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공공의료’

▲ 김은초 기자

코로나19 발생 이후 화장실에서 지키는 철칙이 하나 있다. 용변을 보고 물을 내릴 때는 변기 뚜껑을 반드시 덮는다. 세균이 변기 밖으로 튀는 게 부쩍 신경 쓰여서다. 뚜껑을 덮지 않고 물을 내리면 주변으로 세균이 퍼진다는 영국의 한 대학 연구 결과가 있고, 중국에서도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변기 뚜껑을 덮고 물을 내리라고 권고했다. 세균이든 바이러스든 ‘보이지 않는 적’을 막는 방패는 ‘뚜껑’이다.

얼굴에도 얼핏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뚜껑’을 덮기 시작했다. 입과 코를 가리는 마스크는 방역의 기본을 넘어 일상 속 ‘뉴노멀’이 되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마스크 공급 문제가 화두였다. 마스크를 잘 쓴 한국은 모범 대응국으로 꼽힌 반면, 마스크 착용을 꺼리던 서구 나라들에서는 감염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얼마 전 송파구 택배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한 감염자는 근무 내내 마스크를 벗지 않아서 추가 감염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는 ‘덮어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변종 바이러스에 따른 감염병이 앞으로 반복될 것이라는 예측을 고려하면 단순히 코로나19만 덮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한국은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다고 세계의 찬사를 받았지만 의료 시스템은 여전히 취약하다. 대구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 확진 환자 수백명은 병실이 없어 입원을 못 했고 집에서 대기하던 환자들이 숨지기도 했다. 의료인력도 부족해 전국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의 헌신에 의존했다. 이런 땜질식 대응으로 감염 확산을 막아낸 건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코로나 이후’에 대비한 의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공공병원을 늘리는 것이 시작이다. 국내 코로나19 감염자 열에 일곱 이상이 공공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체 병원 중 공공병원은 5.8%(2018년 기준)에 그칠 정도로 부족하다. OECD 평균이 51.8%인 데 견주어 10분의 1 수준이다. 공공병원의 병상 수 역시 전체 병상의 10%에 불과하다. 음압병실처럼 평소에는 쓰이지 않고 비용이 많이 드는 시설은 수익성이 낮아 대부분 공공병원에서 운영된다. 게다가 민간병원에서는 다른 질병 환자들도 치료해야 해서 감염병 환자들을 많이 수용하기 어렵다. 집단 감염병이 발생하면 공공병원이 ‘최전선’이 될 수밖에 없다.

▲ 음압병실 안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의사소통을 위해 유리창에 글씨를 써서 말을 전한다. 레벨D 방호복은 입는 데만 10분 정도 걸리고, 날이 더우면 말 그대로 '찜통'이 된다. 방역현장에서 헌신하는 의료진을 격려하며 국민들은 '덕분에 챌린지'로 마음을 전했다. ⓒ KBS

정부는 비용 탓을 하며 공공병원 비중을 줄여왔다. 2013년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쇄한 이유도 재정적자였다. 응급실, 분만실 등 돈 안 되는 필수 의료를 유지하고 진료비가 민간병원의 70%밖에 안 되는 공공병원에는 당연한 ‘착한 적자’다. 그런데도 공공병원을 지으려면 경제성을 따지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야 한다. 소방서, 도서관처럼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공공시설에는 면제해주는 절차다. 정부는 돈 안 된다는 이유로 공공병원을 줄이면서, 메르스나 코로나19가 터지면 민간병원에 환자를 받아달라는 ‘읍소’를 반복한다. 

희생을 강요당한 의료진에게 바치는 ‘덕분에 챌린지’로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이라는 과제가 덮여서는 안 된다. 헌신한 의료진 덕분에 코로나 대응에 성공한 건 사실이지만 그들이 영웅으로 부각된 건 열악한 의료 인프라 탓이 크다. 건강한 시스템을 갖춘 사회는 영웅에 의존하지 않는다. 

의료 취약지역 등에 의료진을 확보하려는 계획도 반대에 부닥치고 있다. 정부가 10년간 의대 정원 4000명을 늘리려고 하자 대한의사협회는 파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공공의료 기반 확충은 군대에 비유된다. 전쟁이 없어도 국가가 상비군을 유지해야 하는 것처럼 공공의료 기반 확충은 국가적 과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웬만한 전쟁보다 많은 사람을 숨지게 했고 경제를 뒤흔들었다. 의료는 더 이상 민간에만 ‘외주’를 줄 수 없는 안보 문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서정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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