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권영지 기자

무기한 집단휴진을 이어가던 전문의들이 지난 8일 의료현장으로 돌아왔다. 연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세 자릿수에 달하는 상황 속에서 전문의들이 업무에 복귀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문의들이 장기간 집단휴진을 강행한 이유는 정부의 ‘공공의료 확대’ 정책 때문이다. 출산율이 줄어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의료 접근성이 높은 편인데도 무작정 의대와 의사 수를 늘리겠다는 정부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는 게 의사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지역의 코로나 확진자가 병상 부족으로 집에서 대기하다 사망했다거나 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진료과목 의사가 부족하다는 뉴스는 이들 주장의 설득력을 떨어트린다.

정부가 제안한 공공의료 확대 방안의 핵심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 의대 설립이다. 2022년부터 10년간 매년 의대 정원을 400명씩 늘려 총 4000명의 의사를 추가로 배출하고, 이 가운데 3000명은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토록 하는 게 그 골자다. 이들은 소아외과, 흉부외과 등 의료인력이 부족한 분야에서 근무하게 된다. 현재 의대 정원은 2006년에 정한 3,058명 그대로다. 14년 동안 인구가 3백만 명 가까이 증가했는데도 의대 정원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의 의사 수는 인구 1천 명당 2.3명이다. OECD 평균인 3.4명의 7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의료계는 1천 명당 의사 수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실제로는 의료 접근성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병원과 의사 수가 많은 수도권에 해당하는 말이다. 보건복지부가 2017년 실시한 ‘국민 보건의료실태조사’ 결과는 환자가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았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이른바 ‘치료 가능한 사망률’이 수도권보다 수도권 외 지역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치료 가능한 사망률‘은 시도별로 충북이 서울보다 31% 높고 시군구별로는 경북 영양군이 서울 강남구의 3.6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들이 의료 접근성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을 주로 강조하는 건 이런 현실에 눈감아 버리는 것과 같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일명 기피과 전문의 부족 현상이다. 환자의 생사가 달린 필수진료과목이지만 모집 단계부터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하는 사태가 흔히 일어난다. 의료계는 건강보험공단이 기피과 의사 급여로 책정한 금액이 노동강도에 비하면 턱없이 적기 때문에 의사들이 지원을 꺼린다고 한다. 하지만 2009년 흉부외과 지원율을 높이기 위해 수가를 대폭 인상한 적이 있지만,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되지 못했다. 의대 정원을 늘려 처음부터 필수진료과목을 전공할 의사를 양성하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

▲ 확진자가 늘어나는 데다 더위까지 겹치면서 의료진의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 KBS 충북

코로나는 한국의 공공의료 부족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병상이 부족해 중환자가 집에서 죽어가고 과중한 업무로 의료진이 탈진하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정부와 의료계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공공의료 확대 논의를 반드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의사들은 아무리 정부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국민 생명을 담보로 또다시 파업을 강행해서는 안 된다. 의사가 될 때 맹세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의사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편집 : 박서정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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