜브 채널 딩고 뮤직의 <세로라이브>는 윤종신이 부른 '좋니' 영상으로 3,200만 이상 조회 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카카오TV만큼 대대적으로 세로형 콘텐츠를 쏟아낸 사례는 없었다. 특히 카카오TV는 예능을 세로로 세웠다. 카카오TV가 도전하는 세로형 예능은 컨셉에 의존한 단발적 시도가 아니다. 시사 예능부터 영어 스터디 예능, 관찰 예능, 토크쇼 등 거의 모든 예능을 세로 화면에 담아내는 본격적인 도전이다.

세로로 담아낸 예능, 효과는 제로

세로 화면에 담은 시사예능으로는 김구라가 진행하는 <뉴팡! 뉴스 딜리버리 서비스>가 있다. 매주 평일 아침 7시에 공개되는 ‘카카오TV 모닝’ 라인업에서 월요일을 맡고 있다. 구성은 단순하다. 매회 시사, 경제, 생활과 관련된 세 가지 문제를 푸는 콘텐츠다. 호스트 김구라가 문제를 내고 세 게스트가 문제를 푼다. 우선 세로형 스크린에 걸맞은 스튜디오 구성이 눈에 띈다. 김구라 뒤의 엘리베이터와 게스트 세 명을 계단식으로 배치한 것이 신선하다. 문제를 맞힐 기회를 모두 소진하면 등장하는 커다란 풍선 역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콘텐츠를 시청한 뒤 드는 의문이다. ‘이걸 굳이 세로로?’

세로로 담아낸 영어 스터디 예능 <YO! 너두>는 더욱 심각하다. <YO! 너두>는 랩퍼 비와이와 개그맨 이용진이 영어강사 윤훈관에게 영어를 배우는 내용이다. 문제는 강의라는 행위와 세로 화면 간 부조화에서 출발한다. 강의실을 떠올려보자. 공간도 가로, 칠판도 가로, 교육 자료를 띄우는 스크린도 가로다. 세로인 것은 강의 장면을 보는 시청자의 화면뿐이다. 불편한 화면으로 시청자가 <YO! 너두>를 통해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내용의 완성도는 제쳐 놓고도 강의를 세로로 전달하겠다는 접근 자체에 문제가 있다. 콘텐츠를 시청한 뒤 머릿속에 남는 건 풀샷에서 화면 절반을 차지하는 천장이다. 기능과 미학, 두 측면에서 모두 이해할 수 없다.

▲ 왼쪽은 <뉴팡!>, 오른쪽은 <YO! 너두>의 한 장면. 세로형 스크린에 스튜디오 전체를 담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 카카오TV

반면 관찰 예능 <페이스아이디>는 세로형 스크린만이 줄 수 있는 강점을 활용한다. <페이스아이디>는 스타의 스마트폰을 공개한다는 컨셉으로 이효리의 일상을 담아낸다. 이효리의 스마트폰 화면을 녹화해 콘텐츠의 일부로 활용하는 것이 장점이다. 요가를 하는 모습이 셀카로 담기고 남편 이상순은 영상 통화를 통해 등장한다. 메신저, 사진첩, 검색창 등 익숙한 세로 화면이 이효리의 일상을 설명한다. 

물론 모든 화면이 스마트폰 화면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다. 이효리의 스마트폰 화면과 더불어 스마트폰 위에 설치된 셀프 카메라, 제작진의 관찰 카메라가 그를 비춘다. 하지만 시청자가 받는 느낌은 브라운관 속 관찰 예능과 다르다. 이효리를 비추는 대부분 화면은 그가 스스로 촬영한 듯 구성된다. 시청자는, 본인이 찍은 이효리를 만나며, 더 가까이 그를 만나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 관찰 예능 <페이스아이디>는 세로형 스크린만이 줄 수 있는 강점을 활용한다. <페이스아이디>는 스타의 스마트폰을 공개한다는 컨셉으로 이효리의 일상을 담아낸다. 이효리의 스마트폰 화면을 녹화해 콘텐츠의 일부로 활용하는 것이 장점이다. 요가를 하는 모습이 셀카로 담기고 남편 이상순은 영상 통화를 통해 등장한다. 메신저, 사진첩, 검색창 등 익숙한 세로 화면이 이효리의 일상을 설명한다. 

▲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이효리와 이상순을 만나는 형식에서 영화 <서치>가 떠오른다. ⓒ 카카오TV

우리는 언제 세로형 스크린을 소비하는가?

세로형 스크린으로 영상을 본 경험을 떠올려보자. 영상 통화가 가장 흔하고, 인스타그램에서 라이브 방송을 보거나 틱톡에서 영상을 보는 경우가 뒤를 이을 것이다. 세로 화면으로 보는 영상은 공통점이 있다. ‘나’는 상대방이 직접 찍거나 찍고 있는 화면을 통해 상대방과 연결된다. 제3자 개입 없이 상대방과 직접 만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세로형 스크린은 개인적인 연결이다.

