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사랑 리포트: 굿바이 탄소 <1>

 

탄소 줄이기 체험 4일 차. 고개를 들어보니 6층. 아직도? 이제야? 계단 위로 내딛는 발걸음이 무겁고 더디다. 무심코 계단 수를 세어본다. 한 층에 무려 28개의 계단. 28 곱하기 9층은 얼추 250개가 넘잖아. 헉헉대며 사무실이 있는 9층에 간신히 도착했다. 고지를 점령한 성취감보다 먼저 스치는 생각. ‘괜히 시작했어~. 괜히 시작했어~. 하지 말 걸 그랬어~.’

66일. 사람이 습관을 바꾸는 데 필요한 평균 기간이라고 한다. KBS가 제작한 다큐 <습관>에서는 마음의 밧줄을 끊는 도전기가 그려진다. 구토 습관을 지닌 여성이 ‘먹는다→구토한다’라는 행동 패턴 사이에 새로운 행동을 추가한다. ‘먹는다→거실을 걷는다→구토한다’로. 저녁을 먹은 여성은 거실을 빙빙 돌며 걷기 시작한다. 약 두 달 후, 밥만 먹었다 하면 화장실로 직행하던 여성이 고질병이던 구토 습관을 말끔히 고쳤다고 한다. 옳거니. 사람은 생각보다 단순한 동물이야. 나도 뭔가 건전한 방향으로 습관을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지난 2월부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지구촌교육팀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첫 모의 유네스코 총회를 기획하는 업무다. 실제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리는 총회처럼, 전국의 고등학생 80명이 18개국의 대표단이 되어 기후변화를 주제로 회의를 여는 것이다. 오는 11월까지 이어질 회의를 위해 기후변화에 대한 각종 자료를 조사하다가 무릎을 쳤다. 그렇다. 기후변화 회의 담당자로서, 탄소 줄이기를 실천해 보는 거다. 낭비 습관도 고치고, 회사 업무에도 진심으로 열의를 다하고, 이런 게 바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엔도르핀이 몸 전체를 휘감으며 불끈 의지가 솟는다.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짜기 위해 눈이 빠지게 인터넷 서핑을 했다. ‘에코맘 되기’, ‘탄소 줄이기 십계명’, ‘환경 사랑 캠페인’ 등 수많은 캠페인과 아이디어들이 넘쳐났다. 탄소 줄이기에 관한 성찰일지를 쓰는 기업인이 있는가 하면, 엄마들이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 친환경 습관을 실천하고 교육하는 모임도 있었다(http://www.ecomomkorea.org). 그 중 당장 쓸모 있는 전략들을 시험 족보 전수하듯 쏙쏙 받아 적었다.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내용들이 많았다. 쓰지 않는 머그컵을 양치질용으로 갖다 놓고, 드라마 시작하기 바로 전에 휴대폰 배터리 충전기를 콘센트에 꽂았다 드라마가 끝나면 바로 뺀다. 이를 닦은 뒤 수도꼭지를 틀어두고 헹구면 흘려보내는 물이 평균 약 6ℓ다. 물컵을 사용한다면 10분의 1인 약 0.6ℓ 정도만 쓴다. 전기 콘센트나 스위치를 제때 꺼두면 한 달에 1인당 약 1㎏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

 

▲ 탄소 줄이기를 시작하면서 마련한 양치질용 컵, 텀블러, 개인용 컵. MUC라고 적힌 머그컵은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모의 유네스코 총회 때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로 참가 청소년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방연주

자가용 20대에 탈 인원이 버스 1대를 이용하면 1인당 탄소 배출량이 95%나 줄어든다. 직장인들이 일회용 컵 대신 개인 컵을 사용한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연간 1인당 약 60㎏ 줄일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집에 오자마자 켜고, 끄지 않고 잠들기 일쑤인 컴퓨터와 TV. 컴퓨터 사용으로 소모되는 에너지 중 실제로 사용해서 드는 것은 15%에 불과하고 나머지 85%는 대기 중인 상태에서 낭비되는 전력이라고 한다. 켜고 끌 때 전력이 더 많이 든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나. 찾아보니 근거 없는 소리란다. 신경 쓰고, 확인하고, 끄자!

 

▲ 탄소줄이기 실천사항
 

다음 날인 4월 5일부터 여기저기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저... 탄소 줄이기 체험 시작했어요.” 엄마는 호기심을 보였지만, 아빠와 남동생은 무관심. 회사 사람들은 ‘아, 네~ 그러세요? (그렇지만 저와는 별개의 일이죠)’라는 눈빛. 십년지기인 친구는 내가 하다 말 것을 호언장담하며 벌금을 뜯어 먹을 기세다. 응원은 못할망정, 기를 죽이다니. 하지만 탄소체험 일기를 쓰고, 수도료와 전기료, 쓰레기봉투 등 절약의 증거를 남기면서, 꼭 절약 습관이 몸에 배게 하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꼭꼭 다졌다.

