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국가' ③ 국민

차별을 용인하는 법규정 유무

이전 직장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다. 명절마다 선물로 스타벅스 기프트카드 한 장을 받았다. 정규직은 고급 어묵 세트를 받았다. 명절 선물세트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한다는 얘기는 남 일이 아니었다. 같은 직장에서 업무 차이도 없는데 단지 계약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박탈감과 소외감을 감수해야 했다. 노동자의 권리를 논의하는 노조 활동은 정규직 안에서만 이뤄졌다. 비정규직은 그저 2년 뒤 사라질 존재였다. 회사에는 비정규직을 보호할 어떤 규정도 없다. 비정규직 차별을 막는 비정규직보호법도 법전 속의 규정일 뿐이다.

코로나19 정부 재난지원금은 전국민에게 주어졌지만 난민은 지원 대상에 들지 못했다. 반면 영주권자나 결혼이민자는 받았다. 난민인정자 역시 외국인인데 재난지원금을 받는 데는 문제 없다. 난민법 31조에서 난민으로 인정된 외국인은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받는다고 명시돼 있다. 난민 차별이 코로나 지원금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어디 비정규직과 난민 차별뿐이겠는가? 코로나로 드러났지만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숱한 차별과 혐오는 법과 규정이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한다. 우리 안의 차별과 혐오를 극복하기 위해 관련법과 세부 규정이 중요한 이유다.

▲ 지난 5월 이주민 지원단체들이 “이주민에게도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라”며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에 나섰다. 이들은 “재난 위험은 내국인과 외국인을 가리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재난지원금 지급대상에서 외국인 주민을 배제한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 KBS뉴스

유명무실한 난민법, 여전한 차별

법은 있어도 실효성이 없는 경우도 있다. 난민법에서는 우선 난민으로 인정받기가 바늘구멍 통과하듯 어렵다. 난민으로 인정돼도 산 넘어 산이다. 신원증명이 어렵다는 이유로 통장개설 등 기본적인 은행업무조차 볼 수 없다. 아이를 낳으면 '무국적' 신세를 대물림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인 자녀는 부모 국적 공관에서 출생신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난민으로 인정만 해주고 사실상 살아갈 길을 막은 셈이다. 2013년 난민법을 제정했지만, 대부분 사회정책에서 난민인정자를 배제한 채 손 놓고 있다. 난민법은 세부규정과 후속 조처가 실현되지 않으면 법제정도 그저 형식일 뿐임을 보여준다.

난민법이 여전히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왜일까? 우리 안의 뿌리 깊은 차별과 혐오 때문이다. 2018년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입국했을 때 난민 혐오는 절정에 이르렀다. 돈 벌러 온 '가짜 난민'이거나 징병을 피해 도망친 이들이라며 다시 돌아가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아예 난민 허가제도와 난민법을 폐지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70만여 명이 동의했다. 난민을 반대하는 거대한 여론을 거스르고 이들을 향한 실효적 지원책을 의제로 만들기는 어렵다.

▲ 2018년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입국해 난민 자격을 신청했다. 서울 도심에서는 시민들이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을 두고 “가짜 난민을 추방하라”며 난민 반대 집회를 열었다. ⓒ SBS뉴스

제대로 법 만들고, 법대로 하자

이주민이 이 땅에서 국민으로 인정받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난민인정자는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법적 지위를 받은 이들이다. 국가 없는 이들을 품어주기로 선택한 이상 차별 없는 권리를 보장하는 게 옳다. 2등 시민으로 삼으려고 받은 것은 아니니까. 난민으로 인정된 이들은 한국에서 평등하게 인권을 보호받을 권리까지 받았다.

소속을 통해 얻은 권리를 한나 아렌트는 '권리들을 가질 권리'라고 말했다. 국가 같은 공동체에 속해야만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시민으로서 사회적 권리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난민을 공동체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난민 신청자의 1%도 인정하지 않으며, 소속돼 시민으로 인정되더라도 정상적으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데는 주저했다. 체류 해외이주민이 200만 명을 훌쩍 넘기고, 이들 없이는 중소기업이나 지역산업, 농촌이 유지될 수 없는데도, 애써 외면하며 순혈주의를 내세운다.

난민을 향한 혐오를 먼저 걷어내야 한다. 혐오에는 '이슬람공포증'이 깔려 있다. 이는 난민이 중동지역에서 온 이슬람교도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내전에 시달리는 시리아, 예멘 등 중동 국가에서 전세계 난민 대부분이 발생하지만, 한국에 난민인정을 신청한 사람들 국적은 지난해 기준 러시아, 카자흐스탄, 중국 순으로 많다. 난민이 저지를 범죄에 대한 우려도 혐오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실상은 어떤가? 난민 범죄율 통계는 따로 없지만, 국내 외국인 범죄율은 내국인의 절반 수준이다. 그럼에도 무슬림 범죄가 우려된다면 연간 1백만 명에 이르는 무슬림 관광객부터 막아야 할 것이다.

▲ 2018년 기준 국내 외국인 취업자는 90만명이 넘는다. 특히 광업, 농축산업 등에서는 외국인이 없으면 사실상 생산이 중단될 수준이다. 재작년 연말정산에 외국인 노동자가 신고한 소득세액은 7836억 원에 이르렀다. ⓒ MBC뉴스

난민 인정을 늘리자는 주장은 당분간 힘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반대 여론이 너무 강하다. 그나마 엄격한 법적 심사를 거쳐 인정된 난민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까지는 나아갔다. 일단 난민으로 인정한 이들에게 차별 없이 권리를 보장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이미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하면서 법적 근거를 갖췄다. 이제 이들에게 우리 국민과 같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제공할 규정을 만들고, 그에 따라 '법대로' 하면 된다. 난민인정자는 우리 국민이다. 정상적인 국가는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건강한 국민이 만든다.


지난 가을학기에 연재한 [청년기자들의 시선]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봄학기 [청년기자의 시선2]는 현상들 사이(Between)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갈등과 대립 너머(Beyond)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국가’이다. ‘뉴노멀’을 요구하는 '위드코로나' 시대, 국가도 새로운 비전과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수도권, 차별, 국민' 세 키워드로 국가의 정체성과 역할을 돌아본다. (편집자) 

편집 : 신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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