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동성 결혼'

▲ 김정민 기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자연선택은 개체 단위가 아니라 유전자 단위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진화에 유리한 유전자들만 경쟁에서 승리하고 자기 복제에 성공해 후손을 남긴다는 것이다. 진화에 유리한 유전자란 번식에 유리한 유전자란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동성을 사랑하게 만드는 유전자는 번식에 더없이 불리한데도 꾸준히 살아남아 역사의 맥을 이어왔다. 도킨스도 적절한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동성애가 진화에 유리한 특정 유전자의 부작용으로 발현하는 현상일 수도 있다는 정도로만 언급했다. 그렇다면 동성애는 진화의 실패한 부산물일까?

지난 6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한 뒤 기독교 세력의 반대가 뜨겁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이 동성애보호법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그런지는 제쳐 두고라도, 왜 동성애를 보호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수천년 전에 쓰인 성경 ‘말씀’에 기대어 동성애를 탄압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미국 정치드라마 <웨스트윙>의 작가 아론 소킨은 등장인물 바틀렛 대통령의 입을 빌어 이를 꼬집는다. 바틀렛 대통령은 성경에서는 동성애를 ‘역겨운 짓’이라고 부르지만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사형에 처하고, 딸을 노예로 팔고 종류가 다른 곡식을 함께 심은 사람은 돌로 치라고 가르치기도 한다며 성경 말씀을 모두 따라야 하냐고 반문한다. 결국 모든 텍스트는 시대적 맥락에 따라 다시 읽혀야 하고 그것에 실패한다면 텍스트를 오독한 거나 다름없다.

이성애가 자연스럽고 동성애는 부자연스럽다는 주장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문화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저서 <작은 인간>에서 인간과 발정주기가 가장 유사한 유인원 종인 피그미 침팬지끼리는 암컷 동성애가 흔하다는 내용을 보고했다. 노르웨이와 미국의 공동연구팀도 2008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펭귄, 돌고래, 벌레, 개구리, 연어 등에 이르기까지 무려 1500종이 넘는 동물 종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동성애 현상이 나타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처럼 자연 생태계에서 동성끼리 교미하는 일이 빈번한데도 인간의 행위만 놓고 ‘부자연스럽다’고 말한다면 이는 명백히 틀린 주장이다.

생물학적으로 동성간 결합은 모든 종의 궁극적인 목적인 재생산에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열등한 결합’이라는 비판 또한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연 상태에서는 동성간 결합뿐 아니라 이종간 결합도 활발하다. 그저 어떤 결합은 번식으로 이어지고 어떤 결합은 번식으로 이어지지 않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자연은 수많은 주사위를 던질 뿐 매순간 6이 나오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인위적인 배제와 혐오의 대상이 되곤 했다. ⓒPixabay

게다가 번식하지 않기로 선택한 개체를 도태됐다고 표현하는 것은 지나치게 종의 재생산에 집착하는 목적론적 사고방식이다. 한정된 자원을 고려하면 모든 개체가 종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어리석은 선택이기도 하다. 불임 부부나 일부러 자식을 두지 않는 ‘딩크’ 부부를 사회구성원의 재생산에 실패한 열등한 결합이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동성간 결합만 놓고 그렇게 부르는 것은 나쁘다.

동성애는 진화의 실패한 부산물일 수도 있다. 혹은 개체가 번식에 체력을 소모하지 않는 대신 남의 새끼를 정성껏 키워 공동의 유전자를 건강하게 보호하게끔 하는 독특한 진화의 산물일 수도 있다. 어쨌든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아무리 부정해도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이를 인정하고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것에서 나아가 동성애자의 권리를 적극 보호할 방안도 찾아내야 한다. 

내가 다니는 대학원에는 매년 커플이 탄생한다. 피 끓는 청춘들이 2년 가까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밤낮없이 붙어 다니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성 친구끼리 자주 놀기만 해도 ‘누구랑 누가 같이 다닌다더라’는 목격담이 돌고 선생님들도 수업시간에 언급하며 놀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대학원의 12년 역사 동안 동성 커플이 단 하나도 없었을까? 어쩌면 책상 아래로 수줍게 맞잡은 두 손만이 기억했을 외로운 사랑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편견이 지켜주는 사랑이 있다. 어떤 사랑은 아무리 매일같이 함께해도 들통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그 편견 때문에 일생을 사랑해도 법적 부부로 보호받지 못하기도 한다. 사실혼 관계였던 레즈비언 커플 중 한쪽이 죽자 그의 조카가 재산을 다 차지하고, 다른 한쪽을 내쫒는 바람에 40년을 부부로 살았지만 아내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한 60대 레즈비언 여성이 투신자살한 사연이 떠오른다. 문명사회라면 이런 불행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2013년에는 김조광수 영화감독 부부가, 올해 5월에는 김규진 씨 부부가 혼인신고에 실패했다. 김조광수 부부는 혼인신고 불수리 통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으나 1·2심에서 모두 각하됐다. 김규진 씨는 동성부부라 밝히자 구청 직원 얼굴이 사색이 됐다며 막내 직원부터 최고참 직원까지 달려들어 4시간 동안 두꺼운 사례집을 뒤적이고, 법원행정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했지만 결국 혼인신고에 실패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모두가 (저 때문에) 힘들어 보였고 그래서 너무 미안했어요. 그런데 사실 혼인신고가 미안할 일은 아니잖아요. 비참했습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권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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