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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노랑 소나타의 추억과 현실
[청년기자의 시선2] '4월' ② 노랑
2020년 04월 25일 (토) 17:36:54 박두호 기자 dooh5@naver.com

노랑 빛깔 추억

길목 곳곳이 개나리와 유채꽃으로 가득하다. 유치원 가는 길에 보던 노란색 풍경은 4월이 왔음을 말해준다. 노란색 골목에서 뛰어 놀다 노란색 유치원 버스를 탄다. 유치원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반긴다. “우리 이쁜 병아리들, 어서 와.” 노란 개나리의 꽃말은 희망이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병아리들에게 세상 모든 것이 즐겁고 신기한 놀이터다. 4월은 노랑이었고, 노랑은 꿈이자 생명이다.

공 하나만 있으면 친구들과 종일 놀 수 있다. 공은 학교 담장을 넘기도 하고 학교 정문 밖으로 굴러가기도 한다. 학교 담장 길에 주차된 차 밑으로 들어가 겨우 공을 빼내는데, 옆에서 쌩 달리는 차에 자칫 부딪힐 뻔한다. 차 주인 어른이 호통을 친다.

다시 4월이다. 자연은 올해도 어김없이 학교 담장에 내가 좋아하는 노랑색 개나리를 피웠다. 문득 옛 추억에 빠지는데, 병아리들이 쪼르르 달려간다. 예쁘다. 귀엽다. 학교 앞 2차선 도로에는 다 뜯겨진 페인트로 어린이 보호구역이란 글씨와 30km 제한 속도가 그려져 있다. 횡단보도엔 흰색 페인트가 흐릿하게 보인다. TV 캠페인 광고에서 본 오렌지 안전길은 보이지 않는다. 차들은 여전히 쌩 달려가며, 아이들은 신호등도 없는 건널목을 무심코 뛰어 건넌다. 아찔하다. 인도와 차도 구분이 없는 학교 앞은 더 위험하다. 불법 주정차한 차들로 가득해 지나갈 공간도 부족하다. 아이들은 그 사이를 빠져나간다. 스쿨 존의 황색선은 생명선이고, 노랑버스는 꿈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 봄, 우리는 노랑을 잃어버렸다.

   
   
▲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불법 주차된 차량 사이로 아이들이 지나가고 있다. 작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난 사고는 555건이다. ⓒ KBS, SBS

왜, 민식이 법이고 해인이 법인가

지난달 25일 시행된 민식이법을 둘러싼 논란은 어린이 안전과 생명을 대하는 세상의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민식이법 시행반대 청원은 30만 명을 넘었다. 청원반대 이유는 민식이법 내용 중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사고 원인을 운전자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기 때문이란다. 시속 30km 내로 운전했고, 어린이가 갑자기 달려들어 사고가 났는데, 민식이법에 따라 운전자가 가중처벌 받는 건 과하다고 주장한다. 법안 통과도 지난해 11월 MBC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법안 통과를 촉구해서 졸속 통과된 악법이란 가짜뉴스도 돌아다닌다. 

어린이 교통사고 원인을 어린이와 보호자에게 넘기며 약자를 향한 차별적 시선을 부추긴다. 민식이도 시속 23km의 차량에 뛰어들어 사고가 났다며 아이를 간수하지 못 한 민식이 부모에게 악플을 단다. 감성팔이로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비난까지 한다. 민식이법은 어린이 보호구역내에서 시속 30km를 준수하지 않거나 어린이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할 의무를 위반할 때 적용된다. 예견 가능성과 불가항력을 따지기 때문에 시속 30km 내로 운전하고 고의성이 없다면 민식이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 피해 어린이 부모들이 국회를 찾아 눈물로 어린이 안전법안을 통과를 간곡히 호소했지만 아직도 국회 상임위에서 5건의 법안이 계류 중이다. ⓒ SBS

유가족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어린이 안전법을 만들려는 가족의 절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다. 2016년 4월 14일 해인이는 세상을 떠났다. 어린이집 앞에서 통학버스를 타려던 해인이는 기어를 제대로 넣지 않아 후진하던 차에 치였다. 어린이 승하차를 인도에서 하지 않고 차도에서 해서 난 사고였다. 차가 후진해 해인이를 치기까지는 20초쯤 걸렸으나 차 주인도, 어린이집 선생님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고 뒤 해인이는 곧장 응급실로 가지 않고 원장실로 옮겨졌다. 아이의 상태보다 자기 앞날을 걱정한 것이다. 2016년 8월 해인이법이라 불리는 ‘어린이안전기본법’이 발의됐다. 어린이 시설 관리자와 종사자는 어린이가 위급한 상태에 놓이면 즉시 응급의료기관에 신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제자리걸음하는 어린이안전기본법

