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대장경 천년 특집다큐...인생의 의미 탐색에 초점
[지난주 TV를 보니: 10.10~16]

내레이션(설명)이 없다. 보고 듣고 느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여운이 길다. 한국방송(KBS)이 지난 15일과 16일 ‘대장경 천년 특집’으로 방영한 <다르마> 1,2부가 뛰어난 영상과 음미해 볼 만한 내용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총 4부작으로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오는 22일과 23일 저녁 8시 3, 4부가 방영될 예정이다.

▲ KBS '대장경 천년 특집' <다르마>. ⓒ 방송장면 갈무리

윤찬규, 최근영 피디(PD)가 연출한 <다르마>는 1부 ‘붓다의 유언’, 2부 ‘치유’, 3부 ‘환생과 빅뱅’, 4부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로 구성됐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미국, 인도, 티베트, 유럽 등을 돌며 고려대장경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불경의 내용을 짜임새 있게 담았다.

지난 15일 방송된 1부에서는 고려대장경을 연구한 미국 버클리대 루이스 랭커스터 교수가 대장경의 기원과 의미를 짚어 주었다. 2부에서는 미국 매사추세츠의 유매스 메모리얼 병원에서 불교 수행법으로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팔만 사천 가지 질문과 답을 담은 대장경의 내용 조명 

‘다르마(Dharma)’는 산스크리트어로 ‘진리’를 뜻한다. KBS는 고려 초조대장경이 올해 판각 천년을 맞은 것을 기념해 이 다큐를 준비했는데, 대장경의 학술적 의미를 짚는 대신 경전의 내용을 들여다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팔만 사천 가지 질문과 팔만 사천 가지 대답이 들어있다는 고려대장경의 속을 들여다본 것이다.

 ▲ 고려대장경을 연구한 미국 버클리대 루이스 랭카스터 교수. ⓒ KBS 홈페이지

<다르마>의 1부는 여러 사람들이 정좌하고 앉아 자신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팔만대장경을 연구한 미국 버클리대 루이스 랭카스터 교수가 굵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고려대장경 대반열반경을 읊는다.

“아난다여, 이제 나는 늙어서 노후하고, 긴 세월을 보냈고 노쇠하여, 내 나이가 여든이 되었다.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나의 몸도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랭카스터 교수의 목소리는 KBS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의 내레이션을 맡았던 최불암을 떠올리게 한다. 묵직한 저음이 분위기를 압도한다. 제작진은 자의적 해설과 과장을 배제하기 위해 출연자의 육성과 현장음만 넣었다고 밝혔다. ‘내레이션이 없어 자막을 읽느라 힘들었다’는 시청자 반응도 없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신선했다는 평가. 

 ▲ KBS 다큐멘터리 <다르마>는 내레이션 없이 등장인물의 목소리로 진행된다. ⓒ 방송장면 갈무리

최근영 피디는 <단비뉴스>와의 통화에서 “KBS나 문화방송(MBC)에서 대장경 관련 다큐멘터리를 이미 학술적인 접근으로 여러 번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우리 삶과 밀접한 다큐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 피디는 “내레이션이 없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소리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동시녹음에 신경을 많이 썼고, 소리가 좋지 않으면 후반작업으로 보정하거나 새로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 덕에 <다르마>는 소리가 남다르다. 사람 목소리뿐 아니라 바람소리, 물소리, 빗소리, 책장 걷는 소리, 목판 만드는 소리 등 온갖 소리를 생생하게 담았다. 그래서 <다르마>는 눈을 감고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다. 배경음악은 영화음악으로 정평이 난 일본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맡았다. 사카모토는 ‘마지막 황제’, ‘폭풍의 언덕’, ‘리틀 붓다’ 등의 삽입곡을 만들었다. <다르마>에서는 ‘리틀 붓다’의 배경음악이 사용됐다.

