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tvN ‘노랫말싸미’의 외국인 소비 방식

방송 프로그램에서 외국인은 늘 흥미로운 장치다.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외국인의 시선을 거치면 낯설고 신선하게 느껴진다. 최근 외국인이 출연하는 예능이 단순한 스튜디오 토크쇼 형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포맷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명절 때 일회성으로 소비하던 단계를 지나 다양한 포맷과 소재를 자랑한다. ‘낯설게 바라보기’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이를 올바르게 활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tvN <노랫말싸미>는 그 교훈을 보여주고 단 한 달 만에 막을 내렸다. K팝으로 한국 문화를 소개하겠다던 색다른 포맷의 프로그램 <노랫말싸미>는 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을까?

▲ 2020년 3월 종영한 tvN <노랫말싸미>는 K팝으로 한국어와 문화를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 tvN

배를 산으로 이끄는 기획 의도

“노래에는 그 시대의 언어, 철학, 희로애락의 감정은 물론 연애, 가족, 사회 트렌드 등 삶의 모든 문화가 담겨있다.”

기획의도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야 한다.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에는 상징적이고 명확한 키워드가 없고, 추상적인 단어들만 나열되어 있다. 간결하고 명확하게 “K팝으로 배우는 한국 문화” 정도로 압축해도 기획 의도를 나타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하나의 주제를 명확히 제시하고 그 주제가 다른 요소들을 포괄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너무 많은 주제를 담으려 했다. 프로그램 정체성이 모호한 것은 산만한 기획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이런 문제는 ‘K팝 어학당’이라는 부제에서도 나타난다. 어학당 구실은 제대로 한 걸까? 이 프로그램의 구성은 크게 ‘한국어 수업’과 ‘노래 수업’ 그리고 ‘문화 수업’으로 나뉜다. 그런데 1시간 방송 중 절반 이상을 노래 수업에 집중한다. 가수의 무대와 노래 감정에 관한 소개 등 노래 자체는 비중 있게 다루지만, 정작 한국어와 문화는 부가적 요소로 전락했다. 출연자를 살펴봐도 백지영 홍진영 박상철 김연우 에일리 등으로 맥락이 없다. 이들의 노래 대부분은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대화 폭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엇나간 기획 의도가 곳곳에서 잡음을 일으켰다.

문화를 가르치겠다고?

“아이 돈 워너 리브 위드아웃 유.”

tvN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수학여행을 떠난 덕선이 반 친구들이 기차에서 팝송 ‘Nothing gonna change my love for you’를 듣고 있다. 반 친구들 모두가 처음에는 허밍으로 더듬더듬 따라 부르다가 후렴구가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큰 목소리로 따라 부른다. 그 시절 팝송은 누구나 따라 부르고 싶은 주류 음악이자 낭만이었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는 것은 예사고, 영어 발음을 그대로 한글로 옮겨 거의 외우다시피 하는 이도 있었다. 그 옛날 한국인에게 팝송은 영어에 입문하는 문화적 매개체였다.

▲ tvN <응답하라 1988>에서 팝송을 따라 부르는 장면은 많은 사람의 추억을 자극했다. Ⓒ tvN

이 프로그램은 같은 맥락에서 K팝이 팝송의 역할을 소화할 것이라고 본 듯하다. 그러나 K팝은 세계인에게 다가간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음악이다. ‘문화적 할인’ 극복은 K팝의 핵심 전략 중 하나다. 이 때문에 한국 특유의 멋보다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를 담는다. 그러니 K팝으로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를 소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거창하게 ‘K팝 어학당’이라고 이름 붙였으나, 결국은 노래교실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이 팝송을 통해 영어에 관한 환상을 얻은 것은 그 시대를 반영한 문화일 뿐이다. 그 사례가 지금도 유효하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고 엉뚱하기까지 하다.

문화를 가르칠 수 있을까

백지영의 노래 ‘총 맞은 것처럼’을 주제로 문화적 차이를 이야기하는 시간에 외국인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콩고 출신 조나단은 “한국은 총기 소지가 불법인데, 돌 맞은 것처럼으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농담 섞인 말을 던졌다. 이런 언급은 농담으로만 치부되고, 진행자는 백지영에게 무대를 청한다. 그렇게 의미 없이 백지영의 무대가 이어졌다. 출연자들이 한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도, 문화 차이를 가지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이어가지도 않는다.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고자 하는 문화 교육이란 무엇일까?

문화는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행동 양식이다. 이것을 어떻게 규정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문화인류학에서는 직접 그 사회로 들어가 체험하고 느끼면서 종합하는 연구 방식을 사용한다. 문화는 단편적으로 규정하고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의 시선을 담는다. 보다 생활 밀착형으로 문화를 소개하는 방식이다. 4박5일 동안 한국 문화권에서 직접 생활하면서 문화를 체득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것은 소소하고 사소하지만, 우리에게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색다른 쾌감을 선사한다. 문화는 교육 차원이 아니라 체험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

▲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외국인이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리얼리티 여행 프로그램이다. © MBC 에브리원

외국인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자

외국인의 시선은 그동안 주로 ‘국뽕’이란 방식으로 우리에게 소개됐다. ‘국뽕’은 국가와 히로뽕(필로폰)의 합성어로 무조건 한국을 찬양하는 세태를 풍자한 표현이다. 그동안 ‘국뽕’ 심리를 이용한 여러 프로그램에서 외국인 구실은 ‘한국 띄우기’였다. ‘삼성’ ‘현대’ ‘LG’ 대기업을 나열하는 외국인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위안을 얻었다. 외국인의 시선은 지나치게 작위적이었고, 그 시선은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을 확인하는 지표로 여겨졌다.

이제 사람들은 다른 것을 원한다. 한류에 열광하는 외국인의 모습이나 작위성 짙은 멘트가 아니라, 진짜 한국을 체험하고 느낀 리얼리즘을 원한다. 그렇게 얻어진 외국인의 시선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자신을 미화하는 수준을 넘어 있는 그대로를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거울 같은 시선,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편집: 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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