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칼럼]

▲ 김지영 교수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전문용어 같았던 이 낱말이 요즘엔 일상적으로 대중매체에 오르내리고 있다. 말인즉, 신문과 잡지·TV·라디오처럼 오래된 전통 매체,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옛날에 개발된 매체, 또는 일방적인 소통방식의 매체를 뜻하기도 한다. 이 용어가 일상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뉴 미디어’가 이젠 사람들의 생활에 완전히 ‘현 미디어’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말할 때는 ‘옛 것인지, 지금 것인지’부터 선명하게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 발전은 인류 역사에서 문자 발명이나 구텐베르그 인쇄술 발명 못지않게 큰 미디어 혁명을 몰고 왔다. 미디어 혁명은 인간의 삶 전반에 큰 변화를 불러 왔지만 역시 미디어 생태계 내부의 변화야말로 직접적이고 광범위하며 세밀하다. 미디어 분야의 소식을 접하다 보면 평생을 레거시 미디어에서 일해 온 나같은 사람은 “아, 과연 혁명이구나” 하고 변화를 절감하게 된다. 

유튜브와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는 객관적인 ‘사실’보다 주관적인 의견 즉, ‘내 취향’ ‘내 신념’을 중시한다. 내 입맛에 맞는 뉴스가 진짜뉴스, 맞지 않는 뉴스는 가짜뉴스로 취급하기도 한다. 레거시 미디어들조차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하느라 이들을 따라 한다. 의견을 객관적 사실처럼 표현하는 ‘탈진실의 시대’, 사실이 실종되면서 유사 이래 유지돼왔던 ‘사실’ ‘사실의 검증’ ‘사실과 의견의 구분’이라는 저널리즘 헌장 1조의 항목들까지 풍전등화처럼 불안하다. 저널리즘의 근본 가치까지 흔들리는 걸 볼 때 혁명성은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이 혁명은 미디어 생태의 구석구석을 바꾸고 있다.

▲ 레거시 미디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 Pixabay

다음의 사례들은 그같은 상황을 보여주는 몇가지 단면이다. 

<사례1> 지난해 10월 25일, 신문윤리위원회의 세미나에서 한 참석자는 “사실과 의견 구분 원칙이 이 시대에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발언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신문윤리실천요강 3조 1항 ‘기자는 사실과 의견을 명확히 구분하여 보도기사를 작성해야한다’에서 ‘명확히’라는 말을 빼는 문제를 학계와 언론계 등에서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사례2> 지난해 11월 15일 저녁, 서울시내에서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의 동문회가 열렸다. 이 학교는 실무중심 언론대학원으로서 언론인을 많이 배출했다. 현역 언론인인 선배들과 후배들인 재학생들의 간담회 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한 언론사 법조 담당인 박모 기자는 이른바 ‘조국 사태’의 취재 애환을 털어놓았다. 박 기자는 “취재원을 만나면 너는 어느 편이나고 묻는 것을 태도와 표정에서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균형있게 접근하려해도 독자 개개인의 가치 판단에 따라 악플이나 항의전화가 막 온다”면서 “기자를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사례3> 지난해 연말 동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에서는 재학생과 선배들의 멘토링 모임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어느 업종의 선배들을 초청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재학생들로 하여금 투표를 하도록 했다. 그 결과 초청희망 1순위는 피디, 2위 홍보직, 3위 작가의 순이었다. 기자 선배들은 초청받지 못했다. ‘기레기’라는 비난이 난무하는 세태, 언론학과의 탑 레거시 였던 기자들을 언론학과 학생들이 만나길 거부했다. 

<사례4> 전통있는 종합일간지, 전형적인 레거시 미디어인 신문사 한 곳이 최근 새 사장 공모절차를 진행했다. 사장이 물러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사장뿐 아니라 편집국장과 광고국장까지 사의를 표했다. 1면에 게재할 예정이었던 기업체 관련 기사를 해당 기업체와 거액에 거래하려 한 사실이 드러난 뒤였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충격을 받은 이들이 많았다지만 미디어 생태계의 실상을 알고 있는 이들은 반응이 달랐다. “겉으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뿐, 많은 매체들이 뒤로 기사를 거래하는건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무상해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레거시가 쇠락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더욱이 인류 역사 최대의 미디어 혁명이자 축제가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그 와중에 레거시가 존재했던 이유, 추구했던 가치가 마구 구겨지는 것이 슬프고 때로는 비참할 뿐이다.


이 글은 신문윤리 회보 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편집 : 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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