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박두호 기자

디지털교도소, 배드파더스, 유흥탐정 사이트는 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사람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해 사회적 매장을 주도한다. 사법부가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지 못한다는 불신에서 이런 사이트가 탄생했다. 디지털교도소는 가해자의 개인정보와 범죄 내용을 상세히 게시해 놓았다.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아 무고한 사람이 명단에 올라 피해를 주기도 했다. 이는 법치주의를 무시한 사적인 제재다. 확정판결을 받지 않은 사건의 가해자가 들어가 있어 무죄 추정 원칙에도 어긋난다. 

법적 처벌의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사법부는 이런 현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SNS에서는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랐다’는 해시태그가 번져나갔다. 적지 않은 국민들은 사법부가 성범죄 문제를 솜방망이로 처벌해 N번방 사태를 키웠다고 생각한다. 과거 판례에서 사법부는 성범죄자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 청소년성보호법 11조는 아동·청소년을 이용해 음란물을 제작하거나 유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8년의 자료를 보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처벌은 이 법보다 가볍게 내려졌다. 60% 이상이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받았다. 최종심에서 징역을 받은 비율은 40%도 안 된다. 평균 형량도 청소년성보호법 11조에 명시된 징역 5년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불법 촬영, 음란행위는 16.8개월, 음란물 제작은 31.2개월에 불과하다. 세계 최대의 아동 성착취물 유포 사이트를 운영한 손정우도 고작 징역 1년 6개월이다. 

▲ 성범죄자 신상을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 ⓒ KBS

사법부의 권한은 국민이 위임한 것이다. 재판은 국민의 상식과 법에 맞춰져야 한다. 법대로 판결하면 국민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판결이 상식에 벗어난다면 법 개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탓이니까. 지난 1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자에게 최대 29년 3개월의 징역형까지 선고할 수 있게 양형기준을 개정했다. 성범죄 처벌에 관한 국민들 뜻이 반영됐다. 국민의 상식에서 동떨어진 판결이 나올수록 디지털교도소는 더 생겨날 것이다. 디지털교도소를 없애려면 사법부가 부여된 권한을 합당하게 쓰면 된다. 

정치∙사회적으로 쟁점이 된 사건에서는 어떤 판결을 내려도 사법부가 비난을 받는다. 일부 국민은 자신들 생각과 다른 판결이 나오면 판사의 신상을 공개해 비난을 일삼는다. 근거 없는 공격은 사법부 독립을 위협한다. 판사가 국민의 지탄에 위축되면 사법 기능이 지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과거 사법부가 정치∙경제권력에 굴복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롯데 신동빈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에서 70억 뇌물부터 횡령, 배임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받아 법정구속됐지만, 2심에서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아 석방됐다. 재벌 총수의 양형 공식인 ‘3·5 법칙’(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괜히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법부가 제 기능을 다하면 ‘사법부가 종식한 N번방, 사법부가 멸종시킨 디지털 성범죄’와 같은 해시태그가 퍼질 것이다. 사법부는 눈과 귀를 열고 국민들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처럼 새로운 범죄 유형에 현실을 반영해 단호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편집: 신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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