<뉴팡!> <YO! 너두>와 <페이스아이디>의 차이가 여기 있다. <뉴팡!>이나 <YO! 너두>는 화면만 세로일 뿐, 여느 예능처럼 제3자의 시선으로 출연자를 비춘다. 김구라가 말하는 것을 비추는 것은 김구라 자신이 아닌 외부의 관찰자이고, 비와이나 이용진 역시 마찬가지다. 출연진을 비추는 방식은 변하지 않고 화면만 세로로 활용한다면 가로에 익숙한 우리 눈은 답답함을 느낀다. 많은 출연진과 속도감 있는 대화는 오히려 독이 된다. 양옆으로 잘린 화면이 궁금해지기 시작한 순간 콘텐츠는 힘을 잃는다. <뉴팡!>을 보고 ‘이걸 굳이 세로로?’라고 생각한 이유다.

반면 <페이스아이디>는 세로형 스크린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이효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셀프 카메라를 통해 자신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그것을 보는 시청자는 그의 일상을 직접 만나는 것처럼 느낀다. 영상 통화나 인스타 라이브를 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감정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효리가 MBC 관찰 예능 <나 혼자 산다>에 나온다고 생각해보자. 이효리를 제3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것은 무대에 선 이효리만큼 시청자와 멀리 떨어져 있다. <페이스아이디>는 전략적으로 시청자와 이효리 간 거리를 좁혀 놓았다. 세로형 스크린은 <페이스아이디>의 전략에서 중요한 무기가 됐다.

<뉴팡!> <YO! 너두> <페이스아이디>가 세로형 스크린을 활용한 결과는 조회 수 추이로 나타난다. 세 프로그램은 카카오TV 오리지널 콘텐츠 공개에 따른 컨벤션 효과를 누리며 첫 화에서 60만 안팎의 많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세로 화면을 적절하게 활용한 <페이스아이디>가 조회 수를 유지하는 사이, <뉴팡!>과 <YO! 너두>는 조회 수가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 <뉴팡!>과 <YO! 너두>의 조회 수는 1회와 비교하여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9월 28일 16:30 기준). ⓒ 카카오TV

누군가는 유튜브 채널 딩고 뮤직의 <세로라이브>는 제3자의 시선으로 가수를 비추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아이돌 직캠을 생각해보자. 직캠은 분명 영상을 촬영한 제3자의 시선으로 무대를 바라본다. 하지만 화려하게 편집된 음악방송이나 라이브 공연 영상과는 차이가 있다. 직캠은 촬영자가 담고 싶은 것만 담는다. 달리 말해 직캠은 촬영자의 사적인 시선이다. 결국 직캠을 보는 시청자는 촬영자의 개인적인 시선을 빌려 인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세로라이브>가 <쇼! 음악중심>이나 <뮤직뱅크> <유희열의 스케치북>처럼 라이브 영상을 화려하게 편집했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세로라이브>는 직캠의 시선을 담았다. 그 시선은 <페이스아이디>에서 이효리를 바라보는 시청자의 시선과 같다.

세로형 예능은 가능할까

카카오TV는 유능한 인력을 동원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뉴팡!>과 <YO! 너두>가 포함된 ‘카카오TV 모닝’의 총괄 프로듀서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연출한 박진경 PD이고, <페이스아이디>의 연출은 딩고 스튜디오에서 디지털 드라마와 예능을 총괄한 유일한 PD와 JTBC <요즘 애들>, 온스타일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를 연출한 안현진 PD다. 카카오TV 오리지널 스튜디오 제작총괄인 오윤환 PD는 MBC와 JTBC를 거치며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나 혼자 산다> <비긴 어게인>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등을 연출했다. 자금 규모도 크다. 9월 1일 신종수 카카오M 디지털콘텐츠사업본부장은 카카오TV 오리지널 콘텐츠에 3년 간 3,000억 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바일 오리엔티드’가 핵심 키워드인 만큼 카카오TV의 세로형 예능 도전은 이어질 것이다. 가로형 스크린에 익숙한 제작자가 가로형 스크린에 익숙한 시청자에게 세로형 예능을 내놓는 ‘이상한’ 상황이다. 예능은 기본적으로 출연진의 ‘노는 모습’을 제3자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고, 시청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전달하는 콘텐츠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세로 화면에 제3자의 시선을 담아내는 것이 성공할 수 있을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뉴팡!>과 <YO! 너두>의 부진은 콘텐츠 자체의 문제일까? 

확실한 건 카카오TV의 세로형 예능이 세로 영상의 문법을 정립하는 소중한 발걸음이라는 사실이다. 가로가 디폴트인 세상에서 카카오TV가 쏟아내는 세로형 콘텐츠는 일종의 거대한 실험이다. 1895년 영상이 탄생하고 영상 문법이 자리 잡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내놓은 게 겨우 13년 전이다. 세로 화면은 이제 10년이 조금 넘은 ‘신상’이다. 카카오TV의 도전을 주목해보자. 세로형 예능이 재미있어서 세로형 TV를 사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편집 :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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