어린이 안전 사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장치들은 시급한데, 법들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무심한 어른들은 해인이법도, 태호·유찬이법도, 한음이법도 관심 밖이다. 태호·유찬이법은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 대상 시설을 확대하고, 통학버스 내 어린이 안전띠 착용 확인, 운행기록장치 설치 의무화를 강제한다. 한음이법은 어린이 하차 확인 장치를 만들어 모든 어린이가 차에서 내렸는지 운전자가 확인하는 법안이다. 법안들은 기본 상식 선에서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를 규정할 뿐인데 왜 제자리걸음인가? 해인이법, 태호·유찬이법은 3월 6일 상임위원회를 통과해 작은 진전이 있었지만 한음이법은 여전히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원회에 계류중이다. 4월 29일까지 국회 본회의를 넘지 못하면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다.

학교와 유치원 앞 스쿨 존은 어린 병아리들이 생활하는 생명의 공간이다. 어린 생명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안전은 배려에서 시작한다. 법을 지켰다고 배려가 아니다. 시속 30km라도 어린이에게는 치명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의 76%가 보행중일 때 발생했고, 어린이 보호구역 내 사고율도 2018년 435건에서 555건으로 늘었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 사망자는 2018년 3명에서 2019년 6명, 부상자 역시 473명에서 577명으로 늘었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어린이 보호구역에 들어오면 운전자가 무의식중이라도 인식할 수 있게 도로, 인도, 표지판 곳곳을 노란색으로 짙게 칠해야 한다. 아이들이 노란색 공간에서는 마음 놓고 뛰놀 수 있게 해야 한다.

어린이가 다니는 축구 클럽을 포함해 노란색 어린이 통학버스 운영을 확대해야 한다. 통학버스 안에 보호자가 반드시 타게 하고, 안전벨트는 어린이용을 써야 한다. 승하차는 반드시 차도가 아닌 인도에서 하고, 어린이가 차에서 내려 횡단보도로 바로 뛰어가지 못하게 보호자는 아이가 걸어가는 모습까지 지켜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학버스는 ‘노란색 폭탄’이다.

   
▲ 다섯 살에 세상을 떠난 해인이. 해인이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해인이법은 법 발의된 지 3년 7개월이 지난 지금도 국회 계류 중이다. ⓒ KBS

세상을 노랑으로 가득 채우자

4월은 노란색이다. 노랑은 아이들이다. 노랑은 병아리들이 지내는 생명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어린이들은 무조건 보호받아야 한다. 노란색을 보면 어른들은 무의식적으로 아이들 안전이 떠오르게 하자. 그게 배려의 시작이다. 배려를 하면 사고는 줄어든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없다. 어린이안전법안이 모두 통과한다 해도 어른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아이들을 지킬 수 없다. 어른들의 불편을 아이들에게 들이밀면 안된다. 노랑 공간에서 어른들이 조금 불편하면 아이들은 안전하다. 노란색 안에서 어린이가 꿈을 키우고 실현할 수 있게 하자. 

내가 개나리를 보고 어린 시절의 추억과 꿈을 회상하듯 노랑은 희망이다. 아이들이 지내는 공간을 노란빛으로 가득 채우자. 4월 한때만이 아니라 일년 내내 채우자. 세상이 온통 이 봄의 생명력과 희망으로 가득하도록, 그 생명력과 희망이 우리 어른에게도 전해지도록. 노랑은 생명이고, 희망이자 미래다.


지난 가을학기에 연재한 <청년기자들의 시선>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봄학기 <청년기자들의 시선2>는 현상들 사이(Between)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사이의 갈등과 대립 너머(Beyond)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시선2>의 두 번째 주제는 ‘4월’이다. ‘4월’은 봄을 여는 계절이자 T.S. 엘리엇이 노래한 ‘잔인한 달’이며, 제주4·3과 4·19혁명, 그리고 4·16 등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었다. 올해 4월,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과 4·15 총선 과제까지 껴안아야 한다. 청년기자들이 2020년 4월 이 땅의 시·공간을 다양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편집자)

편집: 방재혁 기자

[박두호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부장, 기획탐사팀, TV뉴스부, 시사현안팀 박두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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