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비상구’ 서평공모전] 가작 수상작

올해 초부터 친구들과 비건(완전채식)·환경 스터디를 하고 있다. 비건 및 환경 관련 글을 읽거나 영상을 보고, 감상을 나누는 모임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환경문제에 부채감이 있었다. 관심은 있었지만, 너무나도 크고 두려운 현실 앞에 어찌할 바 모르고 외면했기에 마음의 빚이 쌓여갔다. 시간이 흘러 부채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을 때 스터디를 하게 됐다. 더 이상 외면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우선 기후위기가 왜 왔는지, 우리가 무얼 잘못했는지, 막연히 두려워할 게 아니라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속 부채감 때문에 만난 ‘마지막 비상구’ 

<마지막 비상구>도 같은 맥락에서 읽기 시작했다. 원자력발전소가 안 좋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 어떻게, 왜, 얼마만큼 나쁜지 알지 못했다. 굳세게 ‘찬핵’을 주장하는 이들 앞에서 할 말이 없었다.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충돌했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메모장에 적어둔 원전 관련 책은 그렇게 잊혔다. 그러다 친구들과 하는 스터디에서 <마지막 비상구>가 후보로 올랐을 때, 이 책마저 외면할 수 없어 책장을 펼치게 됐다.

비장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마지막 비상구>는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커다란 이야기를 세세하게 하고 있었다. 원자력발전소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에너지 현황을 다루며, 우리가 얼마나 위험하게 에너지를 만들고 소비하고 있는지 자세하게 파헤친다.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지 내막과 구조도 짚어주기 때문에,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에너지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예전의 나처럼 너무나도 큰 문제 앞에서 무기력함을 느낄 수 있는데, 이 책은 ‘그렇다면 우리는 무얼 할 수 있는지’ 대안까지 제시한다.

▲ 프라이부르크시 보봉 마을 중심가에 있는 125미터(m) 길이의 주상복합건물 ‘태양의 배(The Sun Ship)’. 건축가 롤프 디쉬가 설계한 이 건물은 특수 환기장치 등으로 에너지소비를 최소화하고 지붕의 태양광 패널 등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세계 최초의 상업용 플러스에너지빌딩이다. ⓒ 제정임

‘위험한 에너지’를 벗어나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 전환한 해외 사례와 국내의 노력도 자세히 볼 수 있다. 중간중간 낯선 단어와 복잡한 수치들이 나와서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그 어떤 책보다 생생한 사례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한 번 읽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책의 두께만큼이나 두터운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고 얻은 건 그게 다가 아니다. 에너지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얻은 것도 소중하지만, 앞으로 내 인생에 꼭 가져가고 싶은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바로 ‘비판적인 태도’다.

비판적 자세 없이 살았던 나의 부끄러운 과거를 하나 털어놔야 할 것 같다.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설치하려던 태양광 패널을 ‘중금속과 전자파 위험’을 이유로 반대해서 무산시킨 과천 시민들 이야기가 이 책에 잠깐 나온다. 내가 바로 그 과천 시민 중 하나다. 내 기억으론 자신을 ‘환경단체 소속’이라고 소개한 사람들이 ‘태양광 패널이 중금속과 전자파로 인한 피해를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태양광 패널을 당연히 설치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환경단체가 주장할 정도라면 지금 진행되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반대 서명을 했다. 과연 환경단체가 맞는지, 그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서명했던 그때를 후회한다.

▲ 경기도 용인시 용인휴게소 주차장에 태양광 패널로 설치한 지붕. 노상주차장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은 유휴공간을 이용한 전력생산이라는 경제성 외에 비와 눈을 막고 그늘을 만들어 운전자 편의를 높이는 효과도 있으나 과천에서는 주민 반대로 사업계획이 중단됐다. ⓒ 박지영

비판적으로 보고, 제대로 따지는 시민 되기로 

이 책을 보면 이렇게 별다른 비판이나 의심 없이 다른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였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원자력발전소를 지역에 건설하는 데 찬성했던 사람들도 그게 본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꼼꼼히 따져보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제대로 따지려면 일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자세를 먼저 보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나의 잘못된 선택을 돌아보면서, 앞으로는 뭐든 섣불리 수긍하지 말고 비판적으로 따져보고 신중히 결정하기로 했다. <마지막 비상구>는 환경 문제의 실체를 몰라 두려운 마음만 컸던 내게 정말 큰 전환을 다짐하게 한 책이다.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쳐다보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해 주었다. 

불편한 진실을 알고 난 뒤에는 늘 ‘그래서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따른다. 나는 산업의 구조를 바꿀 수 없는 아주 작은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낙담하진 않기로 했다. 한 사람의 시민이자 유권자로서, 똑바로, 샅샅이 지켜볼 것이고, 현실을 바꿀 기회가 왔을 때 명확한 근거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으로,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고 자부한다.

(*원 제목: ‘마지막 비상구’를 읽고)


편집 : 김지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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