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이상우의 세 번째 가족영화, 부산영화제서 전석 매진

<엄마는 창녀다>에 이어 <아버지는 개다>로 ‘저예산 변태감독’의 입지를 굳힌 이상우 감독(41)이 이번엔 ‘나름대로 돈 좀 들인’ 장편영화를 들고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았다. 그는 <엄마는 창녀다>에서 몸을 파는 엄마와 포주 노릇 하는 아들의 ‘처참하지만 뭉클한 사랑’을 그렸고, <아버지는 개다>에서 아들을 개처럼 패는  폭력 아버지를 조명했다. 이번 작품 <바비>는 가난 때문에 미국으로 입양 가는 아이의  이야기로, 그의 ‘가족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작들이 모두 1000만원 미만의 저예산으로 ‘거칠게’ 만든 작품인 반면 이번에는 ‘무려 1억원이나’ 들여 담담하고 세련되게 뽑아냈다. 부산국제영화제 ‘비전(VISION)’부문에 소개된 <바비>는 지난 7일부터 12일까지 상영기간 내내 해운대 메가박스 등 3개 상영관, 총 6백 여 석이 모두 매진되는 호응을 얻었다.

▲ <엄마는 창녀다>(위 왼쪽) <아버지는 개다> 포스터(위오른쪽).아들 역을 맡은 이상우 감독이 열연한 <엄마는 창녀다>의 한 장면(아래). ⓒ 네이버영화

“바비가 되고 싶어. 미국에 가고 싶어.”

금발인형 ‘바비’가 그려진 작은 여행용 가방이 클로즈업된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바비는 이 여행가방의 주인이자, 아이를 입양하러 한국에 온 미국인 내과의사 스티브의 딸 이름이기도 하다. 스티브는 심장병을 앓는 바비를 위해 심장을 이식해주고 대신 죽을 아이를 찾으러 왔다.

▲ 순영을 입양하러 한국에 온 스티브와 그의 딸 바비. ⓒ 부산국제영화제홈페이지

경북 포항의 바닷가 마을 민박집 둘째 딸인 순자(김아론 분)는 ‘바비 오타쿠(마니아)’다. 방안 가득 바비 인형과 장신구를 채워놓고, 매일 인형 같은 드레스를 입고 화장도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인데 “나도 바비처럼 마르고 예뻐질거야”하고 주문도 외운다. 순자라는 이름과 가난한 살림살이가 바비 인형으로 가득한 작은 방과 대비되면서 묘한 슬픔을 자아낸다. 

“I want America. I love America very very much. (미국을 원해. 미국을 사랑해 많이 많이.)”

▲ 아메리칸 드림에 젖어 행복한 꿈을 꾸는 순자. ⓒ 부산국제영화제홈페이지

순자는 미국에 가고 싶어 한다. 어설픈 발음으로 스티브와 삼촌 앞에서 미국에 보내달라고 조른다. 원래 입양이 예정됐던 건 순영이지만 순자는 언니의 여권사진을 숨기기도 하고, 바비에게 자기를 데려가 달라며 달라붙기도 한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스티브가 왜 왔는지 모르지만 지체장애인인 아버지와 툭 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망나니 삼촌, 어린나이에 민박집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언니 순영(김새론 분)으로부터, 지긋지긋한 현실로부터 도망가고 싶다. 

"미국은 아메리칸드림으로 가득 찬 곳이지.”

순자에게 바비 인형은 곧 아메리칸 드림이다. 영화는 언니 대신 미국으로 떠나게 된 순자가 스티브 가족과 공항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 모습으로 끝난다. 마지막 장면 역시 바비 인형이 그려진 여행용 가방으로 페이드아웃 된다. 이젠 순자의 손에 들린 그 가방.

‘입양대국’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심장이식을 위한 입양’이라는 충격적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두 아역배우와 삼촌 역 이천희의 연기가 영화의 리얼리티(사실성)를 살려준다. 서울방송(SBS)의 예능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에 ‘천데렐라’라는 애칭을 얻으며 맹활약했고, 여러 드라마에서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줬던 이천희는 조카와 형을 때리면서도 어딘가 슬퍼보이는 표정으로 눈길을 끈다.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욕을 뱉어내는 장면에서 떨리는 목소리는 ‘조카를 팔아 넘기는 삼촌’보다 ‘가난한 장애인가족이 살아가기 힘든,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내는’ 복지 빈국의 현실에 더 분노하게 만든다.

▲ 순영과 순자를 안고 즐거워하는 아빠와 그런 그를 나무라는 삼촌(위), 조카를 입양보내며 괴로워하는 삼촌(아래). ⓒ 부산국제영화제홈페이지

언니 순영 역할의 김새론은 영화 <아저씨>에서 ‘소미’역으로 이미 주목 받은 아역배우다. 순자 역할의 김아론은 새론의 친동생이다. 두 아이의 엄마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단박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시나리오가 탄탄했고, 이상우 감독의 지난 작품들로 인해 믿음이 갔기 때문이란다. 이천희도, 두 아역배우도 출연료는 받지 않았다. 가수를 꿈꾼다는 김아론은 처음 선보이는 연기가 다소 어색한 부분도 있었지만 병약하고 공상 많은 순자역에  잘 어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 유난히 몸이 약한 순자(김아론)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순영(김새론). ⓒ 부산국제영화제홈페이지

<엄마는 창녀다>에서 주인공 아들을 연기했던 이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카메오(깜짝출연)로 얼굴을 내밀었다. 순영을 성추행하려고 한 민박집의 ‘진상’ 손님역이다. 짧지만 인상적인 연기가 영화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영화는 이 감독의 이전 작품에 비해 덜 직설적이고, 덜 폭력적이고, 좀 더 세련됐다. 그렇지만 ‘부조리한 상황 속에 배어나는 가족간의 사랑’이란 주제는 여전하다. 정신지체장애인이지만 딸이 팔려간다는 걸 알고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아빠, 자신이 책임지지 않으면 가족들이 살 길이 막막하다고 생각한 큰 딸, 미국에 가서 돈 많이 벌어 가족들을 호강시켜 주겠다고 다짐하는 둘째 딸. 심지어 아이를 팔아 넘긴 망나니 삼촌도 막상 여권이 나오자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저예산 변태감독’의 매력이 더욱 진해진 영화. 아직 일반 개봉일은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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