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신수용 기자

민주당의 총선압승은 승리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재촉한 실패로 읽힌다. 여야가 어렵사리 통과시켰던 선거법 개정안, 원래 그 핵심은 다양성과 비례성 확보였다. 투표에 반영된 여러 계층의 민의를 가능한 있는 그대로 정치 현장에서 재생하자는, 다당제의 취지를 북돋우자는 것이었다. 거대 양당 구도의 한계를 보완하자고 어렵사리 만들어냈던, 국회 생산품으로는 모처럼 신선감마저 주었다. 하지만 총선 결과는 그런 취지를 완전히 배반했다. 거대 양당이 앞장서면서 난립한 위성정당들은 그나마 올라오던 중소정당의 싹을 꺾어버렸다. 공약과 정책은 실종됐다. 21대 총선은 정당정치 발전에서는 실패한 선거였다. 여당으로서 선거법개정안을 주도했던 민주당은 실패한 승리를 거두었다.

역사적 경험칙상 '외연적 승리'는 또 다른 재난을 부르기 쉽다. 자만 끝에 '내부적 위기'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으로 사회·경제체제가 파괴되면서 1960년대에는 ‘강력한 지도자'가 거듭 선출됐다. 국가 주도 경제 개발을 명분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뒤이은 군부독재가 이어졌다. 외연적으론 ‘고속성장’을 이뤄냈지만, 내부적으로 민주주의는 지체했다. 권위주의적 통치가 정착했고, 이에 대응한 3김의 계파정치가 이어졌다. 계파정치는 때때로 유권자가 아닌, 특정 계파의 이익을 옹호하는 기제로 작동했다. 문민정부를 수립한 3김의 '승리'에 가려진 실패다. 1997년 이후 외환위기와 세계화, 신자유주의 체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선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등 노동인권이 추락하는 ‘내부적 위기’가 가속화하기도 했다.

▲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21대 총선에서 확보한 의석수는 모두 180석이다. 전체 300개 의석 가운데 5분의 3에 해당한다. © Pixabay

21대 국회는 당장 정당정치 복권을 위한 선거법 손질에 나서야 한다. 박경림 정치학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87년 이후 평균 3.8개의 유효 정당이 있었지만, 이번 총선은 2.0개다. 국회에 입성한 의원 대부분은 거대 양당 출신이라는 또 다른 표지다. 민의를 살리고 중소정당을 살리자는 취지로 선거법을 고치고도 정치인 스스로 결과를 거꾸로 돌려놓는 희극적 상황. 이런 일이 되풀이 된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진전할 수 없다. 국회를 대신해 시민들이 촛불을 밝혀야 하고, 청와대 청원을 올려야 하는 거리 정치는 더욱 활성화할 것이다.

반면, 우리는 '내부적 승리'의 사례를 방역에서 찾을 수 있다. 코로나19 방역의 일등공신 중 하나는 질병관리본부다. 2003년 전염병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했다. 한국은 감염자 3명, 사망자 0명으로 모범 방역국으로 칭송받았다. 정부는 방역 성공이라는 '외연적 승리'에 자만하지 않고 2004년 질본을 공식 창설했다. 외연적 승리를 발판삼아 투명한 공개라는 민주적 가치와 전문성을 제도화한 것이다. 데이비드 런시먼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는 <자만의 덫에 빠진 민주주의>에서 위기를 민주주의의 본질로 봤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이 정도면 괜찮다'는 자만에 빠졌을 때 찾아온다고 지적한다. 민주당이 지금 '압승'이라는 '외연적 승리'에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내부적 승리를 도모해야 하는 이유다.


편집 :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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