<다르마>는 소리만큼이나 ‘그림’에도 크게 신경 쓴 작품이다. 1, 2부의 끝부분은 화면과 화면이 겹치는 ‘디졸브’로 마무리하는 데, 이 때 촬영 때부터 계산된 위치에 인물을 배치해 마치 한 사람이 변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다르마>에서 말하는 ‘무상’ 즉, 모든 것은 변하고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 2편에서는 미국 매사추세츠 유매스 메모리얼 병원에서 불교수행법으로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 KBS 홈페이지

장면전환 기술 중에 화면이 겹치는 ‘오버랩’이나 점점 밝아지거나 어두워지는 ‘페이드인’ ‘페이드아웃’ 기법도 많이 사용됐다. 천천히 느리게 화면을 전환해 다큐멘터리의 분위기를 색다르게 이끌었다. 인터뷰 영상에서도 얼굴 화면을 곧바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다른 영상으로 잠시 호흡을 고른 후 얼굴이 나온다. 이런 화면 전환 기법은 다큐멘터리에 몰입한 시청자들을 편안하게 만든다.

귀한 영상도 있다.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해인사 장경판전의 내부가 상세히 공개됐고, 국내 다큐멘터리 최초로 티베트 불교 수행처를 촬영했다. 장경판전의 경우 조명을 써서는 안 되고, 하루 30분 이상 촬영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었다. 제작진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이용해 어렵사리 좋은 영상을 끌어낼 수 있었다. 

해외 수출 목표로 종교 색 빼고 고급스럽게 만들려 노력 

 ▲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들. ⓒ 방송장면 갈무리

대장경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이니 불교 색채가 빠질 순 없었다. 그러나 <다르마>는 불교를 강조하지 않았다. 고려대장경 속 보편적인 가르침을 활용한 ‘치유’에 초점을 맞췄다. <다르마> 4부의 제목이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에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로 바뀐 것도 이런 맥락이다. 

 <다르마> 2부에는 미국 매사추세츠의 유매스 메모리얼 병원에서 불교 수행법으로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들을 잃은 엄마, 손자가 피살된 할머니, 병으로 고통 받는 중년 여성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명상을 통한 치유를 시도한다. 이들 중 불교신자는 없다.

시청자 게시판은 찬사 일색이었다. 김진남씨는 “이제껏 본 것 중 최고의 다큐”라며 “산속에 당연히 늘 있다고 여겼던 절들과 교과서에서 단순한 외우기 거리였던 대장경의 가치를 가슴 깊숙이 새기게 해줬다”고 썼다. 정기숙씨는 “내레이션이 없는 게 이처럼 신선하게 느껴질 줄 몰랐다”며 “방해꾼 없이 더욱 시청자 각자의 내면으로 들어가 자기만의 사유를 따라가게 만드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진 KBS 시청자 게시판.

<다르마> 1,2부의 시청률은 평균 4.7%로 그리 높지 않았다. 같은 시간 토요일에 방송되던 ‘생로병사의 비밀’과 일요일 ‘KBS 스페셜’의 평균 시청률과 비슷하다. 경쟁 프로그램이 시청률 30%의 주말연속극 <오작교 형제들> (KBS 2TV)과 MBC, SBS 뉴스였다는 점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최 피디는 “시청률은 뼈아픈 부분이긴 하지만 내레이션도 없고, 한국 사람도 거의 나오지 않고 자막이 많은 상황에서 이 정도면 만족한다”며 “제작 목표 자체가 해외시장에 내놔도 부족하지 않은 콘텐츠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에 모험을 감행했다”고 말했다.

다음 주말 3부에서는 빅뱅실험이 벌어지는 유럽 핵물리학 연구소와 티베트의 불교 수행처를 찾아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답을 구한다. 4부에서는 오스트리아 베네딕트 수도원과 지리산 쌍계사의 수행자들을 보여줄 예정이다.

<다르마>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지원을 받고 제작비 8억 원을 들여 지난해 5월부터 만들었다. 기획 단계부터 해외 수출을 의도한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관 상영이나 디지털영상(DVD) 제작도 계획하고 있다. 3,4부까지 방송을 마쳐야 결론을 내릴 수 있겠지만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상당한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중간 평가를 할 만 하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