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낙인 찍기’

▲ 윤상은 기자

한 백인 노인이 미소 지으며 나를 쳐다보더니 다가왔다. 나는 그 순간 ‘말 걸지마’ 하고 속으로 외쳤다. 말로만 듣던 ‘캣 콜링’(노상 성희롱)을 당할까 봐 걱정했다. “너 중국에서 왔니?” 그가 건넨 말은 예상을 빗겨갔다. 한국인이라는 대답에 그가 말했다. “미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물었어. 나 서울 가봤어.”

지난 2월 초 뉴질랜드 한 온천에서 내가 겪은 일이다. 나는 우리나라에 코로나19가 유입되기 시작한 1월 말부터 신천지 발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되기 전까지 뉴질랜드에 있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에서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었고, 유럽 등 서구까지 확산되지는 않은 때였다. 바이러스가 아시아에서 시작됐다는 이유로 미국, 유럽 등지에서 동양인에게 인종차별적 행동을 한다는 소식이 들리던 때였다.

코로나19 감염을 걱정하는 그 노인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해도 속상했다. 백인 사이에서 마치 내가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는 불쾌한 존재’가 된 것 같아 의기소침해졌다. 코로나19가 이방인이던 나를 잠시 ‘불쾌한 존재’로 낙인 찍었다.

▲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낙인과 차별도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다. ⓒ Pixabay

한국에서도 낙인이 성행했다. 바이러스에서 비롯된 두려움을 외국인에게 돌렸다. 지난봄 어느 스파는 외국인 출입을 금지했다.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 스파 입장을 거부당했다며 인종차별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코로나 시국에 외국에 나간 적이 없었다. 한 병원에서는 베트남 출신 어머니가 독감에 걸린 아이를 입원시키자 옆 병동에서 퇴원하는 환자가 속출했다. 중국인이 많이 사는 서울 대림동에 관련한 이상한 소문도 돌았다. 대림동에서 중국인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이 감염 검사를 받지 않았을 뿐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5월에는 새로운 낙인이 찍혔다.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자 그곳을 다녀간 용인 66번 확진자의 직장이 포털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그 회사는 졸지에 ‘확진자가 다니는 회사’ ‘성 소수자가 다니는 회사’로 낙인 찍혔다. 용인 66번 확진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매일 얼굴을 마주봐야 하는 회사 동료들에게 강제로 성 정체성을 밝혔으니 착잡한 마음을 혼자 삼켜야 했을 거다. 회사에 누를 끼쳤다는 뒷말을 들으며 낯뜨거운 상황을 외롭게 넘겨야 했을지도 모른다. 

낙인은 차별을 만들어 내서 무섭다. 미국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는 ‘낙인 효과’를 설명하면서 낙인 찍힌 사람은 더 부정적으로 행동할 위험이 크다고 했다. 낙인으로 주변 사람에게 차별받고 배제되니까 자신을 낙인 찍힌 대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낙인에서 비롯되는 차별은 코로나19 이전에도 만연했다. 정신질환자는 범죄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낙인이 구직 등 경제활동에서 차별을 만들어낸 것이 대표적이다. 낙인이 두려운 사람들은 정신병원에 가기를 어려워해 제때 치료를 놓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외국인과 성소수자 등에게 찍힌 낙인이 어떤 차별로 이어질지 염려되는 이유다.

우리 자신도 낙인과 차별을 주고받았을지 모른다. 이태원 클럽을 통해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남자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미룬 적이 있다. 그가 나를 만나기 전에 용인 66번 확진자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지인을 만난다고 했기 때문이다. 남자친구, 남자친구의 지인, 용인 66번 확진자는 서로 같은 공간에 있었던 적이 없다. 그래도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용인 66번 확진자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이에 바이러스를 옮길지도 모른다는 낙인이 내 마음 속에 있었다.

뉴질랜드에서는 내가 근거 없는 낙인의 객체였다면, 한국에서는 내가 낙인을 찍는 주체였다. 내가 찍은 낙인은 언젠가 내게 돌아온다. 낙인 찍기가 무서운 이유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최유진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