엘리베이터의 유혹

몰랐다. 평소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면 여러 대의 버튼을 무심코 몽땅 다 눌러둔다는 것을. 엘리베이터 위치를 확인해서 가까이 와 있는 한 대만 누르고 기다리면 되는데, 습관적으로 다 눌러 놓고 여러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게 내버려둔다. 엘리베이터의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바로 가동횟수를 줄이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엘리베이터를 타면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될 것 같지만 실상은 엘리베이터가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느냐에 따라 에너지 소비가 결정된다.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나서 무조건 닫힘 버튼을 누르는 것도 나쁜 습관. 엘리베이터 문이 저절로 닫히는 시간은 보통 7초다. 닫힘 버튼을 누른다고 에너지가 더 소비되진 않지만, 문이 열려 있는 7초 사이에 누군가 뛰어와 탄다면 최소한 한 번은 엘리베이터 가동횟수를 줄일 수 있다. 하루에 180회 정도 운행되는 엘리베이터에서 닫힘 버튼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 운행 횟수가 145회로 줄어 약 20%의 전력이 절감된다고 한다. 

탄소 줄이기 체험을 시작한 후 매일 출퇴근할 때 엘리베이터 앞을 서성인다. 도전 첫날. 어떤 아저씨가 엘리베이터를 타기에 잽싸게 함께 탔다. 아저씨 혼자 올라가나 나를 덤으로 태우고 가나 어차피 전력 소비량은 같으니까. 무임승차에 성공했으니 이젠 아저씨의 목적지와 나의 목적지가 일치하길 바랐다. 웬걸. 아저씨의 손가락이 향한 곳은 3층. 결국 3층에 내려 9층까지 헉헉대며 올랐다. 이날 이후로 1층에서 만난 9층 사람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종이컵, 한 번 쯤이야

커피전문점.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뜨거운 걸로요”, “아, 네. 손님, 지금 머그잔을 다 썼는데 혹시 테이크아웃 종이컵 괜찮으신가요?”, “아....그래요? 어쩌지.....”

옆에 있던 친구가 옆구리를 찌른다. “그냥 오늘만 대충 마셔.” 할 수 없이 종이컵에 커피를 마신 후 집에 가는 길, 지갑에 구겨 넣어둔 여러 장의 영수증을 들여다본다. 텀블러 사용할 때 300원을 할인해주는데, 제 가격으로 찍혀 있는 영수증이 수두룩하다. ‘오늘만 어쩔 수 없이 종이컵을 사용한 게 아니네. 이렇게 자주!’

되도록 안 쓰려고 해도, 일회용품은 정말 곳곳에 매복해 있다. 빨대, 냅킨, 나무젓가락, 물티슈 등......탄소 줄이기를 실천하니까 예전보다 일회용품이 눈에 더 들어왔다.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커피를 자주 마시니까 들고 다닐 수 있는 잔, 텀블러를 마련했다. 텀블러를 이용할 때는 300원을 할인해주는 곳도 있고, 집에서 커피를 갖고 나갈 수도 있어 돈을 아끼게 된다. 식당의 물티슈는 쓰지 않고 미리 손을 씻는다. 손을 씻은 후에는 위생 냅킨 대신 손수건을 쓴다. 식당에서 습관적으로 냅킨을 깔고 수저를 놓았는데, 이젠 식사가 나오면 그 때 바로 수저를 꺼낸다. 현금 인출기를 사용할 때에는 꼭 화면으로 잔액을 확인한 후 ‘명세표 생략’을 누른다.

북극곰과 나를 위하여

▲ 배터리를 충전한 뒤, 전자제품을 사용한 뒤엔 꼭 플러그를 뽑아두자 ⓒ방연주

 

‘망설이지 말고 무조건 끄자.’ 탄소 줄이기의 핵심이다. 매번 망설여서 전력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좀 있다가 컴퓨터 계속 쓸 텐데. 금방 내 방으로 갈 거니까. 이러는 동안 컴퓨터는 쉴 새 없이 돌아가고, 방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래서 무조건 끄기를 실천했다. 퇴근할 때 사무실의 플러그를 뽑아두고, 점심시간에는 컴퓨터 화면 보호기 설정 대신 아예 끄고 나간다. 집에서 화장실이 빈 줄 알고 불을 껐다가 동생이 ‘버럭’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승용차보다는 버스를, 버스보다 지하철을 타려고 노력했고 가까운 거리는 힘차게 걸어 다녔다. 사무실 동료도 탄소 줄이기에 동참하면서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만들었다. 소문도 날 만큼 났다. 가끔씩 나태해질 때쯤이면 “연주씨, 탄소 줄이기 아직도 해요?”라는 물음에 뜨끔해져 마음을 다잡았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바람에 북극곰이 쉴 곳을 찾지 못해 하루에도 수 십 킬로씩 바다 속을 헤엄친다는 얘기에 마음이 쓰이면서도, 그동안 무신경한 소비를 계속 했었다. 물론 나 혼자 애쓴다고 엄청난 변화가 생기진 않겠지. 하지만 ‘나부터’ 시작하고 주변 사람들을 하나 둘씩 끌어 들이면 점점 더 큰 물결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괜히 시작했어~’가 ‘정말 잘 했어’가 될 수 있도록 ‘아자, 아자’ 힘을 내야겠다.

▲ 사무실에서 분리수거함을 만든 후 기념사진. 오른쪽이 기자. ⓒ방연주

방연주 기자


 

(22일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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